UNDER THE HOOD

I.

내가 살고 있는 블록의 모퉁이에 위치한 슈퍼마켓에 드니즈라는 여자가 일하고 있는데,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미국 최고의 소설가 중 한 명이다. 그녀는 여러 해에 걸쳐 마흔두 권의 로맨스 소설을 썼으나 단 한 권도 서점에 진열된 적은 없었다. - P1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슬픈 것은 발퀴레의 기행 (The Ride of the Valkyries)‘이다. 그 곡을 들을 때마다 난우울해지고 인류와 인생의 불공평함에 대해 생각하게 되며, 소화가 안 돼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 새벽 세 시 정도에나 떠올릴 법한 온갖 잡생각들이 난다. 지구상의 어느 누구도 그 감동적인 후렴을 들으면서 눈물을 훔쳐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겠지만 그건 그들이 모 버논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 P1

어쨌거나 우리가 몬태나를 떠났을 때 난 겨우 열두 살이었기에 그 후 몇 해 동안은 아버지의 일터에 함께 나가는것을 즐길 만한 나이였는데, 그때 아버지의 고용주인 모 버논을 처음 보았다.
모 버논은 쉰다섯 살 정도의 남자였고 지금은 볼 수 없는 그 옛날 뉴욕인의 얼굴 중 한 가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우스운 일이지만 어떤 얼굴들은 유행을 타기도 하고 유행에 뒤쳐지기도 한다. - P1

어쨌거나 나의 열일곱 번째 생일이 조금 지난 1933년의 어느 날, 아버지와 함께 버논의 자동차 정비소에 가서 기름범의 망가진 포드 자동차 내부를 이리저리 찔러 보고 있을 때였다. 모는 집무실에 있었는데 한참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그때 그는 아침에 편지를 가져다줄 우체부를 웃기려고 고무로 된 모조 여성유방을 착용한 채 바그녀의 음악을 들으며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우체부는 예정된 시간에 왔고, 이른 아침에 배달된 공문을 꺼내 읽을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기 전, 모의 풍성한가슴골은 우체부에게 웃음을 주어 본분을 다했다. 배달된 편지들 중(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나중에 알아낸 것이다.) 하나는 모의 아내인 비아트리스한테서 온 것이었는데, 그녀가 거의 2년 동안 정비소에서 가장 오래 일했고 모가 가장 신뢰하고 있던, 그러나 그날 아침 평소와 달리 출근하지 않은 프레드 모츠와 잠자리를 계속해왔다는 내용을 전달하는 편지였다. - P3

그리고 모두 웃기 시작했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모가 울고 있는 건봤지만, 여성유방을 걸치고 웅장한 음악을 배경으로 음조도 억양도 없이 내뱉은 말투의 그 무언가 때문이었다. 모두 웃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나와 아버지는 몸을 굽히며웃었고 각자 맡은 차에 붙어 노예처럼 일하던 주변 사람들도 웃다가 흘린 눈물을 훔치며 얼굴에 기름때를 묻히고 있었다. - P3

그날 밤 모는 다들 일찍 퇴근하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그 정비소에 남은 차들 중 그나마 작동하는 차의 머플러에튜브를 연결해 자동차 창문에 끼워 넣고 시동을 걸어 일산화탄소 속에서 마지막으로 비통한 잠에 빠져들었다. 그 뒤 동생이 사업을 물려받았지만 결국엔 프레드 모츠를 다시 정비소장으로 고용하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내가 아닌 남의 불행임에도 불구하고 ‘발퀴레의 기행‘은 내가 아는 가장 슬픈 것이 되었다. 난 그곳에있었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웃기까지 했으니 부분적으로 내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 P4

II.
1939년 난 스물세 살이 되었고 뉴욕경찰로 취직해 있었다. 왜 그 직업을 골랐는지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짐작컨대 몇 가지 이유가 있기는 하다. 그 이유들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나의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쏟아 부었던 죄책감과 압박, 그리고 서로에 대한 비난을 싫어했지만 인생에서 첫 12년을그의 근처에서 보냈다는 단순한 사실이 나에게 어떤 지울 수 없는 도덕적 가치와 조건을 새겨 주었다. - P4

기둥서방들, 포르노 제작자들, 마피아들, 더 비싼 세를 들이기 위해 기르던 개를 풀어 오랜 세입자를 내쫓는 집주인들, 어린아이들을 만지는 늙은이와 겨우 수염을 깎을 정도의 나이에 불과한 무감각한 젊은 강간마들, 난 이런 사람들이 내주위를 가득 채우고 있는 걸 보았고 세상과 그 세상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속이 메스꺼워지곤 했다.  - P4

(전략).
그 질문에 답을 한다는 것. 생각해 보면 그것이 나를 경찰의 길로 이끌었다. 그리고 또한 그것이 훗날 내가 경찰 이상이 되도록 한 것이다. 그걸 이해할 수 있다면 이 이야기의 나머지를 받아들이기가 훨씬 쉬워질 것이다. 내가 한 일에 대해남의 이해를 구하는 게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 행동을 한 이유에 대해 나 이외의 다른 이들을 대신하여 답을 해줄 수도 없거니와 모두의 대답이 다르겠지만, 내 경우엔 꽤나 간단하다. - P31

내게 모든 것은 1938년에 시작되었다. 슈퍼 히어로라는 것이 탄생한 해이다. 첫 액션 코믹스가 발행되었을 때 난만화책을 읽기엔 너무 나이가 많았지만 아니, 최소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읽기엔 그랬지만, 많은 동네 꼬마들이 그걸 읽고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는 참지 못하고 한번 훑어봐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만일 누군가 날 본다고 해도 단지 동네 아이들과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라고 변명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 P5

그건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많은 기억을 되살려 주었고 그로 인해 내가 열셋, 열네 살 때 꿈꿨던 상상들이 다시금 기지개를 켰다. - P5

그 후부터 순진한 꼬마를 꼬여 가끔 보고 싶은 만화책을 빌리기라도 하면 하루 종일 머릿속에서 빌딩 사이를 넘나들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나는 그 해 가을 어느 날 신문을 보다가 슈퍼 히어로들이 그들만의 올컬러 세계를 벗어나, 흑백의 현실로 이루어진 세계로 침공해 들어왔다는 소식을 접하고야 말았다.
첫 번째 뉴스는 단순하고 신빙성이 떨어지긴 했지만 마음에 드는 픽션의 요소들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나중에 참고할 요량으로 기억해 두었다. -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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