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큐레이터인 윤범모는 10일의 사임 발표를 통해 "행정 관료들로부터 협박에 가까운 수정 요구를 받았다"며 광주시와 비엔날레 재단을비판했다. 13일에는 비엔날레 재단과 전시회를 공동 주최하는 광주시립미술관의 황영성 관장도 사의를 표명했고, 18일에는 비엔날레 재단의 이용우 대표이사가 사퇴 기자회견을 열었다. - P125
그 후에도 작가들에 의한 항의 활동이 벌어지거나, 특별전과 관련한 심포지엄에서 검열이 주제가 되기도 했는데, 홍성담은 일본 잡지 『임팩션』에 기고한 논고에서 요구를 철회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비엔날레 본전 개막식을 앞두고, 본 전시에 초대된 동료 화가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비엔날레 재단과 광주시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이 마음 아팠다. 윤장현 광주시장은 7월에 막 취임했던 터라 자신이 비엔날레 재단의 이사장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그는 결국, 자기 자신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코미디를 연출한 것이다. - P126
알면서도 모른 체하는 도쿄도 현대미술관
이야기를 한국 국립현대미술관의 관장 인사로 되돌려 보자. 바르토메우 마리는 취임 이후인 2015년 12월 14일 기자회견을 열어 "모든 종류의 검열에 반대한다."고 선언함과 동시에,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에서의 사건에 관한 보도는 잘못되었다고 주장했다. - P126
한 가지만 짚어두자면, 이 정도로 끔찍한 사건 중에도 그나마 유일한 구원이라 할 수 있는 것은, 관계자들이 한결같이 발언하고 있다는 점이다. 규제를 당한 측이야 항의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 쳐도, 규제한 측인 바르토메우 마리도, 윤범모도, 윤장현도, 이용우도, 설득력은 누구 하나 없을지언정 열심히 변명에 힘쓰고 있다. - P127
"그에 비하면 일본은..."하고, 애국자로서 가슴을 펴보고도 싶지만, 알다시피 일본의 사정도 스페인이나 한국과 별반 차이가 없다. 아니, 규제한 측이 사죄는커녕 경과 설명도 하지 않으며, 규제한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는다(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위의 두 사례만도 못하다. 그 예로, 2015년 여름 도쿄도 현대미술관(이하 MOT)에서일어난 아이다 마코토와 아이다가(家)*의 작품 2점에 대한 ‘작품 철거요청‘ 사건을 들 수 있다.
*아이다와 그의 아내이자 역시 아티스트인 오카다 히로코, 아들인 아이다 토라지로로 구성된 아티스트 유닛. - P128
해당 작품의 하나는, 아이다가(家) 3인이 문부과학성 교육방침에 대한 뼈 있는 농담을 서툰 먹글씨로 써내린 <격>(檄)이라는 작품이고, 다른 하나는, 아베 신조를 닮은 아이다가 자신의 용모를 이용해 제작한 <국제회의에서 연설하는 일본의 총리대신이라 불리는 남자의 비디오>라는 작품이다. 양쪽 모두 가벼운 웃음을자아내는 유머러스한 작품으로, 중량급의 <정복하기 위한 발가벗음>이나 <세월 오월>과는 비교조차 안 될 정도로 내용은 가볍다. - P129
아티스트 유닛, ‘Chim↑pom(침폼)‘의 수난
도쿄도 현대미술관에서는 그 밖에도 검열, 아니 그 이상의 규제를 가하고 있다. 아이다 마코토와 아이다가(家)에 대한 작품 철거 요청‘이 화제가 되고 있던 바로 그때, 도쿄의 ‘아티스트 런 스페이스*: Garter‘에서 개최된 아티스트 유닛 Chim↑pom(이하 침폼)의 결성 10주년 기념전 참기 어려운 것을 참아 삼가기 어려운 것을 삼가전에서 그 사실이 밝혀졌다.
* Artist-run-space. 작가가 직접 운영하는 미술 공간을 말한다. ** 참기 어려운 것을 참아. 삼가기 어려운 것을 삼가‘라는 말은 1945년 일왕의 항복 선언문 중 일부로, 현재에는 종전 선언에 대한 상징적인 문장으로 여겨지고 있다_역자 주 - P130
재미있어서 작가의 동의를 얻어 전문을 그대로 옮긴다.
감사하게도 도쿄도 현대미술관이 작품을 소장해 주었고, 미술관 소장인 이 작품을 이번 컬렉션전에도 출품해 주었다. 그러나컬렉션 할 때와 전시할 때에 타진된 것은, 통칭 나베 쓰네 하우스(요미우리신문 그룹 회장, 와타나베 쓰네오 씨의 자택 맨션) 상공에 까마귀를 모은 장면을 자르기로 한 것. 속뜻은 지금까지 분명치 않지만, 지브리 전 등으로 요미우리와의 관계가 깊은 까닭이리라 짐작하며 처음에는 거부해 보았지만, 특별히 개인 공격이 목적도 아닐뿐더러 자른다고 해도 작품 전체의 콘셉트에는 영향이 없을 듯하고, 무엇보다도 귀찮았기에, 적당한 때(그가 돌아가신 후)가 오면 원래로 되돌리도록 결정하고 합의했다. 의도치 않게 ‘죽음‘이 작품에 영향을 준 이 버전이야말로, 바로 타이틀 그대로인<BLACK OF DEATH>이다. - P131
「참기 어려운 것을 참아↑삼가기 어려운 것을 삼가」 전에서는, 또 하나 놓쳐서는 안 될 설명이 있었다. <참기 어려운 기합 100연발>이라는 비디오 작품의 설명이다. 이 작품에 검열, 다시 말해 규제를 가한 것은 미술관이 아닌 국제교류기금"이다. - P132
‘총리와 가까운 부서의 사람들로부터 직접 클레임이 들어온다‘는 말이 사실인지 어떤지는 물론 확인 불가능하다. 하지만, 아베 정권의 핵심에 있는 측근들이나 그들의 안색을 살피는 사람들이, 현대의 문화예술표현에 그 어느 때보다 신경질적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 P133
한국과 일본의 예만 봐도, 현대미술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 따윈 없이, 안위를 걱정하는 데만 급급한 문화 관료의 간섭은앞으로 갈수록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아티스트와 미술관(그리고 관객)에게는 참으로 곤란한 일이다. - P133
보이지 않는 컬렉션과의 싸움
오늘날의 명문 미술관들을 위협하는 요소는 검열이나 자기 규제만이 아니다. 이 시대에 특정 라이벌 출현이 그들의 존재를 위협하고 있다. 문제는 미술관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컬렉션과 관련된다. - P134
수집, 보존, 전시, 연구, 교육보급을 5대 미션으로 삼는 미술관은 앞으로 특히 ‘수집‘에서 뒤처지게되는 건 아닐까? 그렇게 되면, 이들 미술관의 수집품의 질과 양은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그에 따라 권위 또힌 낮아지는 건 아닐까? - P134
실제로 2010년에 갤러리스트에서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이하 MOCA) 관장으로 이직한(그리고 2013년에 사임했다) 제프리 다이치는, 2012년 아트 바젤에서 열린 공개 대담에서 이렇게 투덜댔다.²⁷
아티스트나 컬렉터나, 아름답게 전시할 수 있는 사립 재단을 보유한 억만장자에게만 작품을 판다. 이러한 시대에 어떻게 해야많은 관객을 끌어들이느냐는 큰 과제다.(...) 작가에게 ‘이름 있는재단에 작품을 파는 것과, 한정된 공간에, 게다가 4~5년에 한 번밖에 전시할 수 없는 미술관에 파는 것 중 어느 쪽이 좋아?‘라고묻는다면 어떤 답이 돌아올 거라 생각들 하시는지? - P135
27 Rachel Corbett, The Private Museum Takeover, "Artnetj, 2012 618. http://www.artnet.com/magazineus/news/corbett/jeffrey-deitch-on-private-museum-threat-6-18-12.asp - P573
. 당시엔 운영이 원활하지 않았던 MOCA의 관장이었던 다이치가 한말에는, 일면 정곡을 찌르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작품 수집의 경쟁상대가 늘었다 한들, 미술관의 권위란 높아지면 높아졌지, 지금보다 떨어질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 P135
어째서 명문의 권위는 흔들리지 않는가
왜냐하면, MoMA를 필두로 하는 명문 미술관이 명작을 소장하지 않는것을, 협의의 아트월드가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품의 가치를 보증하고, 유지하고, 높이는 장치로서, 미술관의 존재와 권위는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 P136
2015년의 리스트²⁹를 보면, 테이트 모던의 니콜라스 세로타 관장이 5위, MoMA의 글렌 라우리 관장이 7위, 퐁피두센터의 베르나르 블리스텐 관장과 세르주 라비뉴 이사장이 15위에 올라있다. 그밖에 휘트니 미술관의 아담 와인버그 관장이 9위,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 베아트릭스 루프 관장이 22위,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의 마이클 고반 관장이 31위, 베를린 국립 미술관 내셔널 갤러리의 우도 키텔만 관장이 60위, 뉴욕 롱아일랜드시티의 MoMA PS1의 클라우스 비젠바흐 관장이 62위 등이다. - P137
29 https://artreview.com/power_100/2015/ - P573
하지만, 이들의 존재 의의는 최근 몇 년 사이 거대한 적에게 크게 위협받기 시작했다. "적이란 신흥 슈퍼 컬렉터이다"라고 한다면 "응?"하고 고개를 갸웃할 독자가 대부분일 것이다. 바로 조금 전에 "슈퍼 컬렉터가 작품을 아무리 사들여도, 명문 미술관의 권위가 떨어질 일은 없다"고 했잖아.‘ 라고 말이다. 분명히 그렇게 말했고, 그것은 결코 실수가 아니다. 다만, 그것은 작품의 수집에 국한된 이야기였고, 미술관의 5대 미션 중 ‘전시‘에 관한 싸움에서는 명문 미술관이 불리한 상황이 맞다. - P237
관객 동원에 무관심한 미술관
2015년 11월, 미합중국 상원 재정위원회는 사립미술관 10여 개를 상대로 개관 시간, 기부금 명세와 총액, 자산평가액, 외부로의 작품 대여 등에 대한 정보공개를 요청했다. 대상은 브란트 재단의 ‘아트연구센터‘와 ‘글렌스톤 미술관, 대부호인 일라이 브로드가 같은 해 9월에 막 문을 연 ‘더 브로드‘ 등이다. 모두가 비교적 신설이고, 최고급 현대미술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이다. - P138
위 재정위원회는 10개월 전에 같은 기자가 쓴 다른 기사³¹를 읽고, 조사를 시작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의 부유한 컬렉터가 ‘자신의 집 뒤뜰‘에 미술관을 짓고 있다. 광고도 하지 않으며, 눈에 띄는 간판도 없고, 휴관 기관은 길다 - P138
31 "Writing Off the Warhol Next Door, The New York Times, 2015년 1월 30일 http://www.nytimes.com/2015/01/11/business/art-collectors-gain-tax-benefits-from-private-museums.html - P573
한국 최대의 미술관 ‘리움‘의 경우
일부 신흥 사립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이러한 경향은 미국 외에도 존재한다. 그 한 예로, 2004년에 개관한 리움을 들 수 있다. 한국 최대 재벌인 삼성그룹의 오너이자 한국 제1의 부호였던 이건희 회장이 서울 한남동 자택 근처에 건립해, 삼성문화재단이 운영하는 거대 미술관이다. - P141
고미술을 전시하는 ‘뮤지엄 I‘(대지면적 4,000m², 바닥면적 15,000m²)은 마리오 보타가, 근현대 아트의 ‘뮤지엄 II‘(4,000m², 13,000m²)는 장누벨이, 기획전을 열기도 하는 ‘삼성아동교육문화센터‘와 이들 3개 건물을 연결하는 부분은 렘 콜하스라는 건축계의 슈퍼스타가 각각 설계를맡았다. - P141
하지만, 홍라영 부관장의 말을 그대로 수긍하기는 힘들다. 밋치 레일스나 피터 브란트처럼, 문화적 자산이자 경제적 자산이며, 그에 따라 정치적 자산이 될 수 있는 미술 작품을, 이건희 회장과 삼성그룹이 활용하기 위해, 혹은 위장하기 위해 마련된 장소가 리움 아니었을까? - P143
루이 14세 • 오다 노부나가. 이건희의 공통점
정치적 자산이라는 것은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자산‘이라는 의미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봉건 군주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문화예술을 정치적으로 유용하게 썼다. 일본 센고쿠 시대의 다이묘인 오다 노부나가는 차(茶)도구를 중심으로 명물을 모아, 자신의 부와 권력을 과시함과 동시에, 포상으로 가신에게 수여하는 등 인심 장악의 도구로 활용했다. - P143
우선 군사력과 경제력이 갖춰진 이후의 일이겠지만, 문화예술을 무기 삼아 라이벌이나 신하를 심리적, 정신적으로 압박하려 한 것이다. 그중에는 중국 북송의 휘종처럼 문화예술에 몰두한 나머지 나라를 망친 우매한 왕도 있지만, 교양과 지성은 권력을 채색하는 장식이자 무기였다. - P144
고(故) 이건희 회장이 선대 이병철 회장에 걸쳐 수집한 예술 작품을 삼성그룹을 위해 정치적으로 이용했을 가능성은 높다. (중략). 그룹의 구조조정실 지시로 해외 자회사들이 2,000억 원 이상의 비자금을 조성해 왔다고, 한때 그룹의 법무팀장이었던 변호사가 폭로한 것이다.³³ - P144
33 이춘재, 「삼성 구조본, 전 임원 계좌에 비자금 50억 운용」 『한겨레』, 2007년 10월 29일자.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46550.html - P574
현대미술 현장의 완만한 죽음
사건은 결국 애매한 채로 종식됐지만, 주목해야 할 것은, 해당 변호사가 "이건희의 아들 이재용이 <행복한 눈물>은 집에 걸려 있다‘라고 자랑한 적이 있다. 이건희 회장 일가가 자신들이 즐기기 위해 작품을 구입한 것이다."라고 진술했다는 점이다.³⁵ - P145
35 손정아, 「S Korea scandal adds to pop art cachet」, 『Finacial Times』. 2008년 2월 8일 자. http://www.ft.com/intl/cms/s/0/84df8796-d678-11 dc-b9f4-0000779fd2ac.html#axzz416T8BAb8 - P574
자기 과시욕이 강한, 아니 명예욕이 넘치는 오너는 작품을 적극적으로 공개하지만, 독점욕이 강한, 아니 미술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오너는 소극적인 것처럼 보인다. - P146
아니, 이런 표현은 정확하지는 않을 것이다. 1990년 빈센트 반 고흐의 <가셰 박사의 초상>을 125억 엔(약 1,300억 원)에, 피에르 오귀스트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를 119억 엔(약 1,200억 원)에 낙찰 받았던 사이토 료에이(다이쇼와 제지 명예회장)는, "내가 죽거든 이 그림을같이 관에 넣어 화장해주게."라고 발언해 세계적으로 빈축을 샀지만, 이처럼 순수한 (그리고 비뚤어진) ‘독점욕‘ 혹은 ‘사랑‘은 오늘날에 와서는 오히려 희귀한 것이 아닐는지? - P147
컬렉션을 정치적 자산으로 여기는 미술관 오너가 늘어나면, 손해를 보는 쪽은 미술애호가와 기존의 명문 미술관이다. 지도상에는 그려져 있는데 들어갈 수 없는 땅처럼, 작품은 확실히 존재하는데 그것을 볼 수는 없다. - P147
프랑스 혁명 이전으로 역행?
1929년, 27세의 초대 관장 알프레드 바의 지휘 아래 개관한 뉴욕 현대미술관은, 당초 "기증 작품도 없고, 구입을 위한 재원도 없다. 즉, 컬렉션은 없다"라고 하는 상태였다.³⁷ - P148
37 大坪 健二,‘5大浣腸リチャードEオルデンバーグの言葉 (5「アルフレッドバーとニューヨーク近代美術館の誕生E, 2012. アメリカの20世紀美術の研究」 - P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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