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종으로서의 비평가
(전략). 결국 읽을 만한 잡지는 본거지를 홍콩으로 옮긴 『아트 아시아퍼시픽』(Art Asia Pacific), 한국의 『아트 인 아시아』, 벤쿠버의 『이슈』(Issue) 등 손에 꼽을 정도다. 『아트 인 아시아』와 『이슈』는 비평보다는 정보에 무게를 두고 있고, 나머지 하나는 중국만이 대상이다. 발행 목적이고 지면이 한정되어 있으니 정보를 중시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 P175
이 잡지 편집부로부터 의뢰받은 제목은 동아시아의 아트 저널리즘으로 지면 할애가 많지 않아 그다지 상세히 쓰지는 못했지만, 대체적으로 틀린 내용은 아닐 테고, 상황은 아마 지금도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일부러 쓰지 않은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중국의 일부, 아니면 대부분의 현대미술 매체에서, 리뷰가 매매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갤러리나 작가가 저널리스트에게 돈을 지불해 자기 입맛에 맞는 전시평을 쓰게 하는 것이다. - P175
비평이 영향력을 잃은 시대
문제는 거기에 있지 않다. 중국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비평에 어느 정도의 힘과 기능이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며, 그것은 오히려 경하해야 할 일일지도 모른다...라고 비꼬듯 쓰고 싶어지는 이유는 유럽과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는 언제부터인가 비평이 별로 읽히지 않기 때문이다. - P176
이론이라 할 만한 이론도 탄생하지 않았거나, 탄생한다 하더라도 사람들 입에는 오르내리지 않는다. 제리 솔츠나 에이드리언 설의 발언에 앞서,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비평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할 포스터가 21세기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발표한 논고⁰⁴는 ‘미술비평가는 멸종위기종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고 있다. - P177
04 Art Agonistes, "New Left Review, 2001 3-4. https://newleftreview.org/II/8/hal-foster-art-agonistes - P575
현대미술계의 『보그』 혹은 『롤링 스톤』
앞장에서 언급한 ‘2종‘이란, 『아트 포럼」(Artforum)에 기고하는 타입의 비평가와, 『옥토버』(October)에 기고하는 비평가 이론가를 가리킨다. - P178
「아트 포럼」에 관해서는 조금 더 자세히 기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가장 비중 있는 현대미술 잡지로 꼽히기 때문이다. ‘비중 있는‘이란 말은 ‘권위 있다‘는 의미만은 아니고, 물리적으로도무겁기 때문이다. 판형은 정방형으로, 12인치(30cm)의 레코드 재킷보다 조금 작은 10.5×10.5인치 (26.7×26.7cm), 발색 좋은 코트지에 풀 컬러오프셋 인쇄로 제작한다. 연간 10회 발행되며, 매호 평균 약 300페이지 중 절반 정도나 그 이상이 갤러리 등의 광고로 채워진다. - P179
앞에서 이름을 언급했던 사라 손튼은 총 7개 단락의 장으로 나눈 자신의 르포 『현대미술의 무대 뒤』 중 1개의 장을 ‘현대미술 잡지‘에 할애해 『아트 포럼』 편집부를 취재했다. 그녀는 "패션계의 『보그』, 록큰롤계의 『롤링 스톤』과 마찬가지로 아트월드의 잡지라 하면 아트 포럼이다."라고 표현했다.⁰⁵ - P179
05 Sarah Thornton(저), (역), OR "Seven days in the artworld」 武田ランダムハウスジャパン 2009 - P575
‘기사는 거의 읽지 않는다‘
미술사가인 존 시드는 2010년에 다소 재미있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우선은 알고 지내는 화가들에게 "『아트 포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라고 간략히 질문했고, 아래는 허핑턴 포스트의 블로그에서 인용한그 대답들이다.
• 꽤 예전부터 안 보게 되었다. 회화 작품도 전혀 실리지 않으니. • 딱딱해. •『아트 보어덤』(Art boredom) 말이야? 전문용어가 너무 많아. (‘boredom‘은 ‘지루한‘의 의미 - P180
그러나 제리 솔츠는 문화관련 웹진인 「벌처」(Vulture)에 「아트 포럼」을비판하는 글을 기고했다.⁰⁷ 07 존 시드의 지인들처럼 전시 리뷰에 난해한 전문용어를 쓴 것에 대해 쓴소리를 낸 후, 그의 칼끝은 다름 아닌 광고로 향했다. 요약하면 "시험 삼아 세어 보니, 2014년 9월 호(특별호)의 광고는 287페이지로 전체 410 페이지의 70%를 차지한다. 그중 73페이지는 뉴욕의 갤러리가 발주한 것으로, 광고료는 1페이지당 5,000달러에서 8,000달러다. 표지와 가까운 쪽이 비싸다고는 하는데, 문제는 내용에 있다. 내용의 절반 이상이 이미 지위가 확립된 유명 작가나, 혹은 작고한 아티스트의 전시회를 선전하는 것이었다." 이어 "좋고 나쁨을 떠나, 이러한 전시회는 매우 안전하다."라고 솔츠는 결론짓는다. - P181
07 Big Things Wrong With the Art World As Demonstrated by the September Issue ofArtforum, "Vulture, 2014 92 7. http://www.vulture.com/2014/09/artforum-september-issue-whats-wrong-with-art-world.html - P575
20%를 차지하는 영화 관련 기사
「아트 포럼」의 편집 방침에서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현대미술 전문지임에도 불구하고 현대미술 이외의 다른 문화 부문에 페이지를 할애하고있다는 점이다. 물론 현대미술 전시 소개나 전시평도 실려 있지만, 서적, 영화, 음악, 퍼포먼스 등의 리뷰도 매호 1~2꼭지씩 게재된다. 나는 몇 년 전에 종이판 정기구독을 그만두었기 때문에, 솔츠가 예로든 호를 포함한 최근의 잡지들은 확인할 수 없다. - P182
내게 있는 가장 최신호는 2013년 1월 호로, 특집 기사는 그 전년도에 사망한 영상 작가 크리스 마르케에 관한 것이다. 영화감독인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에 관한 논고도 있는데, 각각 10페이지가 할애돼 있다. 또한 같은 영화감독인 캐서린 비글로우가 쓴 에세이가 4페이지, 앤디 워홀의 영상작품에대한 1페이지의 리뷰 기사가 영화 소개란에 소개되어 있다. 편집 기사136페이지 중 영화에 대한 기사가 25 페이지, 즉 18%가 넘는다는 건 너무 많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 P182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특별 기사 이외의 리뷰가 그다지 길지 않다는 점이다. 가장 긴 것이 2페이지고, 표준적인 것이 1페이지다. 세계 주요 도시에서 보내 받은 전시평의 꼭지 수는 수십 개로 과연 많긴 하지만, 평균적으로 반 페이지 정도의 양이다. 글자 수라는 점에서 본다면, ‘읽을거리가 없다‘고 악평 받는 일본의 현대미술 잡지와 큰 차이는 없다. - P183
아트월드의 파워 밸런스란?
사실 솔츠는 앞의 기사에서 아트 포럼을 ‘아트월드의 비공식적인 공식잡지‘라고 칭한 바 있다. - P184
(1)은 아트월드의 핵심이 뉴욕을 중심으로 한 대형 갤러리에 있음을 다시 한 번 가리킨다. (2)의 많은 리뷰의 꼭지 수는 ‘월드‘의 구성원의 귀속 의식과 그곳에 거주하고 있다는 안도감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3) 또한 (2)와 마찬가지로 구성원의 기호는 다양하며, 비평적 뒷받침은어딘가에 있기만 하면 됐지. 굳이 읽지 않아도 된다(필요하면 책장에서꺼내면 된다)는 현상을 보여준다. (4)는 회화와 조각에서부터 시작해 지금은 모든 문화 장르에 촉수를 뻗치며 포섭에 힘써 온 현대미술의 역사적 진화를 반영하고 있다. (5)는, (2)와 (3)과 같다. 결론적으로, ‘월드‘의경계선을 표시하는 데는 수(양)만 있으면 됐지. 내용은 알아도 몰라도 상관없다는 이야기다. - P184
제리 솔츠와 에이드리언 설은 비평의 쇠락을 마켓과 연결했고, 할 포스터는 신세대 딜러, 컬렉터, 아트 매니저를 비난한다. 신문의 쇠퇴와 함께 동반된 영상미디어나 소셜미디어의 대두도 이유의 하나로 꼽는다. 그것은 그것대로 맞는 말이지만, 진짜 원인을 개별의 요소에서 찾을것이 아니라, 아트월드 자체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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