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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와 이성으로 신을 증명한 토마스 아퀴나스
과학과 성서는상충하지 않는다
Thomas Aquinas. 1225-1274 - P90
도미니코회
1206년 성 도미니코가 복음을 전하고이단을 물리치려는 목적으로 세운 교단. 초창기에는 청빈을 중요시하여 탁발 수도사로서 생활했기 때문에 거지수도회, 탁발 수도회 등의 별칭을 가지고 있었다. 엄격한 생활과 학문 연구. 설교, 교육 등에 힘써왔으며 작은 형제회Order of Friars Minor와 함께 주요한 수도회이다. - P91
무엇도 꺾지 못한 종교에 대한 신념
1244년 19세이던 토마스 아퀴나스는 당시 막 설립된 도미니코회의 수도사가 되기로 한다. 나폴리에서 함께 지낸 학우들과 선생님들은 이귀족 청년이 허름한 수도사 의복을 입을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 (중략).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섬기는 기사였던 형제들은 아퀴나스가 마음을 바꾸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를 납치해서 거의 2년 동안로카세카에 있는 가족 소유 성에 감금했다. - P91
성에 갇혀 있는 동안 철학과 신학 관련 책은 읽을 수 있었던 아퀴나스는 프랑스 파리와 독일 쾰른에서 정규교육 과정을 다시 밟았다. 이후에는 탁월한 신학자이자 철학자로서 프랑스 국왕 루이 9세와 몇몇 교황의 절친한 친구이자 고문이 되었다. 아퀴나스는 저서 『신학대전』에서 자녀에 대한 부모의 권한이 제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 P91
기독교 인본주의를 탄생시키다
중세는 종종 ‘권력의 시대‘라고 불리지만 대립하는 권력 주체가 여럿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권력의 시대‘라고 부르는 편이 더 맞다. 13세기 지적인 면에서 가장 큰 권력을 행사하던 두 주체의 뿌리는 각각 아테네와 예루살렘에서 찾아볼 수 있다. - P92
헤브라이즘
고대 히브리인의 사상 · 문화 및 그 전통으로 보통 유대교와 기독교 전통을 통틀어 이르는 말.
헬레니즘
기원전 334년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원정에서부터 기원전 30년 로마의 이집트 병합 때까지 그리스와 오리엔트가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생긴 현상. - P92
알 파라비와 마이모니데스의 사상을 이어받은 아퀴나스는 하느님은 인간의 이성과 성서 속 계시를 모두 창조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우리가 ‘자연이란 교과서에서 과학으로 배우는 것은 원칙적으로 성서에서 신앙심으로 배우는 것과 배치되지 않는다. 과학에서 가르치는 것이 성서의 가르침과 상반된다면 우리가 둘 중 하나를 잘못 알고 있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 P93
자연적 덕과 초자연적 덕
아퀴나스의 기독교 인본주의가 도덕과 법의 영역에 어떻게 작용했는지 잠시 살펴보자. - P93
아퀴나스는 성서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덕목도 추렸다. 바로 믿음, 소망, 사랑이다. 그는 이러한 덕목은 ‘초자연적 덕‘이라 명명했다. 이성만이 아니라 성서 속 계시에 대한 믿음이 뒷받침해야만 발견할 수 있는 덕목이기 때문이다. - P94
천부적 양심과 성서 율법 간의 관계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뿐만 아니라 6세기에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편찬한 고대 로마법전 역시 11세기에 서유럽에서 재발견되었다. 볼로냐에 세워진 유럽 최초 대학교는 설립 목적 자체가 로마법 연구였다. - P95
인간은 하느님의 영원법에 직접 가닿을 수 없기에 인간의 양심이라는 자연법과 성경에 담긴 계율을 통해 간접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 P95
아퀴나스는 인간의 양심은 오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고 설명한다. 우리의 양심은 특정 판단에서 실수를범할 수도 있고 문화의 영향으로 일부 타락할 수도 있다. 따라서 성서 율법은 양심을 견제한다. 동시에 하느님의 법을 보는 우리의 해석에도 오류가 있을 수 있기에 천부적 양심의 견제가 필요하다. - P95
물론 인간사는 매우 복잡해서 양심이나 성서보다 구체적인 안내가 필요하다. 우리의 양심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벌 받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입법자들이 여러 범죄와 그에 따른 결과를 세부적으로 정의해야 한다. - P96
아퀴나스는 인간 입법자들은 자연법(양심)의 보편적인 원칙을 인간 법에 들어갈 구체적인 규칙으로 다듬으려면 실용적인 지혜를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 P97
종교와 과학을 둘러싼 멈추지 않는 질문
(전략). 14세기 단테가 발표한 서사시 신곡은 아퀴나스 사상의 영향을받아 기독교 인본주의를 극적으로 그려낸 작품으로 평가된다. - P98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세속적 인본주의와 종교적 원리주의 간 극렬한 갈등을 목격하는 현대인들에게 아퀴나스의 사상은 그 어느 때보다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 기독교 집단을 비롯한 많은 기독교인은 다윈의 진화 이론이 창세기의 천지창조와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아퀴나스는 하느님이 단 6일 만에 천지를 창조했다는이야기는 문자 그대로 읽어서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 P98
수 세기에 걸쳐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긴 했지만, 아퀴나스는 여전히 믿음과 이성, 즉 종교와 과학은 인간의 몰이해만 아니면 대립할 일이 없다고 강조한다. 하느님은 자연이라는 교과서에서 하나를 가르친 다음 이를 성서에서 부정하지 않는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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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헌법의 아버지 제임스 매디슨
어떤 다수 집단도소수 집단을 억압할 수 없다
James Madison, Jr. 1751-1836 - P214
정치인과 철학자의 장점을 두루 겸비하다
미국 독립혁명 이후 독립을 맞이한 13개 식민지는 1781년 맺은 연합규약을 바탕으로 견고한 틀 없이 연합되어 있었다. (중략). 이에 각 주지도자들은 틀을 갖춘 더욱 강력한 정부를 새로 수립하기로 뜻을 모았고 이 결정에 따라 1787년 헌법 제정 회의가 소집되었다. - P215
버지니아주 대표였던 제임스 매디슨은 이 회의에 대비해 연방제(국가의 권력이 중앙 정부와 주에 동등하게 분배되어 있는 정치 형태)와 공화제(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정치 형태. 일반적으로는 간접 민주제를 의미한다)를 성심성의껏 조사하고 공부했다. - P215
그러나 매디슨은 다수의 위대한 정치사상가와는 달리 책을 통한 막대한 깨달음과 정치인으로서 쌓은 폭넓은 경험을 결합한 결과 정치인 중의 철학자, 철학자 중의 정치인이 될 수 있었다. - P215
헌법을 자주바꾸는 일은 경기 중에 규칙을 바꾸는 것과 같기에 권력을 향한 민주적 경쟁의 공정성을 해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새로운 헌법안을 설명하고 지지하는 논문을 한데 엮은 『연방주의자』는 매디슨의 설득력 있는 글 덕분에 정치사상 역사에 미국이 남긴 가장 위대한 공헌이 되었다. - P216
인간이 천사라면 정치는 필요치 않다
매디슨은 뉴저지대학교(현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스코틀랜드 출신칼뱅파 기독교인 존 위더스푼John Witherspoon, 1723~1794을 사사하며 인간 본성을 향한 아우구스티누스의 비관적 관점을 받아들였다. - P216
매디슨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생각에 동조하며 ‘인간이 천사라면 정치는 필요치 않을 것이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독단적인 권력 행사를 통제하기 위해 매디슨이 고안한 제도적 장치를 두고 칸트는 잘 구성된 헌법은 악마종족에게도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P217
민주정치를 개인의 자유와 결합하기 위하여
영국 왕실과 의회의 압제를 비난한 매디슨은 미국인들이 서로를 폭압하는 일이 벌어지게 될까 우려했다. 이미 남부연합에서는 다수의 채무자가 소수 채권자의 재물을 도용하고 있었다. - P217
매디슨은 민주정치보다는 공화정치를 선호했다고 보는 시각이 많지만, 매디슨이 선호한 체제는 민주공화정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는 모든 사안에 모든 시민이 투표할 수 있는 고대 직접민주주의인 ‘순수한‘ 민주주의를 비판했다. - P218
종교적 다원주의를 주장하다
정치사상가로서의 매디슨 사상의 진수는 전통적인 정치사상을 뒤집은 방식에서 확실히 볼 수 있다. 고대와 중세 정치를 관통하는 기본 공리는 공동체는 종교적으로 화합하지 않으면 정치적으로 화합할 수 없다는 관념이었다. - P218
거대 공화국의 다양성을 옹호하다
전통적인 정치 이론의 두 번째 기본 공리는 민주적인 정치체는규모가 작고 동족으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고대 민주국가들은 아주 작은 도시국가였고, 로마 공화국이 다양한 민족이 뒤섞인 거대 제국이 되면서 로마 국민은 정치적 자유를 잃었다. - P219
인간의 기질과 환경의 다양성을 생각하면 자유롭지 못한 사회는 절대 자연스러운 만장일치에 도달할 수 없고 파벌 싸움과 분열도 다스릴 수 없다. - P220
주권은 모든 곳에 있고 어느 곳에도 없다
전통적인 정치사상의 세 번째 기본 공리는 모든 정부에 주권이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다. - P220
매디슨의 헌법 구상의 진수는 주권은 모든 곳에 있고 또 어느 곳에도 없다는 점이다. 우선 그는 중앙 정부와 여러 주정부를 구분했다. 주권은 중앙 정부에 있을까, 주 정부에 있을까? 답은 ‘둘 다‘이다. 중앙 정부와 주 정부는 내부적으로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로 나뉘고, 각 기관은 서로 견제하면서 균형을 유지할 권력을 지닌다. - P221
만약 앞서 말한 정부의 세 기관 중 두 개 이상이 주권을 빼앗고자 결탁하면 어떻게 될까? 매디슨은 단순한 헌법 조항으로는 야욕있는 정치인들이 법적인 세부 사항을 무시하는 일을 막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 P221
(전략). 즉, 널리 알려진 말대로 ‘어떤 정책을 지지할지는 현재 차지하고 있는 자리에 달려있다‘는 의미이다. 매디슨은 정치인들이 헌법을 수호하도록 촉구하기보다는 상충하는 이들의 야심이 서로의 권력을 견제하도록 하는 방식에 기댄다. - P222
미국 헌법의 특징
헌법 설계 과정에서 매디슨이 추구한 가장 중요한 목표는 특히 다수 집단에 의한 폭압의 위험성을 피하는 것이었다. 그의 신조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분산 통치‘하는 것이었다. - P222
매디슨의 헌법은 ‘정당‘과 관련한 조항을 포함하지 않은 유일한 근대 헌법이다. 그러나 정당 없이는 정부 기관들이 안정적으로 협력하지 못해 통치 역량을 확보할 수 없다. 동시에 정당은 기관들이 서로 견제하려는 경향을 약화할 수 있다. - P223
매디슨 철학의 업적과 한계
매디슨은 1787년 헌법 제정 회의에서 보여준 지도력을 이유로 흔히 미국 헌법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그는 세계 역사상 기본 자유를 다룬 가장 영향력 있는 선언으로 평가되는 ‘권리장전United StatesBill of Rights‘이라고 불리는 미국 수정 헌법 10개 조항 구상을 직접적으로 담당했다. 그가 남긴 최고의 정치적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 P223
한편 매디슨은 노예를 소유하는 동시에 인권을 옹호하는 일이 위선적이라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 P223
매디슨 이후로 정치학자와 경제학자들은 사람들을 올바른 행동으로 점진적으로 유도하는, 복잡하면서 교묘한 제도적 장려책과 제약을 고안해왔다. 가령 오늘날 장기를 기증하겠다거나 노후 자금을 마련하겠다는 결정 과정을 구조화하여 ‘도덕적인‘ 결정을 기본 선택지로 놓는다. - P224
한편 매디슨 시절과는 다르게 도덕적 품성과 시민 덕성이라는 말은 거의 포기 상태다. 공직을 이용해 개인의 부를 축적하는 행위는 한때 부패 행위로 크게 책망받았으나 이제는 거의 보편적으로 용인된다. 아무리 정교하게 설계된 헌법 제도라도 근본적인 시민덕성이 부족한 정치인들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지난 역사를 통해서도 현대 정치판에서도 익히 보고 있다. -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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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사회학의 뼈대를 세운 혁명가 카를 마르크스
자본주의는 필연코자멸의 길을 걷게 된다
Karl Marx. 1818-1883 - P246
대영박물관에서 완성한 혁명 이론
(전략). 당시 마르크스는 급진적 사상 때문에 유럽 관계당국의 추적을 받는 신세였다. 무일푼의 마르크스는 런던에 정착한 후로 거의 런던을 떠나지 않았고, 산업자본주의의 분석가이자 노동계급 이익의 옹호자, 노동자에 의한 노동자를 위한 프롤레타리아혁명의 주창자였음에도 영국내 공장조차 방문한 적도 없다. 마르크스가 쌓은 노동자의 처지, 법, 자본주의의 양상에 대한 지식은 거의 전부 정부 보고서 같은 문서에서 나왔다. - P248
초기 자본주의 분석
마르크스가 연구한 자본주의는 영국, 프랑스, 독일의 초기 산업자본주의로 제대로 된 규제가 없던 시절이었다. 20세기 복지국가가 나타나 초기의 과도함을 완화하고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각종노동법과 규제를 제정하기 전이었던 당시의 자본주의는 매우 날것이자 야만적인 대량생산 체제였다. - P248
마르크스는 산업 발전의 흥망 주기가 극단적인 데다가 노동으로 생계를 꾸리는 빈곤층의 삶은 시간이 갈수록 처참해지므로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자멸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여러 책, 보고서, 신문을 통해 자본주의 내부 기제를 신중하게 그리고 선별적으로 분석했고자본주의 체제는 내재적 모순 때문에 끊임없이 불안정해질 것이분명하니 결국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해 붕괴할 운명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는 이 운명을 피할 수 없다고 믿었다. - P249
왜 자본주의는 멸망할 수밖에 없는가
(중략). 마르크스는 자본가는 겉으로는 경쟁을 지지하는 척하지만 사실은 경쟁을 막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경쟁은 가격을 낮추어 이윤을 좀먹기 때문이다. 심지어 산업사회의 숭배자이자 수호자였던 고전주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조차 사업가들은 모일 때마다 독점과 담합을 공모하고 작은 기업을 무자비하게 쫓아낼 궁리를 한다고 지적했다. - P250
기필코 일어날 혁명을 기다리며
(전략). 런던은 공산주의자동맹의 회원 같은 급진주의자와 선동가에게 상대적으로 너그러운 태도를 보이던 도시였다. 공산주의자 동맹은 당시 런던에 본부를 두고 있었으며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그 유명한 『공산당 선언』을 집필하여 공산주의자들의 최초의 강령으로 선포했다. - P251
공산주의자동맹
1847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런던에서 창립한 국제적인 비밀 노동자 혁명운동 조직, 프랑스에 망명한 독일 공화파 혁명가들이 결성한 의인 동맹義人同盟을 모체로 한 조직이다. - P251
국제노동자협회
1864년 9월 28일 영국 런던에서 결성된 최초의 국제적인 노동운동 조직. 1866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제1차 대회가 열렸으며, 다양한 아나키스트,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들이 참여했다. 마르크스는 제1인터내셔널의 결성 선언문과 규약을 작성하는 등 제1인터내셔널의 결성을 적극 지도했으며 1870년에는 마르크스파가 제1인터내셔널의 지도권을 장악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1871년 프랑스에서 수립된 파리 코뮌이 붕괴된 이후 제1인터내셔널은 쇠퇴하게되었고 결국 1876년에 해체되고 만다. - P252
대중을 위한 국가는 없다
아우구스투스와 홉스가 그랬듯 마르크스도 국가를 오롯이 부정적인 체제라 평가했다. 그는 정부란 통치 계급이 나머지 계급을 통제하기 위해 사용하는 무기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에게 정치권력은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압제하려는 조직적 권력에 불과했다. - P252
한편으로 자본주의는 우리의 정신을 혼란스럽게 한다. (중략). 이런 심리 조작이 필요한 것은 대다수의삶과 노동의 조건이 너무나 압제적이고 착취적이어서 만약 누군가그 현실을 직시하게 되면 즉시 체제 전복을 도모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는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와 같아 우리의 현실인식을 거꾸로 뒤집어 착취당하는 상황이 적절하다고 인정하게 만든다. - P253
공산주의로 가는 길목에서
마르크스의 이론에 따르면 자본주의 체제의 해체라는 과업이 완성되면 더는 계급이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계급 갈등은 사라진다. 그는 경쟁, 이기심, 폭력, 사기는 모든 계급 기반 사회의 필연적 특징이나 우리 본성에 내재한 특질은 아니라 보았다. 그래서 이러한 악덕은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공산주의 체제에서는 사라질 것이고 우리 본연의 협동적인 본성이 마침내 드러나 강제적 통치를 하는국가는 이제 필요 없어질 것이다. -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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