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완성된 밈, 노잼도시

하나의 문서 안에서 어떤 단어가 자주 등장하면 대체로 중요한 단어일 경우가 많다. 강조하고 싶을 때 우린 한 단어를 여러 번 얘기하지 않나. 그래서 텍스트 마이닝에서는 문서에 쓰인 단어의 빈도를 측정한다. 하지만 단순히 많이 등장한다고해서 중요한 단어는 아니다. - P74

 2015년에서 2021년 8월까지 ‘노잼 도시‘ 키워드를 포함한 5875개의 문서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한 단어는 ‘대전‘이었다. 모두 2만974회 쓰였다. - P74

‘대전‘이 ‘노잼 도시‘를 포함한 문서에서 가장 자주 등장한 단어이긴 하지만, 그건 단순 출현 빈도에 불과하다. 진짜대전이 중요한 단어인지를 TF-IDF 값을 통해 확인했다 - P74

2015년에 작성된 ‘노잼 도시‘ 블로그 텍스트에는 ‘게임‘과 ‘사람‘의 비중이 크고 ‘영화‘도 중요한 단어로 쓰인다.
‘독일‘이나 ‘호텔‘ 등도 눈에 띈다. ‘노잼 (띄고) 도시‘로 문서를 검색했기 때문에, 노잼인 게임과 노잼인 도시 베를린이 포함된 문서가 크롤링된 것이다. - P75

2019년부터는 달랐다. 블로그 유저들의 ‘노잼 도시‘ 포스팅에 큰 변화가 감지됐다. ‘대전‘이 블로그 텍스트의 가장무게감 있는 단어로 등장한 것이다.
2019년 ‘노잼 도시‘ 블로그 텍스트에서 ‘대전‘이 차지하는 무게감은 약 0.0172로 나타나는데, 이 값은 2위인 ‘사람‘ 0.0068의 두 배 이상 크다. - P75

블로그 유저들은 ‘노잼 도시‘ 키워드가 들어간 문서를쓰면서 2019년부터 대전을 가장 중요하고 무게감 있는 단어로 사용했다. 어딘가를 방문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경우가 많아, ‘여행‘과 ‘사진‘, ‘카페‘와 ‘커피‘ 등이 함께 쓰였지만,
‘대전‘의 의미는 다른 주요 단어에 비해 압도적으로 크다. - P77

 토픽 모델링 Topic Modeling은 모래알처럼 흩어진 말에 숨어 있는 주제를 찾아내 준다. 기계 학습을 통해 연구자가 설정한 수만큼 주제를 뽑아내고, 그 주제를 형성하는데 기여한 주요 단어들을 주제에 맞춰 추려 낸다.
추려진 단어들을 보면 그 주제가 어떤 이야기인지 알 수 있다. - P77

2015년에서 2021년 8월까지 작성된 ‘노잼 도시‘ 블로그 텍스트에서 유사도coherence 검증을 통해 여덟 개의 토픽을도출했다. 5875개의 텍스트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야기 주제는 여행이었다. 수집된 모든 문서에서 가장 큰 점유율을 보이는 토픽5는 보편적인 여행 이야기다. - P77

뚜렷하게 드러난 주제를 보는 것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시간의 흐름에 따라 개별 토픽의 비중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다. 소위 토픽의 ‘흥망성쇠‘를 볼 수 있다. 2015년 이후 노잼도시에 대한 블로그 유저들의 토픽은 어떻게 뜨고 질까?  - P78

일반적인 여행 얘기는 2018년까지 ‘노잼 도시‘ 블로그텍스트에서 가장 높은 점유율을 보이면서도 계속 그 점유 비율이 상승하던 주제였다. 2018년엔 정점을 찍었다. - P78

왜 2019년일까? 2019년은 대전시 출범 70주년을 맞는동시에, 광역시 승격 30주년이 되는 해였다. 대전시는 이를기념하기 위해 2019년을 대전 방문의 해로 정하고 선포식을열기도 했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⁷⁶  서울 한복판에서 대전방문의 해를 선포함으로써 대전시는 언론의 조명을 얻어 냈을 뿐 아니라, 소셜 미디어 유저들의 관심도 끌었다. 아는 사람만 알던 ‘지인이 대전에 온다는데 어떡하지‘ 알고리즘은 이시기, 강력한 확산 동력을 가진 밈이 됐다. - P80

76_박장훈, <‘2019 대전 방문의 해‘ 서울서 선포>, KBS뉴스, 2018. 12. 10. - P160

 알고리즘을 통해 알려진 ‘노잼의 도시 대전‘이란 기호와 상징을 소셜 미디어 이용자들은 상호 교류하면서 소통한다. 게시물과 댓글로 소통하는 이들에게 ‘노잼의 도시 대전 방문 밈‘ 복제와 확산은 일종의 트렌디한 소통 방식이자 내용 그 자체다. - P80

밈의 복제와 확산이란 미디어 의례 참여를 이끄는 또 다른 동력은 일종의 감정, 특히 유머다. 이 밈에는 난처함과 부끄러움이 있다. ‘대전엔 자랑할 만한 게 없다는 걸 지인에게 들킬 것 같다‘는 식이다. 일종의 자기 비하적 유머가 밈에 섞여 있다. - P81

성심당빵과 칼국수만 먹고 떠나는 사람들

사람들은 노잼인 도시 대전을 놀리려고 의례에 참여한다. 밈의 감정과 유머를 공유하며 대전을 방문한다. 이후 새로운 정보를 덧붙여 게시하면서 이 놀이는 확대, 재생산된다. 이러한맥락에서 2019년 이후 대전은, 적어도 블로그의 세계에선,
‘노잼‘이라는 장소성을 획득했다. - P81

핵심어를 찾아내고 관계망을 도출하는 여러 방법을 사용했지만, 주로 페이지랭크 PageRank를 활용해 결과를 해석했다. 기본적으로 핵심어를 찾는 방법은 텍스트 안에서 ‘어떤 단어가 어떤 단어와 동시에 출현하는가‘를 보는 것이다. 함께 등장하는 단어들 사이에는 관계가 있다. - P82

2015년에서 2018년까지의 ‘노잼 도시‘ 블로그 텍스트는 영화와 게임을 중심으로 짜여 있다. 재미있고 혹은 재미없는 무언가를 얘기할 때, 블로그 유저들은 영화를 가장 많이 핵심적으로 언급했다. 어떤 대상을 얘기하더라도 결국 ‘영화‘
얘기를 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 P83

영화, 게임과 관련 있는 단어들이 영화와 게임을 둘러싼 그룹을 형성한다. 2017년 페이지랭크 결과를 시각적으로나타낸 그림을 보면, ‘게임‘과 ‘영화‘의 중심성이 동그라미 크기로 나타나 있고, 두 핵심어 주변엔 ‘시간‘ ‘보드‘ ‘주말‘ ‘작품‘ ‘개봉‘ 등의 관련한 단어들이 모여 모둠을 형성한 것을 볼 수 있다. - P83

‘대전‘은 2019년 이후 작성된 ‘노잼 도시‘ 블로그 텍스트에서 가장 큰 노드면서, 가장 많은 연결망을 가지고 있고,
활발한 매개자이며 또한 압도적으로 영향력이 큰 단어다. 많은 단어들이 ‘대전‘과 직접 연결돼 있고, 대전을 통해 서로 연결된다. - P84

사람들은 밈을 실천했다. 그 덕에 대전을 방문하기도했다. 대전이 난처하고 부끄럽고 웃기는 밈 덕을 본 것일까?
페이지랭크를 통한 주요 단어들의 연결망은 대전을 중심으로다른 단어들, 일명 관광지와 관광·문화 콘텐츠들이 대전과 그저 1:1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걸 드러낸다. - P85

지금까지의 ‘노잼 도시‘ 블로그 텍스트 분석 결과는,
2019년 대전 방문의 해 이후 대전이 ‘노잼도시‘라는 이미지,
즉 장소성을 소셜 미디어상에서 획득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이러한 소셜 미디어 장소성 ‘노잼도시‘는 ‘높은 휘발 가능성‘
과 ‘장소 상실의 위험‘을 내포한다. - P86

블로그 유저들의 말 속에서 엄청나게 큰 자리를 차지한
‘대전‘이란 단어, 그 중심은 마치 ‘아싸‘를 백 명 알고 있는,
분투하는 ‘인싸‘처럼 보인다. 그 크기의 ‘핵인싸‘라면, 단어들의 연결망 안에서 확실하고 강력한 중심성을 진짜 가졌다면.
자신을 둘러싼 하위 연결망들이, 모둠들이 활성화돼 있어야한다. - P86

대전의 여러 장소를 둘러보고, 사람들을 만나고, 예상하지 않았던 경험을 하고 도시에 대한 감정을 가지고 돌아가이를 기억하는 여행은 ‘예전 관광 스타일‘이 됐다. 소셜 미디어가 삶의 여러 경험 방법과 내용을 결정하는 기준이 된 요즘엔, 소셜 미디어의 소통 방식처럼, 여행도 즉각적이고 표현적이며 빠르게 진행된다. - P87

 대표 상품 하나를 소비하면 다 산 것이나 다름없다. 대전의 어떤 것,
대전을 소비했다고 말할 수 있는 대표적인 어떤 것 하나만이 중요하다. - P88

 이런 행태를 일본의 문화 비평가아즈마 히로키 Azuma Hiroki는 ‘데이터베이스 소비‘라고 불렀다.
관념적 공간인 도시는 잘게 쪼개진 ‘모에Moe 요소‘로 쉽게 이해된다. - P88

. 모든 도시에는 다양한 공간이 만든 장면과 사람, 사건이 있다. 그러나 보고 싶은 것이 확실한 사람에게 이러한 도시의 다면성은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해운대와 회 센터로 부산을, 성심당으로 대전을 기억한다. - P89

그래서 사실 성심당만 찾은 사람들은, 오히려 대전이란장소와 더 멀어진다. - P89

갈만한 곳이 없어서, 재미를 느낄 사건이 없어서 대전이 ‘노잼‘인 것은 아니다. 장소성에서 파생되는 다른 관계와체험, 감정 그리고 기억이 없을 때 대전은 노잼도시가 된다. - P89

4 여기는 왜 힙하지 않을까

어떤 재미가 있어야 ‘노잼‘이 되지 않는 걸까? 어떤 매력을 가져야 대전은 ‘노잼도시‘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어떠한 매력과 근사함을 생각하며 대전의 장소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했다. - P92

. 경제 호황의 시대엔 ‘X세대‘가 고도 성장이 멈춘 시절엔 ‘네티즌‘과 ‘얼리어답터,‘
그리고 저성장이 고착화된 요즘엔 ‘덕후‘와 ‘힙스터‘⁷⁹가 멋과 매력을 정의하고 주도한다. - P92

79 _ 윤여울, 〈한국 디자인문화에 나타난 취향의 변화와 특징: 1990년대~2010년대 신문기사를 중심으로>, 건국대학교 석사 학위 논문, 2018. - P161

 "고유한 개성과 감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최신 유행에 밝고 신선하다"로 정의되는
‘힙하다‘⁸⁰는 장소와 붙어 ‘힙플레이스‘가 됐고, ‘핫플레이스‘
는 "다른 장소와 차별화된 독특성을 지닌 지역이나 장소"⁸¹를 의미하게 됐다. - P92

80_네이버의 우리말샘은 ‘힙하다‘를 2017년에 처음 언급했다.

81_변미리, <서울의 핫플레이스 혹은 ‘뜨는 거리‘: 보보스적 예술과 허세 사이 그 어디쯤>, <서울의 인문학: 도시를 읽는 12가지 시선》, 창비, 2016. - P161

대전에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인기 있는 곳은 어디인지 소셜 미디어 텍스트를 분석해 확인했다.⁸² 줄임말인 ‘힙플‘
과 ‘핫플‘이 문화적 기호로 활발히 사용되기 시작한 시기를2017년 전후로 보고, 2016년 1월 1일부터 생산된 블로그 텍스트를 대상으로 했다. - P93

힙과 핫은 카페에 있다

(전략). 2016년에서 2022년 8월까지 카페,‘ ‘사진‘ 그리고 ‘맛있는‘이 가장 높은 빈도를 보였다. 텍스트 안에서 실질적으로 많은 쓰임새를 보여 주는 단어의 무게감TF-IDE을 비교했을 때도 ‘카페(0.0142)‘ ‘맛있는(0.0068)‘ ‘사진(0.0067)‘ 순이었다. - P93

 2019년에 단어의 중요도TF-IDF 100위 안에 처음 진입한 후, 2022년 8월까지 계속 순위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디저트의 대명사 ‘케일 또는 케이크‘는 2021년에 처음으로 중요도 순위 100위 안에 들었다.
사람들은 특정한 장소가 아닌 카페를 중요하게 언급하며 대전의 힙 또는 핫플레이스를 얘기했다. 이 외에도 카페와관련 깊은 단어들을 함께 주요어들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대전의 힙플레이스, 핫플레이스 얘기는 ‘카페‘ 얘기라고 말할수 있다. - P95

2019년부터는 대전의 핫하고 힙한 곳을 이야기할 때 소제동이 빠질 수 없는 동네가 된다. 2019년 갑자기 등장한 소제동은 등장 첫해에단어의 사용빈도에 근거한 무게감 차트에서 23위에 랭크됐고, 다음 해에는 18위로 상승세를 탔다. 소제동은 대전역 주변 ‘레트로한 감성‘으로 인테리어 한 카페 거리 조성이 관사촌 정비 계획과 맞물리면서 유명해진 곳이다. - P96

소제동도 2020년에는 18위까지 올랐지만, 2021년에는 28위로 다소 하락했고,
2022년 8월까지의 텍스트에서는 74위로 떨어졌다. 이러한 동네 상권의 흥망성쇠는 멋지고 매력적인 것을 찾는 소비행태가 이미 ‘노마디즘적 특성‘⁸³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 P96

83_ 고명지, <‘핫플레이스‘를 통해 알아본 청년세대의 소비문화>, <인문사회21》12(3), 2021, 645-660. - P161

 장소가 매력적일 때는 그 장소가 낯설 때다. 블로거들은 특유의 ‘노마드적 소비 경향‘을 보이며 낯선장소를 찾고, 그 장소에서 발견한 새로움을 누구보다 먼저 전시한다.
‘처음 생긴‘, ‘남들은 모르는,‘ ‘오픈 (런)‘ 등의 단어가자주 중요하게 쓰였고, 급기야 2021년엔 ‘신상‘이 주요어 100위 안에 처음 등장했다. - P97

사진이 되는 장소가 힙하다

대전의 힙 · 핫플레이스 이야기엔 대전시 관광공사가 선정한
‘대전 명소 10선‘과 같은 종류의 장소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 P97

인위적으로 잘 조성된 장소인 카페가 왜 그렇게 힙하고핫할까? 아마 도시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Ray Oldenburg "라면카페가 현대인에게 그 어느 때 보다 부쩍 요긴해졌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제1의 장소인 집은 좁고 (대도시라면 더욱 좁고), 제2의 장소인 일터는 한시라도 빨리 떠나고 싶다. - P98

‘카페‘와 함께 대전의 힙플레이스와 핫플레이스에 대한블로그 텍스트에서 아주 중요하면서도 빈번하게 쓰이는 단어는 ‘사진‘이다. 그 무게감으로 ‘사진‘은 ‘카페‘에서 사람들이무엇을 하는지, 카페 방문 목적이 그저 커피를 마시기 위함은 아니라는 걸 또렷하게 증명한다. - P98

소위 ‘인스타그램에 쓸 수 있는instagram-able‘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장소가 풍기는 느낌과 분위기가 중요하다. - P99

블로거들에게 예쁘고 감성 있는 사진의 중요성은 어쩌면 당연하다. 수십 줄의 글은 못 읽지만, 스크롤의 압박이 있어도 수십 장의 사진은 본다. - P99

왜 내가 본 블로그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의 장소 사진들은 그렇게 한결같이 예쁜 것일까? 문화센터 사진반 수강생들이 전시한 사진들처럼 금방 지루해지는 이유는 뭘까. - P100

정해진 아름다움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않는 사진은오래 바라볼 필요가 없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 너는 답만 해‘와 같은 트렌디한 장소 사진은 ‘이런 아름다움을 보라‘고 유도하거나 강요하는 것 같다. - P100

힙과 핫은 이미 서울에 있다

한국관광공사 데이터랩은 대전 관광지 검색 순위를 여러 빅데이터를 활용해 알려 준다. 최근 5년 (2018~2022년) 내비게이션 데이터T-MAP를 분석해 사람들이 대전에서 검색한 장소가 어디인지 살펴보면, 역시 성심당이 압도적 1위라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 P101

흥미로운 점은, 압도적인 검색량에도 불구하고, 대전의힙플레이스와 핫플레이스에 대한 블로그 텍스트에서 ‘성심당‘은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텍스트에서 중요하게 쓰이는 단어를 알려주는 TF-IDF 분석 결과에서도, 단어들 사이관계를 보는 중심성 분석에서도 단어 ‘성심당‘은 통합 Top100위에도, 연도별 Top 100위 안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성심당은 힙하지 않다. - P101

대전의 힙 · 핫플레이스에 대한 블로그 텍스트 마이닝결과 ‘성심당은 힙플이나 핫플이 아니었다‘고 하자. 대전 사는 사람들은 ‘그래?‘라며 놀랐지만, ‘맞아, 그렇지‘라며 바로 수긍했다.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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