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에 없는 아산병원

미시간대학교 대학원 시절, 의학과 생명과학을 연구하는 한국인 연구자들이 한 달에 한 번 모여 한 사람씩 돌아가며 세미나를 진행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저는 1년간의 연수를 받기 위해 대학교를 방문한, 아산병원의 정석훈 교수님을 만났습니다. - P147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충청남도 ‘아산‘의 작은 병원에서 몇몇 의사를 대상으로 열리는 작은 세미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웬걸, 대구에서 나고 자란 저는 아산병원이 서울에 있는 매우 큰 병원이란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 P149

처음에는 조금 긴장되었지만, 다행히도 의학적인 문제를 수학으로 해결하는 방식에 많은 관심이 쏠리며 세미나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이것이 첫 단추가 되어 수면 학회에도 초청을 받게 되었고, 수면 학회에 꾸준히 참석하며 수학이 의학과 생명과학 연구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도 소개할수 있었습니다. - P148

많이 자면 덜 졸릴까?

기업이나 조직이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생산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직원이 24시간을 나누어 근무하는 방식을 ‘교대 근무‘라고 합니다. - P149

(전략). 이러한 주간 근무 졸림증을 방지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여러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뾰족한 해법은 아직 묘연한 상태입니다. - P149

평균 수면 시간이 길어지거나 수면 효율과 같은 여러 수면 지표가 좋아지면 당연히 교대 근무 중의 졸림도 사라질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그림 5.1 와 같이 삼성서울병원의 교대 근무 간호사들의 평균 수면 시간과 주간 졸림 정도를 그려보았더니,
평균 수면 시간이 길어질수록 졸림 정도가 감소한다고 말할수 없었습니다. - P150

같은 시간을 자도 덜 졸린 이유

이 문제에 수학적으로 접근하려면 먼저 수면을 묘사하는 수리 모델이 필요합니다. ㅣ - P150

수면 역치를 보면 낮에는 높고 밤에는 낮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따라서 낮에는 어느 정도 수면 압력이 올라가도 졸리지 않은 반면 밤에는 졸음이 찾아와 쉽게 잠이 듭니다. 이처럼 수면 압력과 일주기 리듬을 알면 우리 몸이 원하는 자연스러운 취침 시간과 기상 시간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면 압력과 일주기 리듬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매시간 혈액을 채취해 호르몬 변화를 추적해야 하기에 현실적으로 이를 알기란 불가능합니다. - P152

 잠깐! 스마트폰은 우리의 수면 패턴을 어떻게 아는 것일까요? 어제 잠자기 전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오늘 눈을 떴을 때 무엇을 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 P153

스마트 워치로 측정한 어느 간호사의 수면 패턴 데이터를수리 모델에 입력해 미분방정식을 풀면, 그림 5.3과 같이 수면 압력(검은색 실선)과 수면 역치 일주기 리듬(노란색 실선)을 역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깨어남 역치도 추정할 수 있지만 이 그래프에서는 생략했습니다.) - P153

이렇게 수면 압력과 일주기 리듬을 추정하면, 수면에 관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매일 충분한수면을 취했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림 5.3에서 첫번째 수면 시간을 보면 수면 압력이 일주기 리듬에 도달하기 전에 기상했는데, 이는 몸이 원하는 자연스러운 기상이 아닙니다.  - P155

 그림 5.4는 약 2주에 해당하는, 어느 간호사의 실제 수면을 수리 모델을 이용해 평가한 것입니다.
첫 번째 수면은 실제 수면 시간(검은색 막대)이 수리 모델이 예측한 필요 수면 시간(회색 막대)보다 길기에 충분 수면(파란색 박스)입니다. 반면 두 번째 수면은 실제 수면 시간이필요 수면시간보다 짧기에 불충분 수면(빨간색 박스)입니다. - P155

이를 바탕으로 저는 수리 모델이 예측한 필요 수면 시간과 실제 수면 시간을 비교해 수면의 충분 정도를 평가하는 지표인 수면 충분 정도Sleep Sufficiency 를 개발했습니다.¹² 전체수면 중 몇 퍼센트가 충분한 수면인지, 즉 전체 박스들 가운데 파란색 박스가 얼마나 많은지를 계산한 것입니다 - P157

12. Hong, J., Choi, S. J., Park, S. H., Hong, H., Booth, V., Joo, E. Y., & Kim, J.
K. (2021). "Personalized sleep-wake patterns aligned with circadianrhythm relieve daytime sleepiness." Iscience 24(10). - P239

그림 5.5를 보면, 이 간호사들의 평균 수면 시간TST은 6.65~6.98시간으로 비슷합니다. 그럼에도 수면 충분 정도는 서로 매우 다릅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갈수록 파란색 박스가 줄어드는 것이 보이지요? 즉, 평균 수면 시간은 서로 비슷하지만 왼쪽 간호사는 필요 수면에 맞게 수면을 잘 분배한 것이고, 오른쪽 간호사는 몸이 필요로 하는 필요 수면을 충족하지 못했습니다. - P157

연구에 협조한 전체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그래프를 그려보면 이러한 패턴은 더 명확해집니다(그림 5.6). 수리 모델이예측하는 수면 패턴에 맞추어 잠을 잘수록(즉, 수면 충분 정도가 증가할수록) 주간 졸림 정도가 감소합니다. - P158

그러면 수면 충분 정도는 실제로 어떻게 늘릴 수 있을까요? 바로 취침 시간에 따라 수면 시간의 길이를 자연스럽게 조정하는 것입니다. - P158

한편 길게 자기 어려운 오전 수면은 짧게 하고 긴 잠을자기 쉬운 밤 수면은 길게 하면 수면 충분 정도가 늘어날 확률이 커진다는 것이 수리 모델의 예측이었습니다. - P159

모델이 예측한 대로, 높은 주간 졸림증 그룹은 취침 시간에 관계없이 늘 유사한 수면 시간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낮은 주간 졸림증 그룹은 밤잠은 길고 아침잠은 짧은 자연스러운 수면 패턴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 P160

 이 연구를 학계에만 소개하다가, 2023년에는 유튜브 채널 <안될과학>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소개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 P161

이는 하루빨리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야겠다는 강한 동기를 심어주었고, 연구실 송윤민 학생과 함께 1년간 노력한끝에 ‘SLEEPWAKE‘라는 앱을 개발했습니다. 현재는 삼성서울병원 주은연 교수님이 마지막 임상 실험을 진행하고 있지요. 책이 출간될 즈음에는 출시되리라고 조심스럽게 예상해봅니다.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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