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학문에서 사기사건은 어떻게 일어나나?


‘학문에서 일어나는 사기‘라는 주제는 말할 것도 없이 매우 흥미로운 것이지만 그 내용이 쉽지 않고 그 층이 겹겹이 복잡하여 다른 이슈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드물게 다루어지고 있다. 언론인들의 대부분은 그 사기사건들 중에서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건들에만 관심을 갖는데, 그런 사건들은 짧은 시간 동안 거세게 끓어오르고는 곧바로 다시 식어버리면서 아예 관심 밖으로 사라져버린다. - P5

. 한편으론 조심이 지나쳐 화를 부르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이를테면 1980년대 미국에서는 크게 문제가 된 과학 사건들이 생물의학 연구 분야에서 잇달아 일어나자 의회가 나서서 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사기행위를 철저히 가려내도록 하였다. 그로 말미암아 사회의 관심과 열기가 치솟으면서 사기꾼과 위조자들을 색출하는 마녀사냥이 벌어지는 일까지 생기기도 하였다. - P6

과학자들이 과학 사기사건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것은 대부분자신이 혐의의 대상이 되거나 해당 사건에 심사자로 연루되어 있을때뿐이다. 더구나 그 주제와 관련하여 스스로 발 벗고 나서서 자세하게 규명하려 한다면 ‘제 집안 헐뜯어 망신시킨다!‘는 의심과 손가락질을 받을 위험마저 도사리고 있다. - P6

지금까지 확인된 바에 따르면 학문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기현상을 맨 처음 체계적으로 다룬 사람은 바로 영국의 위대한 수학자 찰스 배비지 Charles Babbage, 1792~1871였다. 1830년 런던에서 발표된 『영국 학술의 몰락에 관한 고찰들』에서 배비지는 한 꼭지를 할애하여 학술사‘라는 주제를 다루었다. - P7

‘위조‘ 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만연되었던 것은 배비지가 ‘요리하기 cooking‘ 라고 표현한 절차였다. 그 뜻을 풀자면, (가설에) 들어맞지 않는 값들을 아예 빼버려서 실험이나 계산의 결과들을 ‘맛있게꾸며‘ 조작한다는 말이다. - P8

이와 같은 데이터조작의 대가라면 의심의 여지없이 영국의 물리학자이자 수학자인 아이작 뉴턴을 꼽을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측정하여 얻은 값들을 자신의 이론에 맞게 미리 정해놓은 값에 가깝게 되도록 교정계수를 가지고 다듬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인물이다.
천재적인 능력 덕에 뉴턴은 그런 방법으로 여러 가지 자연법칙들을 찾아냈지만, 오늘날의 잣대로 보면 그 방법은 그다지 깨끗한 것은아니다. - P9

그렇지만 학문 연구분야에서 장난과 정말 마음먹고 하는 사기를 구분한다는 것은 그렇게 쉽지가 않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수수께끼로 남은 것이 그 유명한 ‘필트다운 화석‘이다. 애초 장난으로생각했던 것이냐 아니면 정말 의도를 가진 사기였느냐를 두고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 P11

본서 『과학의 사기꾼』을 쓰면서 내가 마음먹은 목표는 도덕이라는 집게손가락으로 욕을 먹어 싼 사기 또는 위조사건의 주인공들을 손가락질하자는 것이 아니다. - P11

원고 정리를 해준 가브리엘레 자이델 여사에게 특별히 깊은 고마움을 표하며 그림과 사진 문제를 처리해준 베라 여사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그리고 빌라이-VCH 출판사에서 이 책이 나올 수 있도록 온갖 힘을 아끼지 않은 이 책의 프로젝트 책임자 구드룬 발터 박사께도 감사드린다.



하인리히 창클 - P13

짜맞춘 계산-뉴턴의 ‘조작인수


아이작 뉴턴이 학교에 다닐 수 있었고 또 더 자라 나중에 위대한 학자까지 될 수 있었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 P39

역사가인 리처드 웨스트폴Richard Westfall은 뉴턴이 자신의 측정값들을 다루면서 사용했던 수치들을 가리켜 ‘조작인수fudge factor‘ 라고 했다. 뉴턴은 이 ‘인수‘를간단하면서도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하곤 했다. 이를테면 그가 이론으로 생각했던 값이 나올 때까지 계산에 넣어야 할 초기값들을 계속해서 바꾸는 식이다. - P40

그처럼 그리 성실하다고 할 수 없는 뉴턴의 계산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 경우가 바로 소리의 빠르기 계산이었다. 그당시 이미알려져 있던 파동의 법칙을 바탕으로 뉴턴은 소리가 1초에 약 255미터 움직인다는 계산 결과를 내놓았다. 그와 거의 때를 같이 하여프랑스의 두 학자가 내놓은 값은 뉴턴의 값과 큰 차이를 보였는데,
그들의 값은 499%에서 182%였다.  - P40

(전략). 자기 명예를 살리기 위해 그는 자신이 계산을 할 때 공기밀도를 제대로 계산에 반영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공기밀도의 값을 자기 마음대로 1/850에서 1/870로 높였다. 그러나그렇게 했음에도 여전히 348%에 미치지 못하자 이번에는 습도의 힘을 빌렸다. - P41

한참 뒤에 프랑스의 물리학자 루이 라플라스Louis Laplace는 그리 과학적이지 못한 그런 조작이 꼭 필요했던 게 아니었으며, 이론을 통한 뉴턴의 처음 계산이 옳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 P41

오늘의 우리들은 해마다 태양이 50.4초씩 앞서간다는 사실을알고 있다. 그런데 이 값은 17세기에 이미 알려져 있었는데, 다만 그런 차이가 생기는 까닭을 모르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것이 태양과 달의 끌림(인력) 때문이란 걸 처음으로 알아차린 사람이 바로 뉴턴이었다. 그는 그 차이 (세차운동)를 계산하기 위해 공식을 만들고,
그걸로 계산하여 얻어낸 값을 천문 관측의 자료와 비교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두 값이 서로 일치하지 않았다 - P43

그의 유명한 만유인력의 법칙을 증명할 때도 똑같은 식이었다.
계산을 시작하기 위해 그는 먼저 거의 자기 마음대로 지구와 달의 거리를 지구 반지름의 60배로 잡았던 것이다. - P43

뉴턴의 천재성은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를 과학자의 모범이라고보기는 어렵다. 그런 점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이 미적분을 놓고독일의 수학자 고트프리트 빌헬름 폰 라이프니츠Gottfreid Wilhelmvon Leibnitz, 1646~1716와 벌인 다툼이었다. 뉴턴은 라이프니츠가 자신의 계산방법을 베꼈다고 비난했다. - P44

우리의 천재 뉴턴의 마음을 굳이 더이상 상하게 하지 않고 그저지금까지 살펴본 사건들만 보더라도 그의 성격 특성들이 그의 학문능력만큼 그렇게 바람직한 건 결코 아니었다라는 말은 얼마든지 할수 있을 것이다. - P45

타고난 음모꾼
-지그문트 프로이트 정신분석


(전략). 인간의 심리와장애라는 새로운 분야에서 프로이트의 업적이 폭넓게 거론되고 있기 때문에 흔히 프로이트 혼자서 이 분야를 개척했다는 인상을 갖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는 여러 인물들이 초기 정신분석 이론을 개발하는 데 가담했다. 오늘날 그들에 대해서 거의 거론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노련한 음모를 통해 막상막하의 라이벌을 모두 제거하는 프로이트의 천부적인 재능 때문이었다. - P298

그의 첫 희생자는 빌헬름 플리스Wilhelm Fließ라는 의사였다. 그는 이미 프로이트 이전에 성심리학을 연구했으며, 인간은 누구나 양성애적인 성향을 지닌다는 이론을 제기했다. 또한 성적으로 성숙하는 과정(사춘기)에서 한쪽의 성적 기질이 억제된다고 주장했다. - P299

플리스는 1905년 마침내 자신의 책을 출판했다. 그와 동시에 리하르트 페니히Richard Pfennig라는 사서는 플리스의 권유로 『빌헬름 플리스와 그의 표절자들: 바이닝거와 스보보다』라는 책을 출판했다. 이 책에는 프로이트의 표절행위가 매우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프로이트는 곧바로 자신과 친분이 있는 빈 출신의 기자 카를 크라우스Karl Kraus에게 연락을 취해 자신을 옹호해주는 글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 P300

몇 년 후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라는 사람이 프로이트의 눈에 들어왔다. 이 두 사람은 전에는 친분이 매우 두터웠으며, 공동연구를 추진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아들러는 점점 자신의 학설을 확고히 굳히면서 검증되지 않은 프로이트의 이론에 대해 비판을 가하기 시작했다. 아들러는 특히 아동기의 성적장애가 성인이 된 이후 정신질환의 근본적 원인을 제공한다는 이론에 대해 의구심을 품었다. 프로이트는 곧바로 아들러가 편집증에 시달린다는 소문을 퍼뜨리면서 그의 영향력을 박탈시켰다. - P301

프로이트는 아둘러를 상대로 투쟁을 벌이는 동안 취리히의 심리학자 융C. G. Jung과 집중적인 접촉을 시도했다. 프로이트는 명성이 높은 융을 설립 구상 중인 국제정신분석협회의 회장직으로 임명하여 그의 덕을 보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융을 회장직에 임명하는과정에서 자신을 추종하던 지지자들의 강렬한 저항에 맞서야 했다.
프로이트는 배후에서 행동하면서 자신의 지지자 중 한 명인 산도르 페렌치Sandor Ferenczi를 내세워 그들의 저항을 막도록 했다. 프로이트와 읍과의 관계 역시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 P302

프로이트는 음모와 비방의 귀재였을 뿐만 아니라, 학술논문을저술할 때에도 사실에 전혀 입각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이에 대한 증거는 거의 모든 사례보고에서 잘 나타난다. 특히 눈에 띄는 한가지 예로 유명한 ‘쥐인간Rat Man‘ 에른스트 란처Ernst Lanzer를 들 수있다. - P302

그 외에도 프로이트는 자신의 저서 『꼬마 한스』의 주인공인 소년 한스를 실제로는 단 한 번 보았을 뿐이었다. 이 소년은 말 공포증에 시달렸는데, 마차사고를 직접 목격한 이후부터 말에 대한 공포증이 생겼다고 본인 스스로 매우 이성적으로 해명한 바 있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이 소년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가졌다는 결과에 도달했다. - P303

한편 프로이트는 자신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환자 다니엘 슈라이버 Daniel Schreiber에게 질식할 것 같은 느낌과 망상의 원인이 잠재적 동성애 때문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또한 프로이트는 슈라이버가 자신의 분석을 통해 부분적으로 치유되었다고 주장했지만, 환자는 이 점에 대해 평생 동안 맹렬히 반박했다. - P303

프로이트가 몇 안 되는, 그것도 극히 일부분을 피상적으로 분석한 사례를 통해 다양한 이론을 구축한 사실은 매우 놀랄 만하다. 그가 1907년 자신의 모든 기록을 불태웠기 때문에 가설의 토대를 좀더 자세히 검토하기 위한 문서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중략).
그러나 프로이트가 일시적인 정신질환에 시달렸으며, 옛 친구들을 상대로 비방했던 편집증 증세로 자신 역시 고통받았다는 일부 증거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프로이트가 인간의 심리기제를 보다 잘 통찰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과 가설을 개발하는 데큰 공적을 세운 점은 무시하기 어렵다. - P304

참인가 거짓인가?
-아인슈타인의 ‘위조‘에 대한 비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더없이 뛰어난 천재였지만 그 못지않게 전통의 틀을 벗어난 학자이기도 하였다. 그의 이름을 둘러싸고 그렇게 많은 일화들이며 소문들과 혐의들이 많았던 것도 아마도 바로그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 P59

이처럼 부정적인 견해들이 있게 된 핵심 원인은 아인슈타인의특수상대성이론에 있는, 분명히 모순으로 보이는 역설의 결과를 누구나 쉽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바로
‘시계의 역설‘이다. - P60

이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추론들을 생각하면 처음 특수상대성이론이 일반 사람들의 심각한 의심을 사고 더 나아가 능력이 만만치않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마저 허튼소리로 취급받았던 것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런 평가는 세월이 흐르면서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오늘날 이 이론은 사람의 머리로 생각한 것 가운데 가장 천재적인 이론으로 인정받고 있다. - P60

그보다 더 이상하게 보이는 것이 바로 아인슈타인의 부인이었던 밀레바Mileva를 둘러싼 사건이었다. 밀레바는 1983년 『엠마Emma』라는 잡지에 실린 특별 기사에서 ‘상대성이론의 어머니‘로소개되었다. 이 이상한 이야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출처를 확인한결과, 데상카 트르부호빅규리치Desanka Trbuhovic-Gjuric란 세르비아여자에게 나온 이야기란 사실이 밝혀졌다. - P62

그 책에는 조페란 물리학자가 아인슈타인의 논문들 가운데 아주 중요한 세 편의 논문 서명이 ‘아인슈타인 마리치‘로 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러나 인용 자료로 제시된 조페의 책 『아인슈타인에 대한 기억들』에는 아인슈타인의 부인이 공동저자였다는 말은 커녕 그 비슷한 말조차 나오지 않는다. - P62

지금까지 살펴본 앞뒤 맞지 않는 이야기들이며 잘못된 이야기들에서 아인슈타인의 책임이라고 할 만한 것은 전혀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이 유명한 과학자도 학문 연구의 규칙을 엄격히 지키지 않았던 일이 하나 있었다. - P63

 먼저 자신들만의 이론을 정립한 두 사람은 실험을 통해 구해질 수 있는 값이 1‘일 수밖에 없다고 단정하고 실험 단계로 넘어갔다. 하지만 직접 실험을 한다는 게 비용도 비용이지만 아주 까다로웠기 때문에, 두 사람은 두 차례만의 측정으로 실험을 끝냈다. 나중에 드하스는 그 실험과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 P63

그러나 나중에 다른 물리학자들의 실험을 통해 1.45란 값이 실제의 값에 더 가까운 것임이 밝혀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제대로 된 측정값이 2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나중에 드하스는 측정값을 조작했다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아인슈타인은 그 조작 사실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그 일이 있고 난 후부터 자기학 관련 연구를 다시 하지 않았다. - P64

 아인슈타인이 이 사건에 대해 그토록 끈질기게 입을 다물었다는 사실도 놀랍기는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그는 다른 경우들에는 늘 자기 잘못을 순순히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1911년 『물리학 연보』에는 이미 6년이나 지난 자신의 박사논문에서 잘못된 점을 고쳐 발표하기도 하였다. 또 1916년 일반상대성이론을 설명하면서 잘못된 계산도 마찬가지로 그 스스로 밝히고 고쳤던 것이다. - P64

마약과도 같은 위험한 게임
허술한 신약 테스트


특정 질병 치료를 위한 신약은 허가를 받기 전에 여러 단계에 걸친테스트를 받아야 한다. 실험실 분석과 동물 임상실험을 거친 신약은 인간에게 어떤 육체적·정신적 효능을 발휘하는지를 규명하기위해 우선 건강한 지원자를 대상으로 테스트 과정을 거친다. - P260

신약 테스트를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많은 환자들이 필요하기때문에, 제약회사는 대규모의 제반 비용이 드는 이러한 실험을 가능한 신속히 마치기 위해 여러 병원과 손을 잡고 일한다. - P260

신약 테스트는 주로 지속적으로 비어 있는 의료보험조합에 자금을 가져다주고 직원을 추가로 고용할 수 있게 해준다. 특히 제약회사와 병원의 관계가 매우 유착되어 있는 미국에서는 수많은 의사들이 이러한 신약 테스트 분야를전공한다. - P261

오거스타Augusta의 조지아 의과대학의 리처드 보리슨은 이 분야에서 다년간 활동했다. 그는 보스턴 출신으로, 의대 졸업 후 정신과전문의 연수교육을 받았고, 독일의 ‘사사Privatdozent‘에 해당되는
‘박사학위Ph. D. (Doctor of Philosophy)‘를 취득하는 등 학문적으로도 뛰어난 자격을 갖추었다. 1981년 그는 조지아 의과대학의 정신과 교수로 임명되었다. - P261

 보리슨이 정신과 의사였기 때문에 특히정신분열증과 우울증, 알츠하이머 질환을 가진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향정신성 약품 테스트가 주로 위탁되었다.
몇 년 후 보리슨 · 다이아몬드 커플은 제약회사 사이에서 테스트를 신속하게 수행하고 정확하게 보고하는 것으로 명성을 떨쳤다.
그 결과 제약회사의 테스트 위탁이 점점 쇄도했으며, 곧 미국의 권위 있는 대다수 제약회사들도 조지아 의과대학에 신약 테스트를 위탁했다. - P262

연구가 순조롭게 진행되던 어느 날 신약 테스트에 참여 중인우울증 환자가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보리슨과 다이아몬드는 환자의 자살 사실을 은폐하려고 했다. 그들은 담당 여성 연구원을해고하고, 그녀에게 돈을 주고 대학 측에 이 사실을 알리지 못하도록 입막음했다. 그러나 뒤이어 두 번째 환자가 자살하자 한 여성 연구원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대학 측에 사건 전모를 알렸다. 곧 내부 조사가 시작되었다.
조사가 시작되자마자 대부분의 연구에 심각한 결함이 있었음이 드러났다. - P262

브루스 다이아몬드는 바이오테크에 자주 나왔지만 약물학자였기 때문에 의사업무를 수행할 자격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그는 보리슨의 이름으로 서명한 다음 부분적으로 처방전과 증명서를 발급해주었다. 그에게 환자들의 건강은 안중에도 없었다. - P263

불미스러운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검찰이 개입되었다. 오랜수사 끝에 리처드 보리슨은 기소를 당했고, 자신의 죄를 자백했다.
그 중에는 절도 및 사기, 문서조작과 뇌물제공 등 다양한 혐의가 존재했다. 그는 1998년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그 외에도 그는 400만 달러의 손해배상액을 지불해야 했으며, 의사면허를 영구히 박탈당했다. - P263

보리슨 역시 돈과 사치를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선고가 내려진 이후 오거스타에서는 그가 소유했던 수많은 골동품과 그림을 대상으로 거대한 경매가 벌어졌다. 경매에 부쳐진물품 중에는 그가 이미 수중에 확보한 돈과 향후 몇 년간 벌어들일 돈으로 오거스타 근방에 지으려고 했던 화려한 성의 설계도도 있었다. 결국 그는 오랜 기간 동안 화려한 성 대신 비좁은 감옥방에서 살아야 했다. - P264

 조지아 의과대학은 신약 테스트와 관련된 그러한 부정행위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엄격한 규율을 새로 제정했다. - P264

약품개발 분야에서 생겨난 막심한 손해는 특히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약품 임상실험과 관련하여 보리슨과 다이아몬드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상실된 의약품 업계 전체의 신뢰를 만회하려면 앞으로 수년이 더 지나야 할 것이다. - P265

짜맞춘 계산: 뉴턴의 ‘조작인수‘
Di Trocchio, F., "Newton und der Fälschungsfaktor", Der große Schwindel,
(Rowohlt Taschenbuch, 1999).
Westfall, R.S., "Newton and the Fudge Factor", Science 179, (1973).
Zankl, H., "Ein Apfel fällt", Die Launen des Zufalls, (Primus Darmstadt, 2002). - P435

참인가, 거짓인가?: 아인슈타인의 ‘위조‘에 대한 비난

Di Trocchio, F., "Die Relativität: Scherz oder Betrug?", Der große Schwindel,
(Rowohlt Taschenbuch, 1999).
Fölsing, A., "Die Illusion der ‘harten Tatsachen", Der Mogelfaktor, (Hamburg:Rasch und Röhring, 1984). - P436

마약과도 같은 위험한 게임: 허술한 신약 테스트
Corwin, T., "Insurance, claim, trial linked", Augusta Chronicle, (5. 9. 1998).
(http://www.augustachronicle.com).
Garber, P. & Partridge, W., "Investigators asking if medical researchesdiverted funds", The Augusta Chronicle (17. 8. 1996).
Grinfield, M.J., "Ex Profs charged in Psych Department Research S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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