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장

그들은 왜
멀어졌을까


세상에서 가장 짧은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 이야기는 단 두 문장으로 이뤄져 있다.

"우리 헤어져!"
"저 남자/여자가 누구더라?"

우리는 인간 심리의 본성에 워낙 익숙해져 있으므로 위의 문장만 가지고도 어려움 없이 나머지 이야기를 엮어낼 수 있다. 우리는 곧바로 이야기의 배경을 파악하며 두 주인공의 생각과 기분을 짐작한다. - P453

관계가 깨지는 방법은 둘 중 하나다. 서서히 멀어지거나, 산사태처럼 와르르 무너지거나. 우리는 후자는 연애 관계에서 생기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연애는 대부분 대놓고 악감정을 드러내며 끝나기 때문이다. 반면 우정은 일반적으로 친밀감이 연애보다 약하기 때문에 실패하더라도 타격이 작다. 그래서 우정은 조용히 식는경우가 많다. - P454

친구 관계와 혈연관계가 다르다는 점은 대학으로 떠난 청소년들에 관한 우리의 연구에서도 명백하게 밝혀졌다. 고등학교 시절의 옛우정은 금방 희미해졌다. 대학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 결과 옛 우정은 새로운 우정으로 대체됐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는데 친밀감을 유지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그 사람을 자주만나지 않는다면 우정은 시들해진다. 특히 둘 중 누구도 그런 상태를 타파하려는 의욕을 가지지 않는다면 우정은 깨진다. - P454

친척들은 친구들보다 너그럽다. 오랫동안 연락을 못 해도 용서해주고, 불가피하게 신뢰를 깨는 사건이 생겨도 용서해준다. 우리는 친척들이 못마땅할 때도 있지만,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거의 항상 그들을 도와주려고 한다. 하지만 이처럼 가족과 친척에게 더 많이 참아줄때의 단점은, 우리가 선을 넘는 행동을 지나치게 자주 하면 관계에급격한 균열이 생겨서 회복이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 P455

엔드게임

그렇다면 누가 누구와 사이가 나빠질까? 우리가 이 문제를 들여다봤더니 놀랍게도 관계의 단절에 관한 연구는 너무나 적었다. 관계가 깨지는 이유에 관한 연구들은 있었지만 그 연구들은 애인이나 절친한친구 같은 친밀한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 P455

관계가 깨지는 사태의 절반은 관계를 맺은 지 3년 이내에 발생하며, 나머지 절반의 대부분은 당신이 거의 평생 알고 지냈던 사람들,
주로 가까운 가족과의 결별이다. 다시 말하면 결별은 관계의 아주 초창기에 발생하거나 관계를 맺은 지 한참 지나서 발생하며 그사이에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데이터에 따르면 친척이 아닌 사람과의결별이 친척과의 결별보다 먼저일 가능성이 높다. - P457

결별 중에 놀랄 만큼 비중이 컸던(4분의 1 정도) 것은 가까운 가족구성원과의 결별이었다. 하지만 가족은 150명 친구 중 거의 절반을차지하기 때문에, 가족과의 결별이 전체의 4분의 1이라는 것은 가족과 결별할 가능성이 친구들과 결별할 가능성의 절반밖에 안 된다는뜻이다. - P457

 애인과의 관계가 깨지는 것은 이해할수 있는 일이지만, 가까운 가족과의 관계가 자주 깨진다는 점은 약간거슬린다. 이러한 결과가 거슬리는 이유는 우리가 처참하게 실패했을 때 우리를 돕기 위해 백방으로 애쓸 사람들은 가까운 친척이기 때문이다. - P458

우리의 조사에서는 사이가 나빠지는 대상도 성별에 따라 확연히갈렸다. 우리는 부모, 애인, 지인 등 응답자들이 각각 특정할 수 있는24가지 관계 유형을 제시했다. 그러자 여성은 24가지 관계가 모두깨진 적이 있다고 답했지만 남성은 24가지 중 14가지 관계만 깨진적이 있다고 답했다. 남성은 자녀, 의붓형제, 이모/삼촌, 사촌, 양부모, 먼 친척들과 사이가 나빠진 경험이 없었다. (중략).
남성들은 남성과 사이가 나빠질 확률과 여성과 사이가 나빠질 확률이 동일했지만 여성들은 남성보다 다른 여성과 사이가 나빠질 확률이 2배 가까이 높았다. 즉 여성과 여성의 관계는 특별히 취약하다. - P459

왜 우정에 금이 갈까

관계와 관계의 파괴에 관한 유명한 연구로는 영국의 전설적인 사회심리학자 마이클 아가일 Michael Argyle (나는 학생이던 1960년대에 그와함께 수업을 들었다)의 연구가 있다. 1980년대에 그는 동료인 모니카헨더슨Monika Henderson과 함께 우정의 토대가 되는 법칙들을 알아보기위해 여러 편의 광범위한 실험 연구를 했다. 그들은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6가지 핵심 법칙을 찾아냈다.

1) 그 사람이 없는 자리에서도 그의 편을 들어준다
2) 그 사람과 중요한 소식을 공유한다
3) 감정적 지원이 필요할 때 지원을 해준다
4) 서로를 신뢰하고 비밀을 털어놓는다
5) 도움이 필요할 때 자발적으로 도와준다
6)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려고 노력한다

마이클과 모니카는 이 6가지 규칙 중 하나라도 위반하면 관계는 약해지고, 여러 개의 규칙을 깨뜨리면 관계는 망가져버린다고 주장했다. - P460

우리는 관계 파괴 연구에서 대상자들에게 관계가 깨지는 11가지 이유를 제시하고 선택하도록 했다. 대상자들이 가장 자주 생기는 일부터 가장 드문 일까지 순서대로 나열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관심부족, 소통 실패, 서서히 멀어짐, 질투, 알코올 또는 약물 문제, 관계에 대한 집착, 제삼자와의 경쟁, 다른 사람들의 ‘방해‘, 피로, 오해, 문화적 차이. 관계를 깨뜨리는 주요 원인 3가지 (그냥 멀어지는 것은 제외)는 관심 부족, 소통 실패, 질투였다. - P461

(전략). 이 점에 대한 훌륭한 설명은 뜻밖에도 네덜란드에 위치한 막스 플랑크 심리언어학 연구소의 언어학자 시메온 플로이드 Simcon Floyd와 닉 엔필드 NickEnfield 그리고 2명의 동료들이 제시했다. - P462

평균적으로 부탁을 했던 사람이 ‘감사합니다‘라고 답했거나 ‘감사합니다‘와 비슷한 의미의 말로 답한 경우는 약 5.5퍼센트에불과했다. 영국인이 가장 정중했고(부탁 건수의 14.5퍼센트), 에콰도르의 차팔라 인디언이 감사 인사를 가장 적게 했다(0퍼센트), 현대사회의 통념과 달리 사람들은 일상적인 호의에 대해서는 감사의 표현을 자주 하지 않았다. - P462

관계가 깨진 원인에 관한 응답에서는 남녀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남성들은 서서히 멀어짐, 알코올 또는 약물 문제, 제삼자와의경쟁, 다른 사람의 개입이라는 응답이 많았다. 여성들은 소통 실패,
질투, 피로감 때문에 상대를 덜 좋아하게 됐다는 응답이 많았다. 이런 결과를 보면 남성은 남을 비난하는 경향이 있고 여성은 자신을 비난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같다. - P463

(전략). 제프리 홀은 그 항목을 ‘주체성 agency (신체 활동에 참여하고 지위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성향)‘이라고 명명했다. 특히 남성은 높은 지위를 가진 동성 친구들과의 우정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두드러졌다. 연령과 혈통이라는 변수를 통제해도 이런 차이는 동일하게 나타났지만, 연령이 높을수록 차이가 커졌다. - P464

이혼 통계도 이런 결론을 뒷받침한다. 영국에서 2017년에 접수된 이혼 신청의 3분의 2가량은 여성이 접수한 것이었고, 동성 부부의 이혼 신청 중에서는 4분의 3이 여성 동성애자 부부(남성 동성애자 부부가 아니고)의 이혼신청이었다. 두 경우 모두 이혼 사유 중에 가장 많았던 것은 ‘비이성적인 행동‘이었다. 그리고 여성이 비이성적인 행동을 이혼 사유로 꼽는 비율이 높았다(여성은 52퍼센트, 남성은 37퍼센트). 레즈비언 부부의 이혼 사유 중에도 비이성적인 행동이 가장 많았다(전체의 83퍼센트, 게이 동성애자 부부의 이혼 사유 중 비이성적인 행동은 73퍼센트였다). - P464

멕시코와 영국 학생들의 고독감에 관한 애나 히틀리의 연구는 왜이런 일이 벌어지는가에 관한 하나의 설명을 제시한다. 애나 히틀리는 여성이 남성보다 고독감을 많이 느낀다고 답변한 사실을 발견했다. 애착 안정성이 낮은 사람들, 평소에 자신이 감정적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고 여기고 자신의 인간관계에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은 안정적 애착을 가진 사람보다 고독을 많이 느꼈다. - P465

부부간 결별에 관한 문헌에 등장하는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결별이나 이혼 후에 남성이 우울증에 걸리거나 자살할 위험이 더 크다는것이다. 그것은 남성들의 우정이 더 가볍기 때문에 이혼과 같은 상황에서 남자들은 충분한 감정적 지원을 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 P466

거절당할 때의 고통

불행하게 끝난 관계는 큰 고통이다. 눈물이 날 정도로 고통스럽다.
우리 중 4분의 3 정도는 결별이든 죽음이든 간에 사랑하는 사람을잃은 것이 인생에서 가장 비극적이고 힘든 일이었다고 말할 것이다. - P467

이러한 사실을 입증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사람은 아마도 미국의 신경과학자인 나오미 아이젠버거일 것이다. 나오미는 사교적 거절을 당할 때 뇌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아보기 위해 인디애나주 퍼듀대학의 킵 윌리엄스Kip Williams가 개발한 ‘사이버볼cyberball‘이라는 단순한 스크린 게임을 활용했다. - P468

실험 결과 사이버볼 게임에서 사교적으로 배제된 사람의 뇌에서활동량이 증가한 영역들은 전측 대상회 피질ACC(뇌의 두 반구 사이의 틈 깊숙이 위치한다)과 전측섬상세포군AI(머리의 양쪽 측면의 피질 안쪽에 위치한다)이었다. 실험 대상자가 스스로 밝힌 불쾌함의 정도가 클수록 이 영역들이 활성화된 정도도 컸다. - P468

뇌에서 육체적 고통과 사교적 고통을 관장하는 영역이 같다는 증거는 다양한 문헌에서 발견된다. 한 연구는 사교적으로 따돌림을 당할 때와 육체적 통증이 수반되는 과제를 수행할 때의 뇌 활동을 조사했는데, ACC와 AI의 활동이 상당히 많이 겹쳤다. (중략).
OPRM1 유전자는 엔도르핀 수용체를 조절하는데, 실험 대상자 중1~2명은 이 유전자의 대립형질을 가지고 있어서 육체적 통증에 특별히 민감한 사람들이었다. 이런 사람들은 사교적 거절에도 유난히민감했고, 사교적 배제 실험이 진행되는 동안 ACC와 AI의 활동량이다른 사람들보다 많았다. - P469

 제니퍼 스미스 Jennifer Smith (당시 우리의 학생이었다)가 사이버볼 게임을 이용해 설계한 실험에서는 대상자들이거절을 당한 후에 통증역치(엔도르핀 양을 판단하는 지표)가 증가했지만, 초등학교 때 괴롭힘을 당했다고(하지만 중학교 때는 당하지 않았다고) 답한 사람들의 경우 통증 역치가 훨씬 커졌다. 이런 결과로 보아사교 경험은 아주 오랫동안 영향을 끼치며 어른이 되고 나서도 사교적 상황에 더 민감해지게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 P470

울음과 우정의 연관성

우리가 슬플 때나 괴로울 때 하는 정말로 이상한 행동이 하나 있다. 내가 이상하다고 한 것은 다른 어떤 종도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아서 생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 P472

. 울음에 관해 생각할 때 더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인기를끌었던 영화의 다수는 우리를 웃게 만드는 영화가 아니라 울게 만든영화였다는 것이다. 코미디 영화는 보통 시시한 작품으로 간주되고비극은 진지한 예술 작품으로 인정받는다.
이 이상한 행동에 대해 과학은 아직 만족스러운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 하나의 가설은 울음이 다른 사람의 동정을 유발해서 그 사람이우리에게 뭔가를 해주거나 우리를 울게 만든 어떤 행동을 멈추도록 한다는 것이다. - P472

화해가 어려운 이유

가까운 가족 관계는 연애 관계와 마찬가지로 재앙으로 끝날 위험이 높은 것 같다. 가까운 가족과는 화해하기도 가장 어렵다. 왜냐하면 그 결별은 험악하게 끝나기 대문이다. 우리가 온라인으로 수집한 900회 정도의 결별 표본 중에서 45퍼센트 가까이는 조사가 실시된 시점에 화해에 이르지 못한 상태였다. - P474

관계 단절에 관한 우리의 연구에서는 대상자들에게 화해가 이뤄진 과정을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가장 보편적인 행동은 단순한 사과였다(성공한 화해의 절반 정도). 두 번째로 많았던 응답에는 사과도 화해를 위한 노력도 포함되지 않았다. - P474

일반적으로 사교적 유대를 강화하는 어떤 신체 활동 내지 사교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화해했다는 응답은 15퍼센트 미만이었다. - P475

대체로 여성들은 과계가 깨질 경우 화해하지 못하는 기간이 남성들보다 길었다. 여성이 다른 여성과 결별한 사례의 47퍼센트가 화해하지 못한 상태였다. - P475

여성은 남성에 비해 용서를 쉽게 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시인들과 극작가들이 항상 다루는 주제기도 하다. - P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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