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우리 뇌 사용설명서
10
트라우마가 생각에 저지르는 행각
나는 30대 중반에 이미 두 개국, 네 개 기관에서 5년간의 대학 과정을 마쳤고, 의학 대학원까지 졸업한 후 병원에서 정신과 신경과수련을 끝마쳤다. 이 모든 과정과 경험을 끝마친 후에야 나는 비로소 그동안 배운 교훈은 고작 중학교 때 다 배웠어야 할 내용임을 깨달았다. - P219
논리, 정서 그리고 기억
스스로를 대체로 논리적 동물이라 생각하고 싶겠지만, 사실 우리뇌는 논리와 정서를 각각 사용하는 것에 있어 복잡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이 두 시스템에 입력된 정보는 우리가 결정을 내리도록 뇌에서 통합되어야 하는데, 만약 두 시스템이 같은 명령을 내린다면 결정하기가 상당히 쉽다. - P220
궁극적으로 정서는 논리보다 뇌의 더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있는데, 그 이유는 우리의 정서적인 측면이 진화적 측면에서 더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이 말은 곧, 중요한 문제에서 우리 뇌가 두 장의 표를 집계할 경우(한 표는 논리가 한 표는 감성이 행사), 우리 뇌는 기본적으로 정서에 투표하는 쪽으로 기운다는 뜻이다. (중략). 물론 뇌는 단순히 모 아니면 도라는 의사 결정 방식보다 좀 더 미묘하고 복잡하게 움직인다. 가능하다면 논리와 정서를 모두 통합하는 방향으로 일을 진행한다. - P221
트라우마는 우리의 정서를 바꾸고, 바뀐 정서는 우리의 결정을 지배한다. - P222
정서는 이런 식으로 자기 목적을 달성하는데, 우리는 종종 정서가 하는 말이 얼마나 그럴싸한지, 또 그 힘을어떻게 자기한테 유리한 쪽으로 행사하는지 알아차리지 못한다. 수치심과 트라우마의 다른 공범들도 바로 이런 식으로 우리가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목적을 달성하는데, 이들이 성공하는 이유는 우리의 정서와 의사 결정 과정에서의 정서적인 측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우리가 논리에 기반을 두고 결정을 내리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트라우마에 물든 정서가 우리의결정을 통제한다. - P223
우리는 ‘사는 게 다 그래. 어떤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죽을 운명을 타고난 거야‘라는 몰인정한 생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 P225
인지 가림막: 트라우마가 세워놓은 거대한 벽
트라우마로 생기는 가장 끔찍한 여파 중 ‘가림막‘이라는 것이 있다. 이 가림막은 트라우마가 도둑질을 하려고 우리 뇌 속에 은밀히설치하는 것이다. - P226
트라우마를 끊임없이 겪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형태이든 인지 가림막이 자리하고 있다. - P227
세상을 항해할 때는 자신에 대한 정확한 인식은 물론 주변 세상에 대한 명확하고 폭넓은 시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트라우마가 우리에게서 훔쳐 간 보물처럼 보이도록 감쪽같이 채색한 벽에서 빠져나올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 보물이 필요하다. 그리고 트라우마가 스스로 세운 장벽 뒤에서 휘두르는 위협, 예컨대 너는 별로 좋은 사람이 아니다. 사람들이 너를 좋아하지 않는다. 너는 당해도 싸다. 그거 기를 쓰고 해도 안 된다, 라고 속삭이는 위협에서 우리는 벗어나야 한다. - P228
"누가 나를 선로 위에 눕혀놓았나요?"
하루는 누가 자기를 선로 위에 눕혀놓았는지 아느냐는 전화를 받았다. 나는 뭐라고 답할지 몰라 어리둥절했지만, 긴급 상황이긴 했다. 무슨 영문인지 알아보려고 서둘러 몇 가지를 질문했다. 전화를건 사람은 내가 담당하는 환자였고, 기차선로 사이에 누워 있는 채로 발견되었다고 했다. (중략). "누가 나를 선로 위에 눕혀놓았나요?" 그녀는 이렇게 물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뭐라고 할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내가 그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녀 역시 답을 알리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범인은 그녀 자신이었다. 바로 그녀 스스로 선로 위에 몸을 눕힌것이다. - P229
‘숨기‘는 태어난 후 쭉, 필수적인 대처 전략으로 할머니에게 각인되었다. 할머니는 스스로를 위해 평화로운 존재로 살아왔지만, 그 평화로운 삶은 공포와 도피 반응으로 인해, 때로는 아무런 경고 없이, 가끔은 대단히 위험하게 종지부를 찍었다. 기차선로 위에서 무의식 상태로 발견된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였다. - P230
할머니에게는 여러 명으로 보이는 자아가 있었고, 이 모두는 할머니 자아를 일부분씩 나누어 가졌다. 자아 중 하나는 심한 두려움에 떨며 옷장 속 침대 아래에 숨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집을 떠나지 않는다. 또 다른 자이는 집 안에 있는 모든 음식을 먹어치운다. 할머니는 이 두 자아에 대해서는 별다르게 걱정하지 않았지만, 다른 나머지 자아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도 같이 합칠 수 없었다. - P231
우리 모두에게는 다양한 측면이 있다. 이런 다양한 측면이 각기 다른 자아로 발현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종종 해결하기 어려운 상충되는 문제를 두고 대립을 벌일 때도 있다. 여러분의 다양한 측면은 무엇인가? 자기 자신속에서 만나는 성격이나 목소리 중 때때로 어떤 것들 때문에 원하는 방식대로 살아가기가 힘들어지는가? 트라우마는 자아의 여러 다양한 측면이 여러분에게 속삭이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 P233
12
트라우마가 가하는 신체적·정신적 파괴
우리 뇌는 몸이 없이는 작동하지 못하고, 우리 몸은 뇌가 없이는 움직이지 못한다. 이 둘 사이가 연결된다는 것은 목으로 서로가 붙어 있다는 것만은 아니다. - P263
그런데 우리 몸 안의 소통을 관장하는 규칙이 바뀌어 고통과고뇌의 신호가 전반적으로 노골적인 우선권을 받았다고 가정해보자. 그렇게 되면 고통과 고뇌 신호는 더 빨리 움직이고, 고속도로에서 다른 신호들을 제치고 앞서갈 수 있으며, 뇌나 몸속의)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 좀 더 확실하게 자기들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도로망의 기본 규칙이 이런 식으로 바뀌면 우리 내부의 전체 환경도 바뀐다. - P264
현저성 Salience 은 신경생물학과 정신의학에서 중요한 개념이다. 이는 특정 생각, 감정 또는 인식이 다른 것보다 두드러지는 정도를나타낸다. - P264
트라우마는 통증을 키우고 통증은 고통을 늘린다
염증은 부상에서 회복하고 감염과 싸우려고 우리 몸에서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반응이지만 트라우마가 원인이 되어 일어나기도 한다. 트라우마를 어린 나이에 겪거나 그 정도가 심각할수록 염증의 영향은 더욱 강력해진다. 이런 염증이 발생하는 이유는 트라우마와 그 공범들이 스트레스를 촉발하고, 우리 몸은 스트레스를 염증을 일으키는 실마리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 P265
섬유근육통은 만성 통증, 피로, 기억력 상실을 동반하는 질환으로, 트라우마와 관련성이 입증된 사례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섬유근육통을 비롯한 많은 만성 통증 질환은 종종 트라우마 또는 뇌와 몸의 연결 관계를 그다지 고려하지 않은채 치료되고 있는 실정이다. - P266
염증은 수많은 기능 장애를 초래한다.
트라우마는 통증을 키우고, 통증은 고통을 늘리며, 고통 때문에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통증을 잠재우기 위한 방안을 필사적으로 찾게 된다. 사회적 측면에서 보면, 안타깝게도 이런 끔찍한 사이클이 마약의 유행으로 반복된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고쳐야 할지 모르는 정신적 육체적 통증을 겪는데, 이는 외적인 통증 완화 수단이 유혹적이기도 하지만 그것에 저항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 P266
√ 해법
긴장 줄이기
불안은 우리 뇌에 신호를 보내 몸 안에 근육 긴장을 더 유발하라고 명령을 내리는 등, 여러 방면으로 불쾌한 경험인데, 이는 다시 말해 뇌에게 걱정거리가 있다고 알려주는것이다. 우리가 여기에서 개입할 방안을 찾지 못한다면, 이 불쾌한 사이클은 그 자체로 우리 삶을 앗아갈 수 있다. - P267
이때 점진적인 근육 긴장 완화 요법을 통해 뇌 속 불안및 몸속 긴장의 일부인 근육 긴장을 인식하고 완화할 수있다. 3장에서 제시한 해법을 확장해보면, 내가 추천하는한 가지 흔한 방법은 잠자리 전략이다. 잠이 들기 전 누워서 발가락부터 머리까지 올라가면서 서서히 근육을 조인다음 풀어주는 방법이다. - P268
트라우마로 인한 자가면역 질환
염증이 늘어나면 박테리아 및 바이러스, 돌연변이된 암세포 등의 외부 및 내부 침입자에 맞서 싸우는 우리 면역계가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면역계가 잘 작동하지 않으면 평상시라면 별 걱정할 필요 없는 온갖 위협에 상당히 취약한 상태가 된다. - P269
염증은 면역계를 뒤흔드는 여러기능 이상을 초래하고, 면역계에 혼란을 가져오기도 하며, 면역계가 도리어 자기 자신에게 무기를 겨누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렇게 면역계가 원래 보호하기로 되어 있는 자신의 몸과 뇌에서등을 돌리면 피로, 구역질, 통증 증가, 발진, 탈모 같은 저강도 중상이 나타나거나, 좀 더 파급력이 크고 피해 범위가 큰 류마티스성관절염, 루푸스, 다발성 경화증, 건선, 크론병 같은 자가 면역 질환이 생기기도 한다. - P270
후생유전학과 아동기 스트레스
후생유전학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의해 유전자가 활성화되거나 비활성화되는 양상을 연구하는 학문이자 과학이다. 우리는조상의 DNA를 수동적으로 전달하는 배달부 역할만을 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경험은 어떤 특성이 활성화되고 어떤 특성이 잠들지를 결정한다. 트라우마에 의한 후생유전학적 변화는 일부 자가 면역 질환과 관계가 있으며, 이 밖에 아동기 트라우마에 의한 스트레스는 자가 면역 질환의 가능성뿐 아니라 성인기 염증 질환도 늘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 P271
트라우마가 들어오도록 무임승차권을 줄 필요가 없다.
어떤 특정인에 대해 시간 손실과 삶의 질을 예측하여 계산할수는 없지만, 삶의 경험과 정신 건강 변수를 근거로 예상치를 낼수 있다. 예를 들어 살면서 경험하는 심각한 트라우마처럼, 아동기트라우마 역시 상당한 피해를 준다. 노화의 경우 우울증이 유발 원인 중 하나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인데, 우울증은 종종 트라우마와 연관이 있다. - P272
트라우마가 가져온 부정적 그림자
트라우마는 전에는 없었던 고뇌와 불리한 처지에 있다는 피해 의식 등 우리 뇌와 몸에 뉴노멀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뉴노멀은 통증 증가와 질병의 형태로 나타나거나, 기회 상실과 우울증을 비롯해 건강하게 오래 살았다면 누렸을 놓친 세월에 대한 상실감 등의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다. - P273
(인지적 또는 실제) 장애물에 부딪쳤거나 위협을 느꼈을 때 나타난 여러분의 회복력에 대해 생각해보자. 여러분 안의 어떠한 힘이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게 했는가? 좌절 이후 다시 정신을 차리거나 회복하도록 도와준 요소는 무엇이었는가? 어떤 자질을 통해 고난을 이겨냈는가? - P276
추천 서문
나는 어떻게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되었나
레이디 가가(스테파니 제르마노타stefani Germanotta)
월드 투어 중 나는 뉴욕의 개인 병원 응급실에 조용히 내던져졌다. 내 기억 속에는 의사와 간호사의 모습이 남아 있다. 내가 계속 소리를 지르자 이들은 차분하게 100부터 거꾸로 세어보라고 했다. "왜 아무도 당황하지 않는 거죠?"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 P9
"안녕하세요, 저는 폴 콘티라고 합니다." 그는 이렇게 소개했다. "정신과 의사예요." 나는 같이 있던 의사가 좀 전에 방을 나간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옆에 있던 간호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다. "진짜 의사를 불러와야 하는 거 아닌가요?" 폴은 내 말에 "저는 뉴저지 출신이고 이탈리아 사람입니다"라고 답했다. 이 말 한마디에 나는 폴에게 말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 P10
그동안 우리 둘 사이에 일어난 일을 여기서 일일이 다 말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이 점만은 밝혀두린다. 폴은 필요할 때만 흰색가운을 입었다. 자신이 의사임을 내게 상기시킬 필요가 있을 때만. 대부분은 상호 동의하에 폴은 같은 인간이자 안전한 남자로 내게 공감해주었다. - P11
우리는 우리를 믿어주는 남자(그리고 또 남자가 아닌 사람들)가 필요하고 그래야 트라우마가 치유된다. 폴 콘티는 바로 그런 남자다. 그는 여성의 이야기를 믿고 여성이 지니고 있는 트라우마를 믿는다. - P11
폴은 마음씨가 고운 사람이고, 누구라도 그런 고운 마음씨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게서 이런 덕목을본 순간 나는 치유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도 치유를 위한 여행 중이다. 여러분 역시 그렇다. - P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