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우선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우선, 시체다. - P9
"미리 말을 해 둬야 할 것 같은데, 오늘 우리가 쓸 유체는 신품이다. 케임브리지에서 일어난 스캔들은 제군들도들어 알고 있겠지만, 런던 대학 의학부에서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다. 제군들은 긍지를 가지고 나날이 면학에 힘써 주기 바란다." "그렇다고 하시는데." - P10
확실히 그 사건에 관하여 못을 박아 둬야겠다고 생각한 교수의 성실함은 우습다면 우스웠다. 그 사건이란 《타임스》 같은 제대로 된 언론지에서부터 1페니짜리 《데일리 텔레그래프》 같은 찌라시까지 온통 떠들썩하게 만든 시체도둑 이야기, 케임브리지의 모 교수가 연구용 시체를 시체도둑으로부터 사들였더라는 스캔들이었다. 시체가 부족한요즘 같은 때, 충분히 이해되는 일이라고 내심 동정하는박사들도 많을 것이다. - P11
웨이크필드가 질리지도 않고 귓속말을 하는 바람에 뭐가, 하고 나는 되물었다. "미망인 하나가 피카딜리를 걷다가 얼마 전에 죽었을자기 남편이 승합 마차를 몰고 있는 걸 보고 기겁을 했다나봐. 부인은 남편이 무덤 속에 잠들어 있는 줄로만 알고있었다더군." "죽은 사람의 생전 동의도 없는 상태에서 멋대로 프랑켄슈타인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 말이야?" - P11
"그래. 런던 시장 왈, 오늘날 브리튼의 죽은 이는 안녕과는 거리가 먼 상태에 있단다." "그 정도로 심각한가." "런던 경시청에서 통계를 냈는데, 체포된 시체 도둑 숫자가 벌써 작년의 1.6배까지 갔대." - P12
"스펙터라면 과학적인 영역에 있지. 내가 무섭게 생각하는 건 흡혈귀나 늑대 인간 같은 거야." "그런 면이 있다니 의외인걸." "웨이크필드!" 교수의 고함 소리에 웨이크필드와 나는 놀라서 얼어붙고 말았다. 교수는 신경질을 내며 단장으로 나와 웨이크필드를 교대로 가리켰다. - P13
"산 자와 죽은 자를 구분 짓는 건 무엇이겠나, 왓슨." 교수의 질문에 나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네, 영소의 유무입니다." "그래, 영소의 유무. 흔히 말하는 영혼(spirit)이다. 실험에서 확인된 바에 따르면 인간은 사망하면 생전과 비교해체중이 0.75온스, 즉 21그램가량 감소한다. 이것이 이른바 ‘영소의 무게‘라 여겨지고 있다." - P14
"동물 자기 그 자체는 메스머 씨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메스머리즘이라고 불리기도 하네. 메스머 씨의 이해에 의하면, 동물 자기는 동물의 체내에 있는 몇 천 개의 채널을흐르는 생명의 흐름이었어. 이는 영소가 주로 인간의 뇌에일어나는 ‘상(相)‘이자 ‘패턴‘이자 ‘현상‘이라는 현대 과학의최신 이해와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어찌 됐든 프랑켄슈타인 씨는 잉골슈타트의 연구실에서 이 ‘동물 자기설‘을 발전시켜 ‘영소‘라는 사고에 도달해, 거기서 이미 ‘영소‘가 빠져나간 육체의 뇌에 ‘의사 영소‘를 덮어쓰기한다는 아이디어에 다다른 거라네." - P18
"동물 자기설은 한 번 부정당했지요?" 내가 질문하자 반 헬싱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고 있군. 수어드가 참 우수한 학생을 뒀어." - P19
"르클랑셰 전지가 나오면서 전류 확보가 정말 안정적으로 변했지." 전류가 죽은 자에게 거짓된 영혼을 불어넣는동안, 반 헬싱이 감개무량하다는 듯 말했다. "내가 젊었을적에는 전기를 확보하느라 이만저만 난리가 아니었는데. 그런데 왓슨, 이 전지의 원리는 알고 있나." "양극에 이산화망간과 탄소를 섞은 것, 음극에 아연을쓰고, 염화암모늄 수용액을 전해질로 한 전지입니다." - P20
나와 웨이크핗드를 포함해 여기 있즌 학생들은 모두 시체가 프랑켄화하는 순간을 처음 보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이대로는 숨이 막힐것 같았다. 그때, 죽은 자의 눈꺼풀이 번쩍 열렸다. "우와!" 웨이크필드가 자지러졌다. 죽은 자는 자신이 되살아났다는 사실에 아주 조금 놀란 듯하기도 했다. 그 눈동자는자신이 본래 있어야 마땅한, 어디 있는지 모를 천국인지지옥인지를 바라보느라 공허했다. - P21
100년 전, 18세기 말까지, 인간의 육체는 죽으면 묵시록의 날까지 되살아나는 일이 없다고 여겨져 왔다. 하지만지금은 그렇지 않다. - P21
헬싱이 그렇게 말하자 죽은 자는 해부대에서 내려와 차려 자세로 섰다. "골상학, 특히 두개골 측정법의 발전으로 뇌 기능 매핑은 상당한 정밀도에 도달했어. 최신 두개골 측정 성과는다시 고분해능 의사 영소 모델링을 도와 보다 자연스러운‘ 프랑켄슈타인의 모션 제어를 가능케 하네. 겉보기나움직임 면에서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의 차이를 없애려면앞으로 한 세기 이상은 더 필요할 테지만 말이야. 걸어." - P22
"비선형 제어 말이지. 소문은 들었네. 꽤나 혐오스러웠다나 봐. 모션은 한없이 산 자에 가깝지만 어딘가가 결정적으로 다르다고・・・・・・ 그래서 기분 나쁘게 느껴지는 것 같다고 동료가 말하더군."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 즉 ‘불쾌한 골짜기‘ 말이군요." 거기서 강의가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두 사람은 문득 정신을 차렸다. - P23
"죽은 자는 저런 식으로 눈을 뜨는 거군." 학생들이 강당을 나가는 가운데, 웨이크필드가 신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한 번 보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나는 노트를 가방에 넣고 웃옷 단추를 채운 뒤 강당을 나가려고 했다. - P24
II
"왓슨, 자네는 자신을 애국자라고 생각하나?"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는 것은 반칙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네, 하고 대답했다. "저는 여왕 폐하의 신민입니다." "좋은 마음가짐이야. 그런데 이번 해에 의학부를 졸업하면 입대할 예정이라고 들었는데." - P25
그렇게 대답은 했지만 아프가니스탄에 관해서는 막연한 이미지밖에 없었다. 아시아에 위치한 그 나라와 전쟁이시작되었을 때 바로 병사가 될 생각도 한 적이 있지만, 그건 자신이 배워 온 모든 것을 시궁창에 버리는 셈이다. - P25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임무지. 자네라면해낼 수 있을 걸세." 이윽고 마차는 메릴본을 빠져나가 리젠트파크 가장자리에 위치한 낡은 건물 앞에서 멈췄다. 회색 건물은 주위 건물들에 비해 한층 높았다. 무거워 보이는 문 옆에는 ‘유니버설 무역‘이라고 적힌 동판이 눈에 띄지 않게 박혀 있었다. "유니버설 무역・・・・・・ 무역 상사입니까…………." "표면적으로는 자, 들어가게." - P26
에어로크를 닫고 레버를 당기자 펑 하고압축된 공기가 해방되는 맥 빠지는 소리가 났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다시 펑 소리가 나자 여성이 기관의 뚜껑을 열고 안에서 통을 꺼냈다. 그리고 통의 뚜껑을 열고 메모 같은 종이를 꺼내 보더니 말했다. "기다리셨다고 하십니다. 승강기를 타고 8층으로 올라가 주십시오." - P27
조용한 복도는 어째서인지 오싹할 정도로 복잡해서 나는 내가 이 건물 어디쯤에있는 건지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처음 온 사람이라면 확실히 미아가 될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물 지도 같은 것은 복도 어디에도 붙어 있지 않았다. 미로 같은 건물이군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반 헬싱 교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일부러 그렇게 만든 거라네." - P27
책상에서 일어나 우리를 맞이한 것은 다소 마른 체구의신사였다. 나이는 40대 초반일까. "잭, 에이브, 오랜만입니다." 신사는 그렇게 말하며 두 교수와 악수를 나눈 뒤 나에게 시선을 향했다. "이 청년이 새로 그레이트 게임에 참가할 플레이어입니까." "본인의 의사에 따라서." 수어드가 말했다. - P28
"실례지만 여긴 대체 무슨 일을 하는 곳입니까. 그리고교수님, 이분은 대체 누굽니까. 그레이트 게임이란 건 뭡니까. 저는 여기 왜 불려 온 겁니까." - P29
"나는 ‘M‘. 이곳에서는 M이라고 불리고 있네." "본명은 뭡니까." "자네는 아직 몰라도 돼. 그걸 알려면 자격이 필요하거든. 당분간 참아 주게나. 그래서 아까 전 질문 말인데, 자네는 이곳이 어떤 일을 하는 곳일 것 같은가?" - P30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건 알아. 미안하게도 생각하네. 하지만 어린애가 아니지 않나. 그렇게 계속 떼를 써서우리를 난처하게 하지 말게." 나는 한숨을 내쉬고 반 헬싱, 잭 수어드, 그리고 M이라고 불러 달라는 신사 세 사람을 빙 둘러본 뒤 대답했다. "군사 탐정이죠? 정부의 첩보 기관인." "어째서 그렇게 생각했나" - P30
"동생은 컨설턴트 탐정인데, 가족이라 하는 말이 아니라 능력은 있건만 의뢰가 없어서 고생하고 있지. 몬테규가에 세를 얻어 두고 의뢰를 기다리면서 매일 대영 박물관에서 시간을 때우고 있다네. 뭐, 어쨌든." M은 책상에서내려와 내 옆에 섰다. "우리는 여왕 폐하의 첩보기관이야. 형식상으로는 외무성의 내국 중 하나이지만 수상 직속으로 움직이고 있지. 그 이름은 정부 부내에서도 아는 자가적어." - P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