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이 뻣뻣해지는 것과 머리, 가슴, 배, 성기, 목구멍 등은 분열되려는 환자의 부분들을 추적하는데 도움을 주고, 그가 잠시 지금, 여기에서 떠나 있구나 하는 것을 알려 준다. 사람들이 있는 방에 들어가면서 무엇인가가 잘못되어 있거나 위험하다는 것을 "콕 집을 수있거나, 어떤 사람의 마음이 편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처럼몸의 의식은 다소 일관성 있게 지금, 여기에서 작동할 수 있다. 이 과정을 인과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 P224

물론 우리가 이것을 가지고 작업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더 "객관화" 될 수 있고, 그 동안 몸을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았던 복잡한 역전이의 문제들을 포함하여 광범위한 현상들에 대한 해석이 이루어질수 있다. - P224

분명한 사실은 분석 작업을 정신의 무의식이라는 유리한 지점만 가지고 하는 것은 자기애성 성격구조에 의해서 분열되고, 감춰져 있는 정신의 측면들을 통합하는데 있어서 대단히 빈약하다는 것이다. - P225

그러므로 나는 변환의 두 번째 단계에서는 특히 죽은 이의 영을 존중하고, "죽은 이를 살아나게 하면서 "지하계로부터 작업하는 것"
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죽은 것들, 중얼거리고 무기력한 것들, 아무렇게나 괴롭히는 감각들을 가지고 작업한다. 그러나 이렇게 아무 의미도 없는 것 같은 과정을 통해서 의미가 떠오를 수 있는데, 그것은 오시리스의 의미이다. 이집트 사람들에게 오시리스는 어제의 신이고, 레는 내일의 신이다.⁴⁶ - P225

46 Clark, 157. - P315

이 디오니소스적인 의식과 성욕의 유비는 성적인 삶은 디오니소스의 원형적 모델을 따라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몸의 무의식에서 나온 의식의 특성도 그렇다. 디오니소스적 원형이 그것들에 책임이 있으며, 성욕이나 유아성욕은 디오니소스의 존재 원인으로 볼수 없는 것이다. 유아성욕의 발견은 프로이드의 위대한 공헌 가운데하나이며, 그것을 통해서 디오니소스가 나타내는 것이 프로이드의 생각 안으로 들어갔다. - P226

7. 정신적 공감과 몸의 공감

 몸의 무의식에 가까이 가면 우리의 공감은 그 안에서 정신도 동시에 작동하면서 같이 참여하는 기능으로 된다. 그때 정신과 몸은 그 순간 독특하게 작용하지만 쉽게 반복되지 않는 방식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그때 보였던 것은 기껏해야 다시 발견될 수 있을 뿐이다. - P227

내가 정신적 공감(psychic empathy)이라고 부르는 전자의 방법융이 내사) 또는 "안에 들어가서 느끼기"라고 말한 방법은 정보를 추출하는데, 그것은 정보의 장, 즉 환자의 정신에서 행동하는 관찰자(분석가)가 존쟈하는 과정이다. - P227

더 반성적이고, 아폴로적이거나 아니면 정신적 공감은 보통 자기애성 전이를 치료할 때 적합하다. 그러나 그들이 충분히 변환되었다면, 떨어져나간 자기를 궁극적으로 되찾기 위해서 심층으로 꿰뚫고들어가기 위해서는 몸적이거나 디오니소스적 공감으로 변화시켜야한다. 그 전 단계에서는 이런 수준에서의 침투가 너무 침입적인 것이었지만, 이제는 매우 중요하다. - P228

(전략). 그러는 동안 또 다른 종류의 인식인, 정신의 의식-무의식의 관계성도 들어갔다 나오면서 같이 엮었다. 이 회기 동안 그는 너무 놀라서 그 혼자만으로는 이런 종류의 과정을 해나갈 수 없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가 자기(Self)와 만나고, 커다란 상실을 경험했고, 시기심을 두려워하는 그 자신과 만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 P232

그 다음 몇 주 동안에도 네 살짜리 아이가 갑자기 상상 속에서 나타나는 것을 포함하여 몇 가지 중요한 일들이 있었다. 언젠가는 그가 새를 관찰하고 있는데, 수면 상태와 같은 비전 속에서 그 아이가 땅에 있는 무엇인가를 가리키면서 나타났다. - P232

실제의 삶에서 "회색빛 자기"는 없어졌다. 그것은 피학대적 음조를 한 정체성으로, "초라한 나이다. 이런 자기표상이 자아를 지배하는한, 자기애성 성격장애자들은 무의식의 권력 충동에 이끌려갈지라도 결코 그가 가진 잠재능력을 완수하지 못한다. - P234

8. 상상력의 미술적 사용

역사적으로 상상력의 사용은 수많은 토의의 주제가 되어왔다. 그것은 마술에 관한 공교회와 피고 파라셀수스, 피치노 등과 같은 마술사 사이의 위대한 논쟁에서 특별한 역할을 하였다. 워커(D. P.
Walker)의 『영적 마술과 악마적 마술』 (Spiritual and DemonicMagic)은 이같은 역사적 갈등을 잘 추적하고 있다. - P234

역전이, 특히 투사적 동일시 과정에 관한 우리의 지식으로부터 우리는 에라스투스의 견해가 매우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안다. 우리 환자로부터 나오는 영의 무의식적 방출은 그것을 넣는 자연 그대로의 방법인 것이다. 그러므로 "정신적 감염"에 대해서 의심할 여지는 없다. 한 사람의 정신 과정은 다른 사람에게 전해질 수 있는 것이다.⁴⁹ - P235

49. C. G. Jung, "A Psychological View of Conscience", Civilization inTransition, CW 10, pars. 850-851. "우리가 무의식의 내용들이 ‘배열되어 있는 사람과 이야기할 때, 우리 자신의 무의식에서 그와 비슷한 배열이 일어난다.
그와 같거나 비슷한 원형이 활성화되는 것이다. 우리가 그 사람보다 덜 무의식적이고, 억압할 이유도 없기 때문에 우리는 점점 감정이 고조되는 것을 느낀다.
정신양으로서의 원형은 마치 그것이 어느 한 사람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모든 상황 속에서 작용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 P318

우리는 그것들이 파악되지 않고 사라지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흑마술사"가 되는 가능성이 즉시 뿌리내리게 된다. 분석가가옳아야 하고, 환자에 의해서 이상화되어야 한다면, 그가 사용하는 분석 기법에 있는 그림자 측면은 위험하게 된다. 언제나 뛰어넘어가야하는 경계선에 분석가가 그 자신의 어두운 자기(自己)에 대한 인식이 포함되어야 한다. 이집트 사람들에게 네프티스(Nepthys, 이집트 신화에서 세트의 아내인 여신역자 주)는 이디오피아 여왕 아소(Aso)와 연계되는데, 이디오피아는 이집트 사람들에게 흑마술의 나라이다.⁵¹ - P237

51 Mead, vol. 1, p. 196, n. 1. - P318

우리의 통합된 의식은 언제나 그 외부의 한계를 넘어서려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알지 못할 수도 있어야 한다. 우리는 여전히 비춰져야 하고, 그에 따라서 이상화를 요구할 필요가 있는 우리 자신의 위에서 기꺼이 작업을 해야 한다. - P237

4

두 번째 단계에서의 신화: 여성적 힘의 출현

1. 서문


이 장에서 내가 하려는 것은 오비드의 나르시서스 신화가 파우사니우스(Pausanius, 2세기 그리스의 여행가이며 지리학자-역자 주)가하는 이야기. 특히 그가 나르시서스의 운명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에 포함시킨 데메테르-페르세포네 신화의 자연스러운 연장이라는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 P239

수천 년 동안 예배드린 엘레우시스 비의는 사람들이 어린 시절 원형적 실재에 잠겼다가 실제의 몸집과 감정을 가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시공(時空)의 한계에 묶인 삶으로 전환되면서 그의 본성에서 어쩔수없이 일어나는 분열을 치유하려는 대답이었다. 우리는 오비드 신화에 대해서 논의할 때 나르시스는 개인적인 극과 원형적 극 사이에 고착되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 P240

우리는 우리가 엘레우시스 비의에 대해서 아는 아주 작은 것으로부터 상당히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특히 우리는 치유 과정에서 상상적으로 보는 것의 가치에 대한 인식을 얻을 수 있다. 우리가하는 작업의 많은 것들은 케레니(Kerényi)의 걸작 「엘레우시스」(Eleusis)와 "코레 또는 신의 처녀 (Kore or Divine Maiden)에 대한그의 초기 연구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또한 나는 월터 오토(WalterOtto)와 칼 럭(Carl Ruck)의 최근의 연구인 『엘레우시스로 가는길』 (The Road to Eleusis)에 나오는 분석도 특별한 가치가 있다는사실을 알게 되었다. 특히 럭의 연구는 환각성 물질이 그 비의의 핵심적인 모습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려고 한다. - P240

현대 사회에서 환각제에 대한 우리 체험은 신비가들이 체험한 것들을 더 깊이 살펴보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 P241

우리가 종종 지적했듯이 자기애적 성격으로 규정되는 구조들은 우울증과 고통을 느끼지 않으려는 방어이다. 임상적으로 볼 때, 그것들은 우울증과 두려움으로부터 도망치려는 것으로 매우 전략적인 것이다. 자기애적 성격은 마치 그가 올바른 관계나 체험을 통해서 새롭게나아가려는 듯이 우울증과 고통을 잠시 보류하는 듯한 것이다. - P241

위니캇은 우울적 자리를 프로이드가 말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사상에 버금가는 멜라니 클라인의 가장 중요한 발견이라고 불렀다.³ 유아의 발달에서 우울한 국면의 존재는 논박의 여지가 없다. 그것은 대상을 전체로 보는 유아의 성장 능력에서 나오고, 원형적인 성격의 타자를 자아의 상징적 핵에 통합하려는 것, 즉 자기를 자아의 한 부분으로 통합하려는 시도와 관계된다. - P241

제4장

3 Winnicott, 45n. - P318

데메테르는 몸의 무의식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고, 그녀가 페르세포네와 재결합한 것은 잃어버린 정신신체(psychesoma)를 되찾은 것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Winnicott).⁵ 그러나 그것은 더 나아가서, 독특한 자기, 즉 구체화된 자기의 회복일 것이다.⁶ - P242

5. Kerényi, Eleusis, 38.
6. 그와의 개인적 대화이다. - P319

우울적 자리를 지나는 동안,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 영혼의 상실 때문에 고통을 당한다. 우리에게 상실의 고통이 크지 않을 때 우리는위니캇이 말하듯이, 존재와 정신적 실재의 활력 있는 핵인 내밀한 자기(Self)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상실이 극심하면, 우리의 "참" 자기는 분열되고, 매우 쉽게 에너지가 고갈되는 분열적 상태에 있게 된다. 이 부분은 "건강하든지" 아니면 "병이 들었든지" 유기체의 개성화의 한 부분으로 되기를 바라고, 페르세포네의 겁탈과 귀환은 이 참자기가 육화되는 분열증과 같은 드라마를 나타낸다. - P243

3. 파우사니우스의 나르시서스 신화

파우사니우스의 나르시서스 신화는 캐논(Canon)¹⁸의 그것처럼 오비드의 이야기에 의해서 많이 가려졌다. 캐논의 신화는 오비드의 신화에 비해서 자기애의 유형에 훨씬 좁게 초점을 맞춘다. - P253

18 Vinge, 34. - P319

(전략).¹⁹

이 이야기는 고대 시대에서부터 나르시서스 신화와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 신화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는 이야기의 원전(原典)이다. 파우사니우스는 그 "처녀", 페르세포네가 꺾은 꽃은 나르시서스가 꽃으로 변하여 죽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다고 주장한다.  - P254

19 Ruck et al., 59. - P319

두 나르시서스

파우사니우스는 왜 수선화는 나르시서스와 그의 쌍둥이 누이가 만나기 전부터 자라고 있었다고 주장한 것일까? 그는 데메테르-페르세포네 신화와 관련하여 이런 주장을 한다.  - P255

(전략).
이 두 수선화가 두 수준, 즉 개인적 수준과 초개인적 수준을 대표하는 것으로 인식하면서 시작하자. 한편으로 호우머 찬가에서 말하는수선화가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두려워하는 자기(Self)의 에너지를 나타낸다면, 그냥 수선화는 나르시서스의 성격을 나타낸다고 생각하자는 것이다. - P256

호우머 찬가가 그 대답이 된다. 그 꽃은 초월적이고, 원형적인 수준, 신성한 차원과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그 차원은 호우머 찬가가노래하듯이 "그 향은 너무 달콤해서 위에 있는 거대한 하늘과 땅이웃음을 머금으면서..." 놀라움과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그래서 실제로 몇 달이 지난 다음 꿈꾼 이에게 이 차원이 열렸다. - P256

호우머 찬가가 그 대답이 된다. 그 꽃은 초월적이고, 원형적인 수준, 신성한 차원과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그 차원은 호우머 찬가가 노래하듯이 "그 향은 너무 달콤해서 위에 있는 거대한 하늘과 땅이웃음을 머금으면서..." 놀라움과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그래서 실제로 몇 달이 지난 다음 꿈꾼 이에게 이 차원이 열렸다. 그것과 함께 우리가 앞으로 살펴볼 테지만, 호우머 찬가가 기술하듯이 공격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4. 나르시서스와 디오니소스의 영

호우머 찬가에서 내가 말한 꽃은 나르시스가 그렇게 두려워하는 신성한 에너지를 나타내고, 하데스/디오니소스의 지하계의 권력의욕망과 제우스의 인식에 의해서 대지에 그렇게 존재한다. 그래서 이사실은 이 에너지의 디오니소스적 성격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디오니소스는 나르시서스의 대극(opposite)이다. - P257

페르세포네는 언젠가 이런 누멘적인 에너지들을 경험했을 것이다.
사실 그녀는 어떤 신화들에서는 디오니소스의 어머니이다.²³ 여기에서 그녀는 그들에게 다가가는 것으로 속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디오니소스적인 수준은 그녀가 즉시 따라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P258

23. Phyllis E. Slater, The Glory of Hera. 슬래터가 비록 환원적 관점을 가지고 있지만ㅡ그는 그리스 문화를 전적으로 자기애적 그림자와 동일시된 것으로본다. 그것들이 매우 창조적인 성취에 따르기 마련인 어두운 면인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그의 연구는 우리가 고대 그리스의 자기애적 구조를 살펴보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 P319

 어린이들은 아폴로적이기보다는 디오니소스적이다. 프로이드의 용어로 말하면, 그들은 환상 속에서 갈갈이찢어지고, 부활하며 또 부활하면서 신비적 융합으로 스며드는 "다형적 도착"이다. 그들은 본다. 그들은 참을 수 있기보다는 보는 것이다. - P259

(전략). 그러나 이 과정에서 무엇인가 비극이 생긴다: 임상에서 그것은 우울적 자리로 알려진다. 그때어린이에게 대극들(opposites)이 공고해지는데, 그것은 다른 의미로 전일성의 상실, 몸과 마음의 디오니소스적 전일성이 상실되는 것이다. 이것을 다시 바라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거기에는 더 큰 상실이 따르기 때문이다. 어린이는 그의 디오니소스적인 뿌리인 격노를 문명화시키면서 좋은, 반영해주는 어머니와 바꾼다. - P259

수선화에 있는 에너지들은 성애적이고, 몸의 신비를 나타내며, 언젠가 있었지만 잃어버린 것과 하나가 되려는 것만 나타내지 않고, 그자신에서 벗어나고, 엑스타시에 잠기려는 것도 나타낸다. 그 에너지들은 단지 "유아성욕"이나 성감대의 심층에 대한 훈련이나 감수성을 통한 몸으로의 복귀를 통해서만 얻어지지 않는다. - P260

이것은 원형적 차원(즐거움은 일반적으로 디오니소스의 속성이다)²⁸이다. 그래서 아기는 디오니소스와 연결되는데, 그것은 그들의 떨어져나간 여성적 자기를 회복하려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 전에 과시주의적 침입이 이상화 전이를 통해서 유도되었던 것처럼 분석가는 공격 받았다는 정동을 느낀다. "페르세포네를 겁탈한자"가 케피수스이거나 디오니소스이거나 상관없이(엘레우시스 비의가 케피소스 강 근처에서 행해지는 것은 이 두 신 사이의 연관성을 나타낸다)이 왜곡된 공격은 재(再)체험되고, 다시 겪어야 한다. - P261

28 C. G. Jung, Nietzsche Seminars, part 3, lecture 2. - P320

5. 데메테르에 대한 호우머 찬가

(전략).

데메테르는 대지인 가이아(Gaia) 또는 게(Ge)와 다르다. 그녀 역시 대지였다. 그러나 그녀는 보편적인 어머니로서가 아니라 곡물의 어머니로서였다. 그녀는 모든 존재, 즉 신들과 인간의 어머니가 아니라 곡물과 우리가 세속의 사람들 앞에서 이름 부르기를 꺼리는 신비한 딸의 어머니였던 것이다.²⁹


나는 케레니의 이 말은 데메테르를 몸의 생명(life of the body)의 원천, 즉 몸의 무의식(somatic unconscious)과 결부시키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융이 말하듯이, 영혼은 몸의 생명인데,³⁰ 그것은 곡물이 생명과 몸이 합쳐져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이미지를 나타낸다. - P262

29 Kerényi, Eleusis, 35ff.
30 Segal, 163. Elkin, 403f. - P320

6. 우울적 자리와 데메테르와의 동일시

우울적 자리는 아동의 발달에서 아기가 어머니로부터 지각하는 좋고 나쁘며, 자비롭고 악마적인 것 등 어머니의 대극적 특성들이 전체대상 안에 결합되는 단계이다.³² - P266

32 Kerényi, in Jung and Kerényi, 123f. - P320

그 전까지 아이에게는 아동 발달이 이 지점까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면 좋은 대상이 나쁜 대상보다 더 강력한 상태만 존재하였다. 아동의 자아는 그가 좋은 대상의 구원의 능력을 믿는 것 위에 세워지는 것이다. 또한 더 앞선 단계에 있는 좋은 대상은 원형적인 최초의 대상, 즉 아이의 모태가 되는 자기(Self)의 에너지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 - P266

모든 원형들은 서로 뒤섞여 있고, 오염되어 있다. 우리는 이것을 융의 심리학에서 잘 보고 있다. 그리고 감정적 색조(tone)는 상당한 정도로 하나의 원형적 유형을 다른 유형으로부터 구분한다는 사실도안다. 그렇지 않은 경우, 모든 원형들은 다른 원형과 합쳐지고, 각각의 원형은 그의 독특성을 잃게 된다. 그러나 케레니가 말하듯이, 페르세포네는 독특하다.³⁴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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