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융의 니체 세미나와 인간의 몸

융이 인간의 몸에 대해서 다룬 것은 우리가 이 책의 도입부에서 이미 말했듯이, 그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대한주목할 만한 세미나에서였다.¹³
꿈이나 연금술 본문 등 융 전집에서 몸에 대한 것이 등장할 때, 몸은 보통 어떤 정신적 실재나 콤플렉스의 상징을 말한다.¹⁴ 또한 융은다른 글에서 꿈에 몸이 나오는 것은 "현실에 대한 기능(fonction duréel), 즉 감각 또는 현실에 대한 감각적 지각"¹⁵을 통하여 매일의 삶에서 직관적 지각을 가지고 통합해야 할 필요성을 나타낸다고 주장하였다. - P212

13 서문의 주 28을 참조하시오.
14 웅이 때때로 몸을 어떤 다른 것으로 말하기보다 몸으로 말하기는 하지만그것은 일반적인 추세이다. 예를 들어서 말하자면, CW 13의 242 번째 문단에서응은 자기와 무의식은 몸에 있다고 말하며, 같은 견해가 "제 세미나‘의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몸에 대한 상징적 해석을 위해서는 CW 14 295 번째 문단이하를 참조하라. 거기에서 몸으로 내려가는 것은 "힘든 현실로 복귀하는 것으로 취급된다. CW 16의 478 번째 문단에서 시체는 "과거의 모든 잔재"로 해석된다. 또한 CW 7의 35 번째 문단에서 높은 그림자의 상징으로 언급되고, CW 16의 501 번째 문단에서 몸은 자아의 상징으로 언급된다. 물론 이렇게 해석하는것은 문맥상 종종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지들을 몸의 무의식으로 보기보다는 정신과 관계되는 이미지들로 보는 것이다.
15 Jung, CW 16, par. 486. - P316

그러나 이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융은 몸이 제기하는 커다란 어려움을 명확하게 인식하였고, 그것은 그의 "니체 세미나에서 수도없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 P212

그럼에도 불구하고, 융은 "니체 세미나"에서 주목할 만한 모형을 제시한다. 우리는 한편으로는 우리를 순전히 영적이거나 정신적인 영역으로 이끌어가고, 다른 한편으로는 몸과 물체로 이끌어가는 의식-무의식의 결합으로 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영의 영역 쪽으로 나아가면, 무의식은 정신의 무의식(psychicunconscious)으로 되고, 몸과 물질 쪽으로 나아가면, 무의식은 몸의 무의식(somatic unconscious, 우리 몸이 기억하고 있는 무의식)으로 된다.²⁰ - P213

20 C. G. Jung, Nietzsche Seminars, part 3, lecture 8. - P316

그는 "니체 세미나"에서 이 모형을 예시하고, 더 나아가서 무의식 체혐의 본성을 스펙트럼의 다른 끝에 접근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그는 폰 프란츠가 열심히 설명했던 개념²²인 ‘하나인 세계" (unusmundus)의 원형은 정신적 실재의 초월적 수준인데, 거기에서 무의식의 두 측면들은 정신과 물질이 그렇듯이 같아진다고 말한다. - P214

22 Marie-Louise von Franz, Number and Time, 4 - P316

그러면서 그는 그가 더 자주 ‘무의식은 어디에나 있다‘고 말하는 것과 정반대되는 이 말에 걸려 넘어지지 말라고 경고하였다. 이 말의 의미는 그가 무의식은 마치 공감적인 신경체계의 작용으로 체험되는것처럼 우리 몸 안에서 체험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것이기때문이다. - P215

융은 자기(自己)는 몸이며 동시에 정신이고,²⁷ 몸은 다만 자기가 바깥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말한다. 더 나아가서, 그는 영혼은 몸이 사는 모습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우리가 몸에서 살지 않고, 자기를 우리의 삶에서 독특한 모습으로 드러내지 않으면, 자기는 항거하게 된다.²⁸ - P215

27 C. G. Jung, Nietzsche Seminars, part 3, Lecture 2
28 Ibid., lecture 5. - P317

몸과 정신이 같은 실재(實在)의 두 측면이고, 그 둘이 다르다면 의식이 그것들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보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융이단순히 몸의 상징주의를 정신적 표상 다음에 언급했다는 이유만으로그를 반(反)-신체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렇게 영적인 것을 강조하는 것이 때때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언제나 그림의 한 부분일 뿐이다. - P216

거기에서 첫 번째 단계는 영적 수준에서 단단해지는, 소위 말해서
‘정신의 통일‘이 이루어지는 단계이다. 그때 비로소 물질 속으로의 하강이 이루어지고, 몸은 변환된다. 이 말은 오직 영이 하나의 실재로존재할 때만, 그리고 정신적 실재라는 말이 객관적 의미를 지닌 단어로 인식될 때만, 몸으로의 하강이 변환을 가져오고, 몸의 무의식이 체험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 P216

그러므로 융의 심리학은 반-신체적인 심리학이 아니라 몸이 제대로 이끌어가는 심리학이다. - P216

우리는 제1장에서 이상화 전이와 거울 전이에 대해서 말하면서, 그들 사이의 유사성과 연금술 사상에서의 리비도의 상승 및 하강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이상화 전이는 영원형(spirit archetype)의 상승에 해당되고, 그것의 내면화는 강하게 통일하고, 안정되게 하는 힘으로 영적 중심을 만드는 것에 해당된다. - P217

이상화 에너지의 존재와 통합은 자기애성 성격장애자의 분열된 자기를 통합할 수 있는 과정에서 몸에 다가가는데 매우 중요하다. 몸에 다가가는 방법은 어떤 특별한 기술은 아니지만, 언제나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그래서 나는 연금술 과정에서 몸에 대한 문제에 다가가기전에 영적 공고화를 구체화하는 것처럼 자기애성 성격장애자의 치료에서도 똑같이 중요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P217

4. 정신신체의 상보성

정신의 무의식과 몸의 무의식으로부터 동시에 같은 분량의 정보를 추출할 수는 없다. 그 둘 사이에는 상보적 관계가 있어서 몸의 무의식으로 접근할 때 정신의 무의식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제한되고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 P218

이렇게 보는 것은 카스타네다(C. Castaneda)가 그의 소설 『돈환』에서 묘사한 것과 비슷하다.³¹ 그것은 자신의 몸과 밀접하게 관게되면서 경험하는 것으로서, 거의 신체적인 것과 같은 상상에 기반을 둔 시각상(視覺像)으로, 태양의 비전이 아니라 달의 비전이다. - P218

31Cf. Donald Lee Williams, Border Crossings: A PsychologicalPerspective on Carlos Castaneda‘s Path of Knowledge, 제 4장, "The Wayof the Seer." - P317

그것은 일종의 비전이나 상상력의 활동인데, 분석관계에서도 환자치료자의 상호작용 안에서 일어나기도 한다. (예를 들어서 말하자면, 어떤 환자와 치료자가 내용을 서로 나누고 있고, 그것의 정확성은 환자에 의해서 검증될 수 있다). 연금술에서 이미지를 그리는행동인 상상은 작업이 성공적으로 완수되는데 중요한 열쇠였다. 그것은 "반은 영적이고, 반은 신체적인 과정이었고, 그때 못지않게 오늘날에도 매우 중요하다
- P219

연금술사들이 우리 몸과 상상력(그 원천은 몸에 있다)의 물질적 특성에 중요성을 부여한 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로 필요하다. 우리는 레비-스트로스가 강조하듯이, 무엇인가 더 분화되고, 추상적이며, 과학적으로 되어야 하는 사고인 고태적이며, 과학-이전의 사고방식에 대해서 논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안에 아직도 과학적사고로 남아 있는 또 다른 방식의 선험적 사고방식에 대해서 논하는것이다.³³ - P219

33 Claude Levi-Strauss, The Savage Mind, 15.G117 - P317

분석의 한 회기에서 이렇게 했다가 저렇게 할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개성화 과정에서도 이런 접근 방식과 저런 접근 방식이 번갈아 가면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하나의 유리한 관점에서 관찰하면 다른 관점은 제한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 P220

6. 몸을 통한 관찰

우리가 정신의 인식을 비교적 낮게 유지하고, 우리 몸을 가까이 할때, 우리는 흐르는 물 속이나 자기장(氣場) 안에 있는 측정도구처럼될 수 있다. 그때 우리는 우리 몸의 반응을 통하여 어떤 사람의 에너지가 스러져가는지, 많이 있는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 P2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