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처음으로 직접 접촉한 곳은 로드후스라고 불리는 빨간벽돌 건물, 즉 코펜하겐 시청에서 열린 어느 미술 전람회 개막식이었다. 브롬헤드는 소련 사람들이 올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 진짜 외교관들과 스파이들이 함께 어울리는 <외교 오찬 클럽>의 단골인 그는 소련 관리 여러 명과 친분이 있었다.  - P81

두 사람은 미술에 대해 더듬더듬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올레크가 말을 할 때면 엄격한 분위기가 사라졌다.> 브롬헤드는 이렇게 썼다. - P81

경쟁국의 정보 요원을 포섭하려면 복잡하게 움직여야 했다. 너무 노골적으로 접근하면 올레크가 겁을 먹고 물러날 것이고 그렇다고 너무 은근하게 신호를 보내면 상대가 놓칠 수도 있었다. - P82

 브롬헤드의 예측처럼 올레크는 우호적이지만 접근하기 힘든 인물이었다. 사교적으로도, 스포츠에서도, 성적으로도, - P83

한편 제프리 거스콧은 런던에서 소련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는 그때까지 서방이 포섭한 소련 스파이의 최고 성공 사례인 올레크 펜콥스키를 담당했던 선배 요원 마이크 스토크스와 선빔 문제를 상의했다. (중략). 올레크가 서방에 얼마나 호감을 갖고 있는지 알아보는 <리트머스 시험> 계획이었다. - P83

1973년 11월 2일 저녁, 올레크와 엘레나가 막 식사를 끝냈을 때(전혀 즐겁지 않고, 거의 말이 없는 식사였다), 누가 아파트 문을 크게 두드렸다. 올레크가 문을 열어 보니, 대학을 함께 다닌 체코슬로바키아인 친구 스탄다 카플란이 웃는 얼굴로 서 있었다.
올레크는 놀라서 말을 잃었다가 갑자기 더럭 겁이 났다. - P84

(전략). 솔직한 표정도 쾌활한태도도 그대로였다. 그러나 위스키 잔을 든 손이 아주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올레크는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카플란이 온 것은 서방의 정보기관이 그를 보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시힘이었다. 그것도 아주 위험한 시험. 5년 전 프라하의 봄이 짓밟힌뒤 그가 전화를 걸고 나서 이제야 이렇게 답변을 듣는 건가? - P84

카플란은체코슬로바키아에서 망명해 프랑스를 거쳐 캐나다까지 가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올레크는 모호한 말을 중얼거렸다. 옐레나는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 P85

 아내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지만, 불안감이 살짝배어 있는 것이 보였다.
올레크는 미행이 없음을 분명히 확인한 뒤 점심 약속에 일부러 늦게 나타났다. 간밤에 잠을 거의 이루지 못했다. 카플란은 창가의 테이블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전날 밤보다 더 편안해 보였다.  - P85

올레크는 자신이 평가 대상이 되었음을 알고 있었다. 카플란이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극적인 사건들을 회상하는 동안 그의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그는 소련의 침공이 충격적이있다는 말만 했다. <나는 극도로 조심해야 했다. 심연의 가장자리를 걷는 기분이었다.>  - P86

구애할 때는 너무 안달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올레크의 조심스러운 태도는 단순한 구애의 테크닉과는 달랐다.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 사태를 겪은 뒤 자신이 감정을 분출한 것에 서방 정보기관들이 과연 반응을 보일지 줄곧 궁금하긴 했지만, 자신이 그들의 유혹을 원하는지 아직도 천적으로 확신할 수없었다. 자신을 유혹하려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었다. - P86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올레크가 반(反)공산주의 반역자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인물과 뜻밖에 만나게 된 것을 KGB에 보고할 것 같은 낌새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었다. <그것이 몹시 흥미로웠다. 우리가 듣고 싶었던 말이 바로 그거였다. 고르디옙스키는 확실히 극도로 조심하고있었지만, 만약 그가 그 만남을 보고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커다란첫발을 떼는 행동이었다. 그가 우리를 상대할 생각이 있음을 티나지 않게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우연한 만남을 꾸며 내야 했다.> - P87

영국의 정보 요원이 시야에 들어왔을 때 올레크는 서브를 넣기직전이었다. 그는 브롬헤드를 즉시 알아보았다. 트위드 정장에 묵직한 외투를 걸친 그는 텅 빈 스포츠 클럽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고,
누가 봐도 틀림없이 영국인이었다. - P88

카플란이 찾아온 것, 브롬헤드의 집에서 열린 파티, 저 친절한 영국인 관리가 지난 석 달 동안 자신이 참석한 모든 사교 모임에 나타난 것 같다는 사실. KGB는 브롬헤드가 정보 요원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그는 <외향적인 행동>과 <초대를 받든 받지 않았든 대사관 파티에 나타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가 이렇게 이른 시각에 인적 드문 배드민턴장에 나타났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딱 하나였다. MI6가 올레크를 포섭하려 한다는 것. - P89

브롬헤드는 아내의 낡은 자동차를 몰고 스포츠 클럽을 떠나면서상당히 들든 상태였다. 하지만 불안감도 있었다. 올레크가 자신의 접근에 별로 흔들리지 않고 이상할 정도로 차분해 보인 것이 문제였다. 자신이 근무하는 대사관 근처의 식당을 고른 것도 마음에 걸 그곳이라면 마이크를 숨겨 두고 길 건너편의 대사관으로 대조를 중계할 수 있을 터였다. 소련 관리들이 그 호텔에서 식사할 때가장의 그들 눈에 두 사람의 만남이 발각될 수도 있었다. - P90

하지만 올레크는 단순히 자신의 위장 신분에 맞게 행동했을 뿐이었다. 그도 대사관으로 돌아와 레지덴트인 모길렙치크에게 물었다. 「영국 대사관 사람이 점심을 같이 먹자는데, 어떻게 할까요? 받아들일까요? 」이 질문이 모스크바로 전달된 뒤 곧바로 회색 추기경 드미트리 야쿠신에게서 단호한 답변이 날아왔다. 「받아야지! 적극적으로 굴어. 상대방 정보 요원을 피하지 말고 만나지 못할 이유가 뭔가 공격적인 자세를 취해! 영국은 우리가 아주 큰 관심을 갖고 있는나라야.」 이것이 올레크에게 보험 역할을 했다. 계속 추진해도 좋다는 공식적인 허락이 떨어졌으니, 이제 그는 KGB에 충성심을 의심받을 걱정 없이 MI6와 <인가된 접촉>을 할 수 있었다. - P91

브롬헤드는 자신이 KGB 미끼 작전의 대상이 된 건가 싶었다. 아니면 올레크가 진심으로 그를 포섭하려 하는 걸까? 브롬헤드가 홍미 있는 척하면서, 소련측이 어디까지 가는지 지켜봐야 할까? 한편 올레크 입장에서는 위험이 훨씬 더 컸다. 카플란의 방문에 이어 브롬헤드가 접근한 것이 모두 정교한 계획의 일부일 수 있었다. - P91

<나는 식당 안의 사람들을 모두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우리 사무실에 사진으로 정리되어 있는 소련 대사관 직원 중 한 명이라도 그자리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모두 아무것도 모르는 덴마크인이거나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 관광객인 것 같았다. 나는 올레크가 정말로 올지 궁금해하면서 의자에 등을 기댔다.>
올레크는 약속 시간에 정확히 식당으로 들어왔다. - P92

. KGB가 해외에 많은 요원을 배치한 것이 이상하다고 브롬헤드가 말했을 때, 올레크는 <애매모호한> 반응을 보였다.
올레크는 주로 덴마크어를 사용했고, 브롬레드는 덴마크어 독일어러시아어가 어지러이 뒤섞인 말로 대답했다. 이 감당 안마에 올려크는 웃음을 터뜨렸다. <악의가 있는 것 같지는 않은 웃음이었다 - P93

그런데도 브롬헤드는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러운> 상태로 식당을 나섰다. 올레크는 자신이 KGB에 어느 정도 진실을 숨기고 있음을 암시했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자신이 사냥감이 아니라 사냥꾼이라고 믿는 사람에게 딱 들어맞았다. 브롬헤드는 M16 본부에 메모를 보냈다. <지금까지 일이 너무 쉬워서 걱정스럽다는 뜻과 그가나를 포섭하고 싶어서 친절하게 구는 것 같다는 짐작을 강조했다.>-1 - P93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그 <엉망진창>이 효과를 발휘했다. 올레크는 브롬헤드에게서 아무런 연락도 없이 몇 주가 흐르자 처음에는걱정했다가, 그다음에는 당황했다가, 그다음에는 상당히 화가 났다가. 마지막에는 이상하게 안도했다. 그 휴지기가 그에게는 곰곰이생각해 볼 시간이 되었다. 만약 이것이 미끼 작전이었다면, MI6가훨씬 더 빠르게 달려들었을 것이다.  - P94

1974년 10월 1일, 그 키 큰 영국인이 새벽빛을 받으며 배드민턴 코트에 다시 나타나 또다시 만남을 제의했다. 브롬헤드가 내놓은이유는 자신이 IRA⁷를 상대하는 작전을 위해 위장 요원으로 북아일랜드에 곧 재배치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몇 달 뒤 떠날 예정이라고했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다. 그래서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지않기로 했다.>

7 북아일랜드를 포함한 아일랜드의 완전한 독립을 주장하는 가톨릭계 무장조직- - P95

<주문한 술이 나온 뒤 나는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당신은 KGB죠 당신이 KGB의 모든 부서 중에서도 가장 비밀스럽고, 전 세계의불법 스파이들을 담당하는 제1주요부의 라인 N에서 일했다는 것을알고 있습니다.>
올레크는 놀란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 P96

브롬헤드는 계속 밀어붙였다. 「말해 보세요. 당신 부서에서 PR라인 부관이 누굽니까? 정치 정보 수집과 간첩 관리의 책임자 말입니다.」
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올레크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납니다.」 - P96

첫 만남 이후 올레크는 상사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보고서도제출했다. 하지만 이번 만남에는 재가를 받지 않았다. 브롬헤드와접촉했는데도 그 사실을 비밀로 했다는 것을 KGB에 들킨다면 그는끝장이었다. 지금 이 만남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M16에 알림으로써 그는 자신이 이쪽 편으로 돌아섰음을 분명히 밝히고 그들의 손에 자신의 목숨을 맡겼다. 완전히 선을 넘어왔다. - P97

브롬헤드의 보고를 받은 런던의 M16 간부들이 잉글랜드 남해안에 있는 포츠머스 근처의 나폴레옹 시대 요새인 포트 몽크턴의 비밀 훈련 기지에 모여 회의를 열었다. 밤 10시에 한자리에 모인 그들은 브롬헤드의 보고서를 살펴보고 행동 방향을 결정할 예정이었다. <이것이 도발일 수 있다는 의문이 몇 번이나 제기되었다.>  - P98

3주 뒤 브롬헤드와 고르디옙스키는 거의 손님이 없는 어두운 술집에서 만났다. 두 사람 모두 오는 길에 세심하게 드라이클리닝을했고, 둘 다 <블랙>이었다. 그들의 대화는 사무적이었지만 원활하지는 못했다. 언어 장벽이 심각한 장애가 되었다. 영국과 소련의 두스파이는 이미 관계를 정립했지만, 서로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 P98

브롬헤드는 올레크에게 작별 인사를 하면서, 항상 미소 짓는 얼굴의 이 소련 KGB 요원에 대해 자신이 아는 것이 정말 별로 없다는생각을 했다. MI6와 협력하기 위해 목숨을 걸 각오까지 되어 있는듯한 그는 겉으로 보기에 침착한 것 같았다. 돈 이야기는 단 한 번도나오지 않았다. 올레크 본인의 안전이나 가족의 안전에 대한 말도 망명히고 싶다는 말노 역시 나오지 않았다. - P100

브롬헤드는 다음 날 아침 MI6의 런던 본부에 도착했을 때에도여전히 이런 의문에 시달리고 있었다.  - P101

MI6의 상사들은 낙관적이었다. 선빔이 획기적인 사례가 될지도모른다는 것이었다. 올레크는 진짜인 것 같았지만, 브롬헤드는 확신하지 못했다. 올레크는 아직 유용한 정보를 단 하나도 내놓지 않았다. 자신이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를 설명하지도 않았다. - P101

올레크의 새로운 담당자인 필립 호킨스는 가짜 여권으로 런던에서 날아왔다. 「만나 보면 마음에 들 겁니다.」 브롬헤드는 호킨스에대해 올레크에게 이렇게 말해 두었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 것이라는 확신은 없었다. <나는 확실히 그가 싫었다. 내 생각에 그는 끝내주는 새끼였다.> 이건 정확한 말도 아니고 공정한 평가도 아니었다. - P102

브롬헤드는 진지한 얼굴로 올레크와 악수하며 이렇게 나서 줘서고맙다고 말하고, 행운을 빌어 주었다. 차를 몰고 그곳을 떠나면서그는 복잡한 심정이었다. 올레크에게 감탄하고 그를 좋아했기 때문에 아쉬웠고, 이것이 KGB의 음모일 수 있다는 의심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에 불안했으며, 이제 자신은 이 일에서 손을 놓게 되었다는사실에 깊은 안도감을 느꼈다. - P102

참조

올레크 고르디옙스키의 포섭 과정은 리처드 브롬헤드의 미출간 회고록 『거울의 황무지Wilderness of Mirrors』(T. S. 엘리엇의 시 「게론티온Gerontion」의 구절에서 따온 제목이다)에 묘사되어 있다. - P103

4

초록 잉크와 마이크로필름


사람은 왜 스파이가 되는가? 안락한 가정과 친구, 안정적인 직장을 포기하고 위험하고 어스름한 비밀의 세계에 뛰어드는 이유가 무엇인가? 특히 한 나라의 정보국에서 일하던 사람이 상대국을 위해 일하기로 마음을 바꾸는 이유가 무엇인가? - P105

어떤 사람들은 이념, 정치, 애국심 때문에 스파이가 되지만 탐욕 때문에 행동으로 나서는 사람이놀라울 정도로 많다. 경제적 보상의 매력이 그 정도다. 반면 섹스,
협박, 오만, 복수심, 실망감 때문에 첩보의 세계로 끌려 들어오는 사람들도 있다. 비밀스러운 세계에서 맛볼 수 있는 동지 의식과 자신이 남보다 앞서 있다는 독특한 느낌이 동기가 되기도 한다. 용감하고 원칙을 지키는 스파이가 있는가 하면, 욕심 많고 비겁한 스파이도 있다. - P106

 KGB는 사람이 첩자가 되는 네 가지 주요 동기를 오래전부터 MICE라고 불렀다. 돈money, 이념 ideology, 강압 coercion, 자존심 ego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약이다.
하지만 낭만이라는 요소도 있다. 별도의 비밀스러운 인생을 살기회. 어떤 사람들은 몽상 때문에 스파이가 된다. 전직 MI6 요원이자 언론인인 맬컴 머거리지는 이렇게 썼다. <내 경험상, 정보 요원은 기자보다 훨씬 더 큰 거짓말쟁이다.>²

2 Malcolm Muggeridge, Chronicles of Wasted Time (London: Collins, 1973). - P106

다른 나라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나라를 염탐하겠다는 결정은 보통 스파이가 이성적으로 인식하는 외부 세상과 내면세계가 충돌할때 우러나온다. 이 내면세계에 대해 스파이 자신은 인식하지 못할수도 있다.  - P107

올레크 고르디옙스키를 MI6의 품으로 밀어낸 외부적인 요소는 정치와 이념이었다. - P107

 교조적인 주장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세계에서 자란 그는 일단 이념을 거부한 뒤에는 개종자 특유의 열성적인 태도로 그 이념을 공격하는 데 온 힘을 다했다. 그의 아버지와 형이 공산주의에 헌신한 그 깊이만큼 공산주의에 깊이반대하게 된 그의 생각은 두 번 다시 바뀌지 않았다. - P108

모든 스파이에게는 사랑받는다는 느낌이 필요하다. 첩보 활동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요소 중 하나(그리고 첩보 활동에 관한 중요한 믿음 중 하나)는 스파이와 그의 상관, 정보원과 담당관사이의 감정적인 유대감이다. 스파이는 자신이 필요한 사람이며 비밀스러운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느낌을 원한다. 자신이 소중하고 신뢰받는 존재라는 느낌과 보람을 원한다. - P109

고르디옙스키는 영국에서 온 새로운 담당관 필립 호킨스에게서 여러 가지 감정이 뻗어 나오는 것을 느꼈지만, 그중에 애정은 없었다.
괴짜 같고 원기 왕성한 브롬헤드는 <지독히 영국적인> 모습 덕분에 고르디옙스키의 마음을 얻었다. - P109

호킨스는 전쟁 중에 독일인 포로들의 심문을 맡았다. 그 뒤로는체코와 소련 관련 일들을 여러 해 동안 담당했다. 그가 관리한 사람들 중에는 망명자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KGB 내부의 스파이를 직접 담당한 경험이 있다는점이었다. - P110

호킨스는 고르디옙스키를 자리에 앉히고, 법정에서 교차 신문을 하듯이 대화를 시작했다.
「당신의 레지덴트는 누굽니까? 지부에 KGB 요원이 몇 명이죠?」
고르디옙스키는 중대한 결정을 내린 자신이 환영과 찬사와 축하를 받을 줄 알았다. 그러나 상대는 새로 포섭한 협력자가 아니라 적포로를 대하듯이 으름장을 놓으며 그를 심문하고 있었다.
<심문이 한동안 이어졌는데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르디옙스키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런 것이 영국 정보기관의 진정한 정신일 리 없어.」 - P111

심문이 잠시 멈췄다. 고르디옙스키는 한 손을 들고 선언하듯 말했다. 영국 정보기관을 위해 일하겠지만, 반드시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첫째, 나는 KGB 지부의 동료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싶지 않습니다. 둘째, 비밀스러운 사진 촬영이나 녹음은 싫습니다. 셋째, 돈 얘기는 하지 마세요. 내가 서방을 위해 일하려는 것은 이득이 아니라 이념적인 확신 때문입니다.」 - P111

그가 경제적 보상을 거부한다고 미리 선언한 것은 두 번째 조건보다도 더 걱정스러웠다. 정보원에게 선물이나 돈을 자꾸 안겨 주어야 한다는 것은 첩보 세계의 자명한 원칙이다. 물론 지나친 경제적 보상으로 정보원의 욕심을 부추기거나 의심을 살 만큼 헤픈 씀씀이를 초래하는 것은 금물이다. 그래도 돈을 안겨 주면 정보원은 자신이 가치 있다고 느끼게 되며, 일을 한 만큼 보상이 지급된다는원칙이 확립된다.

호킨스는 마지막으로 긴급 전화번호와 비밀 잉크, 긴급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런던 주소를 고르디옙스키에게 건넸다.
두 사람 모두 불만스러운 기분으로 안가를 나섰다. 스파이와 담당관의 첫 만남은 즐겁지 않았다.
하지만 웃음기 없고 무뚝뚝한 호킨스를 담당관으로 임명한 것이어떤 의미에서는 좋은 결과를 낳았다. 그는 프로였고, 고르디옙스키도 프로였다. - P113

처음에는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만남이 이루어졌으나 점차 긴장이 풀렸고, 시간이 흐르면서 두 사람은 대단한 성과를 거뒀다. 뾰족뾰족한 의심으로 시작된 두 사람의 관계는 서서히 대단히 능률적인 관계로 발전했다. - P114

MI6 본부의 고위 간부들은 곧 고르디옙스키의 진심을 믿게 되었다. 거스콧은 이런 결론을 내렸다. <선빔은 진짜였다. 그는 공정하고정직했다.>
고르디옙스키가 불법 스파이를 담당하는 S부, 즉 그가 정치 부서로 옮기기 전에 10년 동안 근무했던 부서의 활동을 아주 상세히 설명하기 시작하자 그들의 믿음은 더욱더 강해졌다. - P114

외교 행낭은 대사관들이 주재국의 간섭 없이 안전하게 정보를 보내고 받을 때 사용하는 수단으로,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즉 수색을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 P115

 어느 날 호킨스가 고르디옙스키에게그가 설명한 불법 스파이 시스템을 독일어로 정리한 보고서를 검토해달라고 부탁했다. 고르디옙스키는 감탄했다.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된 것을 보니 호킨스는 독일어 속기의달인인 것 같았다. M16가 아파트에 도청 장치를 설치했을 것이라는깨달음은 나중에야 찾아왔다. 그는 자신도 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약속이 깨졌다며 소란을 피우지 않기로 했다. -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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