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원근법은 통제 강박이다.
내비게이션이고 휴대폰이고, 아무것도 없을 때다. 너무 두려웠다. 더구나 뒷자리에는 젊은 여자가 둘이나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살면서 그토록 막막했던 적은 없다. 그저 차 엔진 뚜껑을 열어 들여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중략) "어머, 저 별 좀 봐요! 너무 예뻐요! 어떻게 저렇게 많죠?" 아, 그 순간 난 미치는 줄 알았다. 하마터면 그 여자의 목을 확 조를뻔했다. 그녀는 나중에 아주 뛰어난 피아니스트로 활약하다가 만장일치로 서울대 교수가 된 최희연이다. 그렇게 철이 없었으니 탁월한 예술가가 될 수 있었던 모양이다. - P158
시간과 공간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문화가 생겼다 - P158
좌표가 잡히지 않는 공간은 ‘공포‘다. 도무지 내가 어디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디로 흐르는지 알 수 없는 시간은 더 큰 공포다. - P158
하이데거의 ‘세계-내 - 존재 In-der_Welt-Sein‘란 시간과 공간에 아무 대책 없이 내던져짐Gewortenheit‘을 의미한다. 내던져짐을 한자로 표현하면 ‘피투성被投性‘이다. - P158
시간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인간은 시간을 ‘분절화‘한다. - P159
반면 공간에 대한 공포는 시간에 비해 훨씬 구체적이며 감각적이다. 인간이 두 발로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공간의 저항은 매순간 경험된다. 높은 곳에 올라 멀리 내다보고, 하늘을 올려다보게 되면서부터 무한한 공간에 대한 공포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진다. - P159
어느 순간부터 인류는 공간에 대한 공포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재현representation‘이다. - P159
지도는 공간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공간을 위도와 경도라는 규칙 안에 재현하기 때문이다. 규칙이 있으면 통제 가능하다는믿음이 생긴다. 그 어떠한 공간도 가로, 세로의 질서가 세워져 있는 지도로 나타내면 두렵지 않다. 더 이상 무한한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 P160
재현 가능성이란 반복 가능하다는 뜻이고, 반복 가능성은 곧 통제가능하다는 뜻이다. 규칙과 질서를 부여해 무한의 공포로부터 벗어나려는 인간의 시도는 시간과 공간, 두 영역 모두에 해당된다. - P161
시간과 비교하면 공간에 대한 공포는 비교적 쉽게 극복된다. 2차원적 환원을 통해 규칙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 P161
권력은 원근법으로 공간을 편집한다 - P162
인류가 만든 가장 문양적(?)인 정원은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이다.(사진 2) 베르사이유 궁전 내부의 화려함은 그렇다 치자. 도대체 그엄청난 규모의 정원은 왜 만들었을까? 걸어서는 하루 종일 다녀도 다볼 수 없다. 관광객들에게는 전기 자동차까지 대여해준다. - P162
단순히 절대권력의 과시를 위해서가 아니다. 불안해서 그렇다. 언제 절대권력에서 쫓겨날지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그 엄청난 정원을 만든것이다. 베르사이유 궁전 정원의 구조는 철저하게 대칭적이다. - P162
절대권력의 정원은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원근법적 원리까지 적용하여 자신의 성이 소실점의 정 반대편에 위치하도록 했다. 대칭과 균형의 정점에 자신의 시점을 위치하도록 한 것이다. - P163
동전의 양면인 권력과 불안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베르사이유 궁전의 원형은 ‘보르 비콩트 성Château de Vaux-le-Vicomte‘이다. (사진 3, 4) 루이14세의 재정을 담당했던 니콜라 푸케가 지었다. 성이 완공된 후 열린화려한 연회에 참석한 루이 14세는 보르 비콩트 성의 원근법적 정원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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