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조 구조물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지역에서 기이한 동굴의 입구가 나타났는데, 그 역시 규칙적인 형태를 가진 점이 의아했다. 레이크 교수의 보고대로, 동굴의 입구는 주로 사각형이나 반원형에 가까웠다. 처음엔 자연적으로 발생했지만 이후 어떤 손길에 의해 훨씬 다듬어진 형태로 바뀐 것 같았다. - P273

 캠프에서 느꼈던 공포와 기이함에 사로잡힌 그는 녹색 동석의 이상한 반점이나 괴생물체가 매장된 봉분, 그리고 동굴의 형태가 무섭도록 일치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점점 높은 구릉지대를 넘어 예정된 고개로 향했다. 간혹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육로를 내려다보며, 장비가 단순했던 옛날 사람들이 어떻게 등반을 했을지 궁금해졌다. - P273

그건 지극히 미묘해서 글자로 표현할 성질은 아니었다. 차라리 모호한 심리적 상징이자 미학적 연상에 가까웠으며, 이국적인 시와 그림, 우리가 멀리하고 금기시하는 책 속에 숨어 있는 고대 신화와 맞닿아 있었다.  - P274

천천히 고도를 높이자, 어느새 고도계는 해발 7180미터를 가리켰고눈으로 뒤덮인 지역은 발밑으로 멀어져 있었다. 위쪽에는 어둡고 황량한 암벽과 거칠게 갈라진 빙하가 놓여 있었지만, 도발적인 정육면체와성벽, 메아리치는 동굴 입구는 초자연적이고 환상적이며 몽환적인 전조를 더욱 고조시켰다. 나는 최고봉들을 올려다보면서 레이크 교수가 말한 성벽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 P274

고개랄 통과하며 노도처럼 울부짖는 바람 소리와 소음기가 없는 엔진 소리로 인해 고함을지르지 않고는 대화를 할 수 없었으므로 댄포스와 나는 눈빛만 주고받았다. 마지막 몇 미터를 올라, 우리는 드디어 산맥 저편의 오래되고 이질적인 지구의 비밀을 앞에 두었다. - P275

V

고개를 넘어 그곳의 광경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외경심과 놀라움,
공포와 착각이라는 감정이 뒤섞여 동시에 소리를 질렀던 것 같다. 물론그 순간에도 머리 한편으로는 동료들을 납득시킬 만한 그럴듯한 설명을 생각해 냈다. 우리가 콜로라도의 ‘신들의 정원‘¹⁰⁵에 있는 기암괴석,
혹은 바람에 의해 기막힌 대칭 구조로 새겨진 애리조나 사막의 암석을 연상했을지도 모르겠다. - P275

105) 신들의 정원(Garden of the Gods):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북서쪽에 있는 공원. - P352

기존의 자연 법칙에 완전히 반하는 그 기괴한 광경을 대해 차마 형용할 길이 없었다. 6000미터 높이의 까마득한 원시 고원, 고작 50만년의역사를 지닌 인간은 도저히 살 수 없는 극한 공간에 온통 질서정연한 석조물이 들어차 있었다. - P275

아무튼 정사각형과 곡선, 각진 석조물로 이루어져 미로를 방불케 하는 거석의 도시는 마음 편히 보고 있을 풍경과는 거리가 멀었으므로,
우리의 불안한 이성은 송두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신기루에서 본불경한 도시가 황량하고 객관적이며 회피할 수 없는 현실로 나타난 것이 분명했다. 섬뜩한 전조는 결국 근거 있는 실체였다. - P276

우리는 광활한 산맥 중에서한군데 낮은 지점을 그야말로 우연하게 발견했던 것이다. 기괴한 석조물이 비교적 드문드문 세워져 있는 구릉지대는 음산한 도시와 그 외곽을 형성하는 산맥의 정육면체 성벽을 이어주고 있었다. - P277

도시 전체는 심한 풍상을 겪었으며, 건물이 뚫고 나온 빙하 표면에는부서진 석조 블록과 태고의 잔해들이 널려 있었다. 투명한 빙하 밑으로건물의 거대한 하부 구조가 나타났는데, 빙하 위의 지상 건물로 연결되는 돌다리가 얼어붙은 채 보존된 상태였다. 빙하 위로 솟구친 성벽에도지하처럼 통로와 다리가 연결되었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거대한 창문도 무수히 발견되었다. - P277

폐허가 된 건물 위를 뒤덮고 있는 얼음층은 여러 가지 지질학적 요인을 떠올리게 했다. 일부 지역의 석조물은 빙하 표면까지 주저앉아 있었다. 고원의 안쪽에서 우리가 넘어온 고개 왼쪽의 1.5킬로미터 지점까지넓은 길이 나 있는데, 그 자리에는 건물이 하나도 없었다. 우리는 수백만년 전 제3기 무렵에 큰 강이 도시를 관통하며 지하의 심연으로 흘러들었을 거라고 결론지었다. 그 도시는 인간의 발길이 닿을 수 없는 동굴과 심연, 지하의 비밀 위에 세워진 것이 분명했다. - P278

 그러나 우리는 침착하게 비행을 계속하고 세밀하게 관찰한 끝에 이제 세상 사람들에게 내보일 만한 일련의 사진을 신중하게 촬영할 수 있었다. 나의 경우에는타고난 과학적 사고방식이 도움이 된 것 같다. 어리둥절함과 위기감 속에서도 나는 태고의 비밀을 좀 더 파고들어, 그토록 거대한 도시를 건설하고 살았던 존재가 누구이며, 그들의 삶이 집중됐던 시기가 언제였으며 다른 세계와 어떤 관련성을 지니는지 알고 싶었다. - 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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