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책은 끝까지 읽는 것이 아니다! - P360

내가 『에디톨로지: 창조는 편집이다』라는 제목의 책을 쓸 생각을 한것은 독일 유학에서의 바로 이런 경험 때문이다. 내가 독일에서 배운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이렇다. 공부는 데이터베이스database 관리다‘ - P361

나는 박사과정에 들어간 후, 지도 교수의 연구소에 취직되길 바랐다. 그러나 지도 교수는 내게 어떠한 제안도 하지 않았다. 내 독일어가 그리 신통치 않았기 때문이다. - P361

지도 교수는 내 데이터 관리 방식에 감동했다. 어느 순간부터 급하면 나를 찾기 시작했다. 수업하다가도 내 자리로 찾아와 자료를 뽑아달라고 했다. 연구소의 비디오 분석을 위한 기기들도 내가 전부 수리하고, 케이블을 연결했다. - P363

다음날부터 집으로 교수와 연구원들 전화가 끊이질 않았다. 연구소내의 데이터베이스나 컴퓨터 분석 기기 등에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기 때문이었다.  - P363

어느 날, 교수는 내게 정식 연구원을 제안했다. 나는 못 이기는 체하며 연구소에 취직했다. 데이터 관리는 권력이었다. 연구소에 취직한 지채 1년이 안 돼 나는 연구소의 모든 재정까지 책임졌다. 유학생들은 꿈도 못 꾸는 매킨토시 노트북을 반년마다 바꿨다. - P363

데이터 입력은 일반적인 계층적 분류‘로 했다. 심리학 전공서의 분류를 따라 정리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관련 키워드 항목을 따로 만들어서 내 나름의 분류 체계를 세웠다. - P364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검색하면 관련 데이터들이 마구 올라왔다. 그 데이터를 정리하다 보면 또 다른 생각이 떠오르곤 했다. ‘네트워크적 지식‘의 생성이다. - P364

언젠가 네이버캐스트의 ‘지식인의 서재‘라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이야기를 하던 중 "책을 끝까지 읽는 것은 바보짓이다!"라는 말을 했다.
그랬더니 악플이 바가지로 올라왔다. - P366

일단, 하루에 쏟아져 나오는 책의 양이 엄청나다. 제아무리 속독을 해도 그것들을 다 따라잡을 수는 없다. 관심 있는 분야의  책만 골라내도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양이다. 그래서 책 앞부분에는 목차가 있고,
책 맨 끝에는 ‘찾아보기‘와 같은 형식이 있는 것이다. 필요한 부분만 찾아 읽으라는 뜻이다. - P367

목차와 찾아보기는 주체적 독서를 하는 이들을 위한 것이다. ‘주체적책 읽기‘란 왜 이 책을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목적이 분명함을 뜻한다.  - P367

내게 흥미로운 내용은 내게 이미 익숙한 개념과 책에 나타난 개념의 교차 비교 과정에서 확인된다. 독서는 내가 가진 개념과 저자의 개념이편집되는 에디톨로지 과정이다. 그래야만 저자의 생각이 내 생각의 일부가 된다. 우리는 저자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 책을 읽는것이 절대 아니다. - P368

 독일 책이나 영어책은 한국 책이나 일본 책에 비해 색깔이 훨씬 화려하다. 그만큼 폼도 난다. 내 서재를 처음 방문한 사람은 매번 묻는다.
"이 책 다 읽으셨어요?" - P368

여타 포털 사이트의 메모 프로그램이나 다양한 앱이 있지만 내 경험으로는 에버노트가 최고다. (분명히 밝히지만, 난 에버노트로부터 어떤 지원도받은 적 없다.) 에버노트는 버그가 많다. 그러나 바로바로 업데이트 된다.
에버노트 개발자들의 마음이 급한 거다. - P369

데이터 관리를 할 때 난 일단 자료를 계층적으로 분류해 저장한다.
에버노트의 각 ‘노트북‘이 대분류로 나뉘어 있고, 각 노트북 안에 또 다C른 하위 노트북들이 들어 있다. 그 계층구조가 3단계, 4단계까지 올라가는 복잡한 것도 있고, 한 단계에서 끝나는 간단한 것도 있다. - P369

글 쓸 아이디어가 부족할 때면 이런저런 검색 놀이로 시간을 보낸다.
이렇게 생성된 지식은 일부 살아남기도 하지만, 바로 지워버리는 경우도 많다. 복사본으로 만든 것이니 지워도 된다. - P370

갤럭시 노트의 펜을 빼들면 에어커맨드‘ 기능이 바로 뜬다. 나는 주로 스크랩 기능을 사용한다. 단지 이 기능 때문에 갤럭시 노트를 사용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필요한 부분만 긁어저장한다.  - P370

내가 성격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 이만큼이라도 성취하며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영어와 함께 독일어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읽는 자료의 내용이 남들과 달랐다. 축적된 데이터가다른 까닭에 생산되는 지식의 내용도 달랐다. - P372

모두들 지적하듯, 주입식 교육의 폐해라고 생각했다. 한국에서의 토론식 수업은 아예 불가능하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장소를 바꿔 수업을 해보니 학생들의 태도가 전혀 달라졌다.  - P200

한국에서 토론식 수업이 불가능한 이유는 강의실의 구조 때문이다.(사진 1, 2) 강의실에 앉으면 학생들은 앞쪽 칠판만 바라보게 되어 있다. 학생들끼리의 상호작용은 애초부터 배제되어 있다. 강의실이란 이름부터 강의하는 방‘이라는 뜻이다. - P201

학생끼리의 시선 공유joint-attention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맞은편의학생이 조금이라도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 이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바로 표현할 수 있다. 교수의 강의를 듣는 것만이 아니라, 동료 학생들과의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 수업 참여의 큰 동기가 된다. - P202

세미나실의 책상 배치가 교육의 내용을 결정한다. 한국의 진정한 교육개혁은 교실의 공간 편집부터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어린아이들의교실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 그래야 교사가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가달라지고, 아이들도 다른 아이들을 존중하는 태도를 갖게 된다. - P202

근대는 ‘역사의 발명‘으로 요약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공간‘은 잊혀갔다. 지식인들 사이에서 공간을 이야기하면뭔가 한 급 떨어지는 듯한 분위기도 있었다.
여기에는 독일의 나치즘과 히틀러가 아주 중요한 원인 제공자다. 근대 독일 민족은 공간에 대한 피해의식으로 가득 차 있었다 - P203

천장의 높이만 조금 더 높여도 창조적이 된다. 미네소타 대학의 마이어스-레비J. Meyers-Levy 교수는 천장 높이를 30센티미터 높일 때마다 사람들의 문제 해결 능력에 변화가 생기는 것을 발견했다. - P203

미국의 애플이나 구글이 사무 공간을 놀이터처럼 바꾸겠다는 것도 마찬가지 발상이다. 가장 창조적인 행위는 놀이다. 놀이터처럼 사무 공간도 즐거워야 창조적 사고가 가능해진다. 개도 데리고 출근하고, 바닥에서 뒹굴거리거나, 사무실 벽에 공도 차면서 일할 수 있어야 남들 안하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거다. - P204

공간 편집, 그 자체가 문화다. 이어령이 이야기하는 ‘축소지향적 일본인‘도 공간 편집의 결과라고 나는 생각한다. - P204

일본에서는 식당에 혼자 가면, 카운터나 구석의 좁은 자리에 앉힌다. 4인용 테이블에 좀 넓게 앉겠다고 하면 아주 큰일 날 것처럼 난감해한다. 의자 밑에는 가방이나 짐을 넣는 바구니가 따로 있다.  - P205

공간의 조직 방식, 즉 공간 편집이야말로 문화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이론적으로 설명한 학자는 미국의 인류학자 에드워드홀Edward T. Hall이다. 사는 공간의 크기나 구성뿐만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거리도 문화에 따라 차이가 난다는 점에 주목한 홀은 ‘프록세믹스proxemics, 근접학‘라는 개념으로 사람들 사이의 거리와 상호작용의 양상을 분류한다. - P205

거리뿐만이 아니다. 앉는 위치와 상대방을 바라보는 시선의 방향에따라서도 상호작용의 내용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테이블에서 서로 마주 보고 앉는 경우와 모서리를 끼고 기역자로 붙어 앉는 경우는 대화내용이나 상호작용의 밀도가 질적으로 달라진다.
홀의 주장을 참조한다면 연인끼리는 마주 보는 것보다 모서리를 사이에 두고 앉는 쪽이 더 좋다. 그러면 대화가 훨씬 농밀해진다. - P206

공간 편집의 영향은 상호작용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주택 구조와가족의 관계는 공간 편집에 따라 달라지는 인간 의식을 아주 분명하게보여준다. - P206

아리에스는 주택의 공간 편집과 ‘아동‘ 혹은 ‘따뜻한 가족‘이라는 개념이 아주 깊은 상관관계가 있음을 주장한다. 18세기 이후, 주택 내부에 복도가 생기면서 사람들은 매번 이방 저방을 거쳐 이동할 필요가없어진다. 외부 방문객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우리 가족만의 공간이 생긴 것이다. 따뜻한 가족은 바로 이러한 독립된 가족의 사생활이가능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 P209

 즉 식당dining room과 침실bedroom이라는 명칭이 다른 방room들과 구별되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외부로부터 단절된 공간에 부모와 자식만으로 구성된 단란한 가족만이살게 된다. 이제 가족 구성원의 모든 관심은 어린아이에게 집중된다. - P209

독일의 창문은 거의 모두 이중창이다. 아주 튼튼하다. 방음은 물론어지간한 충격에도 깨지지 않는다. 창문 전체를 열 수도 있지만, 위쪽만 살짝 열어 공기 순환만 가능하게 하는 장치도 있다. 몇 년 사용하면나사가 헐거워지고 창문틀도 어긋날 것 같은데, 십여 년 사용해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 - P210

독일만큼이나 장인정신으로 인정받는 일본이지만, 문 만드는 기술만큼은 죽었다 깨어나도 독일을 따라가지 못한다. 일본 문은 아주 엉성하고 부실하다. 방음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 P210

독일이나 일본이나 정밀함으로는 세계 최고지만, 문 만드는 데는 왜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일까? 왜 일본인은 문과 창문을 만들 때 방음에는 전혀 신경을 안 쓰는 것일까? - P211

이와 관련해 에드워드 홀은 아주 설득력 있는 주장을 한다. 독일의 창문과 문이 그토록 튼튼한 이유는 ‘사적 공간‘에 대한 독일인 특유의 편집증 때문이라는 거다. 세계에서 독일 사람들처럼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생각한 민족은 없다. - P211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내 박사논문을 지도해준 힐데브란트-닐손 교수를 한국의 우리 집에 초대한 적이 있다. 옛날이야기를 즐겁게 나누며 식사를 하던 중, 아파트 관리실에서 곧 반상회가 열린다‘는 방송이 거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 P211

지진 같은 천재지변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런 방송이 가능하나는 거다. 외부의 방송 스피커가 집 안에 설치되어 있는 것도 이해할 수 없고, 집주인 의사와 상관없이 아무 때나 방송하는 것은 더더욱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 P212

공간 편집이야말로 각 문화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기 때문이다. 결국 문화를 바꾸는 것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는 결론이다. 공간 편집을 달리하면 된다. 회사의 공간 배치를 바꾸거나 집의 인테리어를 바꾸는 것도 마찬가지다. - P212

출입문의 위치만 바뀌어도 사람들의 동선이 바뀌고, 공간 내의 상호작용 양상이 변화한다. 문화는 이렇게 아주 구체적으로 작동한다. -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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