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왜 거기서 나와
정치적 밈의 탄생

인터넷 밈 가운데서도 가장 논쟁적인 지점이 정치적 밈political meme¹⁷이다. 정치적 밈은 말 그대로 정치를 인터넷 밈으로 밈화해서 쓰는 것을 지칭한다. 정치 활동의 수단으로 인터넷 밈이 쓰인 것은 오래전부터로 짐작된다.

17 Tuters, M., & Hagen, S., 2020. "(((They))) rule: Memetic antagonismand nebulous othering on 4chan," New Media & Society, 22(12), pp.
2218-2237. - P17

정치적 밈을 최초로 이야기한 것은 발터 벤야민이다. 그는<기술적 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라는 논문을 세 번이나 수정하는데,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3판이다. 벤야민은 3판에서 기술 발전을 무작정 옹호하지만 않는다. - P204

히틀러의 뉘른베르크 연설을 담은 레니 리펜슈탈의 선전영화 <의지의 승리(1935)>를 사례로 들 수 있다. 그녀는 히틀러의 연설이 얼마나 강력하고 호소력이 있는지 드러내고자 그가 연설할 때마다 군대의 행렬이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광경을 머리 위에서 부감 숏으로 찍는다. 벤야민은 이 영화가 찍히기 전까지 대중이 대중의 힘을 객관적으로 본 적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 P203

인터넷에서 여론이 형성되는 방식도 유사하다. 정치에 관련해서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은 주로 정치에 열렬히 미쳐 있는 사람, 즉 정치병에 걸렸다고 조롱당하는 소수의 열광적인 지지층이다. 사람 하나하나의 주장은 강하지 않다.  - P205

 이길호는 이러한 허구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디시갤러리 분류에 내재된 임의성을 지적한다. 카메라와 식물, 동물 등 범주가 다소 한정적 대상을 주제로 택하는 갤러리의 경우 어느 정도 해당 주제에 대한 중심화가 이루어질지라도, 코미디 같은 추상적인 대상은 그 범주가 모호하다. - P206

슬라보예 지젝이 사회적인 차원에서 인터넷 밈을 한층 더깊게 분석한 것은 정치적 밈의 전염성을 설명하기에 적합하다. 그는 밈을 상징적인 전통이라 이야기하고, 일종의 안정성과 질서를 재도입하려는 특수자의 보편성에 대한 온전한 종속을 재확립하려는 이차적 시도인데, 그것은 주체의 출현에 의해서 교란된다"²⁰고 분석한다.

20 슬라보예 지젝, 2006, <신체 없는 기관>, 김지훈·박제철·이성민 옮김,
도서출판 b, pp. 233-234. - P207

"우리의 주체들이 우리의 소통수단으로 오지각하는 밈들이 사실상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과동일한 방식으로(그것들은 자기 자신들을 재생산하고 증식하기 위해 우리를 이용한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필요와 욕망을 충족시키는 수단처럼 보이는 생산력이 사실상 주도권을 쥐고 있는것이다."²¹


21 슬라보예 지젝, 위와 같은 책, p. 235. - P207

지젝은 밈의 전숭이 부모에게서 어깨 너머로 들은 말을 반복하는 아이의 중얼거림과 비슷하다고 본다. - P208

일례로 SNS 속 사람들은 공산주의자와 페미니스트라는 단어 대신 초등학생 별명에 가까운 빨갱이나꼴페미라는 비속어로 상대의 정치적 성향을 정의하고 공격하는 데 익숙하다. 이때 본인이 공격하는 상대방의 성향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드물다는 점에서 의미없이 반복되는 라랑그와 유사하다. - P208

정치적 밈 연구자들은 대안우파의 상징으로 쓰이는 정치적 밈으로 맷 퓨리의 <Boy‘s Club>에서 파생된 인터넷 밈인 개구리 페페, 슬픈 표정을 짓는 남성워작Wojak 등을 지목한다. 페페와 워작 등의 밈 이미지는 원래4chan에서 유저들의 루저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 쓰인 이미지다. 이때의 유저들은 주로 잉여가 된 20대 남성 청년이었는데,
그들은 인터넷 밈을 경쟁적인 놀이 수단으로 삼는다. - P209

인터넷 밈은 일베, 오유, 디시 등 폐쇄적인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유포되었으나 이제는 웹 2.0체제 아래서 SNS나 검색엔진 등에도 퍼져나가면서 편재하기시작했다. 현대 인터넷 환경을 작동하게 하는 자동 알고리즘은 유저의 편향된 이미지 소비를, 구글과 페이스북은 유저의생각을 유도한다. - P209

 SNS의 네트워크가 무한에 가까이 확장되어 이미지나 음성, 텍스트의 형태를 지닌 무수한 정보가 거름망 없이전해지는 것이다. 페이스북은 이를 방지하려는 목적으로 에지랭크 edge rank를 쓰기 시작한다.  - P210

조너선 갓셜은 음모담²⁴ 이 버티는 이유를 스토리텔링 차원으로 분석했다. "1) 권력을 지닌 2)둘 이상의 사람들(음모집단)이 3) 어떠한 뚜렷한 목적을 위해 4) 비밀스러운 계획을 짜서5) 중요한 결과를 불러올 사건을 일으키는"²⁵ 플롯 구조를 지닌 음모담은 ‘보통 사람은 모르는 이 세계의 진실을 내가 알고있다‘라는 생각을 심는다.

24 조너선 갓셜은 음모론을 체계적인 것으로 보지 않아야 한다고 보고 음모담conspiracy story라고 고쳐서 쓴다. (조너선 갓설, 《이야기를 횡단하는호모픽투스의 모험》, 2023, 노승영 옮김, 위즈덤하우스, pp. 133-139.)
25 전상진, 2014, 《음모론의 시대》, 문학과지성사, p. 40. - P211

음모담을 동원한 정치적인 밈은 실존적인 적대감을 기반으로 한다. 이는 가상의 적 하나를 만드는 방식으로 ‘우리‘를 결집해 정치 세력으로 만드는 데 효과적이다. - P212

정치적 밈은 밈적 대립 memetic antagonism의 양상을 드러낸다.
이는 유저의 합리성에 기반한 것이 아니다. 되려 비합리성이 두드러진다. 유저가 속한 커뮤니티에서 통하는 논리에 기대어 상대를 밈 추상화 meme abstraction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 P212

우리는 그 영화를 인터넷 밈이라
부르기로 약속했어요
-영화가 인터넷 밈을 재현하는 법

예술 작품에서 인터넷 밈을 보는 일도 점차 흔해지고 있다. 유튜브나 SNS, 숏폼 같은 인터넷 매체의 전유물이라 생각했던 인터넷 밈은 어느덧 영화부터 시작해 미디어아트 등의 예술에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 P224

오늘날 인터넷 밈은 영화에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정확히는 2010년대 중후반을 기점으로 인터넷 밈이 영화 소재로서 모습을 드러내는 중이다. 이를테면 2019년에 개봉한 <기묘한 가족>의 오프닝 시퀀스에서 달려가는 개를 본 한 노인이
"야! 개 짖는 소리 좀 안나게 해라!"라고 외친다. - P224

할리우드에선 밈을 동시대를 보는 렌즈로서 극영화에 반영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2019년에 개봉한 조나단 레빈의 로맨틱코미디 영화 <롱샷>은 정치적인 밈으로 인해 생기는 공화당 지지자와 민주당 지지자 간의 대립을 희극적으로 그려내관객에게 웃음을 유발하면서, 동시에 정치의 양극화가 일상화된 미국의 정치적 갈등을 풍자한다. - P225

2021년에 개봉한 애덤 맥케이의 <돈룩업>은 전지구적인위기가 닥쳤는데도 스마트폰만 보고 있는 현대인의 초상을 풍자한 영화다.  - P225

몽타주의 기반을 마련한 러시아의 영화이론가 레프 쿨레쇼프가 만들어낸 창조적 지리학이 쓰인 것이다. 창조적 지리학은 실재하는 전혀 다른 두 공간을 번갈아 비추거나 포갬으로써 지구에 존재한 적 없는 새로운 장소로 보이게 하는 기법이다. - P226

온라인에서의 사건이 현실에 영향을 끼치는 서사는 오래전부터 그려졌다. 게임 속 세계를 그린 <트론(1982)>이나 앞서언급했듯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본 <매트릭스>, <링>, <주온> 등 여러 고전 영화가 그 사례다. 이러한 영화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사이에 위계가 있고 온라인 속 사건이 오프라인에 혼란을 불러온다고 본다. - P226

(전략), <레디 플레이어 원> 역시 인터넷 밈의 감각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영화는 모든 이미지가 매끄러운 애니메이션으로 그려져 있다. 게다가 할리웨이가 감독과 자신의 자전적인 모습을 투영해 만든 세계관이 균열의 조짐 없이 설계되어 있기에,
인터넷 밈 특유의 혼종성을 발견할 수 없다. - P228

즉 온라인 세계의 존망은 오프라인 세계에 달려 있다는 식으로 묘사된다. 물론 틀린 묘사는 아니다. 예컨대 박윤진 감독의 다큐멘터리 <내언니전지현과 나(2020)>에서 운영진에게 버려진 ‘망겜‘ 일랜시아의 풍경은 황무지에 가깝다. 그러나 온라인이 결국 오프라인의 부속품에 불과하다는 묘가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사이의 상호작용을 외면하는 것이다. - P228

<댓글부대>는 국정원의 댓글부대라는 소재를 다루는 만큼영화 전반에서 인터넷 밈을 전방위적으로 쓴다. 개구리 페페부터 시작해 온갖 인터넷 밈이 인용되며 서사에 개입한다. - P229

안국진 감독은 <씨네21> 인터뷰에서 인터넷 밈을 구현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고 밝혔다. 감독 본인부터 영화를 만드는 동안에 인터넷 커뮤니티에 빠져 있기도 했다. 온라인 게시판을 탐방한 연출부를 섭외해 함께 커뮤니티에서 쓰일 법한 밈을 그려냈다. 나아가 감독은 인터넷 밈을 몽타주할 때 빠른 편집 리듬을 통해서 순간적으로 등장하고 사라지는 인터넷 밈의속도를 그려낸다. - P230

(전략), 이때의 밈은 여론을 시각화하는 이모티콘 이상의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다. <돈룩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인터넷 밈은 정치적 감정을 설명하는 텍스트로 전락하고 마는 셈이다. - P230

(전략), 일례로 <언프렌디드(2015)>와<서치(2018)>라는 두 영화는 인터넷과 그것을 보고 있는 인물을 교차하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다만 장르 특성상 온라인과오프라인에 대한 매혹적인 통찰로 나아가기보다 두 공간 사이의 정보 격차와 거기서 오는 스릴에 집중해 전개된다. - P231

웨스 앤더슨의 영화는 스크린 안의 모든 것을 동등한 물질로 그려낸다. 그의 영화에는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중심적인 이미지가 없다. 모든 소품이 인위적으로 제작된 데다가 평평하게 나열되어서 튀는 부분이 없다. 더군다나, 일반적으로 영화에서 중요한 이미지가 있으면 그 이미지를 부각하고자뒤에 배치된 이미지의 초점을 날려 흐릿하게 촬영하기 마련이다. 그때 배경으로 쓰이는 이미지가 부차적인 것이 되어버린다. 웨스 앤더슨의 영화는 이러한 시선을 거부하며 스크린에 드러나는 모든 이미지를 동등한 입지로 담으려 한다.  - P236

모든 인물에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기에 주연 또한 존재감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배우, 사물, 카메라가 모두가 동등한 위치를 지니며 민주주의적인 미장센이 구현되는 것이다. 다만 웨스 앤더슨의영화는 모든 것이 미적으로 드러나 있으며 조화롭기에 매끄럽지 않은 인터넷 밈의 B급 감성을 담을 수 없다. - P237

웨스 앤더슨의 스타일을 한층 갱신한 영화가 있다. 바로 이원석 감독의 <킬링 로맨스(2023)>다.  -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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