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이 어떤 사람인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주인장이불빛에 잔을 비춰 보며 말했다. "숙박계에는 개인적인 용무로 여행 중인 상인이라고 기입했더군요. 하지만 상인은아닙니다. 실성한 연금술사, 마법사, 발명가...... 뭐든 가능하지만 상인만은 절대 아니에요." - P52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제가 아는 위조지폐범이 있는데, 그 작자는 신분증을 요구받을 때면 꼭 그렇게 행동하더군요." 내가 대답했다. "그건 아닙니다." 주인장이 만족스러운 듯 대답했다. "그분의 돈은 위조지폐가 아니거든요." "그렇다면 정신 나간 백만장자군요." - P53
"오, 듀 바른스토크르 씨는 모제스 씨와는 완전히 다른경우죠. 그분은 벌써 13년째 매년 이곳을 찾아오시거든요. 그분이 처음에 이곳을 찾으셨을 때만 해도 이 호텔은 평범하게 샬라시*라고 불렸어요. 듀 바른스토크르 씨는 제가담근 술을 몹시 좋아하시죠. 그런데 모제스 씨는 늘 거나하게 취해 계시지만 머무르는 동안 제게서 술을 받아 간 적이한 번도 없어요." - P54
"당신은 철학자군요, 알레크." "그래요, 페테르, 나는 철학자지요. 나는 시인이자 철학자이자 엔지니어입니다. 혹시 내가 만든 영구기관들을보셨습니까?" "아뇨. 작동합니까?" - P55
"통통하니 귀여운 아가씨군." 나는 저도 모르게 불쑥중얼거렸다. 벌써 술이 석 잔째인 탓도 있었다. 주인장이사람 좋게 웃음을 터트렸다.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기는 하죠." 그가 인정했다. "심지어 듀 바른스토크르 씨도 참지 못하고 어제 그녀의 엉덩이를 꼬집었지 뭡니까. 우리의 물리학자도 예외가 아니고요....... - P56
"뭐라고요? 폭력을 휘둘러요?" "보아하니 채찍 같더군요. 모제스에게 채찍이 있거든요. 사냥용 긴 채찍. 그걸 보자마자 이런 의문이 들더군요. 대체 모제스 씨에게 왜 사냥용 채찍이 필요할까? 경위님은대답을 아시겠습니까?" - P57
"시모네 씨죠, 누구겠습니까. 설마 이 이름을 한 번도 못들어 보신 건가요?" "못 들었는데요." 내가 대답했다. "서류 위조에 연루된적이라도 있는 사람인가요?" 주인장이 나를 나무라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과학계의 국가적인 영웅을 몰라서야 쓰겠습니까." 그가 엄하게 말했다. - P58
그런데 그가 입을 다물었고 나는 벽난로 방에서 누군가의 기척을 느꼈다. 고개를 돌려 기척이 느껴진 곳을 힐끔보았다. 그곳에는 듀 바른스토크르 씨의 죽은 형제가 남긴유일한 혈육이 와 있었다. - P59
"실은 겁이 나요." 브륜이 말했다. "누군가 내 방 손잡이를 만지작거렸어요." "이런, 이런 내가 대꾸했다. "자네 삼촌이셨겠지." "아니에요." 브륜이 반박했다. "삼촌은 주무시고 계세요. 바닥에 책을 떨어트리고 입을 떡 벌리고 누워 계시다고요. 문득 삼촌이 돌아가신 것 같았어요......" - P60
"젠장, 알레크." 내가 말했다. "당신은 이 호텔의 주인입니까? 아닙니까? 카이사에게 이 가여운 아가씨와 함께밤을 보내라고 왜 지시하지 않는 겁니까?" - P60
나를 본 남자는 가지런하고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살짝 미소를 짓더니 듣기 좋은 바리톤 음성으로 자기소개를 했다. "올라프 안드바라포르스입니다. 편하게 올라프라고부르세요." 나도 내 소개를 했다. 문이 다시 활짝 열리고 주인장이여행용 가방 두 개를 들고 들어왔고 뒤이어 눈만 내놓은 채온몸을 감싼 자그마한 남자가 호텔로 들어왔다. - P62
덩치가 작은 남자는 얻어맞아 피투성이가 된 면상과경찰에 대해 계속 떠들면서 사무실로 따라 들어갔고, 바이킹 올라프는 나지막하게 한마디 했다. "구두쇠구먼......" 그러더니 자신을 맞이하러 온 군중을 기대하기라도 한 듯한 모습으로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아까 그 사람은 누굽니까?" 내가 물었다. - P63
올라프는 내 어깨 너머를 바라보며 입을 다물었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특별히 시선을 끄는 것은 없었다. 다만, 벽난로 방과 모제스 부부가 머무르고 있는 객실 복도의 입구에 쳐 놓은 두툼한 커튼이 살짝 흔들렸다. 아마도 외풍 탓이겠지. - P63
제4장
아침이 되자 눈보라가 잦아들었다. 동틀 무렵에 일어나 보니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잠에 빠져 있었다. 나는 포트와인 석 잔 탓에 좀처럼 가시지 않는 숙취를 쫓아 보려고 속옷 차림으로 호텔 밖으로 뛰어나가 갓 쌓인 보송보송한 눈을 온몸에 문지르며 "으어" 소리를 질러 댔다. - P64
나는 방으로 돌아가 옷을 입고 문을 열쇠로 잠근 후계단을 훌쩍훌쩍 뛰어내려 뷔페로 갔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흥분한 기색의 카이사가 벌써 주방의 뜨거운 불가에서 바삐 요리를 하며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 P64
강까지 왕복 10킬로미터가 약간 넘는 거리를 스키로달린 후 요기를 하려고 돌아오니 호텔은 이미 부산스러웠다. 모두 밖으로 나와 해를 쬐는 중이었다. - P65
(전략). 그가 정말 스키를 잘 탄다는 사실을 깨닫자 어쩐지 속이 상했다. 평평한 지붕 위에서는 우아한 모피망토 차림의 모제스 부인과 어제와 같은 상의를 입고 어김없이 한 손에 잔을 든 모제스 씨, 주인장이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으며 주인장은 그 두 사람에게 무슨 이야기를 건네는 중이었다. - P66
몇십 년 전에도 나는 이런 경주를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는 기술 수준이 부케팔로스 같은 오토바이를생산할 정도로 발전하지도 않았고 나 또한 더 강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나는 약 3분 후 호텔의 정문 계단으로 돌아와있었다. 내 상태가 영 심상치 않아 보인 모양이었다. - P67
모두에게 버림받고 잊힌 나는 아직 훌훌 털고 일어나지도 못했는데, 변덕스러운 사람들은 이미 새로운 우상의 등장을 환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알다시피 운명의 여신은 누가 백설 같은 피부의 눈의 신인지, 누가 늙다리 경찰인지에 무심하다. - P68
모제스 부인의 비명에 이어 버럭 화를 내는 사람들의목소리가 와글와글 쏟아졌다. 그러나 나는 호텔로 들어갔다. 나는 생겨 먹기를 남이 잘되면 배가 아픈 사람이 아니라 정의를 사랑할 뿐이다. 만사에 말이다. - P68
모제스 부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젓더니 루 드 샤넬에있는 저택에는 욕조가 두 개인데, 하나는 금이고 다른 하나는 아마도 백금인 것 같다고 말해 주었다. 이 이야기에 무슨 대꾸를 해야 할지 머리를 굴리는 동안 부인은 다른 곳을 찾으러 가보겠다고 했다. - P69
나는 "아니요, 못 봤습니다만"이라고 대답하며 소박한 만족감을 음미했다. 그러자 듀 바른스토크르가 그 상황을 상세하게 묘사하더니 내가양손을 맞잡고 안타깝다는 듯 혀를 끌끌 차자 사람 좋은 주인장이 개가 제멋대로 날뛰도록 방치한다고 덧붙이며바로 그저께도 렐이 차고에서 모제스 부인에게 똑같은 짓을 했다고 알려 주었다. - P70
샤워장에서는 여전히 물소리가 들렸고 이제 흥얼거리는 소리 대신 알아들을 수 없는 웅얼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 P70
"오래 기다리셨나요?" 올라프가 물었다. "네, 한참 전부터요." 듀 바른스토크르가 대답했다. 힌쿠스가 느닷없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웅얼거리더니 어깨로 올라프를 툭 치고 홀로 가 버렸다. "잠깐만요." 내가 말했다. "혹시 오늘 아침에 누가 또도착했습니까?" "이분들뿐이었습니다만." 듀 바른스토크르가 대답했다. - P71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에요!" 듀 바른스토크르가 흥분하며 소리쳤다. "우리는 이곳에 서서 최소 15분간 기다렸어요. 그렇지요. 경위님?" "내 침대에 누가 또 누워 있었어요." 위에서 브륜이 알렸다. "그리고 수건이 전부 축축해요.‘ - P72
그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여러분!" 그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제 말은 모두 사실입니다. 이것이 그 남자의 라디오입니다. 여러분. 그리고 이것이 그 남자의 점퍼죠." 47. "아, 대체 누구......" 올라프가 조용하게 말을 시작했 "그 남자죠. 죽은 남자." "나는 누구 순서인지 물어보려던 참인데요?" 아까와마찬가지로 차분하게 올라프가 말했다. - P73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사람들은 홀에서 방금 일어난일에 대해 설왕설래하는 중이었다. 역시나 새로운 이야기는 나오지 않아 나는 더 이상 그곳에 머무르지 않았다. 계단을 오를 때 여전히 난간에서 몸을 쑥 내밀고 있는 브륜을지나갔다. "미친 호텔이에요!" 브륜이 도전적인 태도로 내게 말했다. 나는 묵묵히 곧장 내 방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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