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 주행용으로 빌릴까요?" "해월은 진입 제한구역이어서 아무거나 하늘로 못 띄워 드론도 허가를 미리 받아야 돼. 귀찮으니까 이번엔 그냥 지상 도로로가자. 혹시 저녁 약속 있어?" - P45
해월까지는 정비되지 않은 도로가 워낙 많아 직접 운전해야하는 구간이 있었다. 가는 길은 아영이, 오는 길은 윤재가 운전을 맡기로 했다. 아영은 운전자 인식 장치에 손을 가져다 댔다. 아영을 운전자로 인식하는 프로그램이 켜졌다. - P45
차가 도로를 달리는 동안 아영은 에티오피아 출장 준비와 얼마 남지 않은 정규 보고서 마감에 대해 윤재와 수다를 떨었다. 하지만 해월에 가까워질 무렵에는 당면한 문제, 모스바나에 대한 생각으로 다시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전화로 들은 건데, 담당자가 이상한 말을 했어." "뭔데요?" "해월에 귀신이 나온대." "그게 무슨 뜬금없는 말이에요?" - P46
윤재는 일부러 호들갑을 떨고는, 음악을 끄고 라디오를 켰다. 철 지난 음악이 흘러나오는 채널들을 지나 라디오는 뉴스 채널에 고정되었다. 아영은 뉴스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방금 윤재가 한 말을 계속 생각했다. 도깨비불이라니, 뜬금없이. 혹시 모스바나에서 환각 물질이라도 뿜어져 나오는 건가. - P47
수십 년 전 멸망한 도시인데 어디서 이렇게 시체 썩는 냄새가 나는 것인지 궁금했다. 알고 보니 야생동물들이 들어왔다가 고철 사이에 발이 빠져 나가지 못하고 죽는다고 했다. - P48
해월이 가까워질수록 심상치 않은 광경이 보였다. 들판과 언덕을 가릴 것 없이 보이는 곳 모두 덩굴들이 덮고 있었다. 잠시뒤 출입 금지를 의미하는 경고 벨트가 넓게 쳐진 지역에 도착했다. 해월의 복원 사업이 진행중인 곳이었다. - P48
경고 벨트 안쪽으로 맹렬히 자라난 덩굴들이 고철 쓰레기의산을 뒤덮어버렸다. 틈이 거의 보이지 않아 그 아래 있는 것들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 P49
"이거 되게 징그럽네. 좀 기분 나쁘다." 윤재가 미간을 찌푸렸다. 아영도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 외의생물을 인격화하거나 감정이입할 필요는 없다는 걸 알았지만, 자연을 관찰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불쾌해질 때가 있었다. 도대체 이런 생물이 어쩌다 생겨나게 된 걸까. - P50
"어떻게 막고는 있는데, 역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같아서요. 안 그래도 해월시 인근은 긴 가뭄으로 농가들의 피해가 아주 큰 상황이거든요. 물을 끌어오느라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 잡초 때문에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민원은 계속들어오는데 위에서 잡초 문제는 알아서 해결하라고 방치하고, 그렇다고 우리가 손놓을 수는 없어서요. 하필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해월 중심지에서 퍼지는 것도 의심스럽고요. 최악의경우 생물 테러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 P51
윤재가 말했다. "만약 누가 마음먹고 벌이는 일이면, 범인을 특정하는 데에 저희가 도움을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이런저런 정황을 파악할 수는 있겠지만 저희가 수사기관은 아니니까요. 생태학적인 추적도장기간 지켜봐야 의미가 있는 거고요. 어쨌든 인위적인 사건인지, 자연적인 상황에 의해 일어난 일인지 같이 조사해볼 테니 자료를 공유해주세요. 방제 대책도 좀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는지내부 의견을 구해볼게요." - P52
직원은 윤재의 이야기를 듣고 약간 맥이 빠진 것 같았다. "김 연구원님이 쓸데없는 이야기를 했네요. 아마 그건 해월의불법 회수 처리업자들에게서 들려오는 소문일 텐데, 조사할 가치는 없는 것 같아 일단 기록만 해두었습니다." 하지만 아영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소문이라면, 정확히 어떤......?" - P53
윤재는 깊이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대답했다. "그렇지. 발광현상도 드문데, 게다가 파란색이면 더 그렇고. 내생각에는, 제보자들 말이 맞다 쳐도 모스바나 때문은 아닌 것 같아, 반딧불이라든가, 발광 미생물이라든가 그쪽이 좀더 가능성이 있지 않으려나. 모스바나가 증식했다고 해서 그게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잖아." - P54
스트레인저 테일즈에서 이상한 이야기를 잔뜩 읽은 탓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왜 그런 꿈을 꿨는지 알 것 같았다. 무성한 덩굴식물과 푸른빛, 아영은 분명 그런 것을 보았다. 어린 시절, 이희수의 정원에서였다. - P55
사회의 집단 기억 속에서 더스트 시대의 고통이 흐릿해질수록, 현재부터 그 시대로 거슬러 오르는 학문 역시 힘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사람들에게 과학이란 더스트라는 재난 속에서 인류를 구한 위대한 기적이었고, 재건 이후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줄 도구였다. 그 외의 연구란 보통 사람들에게는 별 가치가 없었다. - P56
"아, 친한 할머니가 원예에 관심이 많으셨나봐요?" "아뇨・・・・・・ 그분은 원예에 딱히 관심이 없었어요. 식물에 대해서는 아주 해박하시긴 했는데, 직업은 원래 정비사였어요." "정비사? 그런데 식물을 잘 알아요?" 점점 연구원들의 표정이 의아하다는 기색을 띠었다. "온유라고, 작은 도시에 살았거든요. 인천 근처에 있는데 대규모 실버타운으로 조성된 곳이요. 아시죠?" - P57
"좀 이상한 분이셨어요.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 같다고 할까요. 어디서 온 건지 알 수 없었고, 아무도 그분의 과거를 몰랐어요. 마지막에도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갑자기 사라지셨죠. 더스트 시대를 지나온 사람이었는데, 언제나 돔 바깥의 이야기를들려주셨어요. 돔 안쪽이 아니라, 돔 바깥에서 일어난 일들이요" - P58
아이들은 시선을 교환하더니 노인들 옆을 조용히 지나쳤고, 아영도 그 뒤를 머뭇거리며 따랐다. 귀를 기울여보니 "당신 집에가져다 걸어놔라, 무슨 권리로 이걸 버리냐" "무례한 놈들 쫓아낸 게 뭐가 나쁘다는 거냐" 하면서, 도대체 말만 들어서는 뭘 두고 다투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 P59
집으로 돌아와 엄마에게 그 일을 이야기했더니, 수연은 말했다. "오늘 그 앞에서 대학생들 시위가 있었거든. 거기 어르신들이심기 거슬린다고 경찰 부르고 난리가 났었나봐. 이희수 씨가 지나가면서 학생들 편들어준 거지, 뭐." 시위는 무슨 시위이고, 편은 왜 들어준 건지 아영은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수연은 별다른 설명 없이 웃으며 말했다. - P60
온유는 더스트 시대의 잔해가 남아, 재건 이후로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던 곳을 대규모 실버타운으로 집중 개발한 지역이었다. 아영이 최근에 여기로 이사하게 된 것도 실버타운과 관련이있었다. 수연은 노인건강센터의 전국 지부를 관리하는 일을 했는데, 온유에 신규 센터가 문을 열면서 일 년간 개관 준비와 초창기 운영을 담당하게 된 것이었다. - P60
알고 보니 이희수는 실버타운의 노인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았다. 노인들과 마주치기만 하면 오만 일로 시비가 붙어서, 제발좀 여기서 쫓아내라는 민원이 쏟아지게 만드는 주역이었다. 하지만 노인들은 그를 쫓아낼 수 없었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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