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동안 프랜시스가 쓴 모든 글은 동생에 관한 이야기였다. 한때 프랜시스는 진지한 표정으로 웃기는 이야기를 곧잘 했었다. 그 유머는, 그리고 그 비꼬는 말투는 어디로 가 버린 걸까? - P14
프랜시스는 12학년 영어 과제로 이런 글을 썼다. 그날 아침 그 애의 방에 들어갔을 때 무언가가 지독하게 잘못돼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 애의 몸이 중력을 거스른 곳에, 이상한 위치에 있었다. - P14
5년이 지나자 무언가가 달라졌다. 질문들이 목구멍에 걸려 있는 듯한 느낌이 사라졌다 - P14
5년이 더 지나자 프랜시스는 그 일에 대해 그렇게 많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어졌다. 몇몇 사람들에게가끔 꺼낼 수는 있었겠지만 말이다. 이제 그는 어떤 영화들을 피해야 하는지 알고 있고, 언니들과 함께 있으면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도 된다. - P15
내가 프랜시스를 만난 때는 그가 막 변화하기 시작할 무렵이다. 프랜시스는 이제 케이티의 죽음 때문에 항상 숨쉬기가 힘들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전에는그 애의 죽음이 내내 가슴 위에 올라앉아 두 무릎으로갈비뼈 사이를 짓누르는 것 같았는데 말이다. - P15
프랜시스와 나는 엘리자베스 스트리트를 따라 달리는시가 전차 안에서 케이티가 죽고 난 뒤의 몇 주에 관해이야기한다. -무슨 기간이라고요? (프랜시스는 내 억양 때문에 잘 알아듣지 못했고, 전차 내부는 시끄럽다.) -캐서롤 기간이요. - 아, 전 좋았어요. 그 시간이 계속됐더라면, 휠씬 더 길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아요. 지금이 캐서롤 기간이었으면 좋겠어요. - P16
케이티가 자살하고 20일 뒤에 프랜시스가 제출한 12학년 문예 창작 과제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들이나온다. 그 애의 입에서 느껴지던 맛을 잊지 못할 것이다. 아직도 그 애가 마지막으로 내쉰 숨결의 맛이 느껴진다. - P17
그가 나와 대화를 나누는 두 시간 동안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인 건 딱 한번, 대화의 주제가 그해의 문예 창작 과제로 옮겨 갔을때다. 그해에 프랜시스가 쓴 글, 그리고 프랜시스와 같은 반이었던 다른 두 여학생- 그중 한 명은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다-이 쓴 글 이야기가 나오자 앤은 눈물을 참지 못한다. - P17
동유럽에 속하는 어딘가 (그곳이 어디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를 떠나 이 세계로 오면서 한 가지 느낀게 있다면, 우리가 와서 살게 된 이 오스트레일리아라는 세계에서는 언어의 힘이라는 게 느껴질 때가 별로 많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그건 괜찮다. - P18
어쩌면 완전히 엉뚱한 곳들만 들여다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보고 있지 않았던 어떤 남학생들과 여학생들은 자신의 가장 내밀한 이야기를, 언어로는 다룰수 없다고 스스로 판단한 이야기를, 자신의 심장 박동을 떠내서 과제로 제출하고 있었다. - P18
모르는 게 당연하다. "11학년 아이들한테는 글로 쓰고 싶은 정말로 특별한 일이 있다면 12학년이 될 때까지 아껴 두라고 해요." 앤은 말한다. "그때가 돼서 어떤 진실에 관해 글을쓰면 그 일이 글이 되어 나오거든요. 그리고 아이들 대부분은 정말로 그걸 그때까지 아껴 둔답니다." - P19
프랜시스는 앤과의 영어 수업을 제외하고는 마지막 학년의 어떤 수업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다음 해에 12학년 영어를 배우게 된 아이들은 케이티의 동급생들이었고, 그 애들은 <룩 보스 웨이즈>와 완전히 거리를 두었다. 한편, 프랜시스네 반 아이들은 케이티가 죽은 뒤로 입을 다물었다. - P20
멜버른에 있는 또 다른 학교 교사인 모니크는 7학년 때부터 가르쳐 왔던 브린이라는 11학년 남학생을 자살로 잃었다. 프랜시스와 모니크는 서로 모르는 사이다. 앤 또한 모니크를 알지 못한다. 브린의 시신을 발견한 사람은 모니크가 아니었다. - P21
기억이 갑자기 덮쳐 오는 느낌이었다. 모니크는 브린에 대해 설명해 준다. 주니어 스쿨² 시절 학교대표, ‘개성 있고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아이‘, 외동이자 유일한 손주, 태국에서 불교 수도승들에 둘러싸여보낸 유년기. 너무나 교묘하게도 모두에게 작별 인사를하는 데 성공한 그 아이는 자기 장례식에서 틀 선곡표까지 짜 놓았다. - P21
티어스포피어스 Tears for Fears의 「미친 세계 Mad World」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말해 보세요 제가 주는 교훈이뭘까요? 제 속마음을 알아차려 보세요. 대화를 나누는 동안 모니크는 캐서롤 이야기를 꺼낸다. - P22
모니크가 캐서롤을 선호하는 타입이 아니라는 건 이제 분명해 보일 것이다. 그의 몇몇 친구가 가족을 잃었을 때,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2주 늦게 꽃을 보냈다. - P22
고등학교에서 애도를 한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일일까. 모두가 모두를 쳐다보고 있는 그곳에서 말이다. 거의 모두가 말도 안 될 만큼 연약하다. 친구들은 적들보다 자주, 그리고 더 전문적으로 당신의 마음에 상처를 입힌다. - P23
프랜시스는 12학년 때 좋은 성적을 받았다고, 그건 사실이라고, 하지만 그 해에 뭘 하며 시간을 보냈는지는전혀 모르겠다고, ‘그 일‘을 다시 떠올린 순간들만 기억에 남아 있다고 이야기한다. (잠깐, 여기서 프랜시스와나는 어제 처음 만나 막 대화를 시작한 사이라거나 그런 건 아니다.) - P24
그는 ‘엉망‘에 이어 ‘가짜‘라는 말을 한다. 우리는 ‘가짜‘라는 말을 좀 더 깊이 파고들어 본다. 아마도 잘못 고른 말일 것이다. 프랜시스가 말하려는 건 그가 케이티를 보호해야만 했다는 것이다. - P25
프랜시스는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아 주기를 바랐다. 나는 말한다. -당신이 언젠가 쓰겠다는 그 책 말인데요, 논픽션이 될까요? 아니면 소설로 바꿀 생각인가요? -아, 아뇨. 전 소설이 싫어요. 성적이 최악이었던 과목이 소설이에요. 대학에서 받은 성적 중에서 가장 낮은 점수였어요. 저는 항상 논픽션 쪽이었어요. 그리고 그 책은 그냥 회고록이기만 한 건 아니고………… 좀 더깊은 문제들도 섞어서 쓰고 싶어요. - P25
나는 프랜시스에게 잠깐 이야기를 들려준다. 형제자매를, 친구를, 자녀를 자살로 잃은 다른 사람들이 쓴 책들에 관한 이야기다. - P26
남동생이 목을 매 자살한 존 니븐은 자살을 핵폭탄에 비유하는데, "믿을 수 없을 만큼 강력한 반감기와 함께 연쇄 반응이따라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 P26
프랜시스가 고개를 돌리고 있다는 게 아니다. 언제 그 일을 직시할지는 그가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프랜시스가 그 책을 쓸 생각을 여전히 갖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 P27
"놀랄 만큼 예쁘고, 인기도 많고, 아무도 막을 수없고, 여기저기 참여하는 일도 많은 아이였어요. 엄청나게 똑똑하기도 했고요." 프랜시스가 말한다. "그리고 웃기기도 잘했어요. 연예인 같고 리더 같은 타입이었죠." - P28
케이티의 남자 친구가 자살한 다음날- 케이티 자신이자살하기 5주 전-케이티는 <오스트레일리안 아이돌>의 2차 예선 오디션에 참가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그날케이티가 보여 준 묘기는 뒤로 공중제비를 돌면서 원소주기율표 전체를 읊는 것이었다. - P28
남자 친구는 케이티보다 나이가 많았고, 더 이상 학교에 다니지 않았고, 직업도 없었으며, 케이티의 부모님은 그를 인정해 주지 않았다. ㅣ - P29
5월의 어느 날 저녁, 케이티와 남자 친구는 11학년 무도회에 함께 갔고, 그 뒤에 케이티가 관계를 끝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 친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한 대화가 케이티와 한 전화 통화였다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 P29
케이티에게는 애도할 공간 역시 주어지지 않았다. 그의 자살로 케이티는 부서져버렸다. 케이티는 곧바로 자살 감시 대상자가 되었다. - P29
<오스트레일리안 아이돌> 오디션장의 카메라들은 케이티를 향하고 있었다.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고있는 케이티. 총 여덟 시간이 걸린 녹화. 같은 반 학생이었던 누군가는 케이티에게 전화를 걸었던 기억을 이렇게 떠올린다. - P30
심지어 둘은 목소리도 비슷했다. "전 녹음된 제 목소리를 듣는 게 싫어요. 케이티랑 너무 똑같거든요. 꼭 그 애가 말하는 것 같아요." 눈부시고 오차 없는 닮음이 넷 모두를 엮어 놓고 있었다. - P31
케이티에 대해 알게 된 그 여성은 시드니로 날아가 8시간 분량의 오디션 영상에서 케이티가 나오는 장면만 하나하나 잘라편집했고, 그렇게 만든 테이프를 프랜시스와 가족에게보냈다. 프랜시스는 그 테이프를 딱 한 번 보았고, 그 뒤로는 5년간 손도 대지 않았다. - P31
브린은 형제자매가 없었지만 친구는 많았다. S는 7학년이 끝날 무렵 브린의 학교에 전학 온 이후로 브린의 절친한 친구로 지내 왔었다. - P32
그날 S의 부모님은 집에 없었다. S는 할머니에게전화했다. 할머니가 집에 오셨다. 그 뒤로는, 특히 처음몇 주 동안은 기억이 흐릿하다. 꼭 가야 할 필요는 없었지만 S는 학교에 갔다. 학교는 그냥 가만히 있기에 좋은곳이었다. - P32
(전략), 우리가 브린을 잃었을 때 저는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장소에 있었던 것 같다고요. 그러자 실내가 조용해졌어요. 사람들이 고개를끄덕이고 있었고요. 무언가 말하기로 한 게 잘한 결정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죠." - P33
이후 몇 해 동안은 브린의 생일이되면 한 무리의 아이들이 모이곤 했다. 그들은 가끔 브린의 유골이 뿌려진 숲으로 피크닉을 가서 브린에 관한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 P33
모니크는 아이들이 몇 년 전에 자살한 남학생에대해 물으면 그 이야기를 들려준다. 만약 교실로 걸어들어온 누군가가 경솔하게도 "아, 그냥 자살하고 싶네" 하고 큰 소리로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다른 학생들이 "쉿, 선생님 앞에서 그런 말 하면 안 돼" 하고 속삭일 것이다. 모니크 주위의 학생들은 알고 있다. - P34
"리사," 내가 말한다. 리사는 내가 학생들을 자살로 잃는 학교들에 대해, 또 그 이야기를 쓰고 싶은 내 마음에대해 처음으로 이야기를 나눈 사람이었고, 이제 우리는친구가 되어 있다. "자살이 학교에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인가요?" - P35
"리사, 그런데 학교가 어떻게 어린 영혼들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을까요?" 나는 묻는다. "그 아이들은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모르고, 죽으면 끝이라는 것도모르고, 혼란에 빠져 있고, 가끔은 도움을 청하는 방법조차 모르잖아요. (후략)." - P35
연민. 그 말에 나는 놀란다. "학교도 그런 연민의 감정을 가질 수 있어야 해요." 리사가 말한다. "학교 스스로에 대해서요. 그런 용서가 필요해요." - P36
연민과 용서, 그 두 단어는 ‘꺾이지 않는 마음, 힘을 합치기, 역경을 극복하기, 재건하기, 가치의 공유, 미래를 위한 비전‘처럼 여기저기서 요란하게 소리치는 구호들이나 ‘지역 사회‘처럼 지원금 신청서에나 나올 듯한 경직된 느낌의 단어와는 전혀 닮은 데가 없다. - P37
브린이 자살하기 몇 년 전, 브린의 학교에서는스티븐이라는 10학년 남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근처 기차역으로 가서 달려오는 기차 앞에 서 있었던것이다.
저는 기차역으로 가야만 했어요. 그 플랫폼에 서서 봐야 했죠. 그러고 나서 생각해 봐야 했어요. ‘어떤기분이었기에 그런 일을 한 거니?‘ 저는 기차가 들어오는 걸 지켜봐야 했어요." 어맨더는 말한다. "머릿속에 있던 그 끔찍한 이미지를 몰아내려고 애를 써야 했죠." - P38
브린이 생을 마감했을 ㅋ대눈 새로윤 교장이 부임한 뒤였는데, 그 새 교장은 자신의 감정이든 남의 감정이든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강의실에 들어간 교사들은 일어난 일을 돌려 말하지 않고 사실 그대로 진술해 놓은 글을 소리 내 읽었다. - P39
심리학자 마디 휘틀라 Mardic Whitla가 오스트레일리아의 학교들을 위해 엮은 위기 관리가이드북은 ‘참사/위기‘라는 포괄적인 이름을 가진 사건들의 뭉텅이에서 ‘자살‘을 분리해 냈다. 자살은 그 자체로 하나의 위기가 되었고, 자신만의 장을 따로 부여받았다. - P39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척할 수는 없어요." 마디 휘틀라는 내게 말한다. "교장은 책임을 져야합니다. 부모들은 학교가 계획하고 있는 일을 알아야하고요." 여기서 부모들이란 살아 있는 학생들의 부모들을 뜻한다. - P40
이런 변화들은 자살을 비밀스럽게 다루는 태도로부터 한발 멀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학교 측은 또한자력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압박으로부터, 또한 너무 많은 문제에 포위당해 있다는 느낌으로부터도 멀어졌다. - P40
이 ‘관리‘라는 개념은 휘틀라의 책이 나온 지 3년뒤에 발행된 여러 권의 연방 보건부 지침서 속으로 온통 퍼져 나갔다. - P41
이런 일이 가능해졌다. 속삭임과 소문만이 가득한 학교에 입학했다가 모든 걸 드러내는 분위기가 된학교를 졸업한 다음, "오스트레일리아 정신보건부 장관이 ‘자살 생존자들의 이야기는 말해져야 한다‘고 주장하다"라는 뉴스 머리기사가 조금도 놀랍지 않게 느껴지는새로운 세계로 들어서는 것.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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