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 같은 병에 걸리는 것은, 인간의 생명 활동의 구조를 어느정도 아는 입장에서 보면 피할 수 없는 병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아니,
오히려 생명을 유지해가기 위해서는 필요한 병이라고도 할 수 있 지 않을까. 인간은 다른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노화하고 부패해갈 운명이다. - P125

2 『마크로풀로스 사건』

그러나 20세기, 특히 1,600만 명의 사망자를 낳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불로불사 욕망은 예부터 전해져온 불로불사 전설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는 듯하다. 인간이, 특히 채 스물도 되지 않은 청년들이 이렇게 전쟁터에서 찢어지고, 부서지고, 썩어 풍화되어간 전쟁은 유사 이래 존재하지 않았다. - P126

인간의 생명보다 몇 배 이상의 내구성을 지닌 방대한 제작물들에 둘러싸여 지내는 일 상생활에 인간들도 점점 익숙해졌다. 인간 자신도 예외가 아니다.  - P126

세계대전 이후 기존의 생사관이 전복되고 재구축되었는데, 이것은 실로 자연관, 동물관, 인간관, 세계관의 붕괴와 재생이기도 하다. 이 거대한 문제에 정면으로 달려든 문필가들은 많지 않은데, 내가 보기에는 체코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카렐 차페크(1890-1938)가 그 소수의사례 중 한 사람이다.⁵ - P127

5 『유레카(ユリイカ))』의 1995년 제27권 12호의 증면특집 ‘카렐 차페크(VL.+%7)‘에는 차페크의 연보와 주요 저작에 대한 해제가 실려 있어 편리하게 전체상을 그려볼수 있다. 또한 이지마 이타루(飯島) 『카렐 차페크: 작은 나라의 큰 작가(方.
7-小国大눋古作家)』(凡, 2015년)도 이 글의 구상을 가다듬는 데많은 참고가 되었다. 체코를 제외하면 차페크가 가장 많이 읽히는 나라가 일본이라는 것 ,石川夫차페크의 팬이 된에도 흥미로운 현상이지만, 그것은 번역자들, 栗栖継, 飯島周, 田등)의 방대하고도 꼼꼼한 작업에 의한 결과다. 그들의 번역 작업 덕분나는 이번 글을 쓰면서 그러한 점을 끊임없이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 P369

차페크가 서른두 살 때 쓴 희곡 「마크로풀로스 사건(Vec Makropulos,
1922)은 불로불사 전설에 대부분 따라붙는 애처로움을 충분히 계승하면서도 20세기의 현대인이기에 더욱 품기 쉬운, 자신의 내구성 대한에번민도 그려져 있는 희극이다.⁶ - P128

6 外氷 (カレルチャペック)(マクロプロス事件)」「氷PER, A, 2006, pp. 155-229. - P370

3 더 이상 신의 미숙아가 아니라

이 희곡에서 마크로풀로스의 비약에 가장 매료당하는 사람은, 콜레나티 변호사의 법률사무소에서 일하는 법무사로 프랑스 혁명의 역사를 연구하는게 취미인 비테크다. 서두에서의 비테크는 유산을 둘러싸고 100년 동안이나 계속된 재판이 마침내 종결되는 날이 온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이다. - P130

이상과 같은 근거하에 제안된 비테크의 민주주의적 해결 방안 이외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었다. 1회 복용에 수명을 10년 연장시켜주는 약품을 제조하여 그것을 판매하고자 하는 자본주의적 해결 방안,
에밀리아의 내연 남편이었던 요제프 페르난트의 피를 이어받은 자만복용할 수 있게 하자는 민법적 해결 방안, 그리고 선별된 귀족만 복용하여 장수 귀족계급을 확립하고 그 계급이 "벌레 같은 평범한 자들"을 지배하게 하자는 새로운 신분제도의 창출 방안. - P132

인간과 동물 사이에 있는 문턱은 의외로 낮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교체되기도 한다는 것은 『곤충 극장』(1921. 형 요세프***와의 공저)"과 『도롱뇽과의 전쟁』(1936)"의 테마다. 한편 노동을 버리고더 큰 자유를 광적으로 찾아 헤매는 인간은 『로봇: 로섬의 유니버설로****봇』(1920)과 압솔루트 공장』(1922)도롱뇽과의 전쟁의 주인공들이 공유하는 특징이다. 그리고 인간의 영원한 미숙함에 대해서 - P133

하지만 비테크의 주장은 300년 동안 살며 ‘지루함‘에 시달린 에밀리아에 의해 일축당한다. "예술이라는 건요. 인간이 그것을 완벽히 해낼수 없는 한에서 의미가 있는 거예요." "인간을 더 높은 존재로 만들 수있을까요? 어떤 것이든 변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에밀리아의 경험론이 비테크의 관념론을 분쇄해버리는 대목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 P134

비테크가 말한 대로, 불로불사의 소원은 민주주의적인 시대이자 미래의 진보가 기대되는 시대에는 다양한 계층에 감염되어 증폭될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 한 가지, 이 균열을 메우는 것으로 반드시 등장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역시 프리드리히 프뢰벨이다. 프뢰벨이 발명한 나무블럭은 세계의 섭리를 반영하는 것임과 동시에 유아의 성장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 P135

육체가 자연을 향해 분해를 이룩해가는 과정이기에 작은 "변화"를민감하게 포착하고 그 변화에 공명하는 감각과 정신이 성장하는 것 아닌가. 빵 한 조각을 위해 악착같이 달려드는 것으로부터 분리된 "현명한지혜" 따위는 20세기 이후 더 이상 있을 수 없는 것 아닌가. 비테크와 에밀리아가 주고받는 대화는 그런 물음을 유발한다. - P135

4 메치니코프의 요구르트

20세기 이후 지구의 거주자들은 플라스틱과 콘크리트에서 배출되는 유독가스, 그리고 유독가스와 거의 동일한 성분의 농약⁸, 나아가 핵연료에 이르기까지 대량의 불로불사 물질에 둘러싸여 살기 시작했다.
과학 기술의 진보에 힘입어 쉽게 파괴되지 않는 안정된 것을 더욱 욕구하게 되었다. - P136

8 독가스와 농약이 쌍둥이 같은 관계에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후지하라 다쓰시(藤原辰史)「제1차 세계대전의 환경사(第世界大戰環境)」공익재단사학회(公益財団会2015년.
学환경으로부터 전쟁을 읽는다.環境戦争読心)』山川出版社재해와 - P370

이 태도는 차페크를 연구하는 연구자들뿐 아니라 본인도 인정하는 ‘상대주의‘ 따위가아니다. 차페크가 이 작품에서 최초로 불로불사에 맞서는 대항 전설을표현했다는 것, 즉 시간과 함께 늙고 죽어서 부패해가는 인간 쪽이 불로불사의 신선보다 자유로울 뿐 아니라 신선들보다 더 현명해질 수 있다고 하는 그런 대항 전설을 그려냈다는 것에는 어떤 의의가 있는 것일까? - P137

 20세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불로불사 전설은 요구르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장수를 가능케 해준다고 선전되는 방대한 식품과 약품에 의해 강화되어 왔는데, 차페크는노화를 과도하게 두려워하는 그런 인간들이 사는 시대, 머잖아 찾아올수도 있는 그 섬뜩한 시대에 맞서, 『마크로풀로스 사건』이라는 새로운전설을 미리 대치시키고 있었던 게 아닌가, 라고 나에게는 느껴지는것이다. - P138

5 인류는 언제까지 지속할까

스스로에게 그러한 질문을던진다는 것, 그것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와해되어버린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군주국의 거주자에게는 결코 이상한 질문이 아니었을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파국적인 사건을, 식량이 압도적으로 부족한 프라하 (한때는 히세로 이주하기도 했다)에서 여위고 병약한 상태로 어려움을 겪으며 체코슬로바키아의 독립까지 맞게 된 체험은¹¹, 비록 전쟁터에 나선 적은 없었다 해도 작품에 큰 영향을 끼쳤으리라는 점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¹² - P139

11 차페크는 전쟁 중 겪은 식량난으로 건강을 해치게 되어 1916년 8월에 부모님 계신 곳에서 요양을 한다. 이지마 이타루(島) 카렐 차페크(L7). PP. 228-evy229.
12 ‘생각지도 못한 전쟁이 발발했을 때, 카프카와 마찬가지로 건강상의 이유로 군대에 입대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전쟁은 그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그사이에 그의 사고방식도 저작도 완전히 변했다." 이반 클리마(7.711-7) 「카렐 차페크』 才益夫訳, 青社, 2003년, p. 17. - P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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