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클레빈저

병원 밖에서는 아직도 전쟁이 계속되고 있던 터여서 어떻게 보면 범죄 수사대 요원은 오히려 재수가 좋은 셈이었다. 사람들은 머리가 돌아 버린 덕택에 훈장이라는 보답을받았다.  - P25

(전략), 만일 턱이 깔때기 같고, 카우보이모자의 테두리처럼 큼직하고 시커먼 얼굴에 영원히 굳어 버려 지울 수 없을듯싶은 투실투실한 미소를 짓는 애국적인 텍사스인만 없었더라면 그는 마지막 심판의 날까지 병원에 눌어붙었을 것이다. - P25

"클레빈저, 자넨 사람들에게서 무엇을 기대하나?" 장교클럽의 소음보다도 더 큰 목소리로 던바가 짜증스럽게 반박했다.
"난 농담을 하는 게 아냐." 클레빈저가 고집스럽게 말했다.
"그들이 날 죽이려고 해." 요사리안이 그에게 차분하게말했다.
"자넬 죽이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클레빈저가 소리쳤다. - P26

 클레빈저가 정열적으로 신봉하던 원칙은 많았다. 그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들이란 누구를 의미하는 거야?" 그는 알고 싶어 했다.
"자네를 죽이려고 한다는 자들이 구체적으로 누구냐고?"
"그들 모두지." 요사리안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들 모두라니?"
"그들 모두가 누군지 자넨 모르겠어?"
"통 모르겠어." - P27

 그리고 그것이 재미있는 일이 아니기는 했지만, 그보다더 심한 일들도 얼마든지 있었다. 쥐가 난 사람을 눈 깜짝할 사이에 집어삼켜서는 사흘 후에 물을 잔뜩 먹이고 부풀려 푸르뎅뎅하게 썩히고, 차가운 콧구멍에서 물을 줄줄 흘리는 시체로 만들어 해안으로 돌려보내는 잔잔한 푸른 바다를 앞에 놓고, 우람한 산들을 등지고 피아노사의 천막에서 건달처럼 살아간다먼 재미있을 까닭이 조금도 없었다. - P27

요사리안의 바로 옆 이인용 천막에서는 땅콩 과자를 좋아하고, 요사리안의 천막에서 죽은 사람에게서 훔친 45구경 권총의 커다란 총알로 밤마다 조그만 들쥐에게 총질을해대는 하버마이어가 혼자 살았다. - P28

사실 요사리안의 도움을 받지 않고 건축된 장교 클럽이 많기는 했지만, 그는 피아노사에 있는 것을 가장 큰 자랑거리로 여겼다. 그 건물은 그의 결단력을 과시하는 튼튼하고 복잡한 기념비였다. 요사리안은 그 건물이 완성될 때까지 도우러 가지 않았으며, 후에 그는 자주 그곳으로 찾아가 크고, 멋지고, 얼기설기 널빤지로 엮은 건물을 보면서무척 흐뭇한 기분을 느끼곤 했다. - P29

그와 클레빈저가 서로 미쳤다고 마지막으로 싸웠을 때는 장교 클럽의 식탁에 네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애플비가 항상 이기는 크랩 테이블 근처의 뒤편에 자리를 잡았다. 애플비는 탁구와 마찬가지로 크랩 솜씨가 훌륭했고, 그의 탁구 실력은 누구도 따라오지 못했다.  - P30

"애플비는 여기에 오지도 않았단 말야." 클레빈저가 의기양양하게 요사리안을 일깨워 주었다.
"누가 애플비 얘기를 했어?" 요사리안이 물었다.
"캐스카트 대령도 역시 오지 않았고."
"누가 캐스카트 대령 얘기를 했어?"
"그럼 자네가 싫어한다는 그 개새끼가 누구야?"
"여기 어디 개새끼가 있나?"
"자네하곤 다투지 않겠어." 클레빈저가 선언했다.  - P31

"그놈들이 내 음식에 두 차례나 독을 넣었어. 안 그래?
페라라하고 볼로냐 대공방전 때 그놈들이 내 음식에 독을넣지 않았단 말야?"
"그들은 모든 사람들의 음식에다 독을 넣었어." 클레빈저가 설명했다. - P31

"그리고 그건 독약도 아니었어!" 점점 더 혼란을 느끼자계속 물고 늘어지면서 클레빈저가 열을 올려 소리쳤다.
요사리안은 자기가 기억하는 바로는 지금까지 항상 누군가 그를 죽이려고 일을 꾸미고 있었노라고 클레빈저에게참을성 있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설명했다. - P32

그렇지만 요사리안은 스스로 클레빈저에게 설명했듯이,
자신이 기억하는 한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으므로 지금도자기가 옳다고 생각했다. 그의 눈에 띄는 모든 사람은 미친놈들이었으며, 자기처럼 지각 있고 젊은 분들만이 그 어마어마한 광기의 와중에서 균형을 부여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의 목숨이 위태함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는 곧 손을써서 그 일을 완수해야 했다. - P34

(전략) 그는 천막 앞 높직한 동글의자에 앉아서 햇볕을 쬐는 다네카 군의관을 보았다.
"오십 회 출격이라니." 머리를 저으면서 다네카 군의관이 그에게 말했다.
"대령님은 오십 회의 출격을 원한다는구먼."
"하지만 난 마흔네 번밖에 안 나갔어!"
다네카 군의관은 그의 얘기를 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렸다. 그는 새처럼 생긴 구슬픈 남자였으며, 얼굴은 주걱 같았고, 이목구비는 몸치장을 잘한 쥐처럼 말끔하고 섬세했다. - P35

3

하버마이어

요사리안이 병원에서 돌아왔을 때 그의 천막에는 오르와죽은 사람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요사리안의 천막에서사람이 죽었다는 것은 골칫거리였고, 그래서 비록 한 번도본 적은 없었지만 그는 그 남자를 미워했다. - P36

"여기서 기름이 새요." 오르가 말했다. "그래서 고치려고 그래요."
"제발 그만둬" 요사리안이 말했다. "자네가 그러는 걸보면 내 마음이 불안해지니까."
"난 어렸을 때 능금을 볼에다 넣고 하루 종일 걸어서 돌아다니고는 했어요." 오르가 대답했다. "한쪽에 하나씩요." - P37

오르는 천막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는 쉬지 않고 일을 계속하면서 수도꼭지를 뜯고, 작은 부품들을 모두조심스럽게 늘어놓고, 마치 전에는 비슷한 것을 본 적이없기라도 한 듯 숫자를 헤아리고 한없이 살펴보고, 그런다음에는 작은 기계를 자꾸자꾸 재조립하면서도 참을성이나 흥미를 조금도 잃지 않고 피로한 기색도 보이지 않았으며, 일을 끝낼 기미가 전혀 없는 듯했다. 요사리안은 땜질을 하는 그를 보고, 만일 그가 그 짓을 당장 그만두지 않는다면 자신이 냉혹하게 그를 살해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 P37

"무엇 때문에 볼에다 능금을 넣고 돌아다녔지?" 요사리안이 다시 물었다. "내가 물어본 건 그거야."
"칠엽수 열매보다 모양이 훌륭했기 때문이에요." 오르가대답했다. "지금 그 얘기 했잖아요."
"기계밖에 모르는 쥐눈깔에 후레자식 같으니라고. 왜 볼에다 능금이건 뭐건 아무것이라도 넣고 돌아다녔느냔 말이야." - P38

"한쪽 뺨에 하나씩요." 오르가 말했다.
"왜?"
오르가 말을 물고 늘어졌다. "뭐가 왜예요?"
요사리안은 미소를 지으면서 머리를 젓고 대꾸하지 않았다.
"이 밸브 정말 웃겨요." 오르가 큰 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뭐가?" 요사안이 물었다.
"내가 원하던 것은......."
요사리안은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았다. "맙소사!
도대체 뭣 하려고 그랬는지…………." - P39

"왜 손에다 고무공을 하루 종일 쥐고 돌아다녔어?"
"
"그건 고무공이...………." 오르가 말했다.
"......능금보다 좋았다 이건가?"
오르는 머리를 저으면서 코웃음을 쳤다. - P40

요사리안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그래봐야 소용이 없었다. 그는 오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았고, 그래서 그때 그가 무엇 하려고 뺨의 살을 늘어뜨리려고 했는지 그 이유를 전혀 알아낼 수 없으리라는 사실도 알았다. - P40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알아낼 수가 없었고, 차양을 친 창문과 하나뿐인 등불이 달린 널따란 휴게실로부터양쪽으로 뻗어 나간 좁다란 복도를 가운데 두고 마주 보는수많은 침실들을 갖춘 광활하고도 끝없는 매음굴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무엇이나 다 알고 있었음 직한 킬킬대던 늙은이와 혀를 차던 늙은 여자까지도 그것을 알아낼 수는 없었다. - P42

요사리안은 계속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때 로마에서 당신이 밥맛없다고 하던 그 여자가 구두뒤축으로 내 머리를 때렸던 일 생각나죠?" 오르가 물었다.
"그 여자가 왜 자꾸만 나를 때렸는지 알고 싶어요?"
그 여자가 십 분 내지 십오분 동안이나 그의 머리통을계속해서 두들겨 팰 만큼 화가 났으면서도 그의 발목을 잡고 그의 골이 쏟아져 나갈 정도로 휘둘러 대지는 않을 만큼만 약을 올릴 만한 무슨 짓을 그가 했는지는 아직도 상상하기가 불가능했다. - P43

(전략)
USO 위문단을 보낸 사람은 그의 사령부를 로마로 이동시키고 드리들 장군을 모함하는 틈틈이 따로 할 일도 전혀없었던 P.P. 페켐 장군이었다. 페켐은 청결함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는 장군이었다. 그는 재빠르고, 상냥하고, 상당히 치밀한 장군이었고, 적도의 둘레 거리를 알고 있었으며 ‘증가(increase)‘라는 단어를 써야 할 때마다 ‘강화(enhance)‘라고 잘못 적었다. - P44

자기가 상실했을 지위를 되찾기 위해서 페켐 장군은 전보다 훨씬 많은 USO 위문단을 파견하기 시작했고, 카르길대령에게는 직접 나서서 그들에게 활기를 불어넣으라는 책임을 맡겼다.
그러나 요사리안의 부대에는 아무런 활기도 없었다. 요사리안의 부대에서는 하루에 몇 차례씩 타우저 병장에게엄숙한 표정으로 찾아가서 혹시 그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이 내려오지나 않았는지 물어보는 사병과 장교의숫자만 늘어 갔다 - P45

페켐 장군의 골칫거리를 도맡아 해결하는 카르길 대령은 억지를 잘 부리는 허여멀건 남자였다. 전쟁이 터지기전에 그는 회사에서 눈치 빠르고, 마구 밀어붙이는 적극적인 시장 개척 담당 간부였다.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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