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대신 사회의 수를 계산해도 똑같이 으스스한 수치가 나온다. 1978년 인류학자 캐럴 엠버가 계산한 바에 따르면, 식량 수집 사회의 90퍼센트가 적과 교전 중이며, 64퍼센트가 적어도 2년에 한 번씩은 전쟁을 치르는 것으로 나타났다.⁷³ 심지어 90퍼센트라는 수치도 과소평가된 것일 수있다. - P114
73. Ember, 1978. Ghiglieri, 1999; Keeley, 1996; Knauft, 1987; Wrangham Peterson, 1996참조 - P807
수세기 동안 야만적인 야만인이라는 상투적 문구는 토착 부족들을 청소하고 그들의 땅을빼앗으려는 구실로 이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토착 부족에 대한 큰범죄를 막을 목적으로 그들을 평화롭고 친환경적인 모습으로 잘못 그려서, 대학살은 희생자가 좋은 사람들일 때에만 나쁘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확실히 불필요한 일이다. - P115
많은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수학적 모델들이 입증하는 바에 따르면, 협동자들의 뇌에 인지적·정서적 기능이 올바로 조합되어 있는 한에는 진화론적 관점에서는 무엇보다 협동이 유리하다.⁷⁶ 따라서 투쟁은 인간의 보편적 특성이 아니며, 폭력 혁명도 마찬가지이다. 지구상의 모든 민족은 그 모든 더럽고 잔인한 동기와 함께 친절하고 온화한 동기들도 무수히 보여준다. - P116
76. Axelrod, 1984; Brown, 1991; Ridley, 1997; Wright, 2000 - P807
낭만주의 정치 사상가들도 같은 반응을 보였는데, 인간 본성이 불변이라면 개혁의 모든 희망이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인간이 핵심까지 썩어 있고 어떤 노력을 해도 더러워지기만 한다면 누가 이 세상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려고 노력하겠는가? - P286
영원히 사악한 인간 본성에 대한 두려움은 두 가지 형태를 띤다. 하나는 현실적 두려움이다. (중략). 또 다른 하나는 보다 깊은 근심인데, 이것은 선천적(자연적)인 것이 좋은 것이라는 낭만주의적 믿음에서 비롯된다. - P286
빈 서판을 둘러싼 다른 믿음들처럼 불완전함에 대한 두려움 또한 어느 정도는 20세기의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 P286
전쟁은 고무적이 고고상한 것이며, 인간과 국가의 자연스런 열망이라 생각했다. 이러한 믿음으로 세계 지도자들은 몽유병자처럼 1차 대전과 똑같은 악몽에 빠져들었고, 수백만의 사람들이 대학살의 교훈을 잊고 열광적으로 입대했다. 그 전쟁에 뒤이어 찾아온 환멸이 베트남전 반대 운동으로 정점에 이른 후부터 서구의 감수성은 전쟁을 찬양하는 분위기로부터 꾸준히 뒷걸음질을 쳤다. - P287
이기적인 성 충동이 우리의 본성과 맞닿아 있다는 개념에 대한 적대감은 페미니즘에서 비롯되었다. 수천 년 동안 여성들은 성적 차이와 관련된 전제들과 그로 인한 이중적 잣대로 고통 받아 왔다. 법률과 관습에서는 남자들의 연애 행위보다 여자들의 연애 행위를 더 가혹하게 처벌했다. - P288
우리는 7장에서 남성이 여성보다우연한 섹스를 더 많이 원한다는 주장이 좌파와 우파 모두에 의해 비난받고 있음을 보았다. 강간은 남성적 성욕의 결과라는 내용을 담은 랜디손힐과 크레이그 파머의 강간의 자연사(A Natural History of Rape)』에는 양쪽 모두에서 훨씬 더 강력한 포격이 가해졌다. - P288
정치적 의미를 띤 세 번째 악덕은 이기심이다. 만약 사람이 다른 동물들처럼 이기적 유전자의 지배를 받는다면, 이기심은 불가피하고 심지어 미덕이 될 것처럼 보인다. - P288
자본주의의 해설가 스미스는 사람들이 이기적으로, 즉 자신의 필요에따라 노동을 제공하고 능력에 따라 돈을 받는다고(지불인도 이기적이기때문에) 가정한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의 건축가 마르크스는 미래의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정육업자, 양조업자, 제빵 업자가 자애심이나 자기 실현 의지 때문에 우리에게 저녁을 제공할 것이라 가정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슨 이유로 필요가 아니라 능력에 따라 기쁘게 노동하려 하겠는가? - P289
인간이 이기심에 이끌리는 성향이 있다는 주장을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 자멸적인 행동 패턴이 불가피하거나 최소한 강제적 수단으로만 억제될 수 있다는 의미로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 P290
우리는 방금 자연주의적 오류, 즉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좋은 것이라는 믿음을 살펴보았다. 사람들은 그믿음이 사회 다윈주의 때문에 결정적으로 더럽혀졌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그것은 1960년대와 1970년대의 낭만주의에 의해 부활했다. 특히 환경 보호론은 종종 자연 환경 보호를 선전하기 위해 자연 곳곳에 산재하는 끔찍함을 무시하고 그 미덕만을 강조한다. - P290
자연주의적 오류는 즉시 정반대에 놓인 도덕주의적 오류, 즉 도덕적인 특성은 반드시 자연에서 발견된다는 믿음으로 이어진다. 즉 "존재" 가 "당위"를 의미할 뿐 아니라, "당위"가 "존재"를 의미하게 된다. - P290
자연주의적 오류와 도덕주의적 오류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허수아비가 아니다. 그들 중에는 저명한 학자와 작가들이 포함되어 있다. - P291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스티븐 제이 굴드는 동물의 강간과 관련된 논의에 대해 언급했다. "새들의 선천적 행동을 비정상적인 인간 행동을 가리키는 낡은이름으로 잘못 묘사한다면, 진짜 강간 인간의 강간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다윈주의적 장점을 가진 자연적 행동으로 비쳐질 수 있다."⁷ - P291
7. Gould, 1995, 433. - P8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