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영원히 꿈속을 헤매는 사람들

자아와 일상생활에서 정서가 하는 역할 - P187

감정이라는 것에 관해 알아내려면 우리는 얼마나 더 파고들어가야할까? 감정의 실체는 무엇일까?! - 버지니아 울프

영원히 나는 내가 낯설 것이다.
- 알베르 카뮈 - P188

니컬러스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여동생이 태어났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 P190

부모가 둘 다 중독자였다. 지붕공사나 건축현장 일을 하던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자였고, 전업주부였던 어머니는 술고래에다 옥시콘틴과 딜라우디드 같은 마약에 중독되어 있었다. - P191

아홉 살이 되었을 때, 니컬러스와 여동생은 재혼한 어머니에게돌아갔다. 양아버지와 함께 있다고 해서 나아진 것은 없었다. 이부부는 크랙 코카인 같은 더 심각한 마약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항상 소리 지르고 싸웠다. - P191

 한번은 새벽 3~4시쯤,
부모의 침실에서 큰 소리가 나는 바람에 니컬러스와 여동생이 잠에서 깼다. 부모의 방 쪽으로 걸어간 니컬러스가 여동생에게 문 앞에서 기다리라고 당부한 뒤 방으로 들어가보니 양아버지가 낡은 텔레비전 쪽으로 어머니를 밀쳐 텔레비전이 넘어져 있었다. - P192

열 살인가 열한 살쯤 되었을 때, 니컬러스는 짧고 순간적인 해리 dissociation (현실에서 잠시 분리되는 것처럼 일시적으로 의식이 단절되는 현상. 해리장애에는 과거에 다중성격장애라고 불렸던 해리성 정체감장애, 해리성 기억상실증, 이인증 등이 포함된다-옮긴이)를 경험하기 시작했다. 10초 정도 지속되었다고 했다. - P192

열두 살이 되자 이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 방에 있던 니컬러스와 여동생은 부엌 쪽에서 나는 비명소리를 들었다. 숙모의 목소리였다. 숙모는 어머니와 함께 코카인을 흡입하고 있었던 모양인데, 니컬러스는 그러한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는 어머니가 부엌 바닥에 누워 경련을 일으키는 장면만 기억했다. - P193

환자들이 묘사하고 있는 것을 오늘날에는 ‘인증‘이라고 부른다. 이인증이라는 말은 1890년대에 처음 등장한 정신의학 용어로,
프랑스의 심리학자 뤼도비크 뒤가 Ludovic Dugas가 "정신활동에 정상적으로 동반되는 느낌이나 감각이 결핍되어 보이는 자아의 상태"⁵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했다. 뒤가는 스위스의 철학자 헨리프레데리크 아미엘Henri-Frédéric Amiel의 일기에서 우연히 이 용어를 접했다. - P195

5 다음 자료에서 인용. Dawn Baker et al., Overcoming Depersonalization &Feeling of Unreality (London: Constable and Robinson, 2012), 24. - P386

21세기 독일의 정신의학자 카를 야스퍼스는 사람이 이인증을 느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특히 명료하게 기술했다. 우리 마음에 드러나는 모든 것은 "인식이든 신체적 감각이든, 기억이나 생각 또는 느낌이든, ‘나‘에 대한 것이거나 ‘사적으로 갖고 있는 것‘
이거나, 아니면 스스로 하고 있는 ‘내 것이라는 특정 측면을 가진다.⁷ 이것을 ‘인격화 personalization‘ 라는 용어로 설명할 수 있다. - P195

7다음 자료에서 인용. Sierra, 앞의 책, 17. - P386

1970년대 중반, 아이오와 의과대학의 러셀노이스 주니어 Russell Noyes Jr.와 로이 클레티 Roy Kletti는 대학신문에
"생명을 위협받는 위험한 순간에 무엇을 경험했는지 설명"해줄수 있는지 광고를 냈고, 그에 응답한 61명을 인터뷰했다. - P196

그들의 인터뷰에 근거해 노이스와 클레티는 이러한 결론을 내렸다. "이인증을 극한의 위험을 주는 위협이나 관련 불안에 대한방어로 해석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듯하다. (…) 사람들은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을 만나면 관찰자가 되어 눈앞에서 벌어지는 위험에서 자신을 효과적으로 제거한다. 이러한 분리 행위는 중요한 적응적 메커니즘으로 보이며, 이인증 상태에서 뚜렷하게 발견된다."⁹ - P196

9.Russell Noyes Jr. and Roy Kletti, "Depersonalization in Response toLife-Threatening Danger," Comprehensive Psychiatry 18, no. 4 (July/August 1977): 375-84. - P386

그런 신경생물학적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면, 남들보다 조금 더 쉽게 그런 상태로 빠져드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를 타고난 경향 (본성)이라고 하자. 그러면 환경 (양육)은 그것을 일부 들추는 역할을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아동기에 학대를 받아 생긴 트라우마는 이인증을 유발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바로 니컬러스에게 일어났던 일처럼 말이다. 마약 또한 그럴 수 있다. - P197

세라는 날씬하고 체구가 작았지만, 30대 초반에 벌써 온라인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활발하고 열정적인 여성이었다.¹⁰ 
(중략) 횟수를 정확히 셀 수 있을 만큼 마리화나를 거의 피우지 않았던 세라 역시 그날은 함께했다. 일요일 아침 그녀의친구가 세라에게 애더럴을 권했다. 대개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치료하기 위한 각성제로 처방되는 애더럴은 첨단기술 스타트업의 치열한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집중력을 높여 성과를 올리기 위한 (후략) - P197

10 이름과 신변에 관한 세부 사항은 수정해 적었다. - P386

수요일 아침까지도 나아지지 않았다. 아니, 실은 더 나빠졌다.
그녀는 울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때의 생각들을 떠올렸다. "젠장,
내가 죽은 건가? 지나온 삶을 돌아보는 건가? 이런 생각이 끊이지 않았어요. ‘여기서 빠져나가야겠어. 뭔가 이해할 수 없는 것 안에있어.‘ 극심한 공포에 빠졌죠. 끊임없이 나를 괴롭힌 건, 내가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어요." - P198

세라는 심리학자들이 ‘현실 검증 reality testing‘이라고 부르는 것을한 것이었다. 객관적 현실은 자각한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주관적 감각이 혼란스러워진 것이다. 그녀는 이 두 가지를 조화시키려고 계속 노력했다. - P199

목요일, 세라는 담당 간호사에게 전화했다. "약물이 아직까지 몸에 남아 있을 가능성은 전혀 없어요." 간호사는 물을 많이 마시고쉴 것을 권유했다. 금요일 아침, (나도 잘 아는) 친구 한 명이 세라를 만나러 왔다. 친구를 보자 세라가 무심결에 말했다. "금방 죽을까 봐 두려워." - P199

세라는 친구에게 계속 물었다. "내가 살아 있는 게 확실해? 내가 여기에 있어? 너 지금 여기에 있는 거지?" 친구는 세라를 안심시켰다. "응, 맞아. 우리는 살아 있어." 응급실 의사는 약물 때문이라고 하면서 (세라가 약물을 복용한지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 그런증상이 계속되는 것은 이상하다고 말하면서도) 신경안정제인 아티반을 처방한 뒤 집으로 돌려보냈다. - P200

세라는 안마사와 헤어지고 나서 아주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지난 6년간 아침마다 규칙적으로 요가를 하고 있었지만, 시간을 조금 더 늘려야 했다. 안마를 받고 난 다음 날 그녀의 기준으로는 좀무리를 했다. 요가를 연속 2시간이나 한 것이다. "요가수업 하나를마치고 집에 가려는데, 한 선생님이 말씀하셨어요. ‘좀 더 하셔야해요.‘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여전히 꿈속에 있는데 다른 수가 있겠어?‘ 그래서 더 있었어요. 기분이 조금 나아졌죠." - P201

몸이 자아의 기초라는 생각을 강하게 옹호하는 사람 중 하나가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 Antonio Damasio다. 그는 가장 최근 출간한 책 《자아가 마음이 된다Self Comes to Mind》에 이렇게 썼다. "이 책에 개진한 생각들 중 가장 핵심은 몸이 의식의 기초라는것이다."¹¹ - P202

11Antonio Damasio, Self Comes to Mind: Constructing the Conscious Brain(New York: Vintage Books, 2012), 21. - P386

뇌는 기본적으로 유기체가 먹고 마시고 움직이고 잘 때, 그 유기체를 돌보는 역할을 한다. 유기체는 내부 생리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유지될 때에만 생존할 수 있다. 이것들을 항상성 범위homeostatic limits라고 하고, 신체를 이러한 범위 내에서 유지시키는프로세스를 ‘항상성 homeostasis‘ (미국의 생리학자 월터 캐넌 WalterCannon이 정의한 용어¹²)이라고 부른다. - P202

12 "What is Homeostasis?," Scientific American, January 3, 2000, http://www.scientificamerican.com/article/what-is-homeostasis - P386

다마지오 가설체계의 다음 단계는 그의 용어대로 "자아가 될징후"¹³에 해당하는 ‘원형적 자아protoself의 출현‘이다. 원형적 자아는 우리 몸에서 좀 더 안정적인 측면(내장의 상태와 같은)들의 정신적 이미지들로 이루어진다. 다마지오는 지도를 만들고 이러한 이미지들을 일으키는 것에 관련된 영역으로 상부뇌간upperbrainstem을 꼽는다. - P203

13 Damasio, o, 22. - P387

원형적 자아 위에 구성되는 다음 층은 ‘핵심적 자아 core self‘다.
핵심적 자아는 원형적 자아와 그것이 외부 대상과 나누는 상호작용 간의 관계를 포착하는 뇌의 표상들로 구성된다. - P204

다마지오는 우리의 진화사에 핵심적 자아가 출현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자아가 중요해졌다고 생각한다. 핵심적 자아는 주관성을 암시하는 최초의 신호다(하지만 다마지오가 어떻게 신경활동이 주관성이 되는지 만족스럽게 설명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언급해둔다. - P204

이제 뇌가 더 진화해 자전적 기억을 발전시킬 때다. 다음 단계는 ‘자전적 자아 autobiographical self‘다. - P204

. 몸의 역할은 정서와 감정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다마지오의 관점에서 자아는 상부뇌간, 섬엽피질insular cortex, 그리고 체성감각피질 somatosensory cortex에 나타나는 몸상태인 원초적 감정으로 시작되어 더 복합적인 정서와 감정들을형성해간다. - P205

때때로 예상되는 상태를 시뮬레이션하면 몸의 생리학적 상태를 통제하는 뇌 기능을 강화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뇌를 좀 더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만들 수 있다. 뇌가 운동명령의 원심성 사본을 만들어 감각 결과들을 예측하고, 그것에 맞춰 대비한다는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 P205

킹스칼리지런던에서 이인증을 연구하는 마우리시오 시에라 Mauricio Sierra와앤서니 데이비드 Anthony David는 "이 병은 자아인식의 가장 기초적인 언어 이전의 단계(예를 들어 하나의 개체로 존재한다고 느끼는것)에 분열이 만연하게 일어남으로써 나타난다"고 썼다.¹⁷ - P206

17 Mauricio Sierra and Anthony S. David, "Depersonalization: A SelectiveImpairment of Self-Awareness," Consciousness and Cognition 20, no. 1(2011): 99-108. - P387

이인증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 힘들어서 주로 은유에 의지한다. 니컬러스는 나에게 말했다. "말로 설명하기가 정말 어려워요.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에요." - P206

유체이탈에서는 자아가 몸 밖으로 빠져나가 자신을 관찰하는시점의 이동이 흔히 일어나는 반면, 이인증에서는 대개 이러한 시점의 이동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은 자아를 몸에 고정시키는 작용을 하는 다른 신경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한다.¹⁹ - P207

19 Jason J. Braithwaite et al., "Fractionating the Unitary Notion ofDissociation: Disembodied but Not Embodied Dissociative ExperiencesAre Associated with Exocentric Perspective-Taking," Frontiers in HumanNeuroscience 7 (October 2013): 1-12.

니컬러스가 아버지의 집으로 옮긴 것은 재앙이었다. 아버지는자신의 양아버지와 살고 있었고 마약을 했다. 그들은 니컬러스를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양할아버지 (더 나은 호칭이 있으면 좋겠다만)는 니컬러스에게 술을 사줬다. 겨우 열네 살짜리 어린 니컬러스는 그렇게 술과 마약, 약물의 세계로 곤두박질쳐 들어갔다. - P208

중독치료가 끝나자 30대 젊은 부부 태미와 데이브가 니컬러스를 데리고 갔다. 나는 태미와 그녀의 남편이 어떻게 입담 좋고 호감가는 10대 청소년에게 매료되었는지 얘기를 듣고 있었다. 태미가 말했다. "닉을 만나자마자 우리 둘 다 닉에게 사랑에 빠졌다고해야겠네요. 닉에게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나서 우리는 그 애를 친자식처럼 사랑했어요." - P209

부부는 그 모든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니컬러스가 보는 세상은 그랬으니까. 니컬러스가 말했다. "그들은 나를 친자식처럼돌봐줬어요. 나에겐 정말 뜻깊은 시기였죠. 3~4년 정도 같이 사는동안 나는 책임과 의무 등 살면서 배우지 못했던 많은 것을 배웠어요." - P209

이인증에서도 서서히 회복되었다. 삶은 정상으로 돌아갔고,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인증은 아주아주 희미한 기억으로만 남게 되었어요." 니컬러스는 말했다. 그는 담배를 끊었다. 운동도 많이 하고 삶은 비교적 좋았다. "과거를 돌아보면 그 3~4년이 내 인생의 절정기였던 것 같아요." - P210

발작은 그 뒤로 빈번해졌다. "발작은 점점 더 심해졌고 더 자주 일어났는데 매우매우 강했어요. 공황발작이 일어날 때에는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게다가 상황은 더 악화되어, 잊고 있던 이인증이 돌아왔다. - P210

이인증에서 겪는 정서적 무감각은 역설적이다. 니컬러스의 설명에서 명확히 보았듯, 이인증으로 고통받는 사람은 강하게 느낄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들은 괴로워하고 공황에 빠지며, 이것들도 모두 감정 상태에 해당한다. - P212

다른 환자는 메드퍼드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어떤 감정도 없어요. 그래서 아주 불행해요." - P212

이인증을 겪는 사람들이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고, 자신의 몸과현실에 대한 감각이 달라지는 것을 경험한다는 것은 아주 명백한사실이다. 몸 상태에 대한 느낌을 일으키는 뇌-몸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 P213

이인증에 관한 두 권의 책을 쓴 저자이자 나에게 니컬러스를 소개해준 제프 아부걸]cff Abugel은 그런 집착에 관해 잘 안다. 그는 10대 후반부터 이인증이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을 겪어왔다.
그는 말했다. "이러한 경험을 하는 동안 내 인생을 정신적으로 구성하는 거의 모든 것이 없어져버렸습니다. 나한테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인지 알아내려는 쉼 없는 느낌만 유일하게 남아 있었죠. 나의 온 존재가 이 문제만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잘못된 거야? 왜 이렇게 느끼게 됐을까?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 P213

정서가 두드러지는 이미지를 볼 때 작동하는 뇌 영역 중 하나가 섬엽이다. 《자아가 마음이 된다》에서 다마지오는 이렇게 쓰고 있다. "섬엽의 활성화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감정²¹과 관련이 있다. 이는정서와 연관된 감정에서 즐거움이나 고통의 정도에 대응하는 감정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자극에 의해 유발된다. - P214

21 Damasio, o, 126. - P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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