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내가 여기에 있다고 말해줘¹ 조현병이 드러내는 자아의 빈자리
그녀는 갑자기 기분이 이상해졌다. 마치 바깥의 힘이 그녀를 조종하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아트나이프를 집어 자신의 왼손을 길게 했다. - P141
한 달쯤 지나, 나는 스탠퍼드대학교에서 목소리 환청에 관한 콘퍼런스에 참석했다. 첫 번째 연사가 음악 환청에 관한 얘기를 마치고 질문을 받고 있었다. 소피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트위터에 올린(이 대담은 인터넷으로도 생중계되고 있었다) 질문을 청중 한명이 소리 내어 읽었다. 갑자기 앞쪽에 앉아 있던 한 여자가 손을들었다. 연사는 어리둥절해하면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여자가 말했다. "미안하지만 내가 소피예요."⁵ 청중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 P145
4장. 내가 여기에 있다고 말해줘
5 이름과 신변에 관한 세부 사항은 수정해 적었다. - P384
소피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뉴저지에 있는 러트거스대학교의 임상심리학 교수이자 조현병 전문가인 루이스 새스Louis Sass를 통해서였다. "소피는 내가 만나본 조현병 환자 중 의사 표현이 가장 명료한사람이에요." 새스는 나에게 말했다. 몇 년 전 조현병에 걸리기 전, 소피는 새스의 연구가 흥미롭다며 그에게 연락해왔다. - P146
소피는 정신증(현실감각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는 상태)을 앓았던 어머니와 함께 자랐다. 뒷날 소피가 성인이 되고 심리학과 철학을 공부하면서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어머니의 망상장애paranoia와 연애망상crotomania (어머니는 모든 남자들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확신했다)은 조현병이 심각하게 진행되면서 나타나는 증상이었다. - P146
소피는 나에게 말했다. "네댓 살짜리 아이가 카트 가득 장을 보고 부모님이 미리 서명해둔 수표로 계산하는 것은 매우이상한 일이었죠. 하지만 동시에 나는 생각했어요. 아, 이것이 엄마의 방식이구나." 어머니의 망상장애는 다른 데에서도 나타났다. 예를 들어 낯선사람, 심지어 우체부가 집에 올 때에도 가족들은 유리창을 다 닫고숨었다. "그게 아주 정상이라고 생각했죠." 소피가 말했다. - P147
소피의 조현병 가족력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소피의 아버지는 철학을 공부하다가 조현병에 걸려 캘리포니아에 있는 주립병원의 보호시설로 보내졌다. 소피는 회상했다. - P147
소피의 조현병 가족력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소피의 아버지는 철학을 공부하다가 조현병에 걸려 캘리포니아에 있는 주립병원의 보호시설로 보내졌다. - P147
소피에게 조언을 해주었던 사람 중 하나는 조현병과 정신증, 그리고 자아에 관해 광범위하게 글을 써온 존 라이재커 John Lysaker였다. 고학년이 되었지만 소피에게는 다행히 정신증의 어떤 증상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녀는 루이스 새스에게 편지를 보냈다. 소피는 조현병과 그로 인한 ‘광기‘, 그리고 모더니즘에 유사성이 있다고 바라보는 새스의 생각에 흥미를 느꼈다. - P148
새스는 조현병에 관한 이러한 평범하지 않은 관점을 자신의 인생 경험들과 결합해 1992년, 《광기와 모더니즘 Madness andModernism》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는 한때 모더니즘 문학도 공부했다. 1960년대 후반에 하버드대학교에서 영어를 전공하면서 모더니즘에 이끌렸고, ("모더니즘 소설가라 할 수 있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Vladimir Nabokov에 관한 논문을 쓰기도 했다. 그리고 토머스 엘리엇 Thomas Elior과 윌리스 스티븐스 Wallace Stevens에 관해 열정적으로 공부했다. - P149
(전략). 아마 청소년기 남자아이들에게는 드물지않게 일어나는 일일 겁니다. 하지만 내 친구의 표현방식은 뭔가 달랐어요. 너무 극단적이랄까요. ‘광기‘ 같은 게 있었어요." 친구는 결국 정신증을 일으켰다. "나는 그 친구를 잘 알고 있었어요. 정신증이 일어나기 전과 후의 느낌이 일반적인 조현병의 이미지와는 딱 맞아떨어지지 않았어요." - P150
조현병은 본래 1890년대에 독일의 정신의학자 에밀 크레펠린에 의해 ‘조발성치매 dementia praccox ‘라고 불렸다. ‘조현병‘이라는이름은 1908년 들어 스위스의 정신의학자 오이겐 블로일러 Eugen Bleuler가 다시 붙인 것이다. - P151
새스의 아파트에서 우리가 나눈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새스는친구가 정신증에 걸린 뒤 그를 보러 간 일을 떠올렸다. 언젠가 새스는 친구가 몇 주 동안이나 한쪽 발로 춤추는 연습에 집착하더니 마침내 자기 어머니 집 차고에서 자신의 재능을 선보이는 것을 보았다. - P151
새스는 조현병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모더니즘 예술(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의 큐비즘,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다다이즘, 그리고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와 이브 탕기 YvesTanguy의 초현실주의 등)과 모더니즘 문학(프란츠 카프카 Franz Kafka와 로베르트 무질Robert Musil, 엘리엇과 제임스 조이스 James Joyce 등)을 살펴보라고 제안했다. - P152
포스트모더니즘에서와 마찬가지로 모더니즘의 다양한 특성에서, 새스는 자신이 말하는 ‘과다자기반영 hyperreflexivity‘ (일종의 지나친 자의식. 보통 우리 경험의 암묵적 도구가 되는 자의식이 과도하게 집중과 주목을받는 명시적 대상으로 바뀌는 것)과 소외를 본다. - P153
로리는 조현병과 처음 맞닥뜨렸던 때의 느낌을 기억했다. 2005년 가을 본 파이어 나이트(11월 5일 밤, 1605년 런던 국회의사당 폭파계획을 무산시킨 사건을 기념하여 모닥불을 피우고 불꽃놀이를 하는 행사옮긴이) 때였다. 당시 열일곱 살이었던 로리는 잉글랜드 캔터베리에 있는 기숙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 P153
그 일은 그녀에게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일깨워준 심각한 사건이었다. 본 파이어 나이트 사건을 계기로 그녀는 몇달 전부터 느껴왔던 것에 초점을 맞출 수 있었다. - P154
2008년 3월까지 로리가 자신을 칼로 벤 일은 열 번이 넘었다. - P154
"너는 ‘오, 하느님‘이라고 말했어"라고 로리가 정정해주자 피터가 답했다. "거기서 거기지." 피터에게 털어놓고 나서 로리는 곧 목소리들을 듣기 시작했다. 그녀는 2008년 5월을 기억했다. 목소리들이 그녀의 머릿속에서메아리쳤기 때문에 한 사람의 목소리였는지, 아니면 세 사람의 것이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어쨌든 영국 억양의 중년 여성 목소리였다. - P155
로리는 몇 가지 일급 증상(어떤 생각이 자신에게 억지로 넣어졌다는 ‘사고주입망상 thought insertion‘이나 머릿속에 낯선 생각이 들어 있는 느낌, 그리고 전조 없이 뜻밖에 나타나는 1차 망상. 로리의 경우에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말할 수 없이 이상하다는 느낌이 있었다)을 보였지만, 그녀를 담당한 정신과 의사는 특이하게도 슈나이더의 낡은 아이디어를 잘못고수하고 있어서, 이인칭으로 들리는 환청을 조현병의 특징이 아니라 정신적 우울의 징후로 보았다(조현병을 앓고 있는 많은 사람이 누군가가 그들에게 직접 말하는 이인칭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을 이제는 우리도 알고 있다.) - P155
조현병 진단은 종종 다른 기타 장애들을 제외해나가다가 마지막에 내려진다. 로리의 경우에는 처음에 우울장애로 진단이 내려졌고, 그다음에는 ‘경계선 성격장애 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로 진단이 바뀌었다. 그러는 동안 자살 시도는 더욱 심각해졌다. - P156
덴마크 코펜하겐대학교의 정신의학자이자 새스의 동료이기도한 요제프 파르나스 Josef Parnas는 수수께끼 같은 조현병에 대한 답이 ‘자아‘에 있다고 생각한다. - P157
조현병을 설명하기 위해 독일의 정신의학자 카를 야스퍼스KarlJaspers는 ‘에고장애 ego disturbances‘라는 용어를 고안해냈다. - P157
현상학은 ‘살아온 경험에 대한 연구‘다.⁶ 저명한 현상학자로는 에드문트 후설 Edmund Husserl, 마르틴 하이데거 Martin Heidegger, 모리스 메를로퐁티, 그리고 장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 등이 있다. 환자가 살아온 경험에 대한 분석을 통해 - P157
조현병은 자아성의 기초 형태에 생긴 문제와 관련이 있다. 그들의 관점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자아를 몇 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실체‘로 봐야 한다. 우선 이제는 친숙해진 ‘서사적 자아‘, 다시 말해 우리가 자신에 대해 스스로에게 (그리고 타인들에게) 말하는 이야기들, 과거부터 미래까지 이어지는 정체성이 있다.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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