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텍사스인
첫눈에 반해 버렸다. 요사리안은 군목을 보자마자 미친 듯이 그를 사랑하게되었다. 요사리안은 황달이 될락 말락 한 상태로 간에 탈이 생겨입원해 있던 중이었다. - P9
입만 살았고 눈은 멍청하며 심각하고도 씩씩한 세 군의관이, 요사리안을 싫어하던 병동 간호사들 가운데 한 사람이며 역시 심각하고도 씩씩한 더케트를 데리고 아침마다나타났다. - P9
"아직도 안 마려워?" 중령이 물었다. 그가 머리를 저으면 군의관들은 서로 얼굴만 마주 보았다. "약한 알 더 줘." 더케트 간호사가 요사리안에게 약을 더 주라고 기록하고나서 네 사람은 다음 침대로 갔다. - P10
병원에는 요사리안이 원하는 모든 것이 있었다. 음식도괜찮았고 침대에서 식사를 할 수도 있었다. 싱싱한 고기도배급되었고 한창 더운 오후면 다른 환자들과 함께 냉동 과일즙이나 차가운 초콜릿 우유를 얻어먹었다. - P10
전쟁이 끝날 때까지 병원에서 지내기로 작정한 요사리안은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가 입원했다는 편지를 썼는데, 그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그러다가 묘안이떠올랐다. 그는 위험한 임무를 맡아 떠난다고 사방에 편지를 보냈다. "지원자를 뽑았지. 위험하지만 누군가 해야만할 일이었어. 돌아오자마자 편지 쓰지." - P10
장교 환자들은 누구나 같은 병동의 사병들이 쓴 편지를검열하는 일을 해야 했다. 그 일은 지루했고, 요사리안은사병 생활이 장교 생활보다 별로 재미있는 것 같지가 않아서 실망했다. - P11
단조로움을 벗어나려고 그는 재미있는 놀이를 하나 생각해 냈다. 어느 날 그는 수식어를 사형에 처하기로 해서, 그의 손을거친 편지에서는 형용사와 부사가 모두 날아갔다. 다음 날은 관사와의 전쟁을 벌였다. 그 다음 날은 좀 더 높은 수준의 창의력을 발휘해서 a와 the만 남겨두고 편지 내용을 몽땅 새까맣게 지워 버렸다. - P11
캐치-22(22항 옮긴이)를 보면 검열한 모든 편지에는 검열한 장교가 서명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거의 모든 편지를 그는 아예 읽어 보지도 않았다. 그는 읽지 않은 편지에는 자신의 이름을 서명했다. 읽은 편지에는 ‘워싱턴 어빙‘이라고 적어 넣었다. - P11
이 병동은 그와 던바가 여태까지 거친 곳들 가운데 가장좋았다. 이번에 그들과 함께 지내게 된, 스물네 살에 노란콧수염이 듬성듬성한 전폭기 기장은 한겨울에 아드리아 해에 격추되었다면서도 감기조차 걸리지 않았다. - P12
요사리안은 그와 체스를 두면 너무 재미있어 넋이 빠지기 때문에 그만두기로 했다. 그리고 총천연색 영화에 나오는 사람 같은, 학력이 좋은 텍사스출신도 있었는데, 그는 애국적인 견지에서 돈 많고 고상한사람들에게는 빈털터리, 떠돌이, 갈보, 죄인, 타락한 놈팡이, 무신론자, 그리고 고상하지 못한 자 들보다는 투표권을 더 많이 주어야 한다고 믿었다. - P12
열기에 무겁게 눌린 지붕에서는 숨 막히는 소리가 났다. 던바는 인형 같은 눈으로 천장을 응시하며 누워있었다. 그는 수명을 연장하려고 애를 썼다. 그에게는 권태를 누리는 것이 수명 연장의 방법이었다. - P13
요사리안이 마주 소리를 질렀다. "아무렴, 아무렴,아무렴,핫도그와 브루클린 다저스 야구팀, 엄마가만든 사과 파이, 모두들 그런 걸 위해서 싸우지. 하지만고상한 사람들을 위해선 누가 싸우지? 고상한 사람에게 투표권을 더 주기 위해서 누가 투쟁을 하지? 애국심이 없어. 그래, 애국심은 커녕 어른국심도 없지." - P13
그에게는 쓸모없는 팔이 두 개에 쓸모없는 다리가 둘이었다. 그는 한밤중에 남몰래 병동으로 옮겨졌으며, 사람들은 아침에 눈을 뜨자 두 다리를 이상하게 들어 올리고 두 팔도 수직으로 올린 채 음산하게 공중에 꼼짝없이 납덩이로묘하게 고정된 그를 처음 보게 되었다. - P14
하얀 군인은 텍사스인과 자리를 나란히 했는데, 텍사스인은 자기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서 아침, 오후, 저녁 내내느릿느릿한 목소리로 유쾌하면서도 처량 맞은 얘기를 계속했다. 아무런 반응이 없어도 텍사스인은 개의치 않았다. - P14
그녀는 하얀 군인의 입 구멍에 체온계를 넣어 아래쪽 언저리에 걸쳐 놓았다. 그러고는 첫 번째 침대로 돌아와 체온을 기록하며 차례로 병동을 돌았다. 어느 날 오후, 두 바퀴째 돌다가 그녀가 하얀 군인의 체온계를 뽑아 들었을 때그는 죽어 있었다. "살인자." 던바가 나지막이 말했다. 텍사스인은 불안한 미소를 띠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 P15
"네가 죽이는 소리를 들었어." 요사리안이 말했다. "깜둥이기 때문에 네가 죽였지." 던바가 말했다. "자네들 돌았군." 텍사스인이 소리를 질렀다. "여긴 깜둥이들은 출입 금지야. 깜둥이들을 수용하는 곳은 따로 있어." - P15
요사리안이 군목을 만나기 전날에는 식당의 난로가 폭발해 취사장 한쪽에서 불이 났다. 심한 열기가 주변을 덮었다. 300미터나 떨어진 요사리안의 병동에서도 불길이 타오르는 소리와 나무가 타면서 튀는 소리가 들렸다. - P16
갑자기 임무를 끝내고 돌아오는 폭격기들의 단조로운 울림소리가 들려왔고, 불을 끄던 사람들은 호스를 말아 쥐고비행기가 추락해 불이 붙을 경우에 대비하려고 비행장으로달려갔다. 비행기들은 무사히 착륙했다. - P16
불이 난 다음 날 군목이 도착했다. 군목이 침대 사이의의자에 앉아 좀 어떠냐고 물었을 때 요사리안은 편지에서달콤한 말만 남기고는 나머지 단어들을 모조리 축출하느라고 한창 바쁘던 참이었다. - P16
"아, 좋은 편이죠." 그는 대답했다. "간에 통증이 좀 있지만 나야 별로 정상적이진 못한 편이니까. 뭐 사실은 상당히 좋은 편이죠." "다행이군요." 군목이 말했다. - P17
군목이 초조해했다. "내가 뭐 도와줄 거 없나요?" 얼마있다가 그가 물었다. "아뇨. 없어요." 요사리안이 한숨을 쉬었다.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건 군의관들이 다 해 주니까요." - P17
"그래요." 요사리안은 여전히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맞받아쳤다. "그래요. 정말 안됐어요." 군목이 다시 움직였다. 그는 좌우를 둘러보더니 천장을, 그러고는 마룻바닥을 보았다. 그는 한숨을 깊이 쉬었다. "네이틀리 중위가 안부 전하더군요." 그가 말했다. - P18
"네이틀리는 시작이 잘못되었죠. 집안은 좋은 친구인E." "실례를 해야겠는데요." 군목이 고집스레 말했다. "내가큰 실수를 범했는지도 모르겠군요. 당신, 요사리안 대위맞아요?" - P18
"256 비행 중대 소속인가요?" "256 비행 중대 소속이죠." 요사리안이 대답했다. "요사리안 대위라고는 나뿐일 텐데요. 내가 알기에는 요사리안대위는 나뿐이었고 내가 알고 있는 건 그것뿐이니), - P19
"당신, 군목이군요." 그는 황홀한 듯 감탄했다. "당신이군목인 줄은 몰랐습니다." "아, 그래요?" 군목이 대답했다. "내가 군목인 줄을 몰랐나요?" "그래요. 전혀 몰랐어요." 요사리안은 신기해서 벌쭉 웃으며 그를 쳐다보았다. "아직 진짜 군목을 본 일이 없으니까요."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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