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정요의 사상

반항과 살인

어쨌든 지금 유럽과 혁명은 그 생명의 원천에서 멀어지며처절하게 경련하는 가운데 소진되어 가고 있다. 지난 세기에 인간은 종교적인 속박을 타파했다. 하지만 거기서 벗어나자 인간은 견딜 수 없는 새로운 속박을 스스로 지어낸다.  - P481

두 번에 걸친 대살육 사이에, 다수의 처형대가 땅 밑 깊숙한 곳에 세워진다. 휴머니스트 고문자들이 침묵 속에서 그들의 새로운 예배를 올린다. 그 무슨 외침이 그들을 방해하겠는가? 시인들까지도 그들의 형제가 살해되는 것을 목도하면서 자기들의 손은 깨끗하다고 당당히 선언한다. - P482

유럽의 정신은 인류 전체와 합세하여 신과 투쟁할 수 있을것으로 오랫동안 믿고 있었는데 이제는 자기가 죽지 않으려면 도리어 인간들과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죽음과 대적하여 떨쳐 일어나 인류에게 도도한 불멸의 탑을 세워주려던 반항인들이 오히려 그들 자신 살인을 하지 않을 수 없음에 치를 떤다. - P482

반항은 전 인류의 공동체 속으로 들어가고자 했는데이제 반항의 몫으로 남은 것은 오직 통일성을 향해 나아가는고독한 자들을 오랜 세월에 걸쳐 한 사람 한 사람 모아 간다는 희망뿐이다.
그렇다면, 일체의 반항을 포기하고, 명맥을 유지한 사회를그 불의들과 함께 받아들이든가 아니면 파렴치하게 인간과 맞서서 역사의 광포한 행진에 봉사하기로 결심해야 할 것인가? - P483

반항의 운동에 포함되어 있는 ‘우리는 존재한다.‘라는 명제가 추문도 기만도 없이 살인과 타협할 수 있는 것일까? 만인에게 공통되는 존엄성의 출발점이 곧 압제의 한계점이라는 것을 명시함으로써 반항은 최초의 가치를 설정한 바 있다. - P484

반항은 이렇게 하여 부조리한세계와 부둥켜안고 싸우는 정신으로 하여금 첫걸음을 내딛게 했다. 이러한 진보로 인해 반항은 이제 살인과 맞서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한층 더 걱정스러운 것으로 만들었다. - P484

. 이제 겨우 고독을 극복하고 난 참인데 모든 것을박탈하는 행위를 정당화함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고독 속으로 되돌아가야 한단 말인가? 이제 막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깨닫게 된 사람에게 고독을 강요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간에 반하는 결정적 범죄가 아닐까?
논리적으로 볼 때 살인과 반항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라고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 P484

반항하는 인간이 살인을 하면 그 즉시 그는 세계를 둘로나눈다. 반항하는 인간은 인간과 인간의 동일성을 부르짖으며 일어섰었는데 그는 지금 동일성을 희생시키고 피를 흘리며 차이를 기정사실화한다. 비참과 억압의 한복판에서 반항하는인간의 유일한 존재 가치는 바로 이 동일성에 있었다. 인간 존재의 긍정을 목표로 삼았던 바로 그 운동이 인간이 존재하기를 그치게 만든다. - P485

(전략). 그는 살인을 하고 그리고 살인은 불가능한 것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 죽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사실상 ‘우리는 존재할 것이다.‘보다
‘우리는 존재한다‘를 선호함을 입증한다. 감옥에 갇힌 칼리아예프의 조용한 행복과 단두대를 향하여 나아가는 생쥐스트의 평온은 이렇게 하여 설명된다. 이 극단의 경계를 넘어서면모순과 허무주의가 시작된다. - P486

허무주의적 살인

비합리적 범죄와 합리적 범죄는 사실 둘 다 마찬가지로 반항의 운동이 표방하는 가치를 배반한다. - P486

반항은 그 이유들을 선언했고 그것들에 봉사할 것을 약속했다. 동시에, 반항은 허무주의와 맞서서 하나의 행동 규범을 정했다. 역사의 끝을 기다리지 않아도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밝혀 줄. 그러나 형식적인 것은 아닌 행동 규범을 말이다. - P487

. 불의는 인간 상호 간의 암묵적 공감에 의해 세상에 생겨날 수 있는 그 얼마 되지 않는 것마저 말살해 버린다. 마찬가지로, 거짓말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의문을 닫아 버리므로, 거짓은, 그리고 좀 더 낮은 단계에서, 결정적 침묵을 강요하는 살인과 폭력은 추방의 대상이다. 반항에 의해 발견된 암묵적 공감과 소통은 오직 자유로운 대화 속에서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 P488

그리고 섬광 같은 한순간, 그 세 가지 재앙은 인간들 사이에침묵만이 지배하게 만들고, 인간들이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오해하게 만들며, 인간들을 허무주의에서 구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가치, 다시 말해 운명을 부둥켜안고 씨름하는 인간들 상호 간의 저 오랜 공모 관계 속에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되찾는 것을 가로막는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 P489

 반항하는 인간이 전적인 자유의 불가능성을 주장함과 동시에 상대적 자유 그 불가능성을 인정하는 데 필요한ㅡ를 그 자신을 위하여 요구할 때, 그것은 권력이 아닌 다른 어떤 가치의 이름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 P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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