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1872년 4월 초에 열린 조지 메리트 살인 사건 공판 때 가서야 윌리엄 체스터 마이너의 병 상태가 분명히 드러났다. 킹스턴아시지즈에 있는 법원²의 재판장 앞에 선 20명의 증인 가운데 세 명이 이 서글픈 대위에 대해 아는 바를 털어놓자 법정은 깜짝 놀랐다.

2) 당시 이곳랑 런던이 아닌 서리 관할의 재판정이었다. - P32

윌리엄슨 형사는 마이너가 그런 주장을 몇 차례나 했다고 진술했다. 크리스마스 직전, 마이너는 미국 뉴헤이번의 경찰 국장을 설득해서 런던 경시청에 편지를 보내게 했다. 마이너가 느끼는 두려움에대한 내용이었다.  - P33

오늘날 같았으면 이런 마이너의 행동은 도움을 구하는 전형적인 절규로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 윌리엄슨 형사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다만 일지에 마이너가 ‘돌았음‘이분명하다고 적는 것 외에는 아무에게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또 한 명의 증인이 나섰다. 그는 미국인 마이너가 홀스몽거 레인교도소 감방에서 구류를 살 때 지켜본 바를 밝혔다. - P33

. 그는 정신병원인 ‘베들레헴 병원‘에 고용되어 일했다. 그곳은 어찌나 무시무시한 곳이었든지 병원 이름 자체가 우리에게 오늘날의 bedlam (미친 짓, 발광)‘이라는 어휘를 떠오르게 한다. - P34

경찰 조사 기록에는 범죄 동기를 상상해서 적은 내용과 함께 마이너가 명백히 비정상적이라는 대목이 나와 있다. 매일 밤, 마이너는심문하는 경관들에게 자기가 잠든 사이 모르는 사람들이 방에 왔다고 했다. 그들은 대개 하류 계층 사람들이거나 아일랜드인이었다.
사내들은 자기를 괴롭히고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폭력을 행사한다고 했다. - P34

법정은 침묵 속에서 그의 진술을 들었다. 집주인인 피셔 부인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녀는 열쇠가 없으면 아무도 밤에 집에 들어올수 없다고 진술했다. 그리고 그날 밤 식구 모두 곤히 잠들지 않았다고 했다. 침입자가 있었을 리 없다고 했다. - P35

재판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시했다. 간단하지만 슬픈 사건이었다. 피고인은 교육받은 문화인이었고 외국인이며 애국자였다. 계속해서 범죄를 저지르고 수차례에 걸쳐 재판정에 서는 다른범법자들과는 전혀 달랐다. 하지만 법은 피고가 처한 상황과 정황에 관계없이 정확하게 적용되어야 했다. - P36

재판장은 배심원단에게 이번 사건에는 유죄보다는범죄의 책임을 판단하는 맥노튼 법칙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죄수가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인지라 지금까지 들었듯이 망상에 사로잡혀서 조지 메리트를 살해했다면, 배심원단은 영국 법률 사상 특별히 관대한 이 시대의 조류에 따라 평결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배심원단은 정신 이상을 근거로 윌리엄 체스터 마이너에게 무죄를 선언하고, 그에 대한 사후 처리는 재판장에게 맡겨 재판장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대로 결론을 내렸다. - P36

그러나 재판장은 그에게 한 가지 결정을 내렸다.
이것은 오늘날도 이따금 선고되는 판결로, 굉장히 무서운 내용을 함축하는 내용인데도 말로 들을 때는 그럴 듯하게 들리는 문장이었다.
「귀하는 여왕 폐하께서 호의를 베풀어주실 때까지 안전한 보호 아래 구금될 것입니다. 닥터 마이너.」재판장은 이렇게 마지막 말을 했다. 이것은 상상할 수도 없고 전혀 예기치 못한 앞날을 암시하는 판결이었다. 오늘날까지도 그 효과는 영국 언어학계에 반향과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 P37

닥터 윌리엄 C. 마이너, 의사, 미국 군인, 유서 깊고 명망 높은 뉴잉글랜드 가문 출신의 오만한 그는 이후 공식적으로 브로드무어 742번 환자가 되어 영국에 억류당했다. 즉 정신병자로 영원히 구금 생활을 하게 된 것이었다. - P37

2. 소떼에게 라틴어를 가르친 사람

비석 만한 크기의 책 열두 권으로 된 사전을 만드는 데 70년도 넘는 세월이 걸렸다. 이 사전이 나중에 세계 최고 권위의 옥스퍼드 영어 사전이 되는 사전의 초판이었다. 영웅적이고 충성스런 헌신이 빚어낸 이 학문상의 걸작은 1928년 『새 영어 사전 New English Dictionary』이라는 이름으로 완성되었지만, 1933년 처음으로 증보판이 발간되었고 그것이 「옥스퍼드 영어 사전」이 되었다


1) 여기서 언급되는 『새 영어 사전』은 후일 『옥스퍼드 영어 사전』으로 이름이 바뀌어 정착되므로 이후에 나오는 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옥스퍼드 영어 사전』으로 표기하겠다. - P40

영어가 대단히 방대하고 복잡한 언어인 것처럼 옥스퍼드 영어 사전 또한 대단히 방대하고 복잡한 책이다. 이 사전에 수록된 어휘는50만 개가 넘는다. 2천만 개의 문자가 나와 있으며, 최소한 초판본에 실린 인쇄 글자 수만 해도 쭉 펴놓으면 대단한 거리다.  - P40

대부분의 사전과는 달리, 옥스퍼드 영어 사전은 영어 출판물이나 영어로 쓴 문서에서 인용을 발췌해 어휘의 뜻을 정의하는 방식에 철저히 의존하고 있다. 즉 인용문을 도입해서 각 어휘마다 어떤 의미로 어떻게 쓰이는지 그 실례를 보여주고 있다. - P41

출판된 인용문을 골라서 수집함으로써 옥스퍼드 영어 사전은 각 어휘의 성격을 대단히 정확하고 폭넓게 보여줄 수 있다. 인용문은 그 어휘가 수세기 동안 어떻게 쓰였는지, 세세한 의미나 철자, 발음의 변화는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를 확연히 보여준다.  - P41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오늘날 옥스퍼드영어 사전은 제작비가 가장 많이 들고 판매가가 가장 비싼 책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옥스퍼드 영어 사전이 비싸기는 해도 가격을 훨씬 능가하는 가치를 지닌 책이라는 데는 모두 동의한다. 그래서 지금도 계속 인쇄되고 있으며 여전히 잘 팔린다. 따라서 옥스퍼드 영어 사전은 어느 도서관에서든 기본 장서로서 첫 손가락에 꼽히며, 참고 자료로서도 가장 기본적으로 이용되는 책이다. - P42

. 일부에선 옥스퍼드 영어 사전의 문체가 구식이고 지나치게 과장됐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 심지어 너무 거만하다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bloody (빌어먹을)‘ 같은 평범한 욕설을 다루면서도 사전 편집자들이 얼마나 신경질날 정도로 까다로운 태도를 보이냐고 반문한다. - P42

하지만 옥스퍼드 영어 사전이 발췌와 철자법의 선택면에서 유별난 데가 많다는 점은 그들도 인정한다. 최근 규모는 작지만 나날이발전해가는 학문 관련 산업 부문에 몸담고 있는 현대의 학자들은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서 발견되는 남녀 성차별주의, 인종 차별주의 및야단스럽고 케케묵은 제국주의적 태도에 불만을 토로한다. - P44

앞으로 읽게 될 이 이야기에는 두 명의 protagonist(주인공)‘가 나온다. 둘 중 한 사람은 마이너라는 미국 출신의 살해범인 군인이고, 그 외에 주인공이 한 사람 더 있다. - P44

하나의 이야기에 프로타고니스트가 둘, 혹은 셋이나 열이라고 하면, 요즘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옥스퍼드영어 사전 편찬 당시 프로타고니스트(protagonist)라는 단어의 사용을 둘러싸고 사전 편찬의 논쟁이 떠들석하게 벌어졌다.  - P45

protagonist라는 단어는 이야기나 대회, 경쟁 등에서 ‘최고의 인물‘이라는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될 때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어휘이다. 다른 익숙한 단어들처럼, 1928년에 발행된 옥스퍼드 영어 사전초판에 이 단어에 대한 정의가 충분히 그리고 적절하게 내려져 있다. - P45

protagonist를 예를 들어 보면 처음에 나온 3개의 인용구는protagonist란 어휘가 어떻게 문자 그대로 ‘드라마에서 주역을 맡은사람‘이란 뜻을 나타내는지 보여준다. 그 다음에 나오는 3개의 인용구는 protagonist란 어휘가 약간 다른 의미로 ‘어느 대회에서 앞서나가는 인물‘을 뜻하는 경우를 보여준다. - P45

첫번째 의미인 ‘드라마에서 주역을 맡은 사람‘의 의미로 쓰인 글가운데 옥스퍼드 영어 사전 편집진이 찾아낸 가장 오래된 인용구는1671년 존 드라이든¹의 글이다. 인용구는 이렇다.
"타락한 자들 ・・・ 나의 프로타고니스트들 혹은 드라마의 주인공들을 만든 책임은 모두 내게 있나니."

1) 1631-1700 영국의 시인 극작가, 비평가 - P46

프로타고니스트의 인용구는 다른 것들과 달리 확신할 수 있을 만큼 분명했다. 인용구에서 드라이든은 새로 만든 어휘의 의미를 문장에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어휘가 쓰인 시기와 그 의미를 단 한 명의영국 작가가 밝혀주었으니, 사전 편집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야말로 일거양득이 아닐 수 없었다. - P46

이 단어가 새로운 인용문을 덧붙이고 다시 나타난 것은 1933년 개정판이었다. 이 사전의 원본이 출판된 이후 수십 년 사이에 축적된새 단어와 새로운 의미로 쓰인 예문들이 엄청나게 많아졌으므로 개정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 즈음 ‘프로타고니스트‘의 새로운 의미가 발견되었다. 즉 ‘어떤 게임이나 운동 경기를 주도하는 선수‘라는 의미로 쓰이게 된 것이었다. 1908년에 발간된 잡지 『더 컴플리트론 테니스 플레이어 The Complete Laun Tennis Player』에서 위의 견해를 뒷받침해주는 문장이 나타난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있다. 또 하나의 위대한 영어 관련 저서라 할수 있는 헨리 파울러의 『현대 영어 용법 Modern English Usage』이 1926년 처음 발간되었는데, 이 책에는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인용된 드라이든의 용법과는 반대로 ‘프로타고니스트‘란 어휘가 오직 단수로만 쓰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 P48

 옥스퍼드 영어 사전은 ‘프로타고니스트‘가 필요에 따라 단수 혹은 복수로 쓰일 수 있는 어휘라는 견해를 뒷받침하는 새 인용구를 예시한다. 즉 옥스퍼드 사전에 따르면 조지 버나드 쇼는 1950년 "배우들은
‘프로타고니스트들‘이 대화하는 동안 자기들은 보이지 않는 존재가되어 근육 하나 움직이지 않고 얼굴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아야 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쓰고 있다. - P48

이 책의 주인공 이야기를 하다가 좀 다른 쪽으로 빠지긴 했지만 어쨌든 이 이야기의 프로타고니스트는 두 사람이다.
한 사람은 이미 앞에서 밝혔듯이, 닥터 윌리엄 체스터 마이너로 정신병에 걸린 미국인 살인범이다. 또 한 사람의 프로타고니스트는 우연히도 평생 마이너와 이리저리 얽히게 되었으나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산 제임스 오거스터스 헨리 머리다. 두 남자의 일생은 오랜 세월에 걸쳐 표현하기 힘들 만치 묘하게 얽히게 된다. - P49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몇 달 지나지 않아 그는 다시 연구 생활로 되돌아갔다. 지식 추구의 방향을 새로이 해서 매일 통근길에 힌두스타니어(Hindustani)³와 아케메네스 왕조⁴ 페르시아어를 공부하고,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런던 경찰이 된 사람들의 사투리를 듣고 스코틀랜드의 어느 지역 출신인지 알아내려고 애썼다. 또 캠버웰 조합교회에서 ‘인체와 그 구조‘에 관한 강연을 하기도 했다. 

3) 힌디어에 아라비아어 페르시아어기 혼입된 말로 인도의 공용어.
4) B.C. 550~331년경 고대 오리엔트의 거의 전역을 지배한 이란인 왕조 - P54

매기가 세상을 뜨고 1년 후 머리는 다른 젊은 여성과 약혼했고,
다시 1년 후 결혼했다. 그가 매기 스코트를 사랑하고 존중한 것은사실이지만, 두 번째 부인 에이더 루스번을 무척 사랑하고 존중한것 또한 사실이었다. - P55

만약 두 사람의 우정이 없었다면, 머리의 언어학에 대한 관심은아마추어로 열심히 노력하는 정도에서 끝났을지도 모른다. 그에게도움을 준 친구는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알렉산더 엘리스였고, 또 한 친구는 옹고집에다가 불손하기로 악명 높은 음성학자 헨리 스위트였다.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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