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말을 용서하십시오. 총장님. 하지만 저는 정말이지 마음이 편합니다. 처음부터 그 계획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를 독살하는 일이?"
"예."
"살인하는 데 마음 편할 사람은 없소, 찰스, 문제는 그를 죽이지 않으면 상황이 더 나빠진다는 것이지. 실은 하느님의 계시가 있었소. 아직실행되지는 않았지만, 이런 얘기를 해서 공연히 당신한테 짐을 지워 주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
"천만에요. 자세히 말씀해 보세요." - P45

"아니, 아닙니다. 정반대예요. 성체위원회도 교회법정을 완전히 책임지지 않아요. 반은 사설 기관입니다. 아스리엘 경을 좋아하지 않는 누군가 운영하고 있지. 찰스, 난 그 둘 사이에서 벌벌 떨고 있소."
사서는 잠자코 있었다.
교황 존 캘빈이 교황권을 제네바로 옮기고 ‘교회법정‘을 세운 뒤 교회의 권력은 모든 삶을 지배하는 절대적인 것이 되었다.  - P45

그렇지만 교권의 비호 아래 독립적 기관들이 자라날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었다. 사서가 얘기한 ‘성체위원회‘도 그런 예 중의 하나였다.
사서는 성체위원회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 들은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혐오스럽고 두려웠다. 그래서 그는 총장의 걱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파머리언 교수가 어떤 이름을 말했는데요. 바너드 스톡스? 바너드스톡스 연구란 것이 무엇입니까?" - P46

"그런데 아스리엘 경이 그런 다른 세상이 찍힌 사진을 가져온 것이군요. 우리는 그에게 더 조사할 수 있도록 돈을 대 주었고요." - P46

"세상에, 그런데 총장님은 어떻게 그 모든 사실을 알아내셨습니까? 알레시오미터가 또?"
"그렇소. 리라는 앞으로 다가올 사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거요. 아이러니한 것은 그 아이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도 못한 채그런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오. 그렇지만 그 아이는 도움을 받을 수있을 겁니다. 만일 토케이로 아스리엘 경을 독살하려던 계획이 성공했더라면 그 아이는 좀 더 오랫동안 안전하게 지낼 수 있었을 거요. 그 아이가 북극으로 떠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거라는 얘기지. 무엇보다도그 아이에게 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으면 좋겠소." - P47

"도데체 왜 건강하고 단순한 아이가 그토록 어려운 신학적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거죠?"
(중략)
"누가 그 아이를 배신합니까?"
"아니, 아니오. 정말 슬픈 일이지만 리라는 배신자가 될 겁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은 매우 끔찍할 거예요. 물론 리라가 이런 사실을 알아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그 아이가 더스트에 대해 알면 안 될 이유는 없어요. 그리고, 찰스 당신 생각은 틀렸소. 단순하게 설명해 준다면 리라는분명 그 이론에 관심을 보일 겁니다. 또한 그런 지식이 나중에 그 아이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죠. 게다가 나도 그 아이에 대한 걱정을 조금은 덜 수 있게 될 겁니다."
"그것이 늙은이들의 의무죠." - P48

리라의 옥스퍼드

조던 대학은 브리튼 왕국 전체에 걸쳐 농장과 토지응 소유하고 있었다. 그래서 조던 대학 소유의 땅을 밟지 않고서는 옥스퍼드에서 브리스틀이나 런던까지 갈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영국 내의 모든 염색공장, 벽돌공장, 산림지기, 장인들이 조던 대학에 임대료를 지불했다. 매 4분기 지불일이 되면 회계담당원은 그 모든 돈을 합산하여 조정위원회에 보고한 뒤 곧이어 벌어질 잔치를 위해 한 쌍의 백조를 주문하곤 했다. 수입 중 일부는 재투자되었다. - P50

하지만 리라는 실험 신학에 대해서는 동네 개구쟁이 아이들처럼 무지했다. 리라는 그것이 마술, 별이나 행성의 움직임, 아주 작은 물질 등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었다. 어쩌면 별은 인간처럼 데몬을 가지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실험 신학은 그들과 대화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P50

게다가 실험 신학에 대해 특별히 흥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여러가지 면에서 리라는 야만인에 가까웠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부엌데기 소년 로저와 함께 지붕 위로 올라가기, 지나가는 학자 머리에자두 던지기, 수업 중인 강의실 창가에서 올빼미 소리 내기, 좁은 거리에서 달리기, 시장에서 사과 훔쳐 먹기, 패싸움 등이었다. 리라가 대학행정 이면에 흐르는 정치적 상황을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학자들 역시 동맹, 대립, 불화, 협정으로 가득한 옥스퍼드 아이들의 생활을 몰랐다. 이러한 개구쟁이들의 모습은 정말 유쾌한 것이었다. 어찌 그리도순진하고 매력적일 수 있는지! - P51

그러나 이들 라이벌 관계 역시 다른 적이 위협을 가해 오면 금방 잊혀졌다. 대학과 도시 아이들에게 영원한 적은 벽돌공의 자식들이었다. - P51

아이들의 또 다른 공통의 적은 계절에 따라 찾아왔다. 기다란 보트에서 생활하는 집시 가족들은 봄과 가을 장날에 몰려오곤 했는데 그들 역시 싸우기 좋은 상대였다. (중략) 그들이 마지막으로 옥스퍼드에 왔을 때 리라와 로저, 조던 대학과 성 미카엘 대학의 아이들은 매복을 하고 있다가 예쁘게 칠한 배에 진흙 세례를 퍼부었다. - P52

아스리엘 경의 어색한 공식 방문은 항상 그런 식이었다. 차를 마신 뒤 총장과 몇몇 학자가 자리를 비켜 주면, 삼촌은 리라에게 자기 앞에와서 서라고 명령했다. 그러고는 지난번 방문 이후로 무엇을 배웠는지말해 보라고 했다. 리라가 기하학, 아라비아어, 역사, 중량학(重量學)에대해 기억나는 것을 주섬주섬 말하고 있는 동안 아스리엘 경은 한쪽 발목을 다른 쪽 무릎 위에 올려놓고 리라가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때까지수수께끼 같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곤 했다. - P53

리라가 귀빈실에 숨어들어 더스트에 대한 얘기를 듣기 전까지의 생활은 그런 식이었다. 그리고 리라가 더스트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을거라고 한 사서의 말은 잘못된 것이었다. 이제 그녀는 더스트에 관한 이야기라면 언제든지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 P56

포크샐을 지나 왕이 주례 국정 보고를 받는 화이트 홀 궁을 따라 내려가면, 용해된 납이 어두운 물통 속으로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탄환제조탑이 나온다. 탄환제조탑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넓고 더러운 강물이 남쪽으로 크게 굽이쳐 흐르는 지역이 나타난다.
그곳에 라임하우스가 있다. 그리고 바로 거기에 실종된 아이가 살았다.
아이의 이름은 토니 마카리오스다. 아이의 어머니는 토니가 아홉 살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녀의 기억력은 술에 찌들어 형편없다. 따라서 토니는 여덟 살이나 열 살일지도 모른다. - P57

. 토니의 데몬인 참새는 그의 어깨 위에 앉아 여기저기를살피고 있었다. 상인과 그의 데몬이 한눈을 파는 사이에 잠깐 짹짹하는소리가 났다. 그러자 토니는 잽싸게 사과 한 알, 땅콩 몇 알, 뜨거운 파이를 헐렁한 셔츠 속으로 쑤셔 넣었다.
상인이 그 사실을 알아차렸고 그의 데몬인 고양이가 뛰어올랐다. 그러나 토니의 참새 데몬은 이미 하늘로 날아오른 상태였고 토니 또한 벌써 거리를 반은 가로지른 상태였다. 시장 쪽에서 욕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 P58

토니는 누군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파이를 바라보았다. (중략)
여인의 데몬이 여우털 코트 밖으로 나왔다. 원숭이 모습이었다. 하지만 평범한 원숭이는 아니었다. - P58

원숭이는 참새를 잠시 바라보더니 여자에게로 올라갔다. 참새는 여전히 원숭이와 함께였다. 여자는 고개를 숙여 원숭이에게 귓속말을 했다.
그때 토니가 고개를 들었다.
"래터!"
토니는 놀라 입을 딱 벌렸다.
참새 짹짹거렸다. 자신의 데몬이 안전하다고 생각한 토니는 입속에 든 것을 삼키고 여인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중략)
"초콜릿 좋아하니?"
"그림요!"
"실은 내가 초콜릿을 너무 많이 만들었단다. 함께 가서 먹을래?"
토니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멍청한 참새 데몬이 원숭이의 손으로 날아오른 그 순간부터 이미 이성을 잃고 있었다. - P59

친절하고 아름다운 여인은 토니가 긴 의자에 앉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하녀 한 명이 아무 말 없이 스토브 위에 놓인 냄비에서 초콜릿을 따라 토니에게 주었다. 토니는 남은 파이 조각을 먹고 뜨겁고 달콤한 초콜릿을 마셨다. 토니는 주위 아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다른아이들도 그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아이들이 겁을 먹기에는 토니의 몸집이 너무 작았고, 놀려 먹기에는 너무 멍청해 보였던 것이다. - P60

여인은 아이들에게 항해를 하게 될 거라고 말했다. 맛있는 음식과 따뜻한 잠자리가 제공될 것이며 가족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싶은 사람들은 편지도 보낼 수 있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망누손 선장이 곧 그들을 배에 태우고 밀물이 시작되자마자 북극으로 출발할 거라고설명해 주었다. - P61

빈민가 아이들은 유혹하기 쉬웠다. 하지만 결국 사람들은 아이들이사라진 사실을 눈치 챘고 경찰은 마지못해 그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얼마 동안 유괴 사건이 꼬리를 감추었다. 그러나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었고, 조금씩 내용이 바뀌어 멀리멀리 퍼져 나갔다. - P62

유괴당한 아이들이 어디로 끌려갔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땅 밑 지옥으로 갔다는 소문도 있었고, 요정의 나라로 갔다는 말, 농장으로 끌려갔다는 말도 있었다. 그곳에 갇힌 아이들은 포동포동하게 살이 찌워진 다음 요리되어 식탁에 오른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부유한타타르인들에게 노예로 팔려 갔을 거라고 추측하는 이들도 있었다. - P62

그리고 조던 대학에서는 어김없이 리라가 로저에게 말했다.
"고블러 놀이 하자."
로저는 리라가 시키면 죽는 시늉까지도 할 아이였다.
"어떻게 하는 건데?"
"너는 숨고 나는 널 찾아내는 거야. 그러고는 고블러처럼 그 자리에서 배를 가르는 거지."
"넌 고블러가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잖아? 그들이 그런 짓을 하지 않을지도 몰라." - P63

도서는 리라의 얘기가 고믈러 이야기보다도 너어려웠지만 재미는 있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셔벗을 거품으로 사용하여 아스리엘 경과 죽기 직전의 타타르족 역할을 번갈아 하며 놀았다.
하지만 그것은 기분전환밖에 되지 않았다. 리라는 여전히 고블러 놀이를 하고 싶었다. 결국 리라는 로저를 꾀어 포도주 저장고로 내려갔다. - P64

리라와 로저는 고블러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어버린 채떨리는 손으로 양초를 들고 어두운 창고 구석구석을 샅샅이 살펴보기시작했다. 그 순간 리라의 마음속에서는 포도주 맛에 대한 궁금증이 점점 자라나기 시작했다. - P64

궁금증을 푸는 방법은 간단했다. 리라는 로저가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가장 오래된 초록색 병을 골라 들었다. 그러고는 코르크 마개를 뽑을 만한 도구를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 P64

리라는 이 일을 통해 고블러 놀이를 하면 재미있는 곳으로 간다는 점 외에 배운 것이 없었다. 그녀는 지난번 삼촌에게 들은 말을 기억하고 지하를 탐험하기 시작했다. 땅 위에 있는 것들은 대학의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 P65

어느 날 리라와 로저는 성당 지하실로 내려갔다. 그곳은 역대 총장들이 묻혀 있는 곳이었다. (중략) 벽감 아래에 있는 돌 명판에는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시몬 르클레르, 총장 1765-1789 세레바통
고이 잠드소서 - P66

"관 안에는 틀림없이 해골이 들어 있을 거야!"
로저가 속삭였다.
"살은 썩어 문드러지고 눈 속에는 벌레와 구더기가 득실거릴 거야."
리라도 속삭였다.
"분명 유령도 있을걸."
로저는 몸을 후들후들 떨었다. - P67

"뭐 하는 거야? 만지면 큰일 나!"
리라는 무신경하게 해골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때 뭔가 해골 구멍에서 나와 그녀의 손가락을 건드리고는 다시 바닥을 치며 쨍그랑 소리를 냈다. 리라는 깜짝 놀라 하마터면 해골을 떨어뜨릴 뻔했다.
"동전이야. 보물일지도 몰라."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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