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고르는 세 가지 방법
사실 저는 닥치는 대로, 무턱대고, 끌리는 대로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책을 그렇게 읽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렇게 읽다 보면 어느새 좋은 책을 잘 선택하게 됩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죠. - P81
우선 서문을 읽어보는 겁니다. 의외로 서문을 읽는 사람이 드문데 저는 짧은 서문에 저자의 모든 생각이 농축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 전체는 잘 썼는데 서문이 별로인 책은 없습니다. 훌륭한 책은 반드시 서문이 좋습니다. - P81
소설도 그렇고 인문교양서도 그렇습니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어제의 세계』 서문은 본문 전체의 맥락을 효과적으로 설명하는 내용이면서, 그 자체로 힘 있는 멋진 글입니다. - P81
수 클리볼드의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의 맨 앞에 붙어서 서문의 역할을 하는 어느 의사의 글은 이복잡 미묘한 이야기를 좀 더 넓고 깊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있게 해줍니다. - P82
훌륭한 책은 당연하게도 모든 페이지가 훌륭합니다. 어느페이지를 펼쳐 읽어도 좋습니다. 그래서 저는 책을 고를 때마지막으로 3분의 2쯤 되는 페이지를 펼쳐봅니다. 그리고 오른쪽 페이지를 읽어요. 왜냐하면 인간의 시선이 왼쪽보다 오른쪽이 더 잘 읽히거든요. 집중력도 높아지고요. - P82
물리학에 프랙털fractal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부분이 전체를 반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대표적으로 나뭇잎의 모양, 눈(雪)의 결정 이런 것이 그 예인데,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분으로 전체를 상당 부분 짐작할 수 있습니다. - P83
바로 그래서 3분의 2쯤을 읽으면 저자의 약한 급소를 볼 수 있는것입니다. 그 부분마저 훌륭하다면 그 책은 정말 훌륭하니까 그 책을 읽으시면 됩니다. - P83
느리게 읽어도 상관없다
중학교에 가니까 세상에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은 거예요. 그런데 공부도 해야 하고 숙제도 많고 시간이 없었죠. 읽고 싶은 책을 다 읽어야겠다는 강박이 있어서속독법을 배우고 싶어졌습니다. 당시에는 동네마다 속독학원이 있을 정도였는데 저는 사정상 학원은 못 다녔고 그 대신 속독법 책을 사서 혼자 익혔어요. - P62
그렇게 그 책을 빨리 읽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요. 책을 읽으면서 책 진도가 빨리 안 나간다고 초조해하기도 하는데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진도가 빠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좋은 책일수록 진도가 빠르게 나가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 P63
책을 읽는 목적은 책의 마지막까지 내달려서 그 끝에 있는 무언가를 얻어내는 데 있지않습니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데 걸리는 시간, 그 과정에 있는 겁니다. - P63
세상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들이 있습니다. 빠르게 완료하지 못할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들은 대부분 오래 걸리는 시간 자체가 그 핵심입니다. - P64
다시 한번 무엇을 위해서 책을 읽는가 생각해봅니다. 독서행위의 목적은 결국 그 책을 읽는 바로 그 시간을 위한 것이아닐까요. 그 책을 다 읽고 난 순간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독서를 할 때 우리가 선택한 것은 바로 그 책을 읽고 있는 그 긴시간인 것입니다. - P64
책을 숭배하지 말아요
책을 잘 안 읽는 사람일수록 책을 모셔둡니다. 저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책을 ‘하대‘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인쇄된 종이를 묶은 그 자체가 책이 아닙니다. 책 안의 활자에 담긴 의미들 그리고 그 사이의 침묵들이 바로 책입니다. - P66
메모하기에 정말 좋죠. 밑줄도막 그으면서 읽는 겁니다. 저도 예전에는 밑줄이나 메모를 잘 안 했고 하더라도 나중에 지울 수 있는 연필만 썼는데지금은 안 그래요. 책을 깨끗하게 읽는 것이 결코 좋은 독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 P66
저는 책을 읽으면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나 좋은문장에 동그라미를 많이 칩니다. 그 행위 자체는 읽는 순간에 내 기억을 강화해주는 효과가 있어요. 시간이 지난 후 혹시 그 책을 어떤 이유로 다시 읽어야 할 때, 내가 동그라미 쳐놓은 부분만 읽으면 됩니다. - P67
무엇을 숭배한다면, 그것을 온전히 즐기기 어렵습니다. 책이란 정말 대단해, 하면서 우러러본다면 책 읽기를 어떻게즐길 수 있을까요. 저는 책이란, 늘 가까이 두고 언제나 펴보고 아끼지 않고 읽고 그러다가 읽기 싫으면 집어 던져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 P67
2 대화 읽었고, 읽어, 읽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책 읽기
이다해: 교육으로서의 독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요, 부모들이자녀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들을 권하거든요. 그런데성인이 되어서 책 읽기를 계속 좋아하는 사람들은 성장 과정에서 세계 명작만 읽은 건 아니거든요. 또래의이야기를 읽는 게 중요한 것 같은데, 이동진 작가님 역시 그랬던 것 같습니다. - P99
이동진: 본인의 독서만큼이나 아이들에게 어떻게 책을 읽게 할것인가에 관심 있는 사람 많잖아요. 제 경우가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지금도 마찬가지고 예전에도 그랬고, 재미가 최고예요. 책에 재미를 붙여서 습관이 되는 단계, 그게 최고고요. 재미있어서 본인이 반복을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본인이 책을 골라야 하는 것 같아요. - P100
이다혜: 책을 읽을 때 많은 사람들은 책 안에 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문학 열풍이라는 것도 ‘책에서 혼란스러운세상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겠지‘ 하는 기대가 있는 것같아요. - P100
이동진: 경험해보면, 목적 독서는 지쳐요. 왜냐하면 책을 읽는행위 자체에서는 쾌락을 못 느끼는데 책을 다 읽고 나서 얻어지는 부산물, 결과를 겨냥하고 책을 읽게 되면독서를 ‘견디게 되거든요. 힘든데, 다 읽고 나면 ‘한권읽었다‘에 그치는 거죠. 책이라는 것은 우회로일 수도있는데 말이죠. - P101
굳이 이야기하면 우리에게 질문을 주는 책들이 더 좋은 책들이죠. 그렇지만 뒤집어 얘기하면 제대로 질문하기 위해 책을 읽는 것도 아니에요. - P101
영화도 마찬가지인데, 영화를 보고 나서, ‘그 영화가 하려는 이야기가 뭐예요?‘ 묻는다고요. 이런 질문을 굉장히 많이 하는데, 제가 알기로는 99퍼센트의 창작자는 어떤 주제를 말하기 위해영화를 찍지 않아요. - P102
일단 책이라는 것 자체가 삶의 일부가 되도록 끌어안는 게 중요해요. 그러다 보면 책이 우리에게질문을 하게 해준다는 거죠. 아주 세세한 질문이기도하고, 아주 큰 질문이기도 한데, 이 길이 옳은가‘ ‘나는왜 사는가‘에 대해 책이 답을 주지는 않지만, 일종의 방향성이나 지향성 같은 걸 주는 거죠.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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