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아직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았는데 무뚝뚝한 대학 건물 사이에는 어스름이 숨어 들어와 있었습니다. 주위는 한층어두워져 흐린 하늘 아래 솟은 시계탑 주위에서 눈송이가 춤추고 있었습니다. 정문 밖으로 길을 따라 노점이 늘어섰고 사람들이 많이 오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요시다 신사를 향해 걸어갔습니다. - P232
"평소와 다른 점은 없었습니까?" 이마니시 씨는 "없었습니다"라며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잠깐 이야기한 다음 우리는 지요 씨의 집에서 나와 요시다산 서쪽으로 내려갔습니다. 다시 말해 지금 우리와는 정반대 방향, 신사 뒤쪽에서 축제 속으로 들어간 셈이죠. 숲의 어스름에서 노점의 불빛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그날도 눈이 왔습니다." - P232
이마니시 씨는 멈춰 서서 도리이를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산 위의 다이겐궁에서 참배를 드리고 본당으로 내려올 때까지는 같이 있었단 말이죠. 그런데 저 도리이를 향해 이 참배길을 걷다 말고 사야마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도리이 밑에서 기다려 보기로 했습니다. 서로를 잃어버리는 일이 있으면 거기서 만나기로 약속했으니까요......" - P234
본궁으로 이어지는 비탈길을 올라가며 이마니시 씨는 말했습니다. "지요 씨는 나를 의심하는 것 같더군요. 사야마가 모습을 감춘 이유를 숨기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죠. 지금 생각하면 아마사야마에게 배신당한 기분이었을 테죠. 화낼 상대가 없으니까나를 탓한 겁니다. 하지만 나도 나대로 지요 씨가 숨기는 게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실제로 그런 말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 P233
"이제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이마니시 씨가 하얀 입김을 불며 말했습니다. "도쿄로 돌아가야 하죠?" 아닌 게 아니라 제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열대』와 사야마 쇼이치를 둘러싼 수수께끼는 감당할 수없을 만큼 커지고 말았습니다. 『천일야화』와의 연관성, <보름달의 마녀>를 그린 화가, 에이조 씨의 카드 상자 그리고 사야마 쇼이치의 실종...……. "지요 씨는 왜 저를 교토로 불렀을까요." - P234
"헌책방이랍니다. ‘날뛰는 밤‘이라고 써서 ‘아라비야 책방‘ "이죠." 노점으로 다가가니 주인은 멍하니 저를 쳐다봤습니다. 저를알아본 듯 한바탕 웃었습니다. 이마니시 씨는 신기한 듯 책꽂이를 구경하면서 "헌책방 포장마차는 처음 보는군요"라며 중얼거렸습니다. - P236
저는 『천일야화』를 꺼내 주인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이거 읽는 중입니다." "훌륭한데. 하지만 「대단원」까지 읽으려면 여간 일이 아닐걸. 어쨌거나 천 날 밤의 분량이니까." "셰에라자드는 용케도 이야기를 계속한다 싶군요." "좌우지간 위대한 사람이야." - P236
추적의 실마리. 저는 생각해 봤습니다. 지요 씨의 그림엽서, 호렌도에서의 기묘한 행동, ‘보름달의 마녀에게 간다‘라는 말. 그건 지요 씨가 남겨준 ‘추적의 실마리‘ 인 겁니다. 지요 씨는 어디론가 저를 인도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미궁에 갇힌 채 끝나는 건지요 씨가 의도하는 바가 결코 아닐 테죠. 저는 뭔가 중요한 실마리를 빠뜨린 겁니다. - P237
전주인의 컬렉션이 놓인 선반. 먼지를 쓴 달마 인형들, 석상의 파편, 작은 조개껍데기, 작은 과즙 우유병. 그리고 낡은 카드 상자 - P237
"뭔가 중대한 단서를 놓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카드 상자안을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귀중한 이야기를 들려주셔서감사합니다." 저는 이마니시 씨에게 머리 숙여 정중히 인사했습니다. - P238
"만약 살아 있다면 사야마는 왜 연락을 주지 않는 걸까요." 이마니시 씨는 중얼거렸습니다. "이렇게 오래 우리가 기다리고있는데." "사야마 씨가 남긴 건 『열대』뿐입니다." "나도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그게 그 친구 꿈의 결정일 테니까요." 이마니시 씨는 차를 마시며 이야기했습니다. - P239
"그런 이야기를 두고 사야마와 여러 번 논쟁을 벌였습니다. 그 친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뭔가가 있었겠죠. 지금 생각하면 좀 더 순순히 귀 기울여 들어볼 걸 그랬다 싶습니다. 『열대』라는 작품이 그 친구 몽상의 결정이었다면 나 같은 사람에게 읽힌들 의미가 없다고 사야마는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건 좁은 소견 아닙니까." - P240
저는 선반에 놓인 카드 상자에 관해 물었습니다. 하지만 주인은 유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의 개인적인 물건이라고만 생각했다는 겁니다. "나가세 에이조 씨의 물건일지도 모릅니다." - P240
호렌도 주인이 걱정스레 소곤거렸습니다. 저는 카드를 계산대 위에 늘어 놓았습니다. 주인과 이마니시씨는 숨죽이고 제 동작을 지켜봤습니다. 저는 카드가 ‘올바른‘ 순서로 나열될 때까지 묵묵히 작업을 계속했습니다. - P241
경이의 방에서 봐야 할 것을 놓치고 지나가다 고물상 주인의 이야기 산다이바나시 마왕 남자를 두고 가다 작은 문을 지나 - P242
커피집에서 두고 간 남자와의 대화 수수께끼의 창조에 대해 방 안의 방 - P243
이치하라역에서 또다시 천일 밤의 여자 마지막 대화 도서실의 문이 닫힌다 대단원 - P244
이 카드는 언제부터 있었습니까?" 제가 묻자 호렌도 주인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옛날부터 여기 계속 있었던 거라………… 뭐가 쓰여 있었는지저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거든요." 저희는 나열된 카드를 보며 침묵했습니다. "이 모든 게 예언됐다는 겁니까?" 이마니시 씨는 당혹한 듯중얼거렸습니다. "말도 안 됩니다. 그런 일이 현실에서 일어날리 없어요." - P244
"거기 갈 겁니까?" 이마니시 씨의 물음에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네. 여기까지 왔으니까요." •지요 씨는 거기에 있을까요."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가야죠." "그럼 나도 같이 가겠습니다. 괜찮겠죠?" - P246
이마니시 씨는 불안한 듯 차창을 응시하며 말했습니다. "전부 당신이 꾸민 일이라면 어떻겠습니까. 카드는 당신이 사전에 써서 호렌도 카드 상자에 넣어놓았을지도 모릅니다. 지요 씨의 실종도 뒤에서 당신이 조종한 일일지도 모르죠." "의심하시는 것도 당연합니다." "부정하지 않는 겁니까?" - P247
저를 교토로 부른 지요 씨일까요. 하지만 지요 씨도 사야마 쇼이치가 남긴 『열대』라는 소설을 뒤쫓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모두 사야마 쇼이치가 꾸민 일일까요. 하지만 호렌도 주인이나이마니시 씨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돌이켜보면 사야마 쇼이치의 배후에는 지요 씨 아버지, 에이조 씨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거든요. 에이조 씨의 배후에는 커다란 수수께끼가 있습니다. 그걸 우리는 ‘보름달의 마녀‘라고 부르는지도 모릅니다. - P247
이윽고 열차가 정차해 우리는 내렸습니다. 눈이 얇게 쌓인 플랫폼이 허옇게 보였습니다. 마키 씨는 플랫폼 끝에 서서 우산을 들고 우리를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열차가 떠나고 나자 밤의 밑바닥 같은 정적이 주위를 감쌌습니다. 아주 멀리 여행 온 기분이 들었습니다. "마키 씨, 기억하실까요? 이케우치입니다. 어젯밤에 만났죠." "물론 기억해요." - P248
"할아버지 도서실을 조사하러 오셨죠?" "네." "그럴 것 같았어요." "우리가 올 줄 아셨습니까?" 이마니시 씨가 놀란 듯 물었습니다. "물론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어요. 하지만 조만간 찾아오시리라는 건 알고 있었답니다." - P249
"지요 씨가 작업실에 찾아왔군요?" 제가 묻자 마키 씨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도서실에서 사라진 거예요."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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