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폭로 / 무너져내리는 엄마
언뜻 드러난 장인의 표리부동한 태도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오랫동안 장인을 봐왔지만 그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내게 숨기는 것이 있는지도 모른다. 의심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내가 헛것을 본 것 같지는 않았다. 미치코와의 관계를 알아버린 걸까? - P267
이런 상상도 근거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장인은 흥신소를 통해 미우라의 신변을 계속 조사해왔다. 최근 동정까지 체크했다면 진범으로 추정되는 인물에 관련된 정보를 받았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 P268
덜 바빠 보이는 여직원에게 직업별 전화번호부를 갖다달라고 부탁했다. 스미다 나루미가 싫은 내색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두꺼운 전화번호부를 들고 왔다. "고마워." "타운페이지라고 해요." 약점이라도 잡았다는 듯이 생글생글 웃으며 말한다. "직업별 전화번호부라고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고요." - P268
내 나이쯤 되면 타운페이지니 헬로페이지* 같은 말은 입이 찢어져도 못 한다. 아무리 광고 회사에서 일하는 몸이지만 일본어로서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라는 게 있다.
*일반인 전화번호부 - P269
입구로 들어가자 이름만 로비인 좁은 공용 통로가 있었다. (중략). 엘리베이터 버튼 옆에 입주한 회사들이 적힌 표지판이있었고, 그 안에 부동산 회사, 수입 대행사 등과 함께 ‘쇼와 종합리서치‘가 있었다. - P270
5층 복도 전부가 ‘쇼와 종합 리서치의 사무실이었다. 나는 얼른 통로 구석으로 몸을 감췄다. 숨을 필요까지는 없었지만 조사원이 내려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일단은 지켜보기로 했다. - P271
흠칫하고 재킷에서 손을 뗐다. 이 여자는 내가 미우라를 구타하는 모습을 봤다. 마음이 켕겼다. 여자가 어깻숨을 쉬며 일어났다. 얼굴이 상기돼 있다. 엉덩이에 묻은 먼지를 손으로 털어낸다. - P272
"어쩔 수 없군. 가까운 데서 밥이나 먹으며 들어보지." - P272
"일단은 조사원이라고 할까요. 아르바이트하고 있어요. 본업은 대학생." 거리낌없는 말투로 자백한다. 이제 와서 시치미떼봐야 소용없다는 걸 아는 것이다. "학생증 꺼내봐." "되게 의심 많네요. 하긴 그럴 만도 한가." 핸드백에서 지갑을 꺼내 내민다. S대학 학생증이었다. - P273
내 말이 틀렸는지 입이 부루퉁하게 나온다. "비디오에서 벗는 애들보다는 나을걸요."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차별이지." 나는 말했다. "최소한 그사람들은 자기가 책임질 수 있는 범위에서 행동하는 거니까. 그리고 그건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아. - P273
"그나저나 왜 이런 일을 하지? 보수가 좋은가?" "그렇기도 하지만." 자기 말이 심했다고 생각했는지 태도가 한결 누그러졌다. "지금 사회학 연구실에 있으면서 도시론을 전공하고 있어요. 내년에 논문을 쓰기 위한 필드워크라고 하면 너무 멋을 부린 걸까요?" - P274
"그건 표면적인 구실이겠지. 월요일에 내가 미우라의 집에 갔을 때 당신은 마치 정신이 이상한 여자인 척했잖아. 내 정체를알고 관심 끌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그런 서툰 연극을 한 거지. 그게 당신이 미우라를 조사하고 있었다는 증거야." - P275
"그건 표면적인 구실이겠지. 월요일에 내가 미우라의 집에 갔을 때 당신은 마치 정신이 이상한 여자인 척했잖아. 내 정체를알고 관심 끌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그런 서툰 연극을 한 거지. 그게 당신이 미우라를 조사하고 있었다는 증거야." 제대로 찌른 모양이었다. 여자는 눈을 내리깔며 고개를 살짝저었다. - P275
"어떻게 내가 당신이 아르바이트하는 곳까지 오게 됐는지 궁금하겠지? 가르쳐주지. 간단해. 장인이 가지고 있던 신상 보고서에 인쇄된 회사 이름을 훔쳐봤어. 전화번호부에서 주소를 알아냈고." - P275
"끈질기게 벨을 눌러댔잖아. 외시경으로 당신 얼굴을 봤어." 여자는 깜짝 놀라서 포크를 테이블에 떨어뜨렸다. "설마, 아저씨가 그 사람?" "안타깝지만 난 아냐 미우라를 죽인 범인은 따로 있어. 그 사실을 증명하느라 경찰서에 한밤중까지 붙들려 있었지만." - P276
"아냐. 내가 알고 싶은 건 당신이 장인에게 어떤 내용을 보고했느냐는 거야." "말했잖아요, 조사 내용은 누설할 수 없다고." "그러니까 이렇게 부탁하잖아." - P277
"고집이 아니라 이건 비밀 엄수 의무라고 하는 거예요." 말끝이 거칠어졌다. 마음이 상한 모양이었다. "비밀 엄수 의무고 뭐고 간에 미우라 야스시는 이미 죽었어.‘ "아니에요. 비밀 엄수 의무는 의뢰인을 위한 거예요." "의뢰인들이 하나같이 추접한 위선자들이라고 아까 당신 입으로 말하지 않았나?" - P277
그 순간 주머니에서 무선호출기가 울렸다. 회사였다. 잠시 후퇴해야 할 타이밍인가. "잠깐 실례하지."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벗어났다. 가게 전화를 빌려 SP국으로 걸었다. "국장님이세요?" 스미다 나루미가 받았다. "지금 전무님께 연결할게요." - P278
"가즈미에게 연락이 왔어. 다카시가 유괴됐다고." "설마요." "농담이 아니네. 자세한 이야기는 못 들었지만 죽은 아이의 어머니가 학교에서 다카시를 데려간 모양이야. 아직 둘 다 행방불명이라는군." - P279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았다면 학교에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후회해봐야 이미 늦었다. 미치코는 다카시를 죽일 생각인지도 모른다. 만 엔짜리 지폐를 계산대에 던지고 거스름돈도 받지 않은 채밖으로 뛰쳐나갔다. - P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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