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과학자가 만든 술

청산녹수 - P141

전국의 양조장을 순례하기 시작하면서 느낀 공통점은, 대표님들이 술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찾아와 주는 사람을 엄청나게 반긴다는 것이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이 술쟁이들이 가장 즐기는 일은 말 통하는 사람과 술잔을 나누며 술에 얽힌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 P142

니다."
"사정이 생겨서요. 1박은 못하고 밤 기차로 올라와야 할 것 같습
"알겠습니다. 하룻밤 보내시고 가시는 줄 알았는데…"
문자메시지의 말줄임표에서 아쉬움이 뚝뚝 떨어졌다. - P142

일제다 오남의 곡창지댜에서 나는 (중략). 오히려 그런 이유 때문일까, 이 지역의 자연환경은 수도권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볼 것 많고 아기자기하다. 축령산 편백나무숲은 북유럽의 원시림 같은 울창함을 자랑한다.  - P143

가을 단풍으로 유명한 내장산이 오르는 방향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정읍 방향에서 오르면 내장산, 장성에서 출발해 백양사 방향으로 오르면 백양산이다. 노랗고 빨갛게 물든 가을 산을 보기에도 이곳이 전국에서 손꼽힌다는 이야기다. - P143

"장성이 경치도 좋지만 무엇보다 물이 좋습니다. 술 만드는 사람에게는 비할 바 없는 매력이죠."
인근의 내장산, 축령산, 불태산 등의 봉우리에서 계곡을 타고 흘러내린 물이 토양에 여과돼 샘으로 솟아나는 곳이 바로 장성이다. - P144

구봉산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야트막한 양조장 건물은 과거에 초등학교였던 곳이다. 차츰 아이들이 줄어 문을 닫은 것을 김 대표가 인수해양조장 겸 우리술 교육장으로 꾸몄다. - P144

술맛을 보러 찾아간 길이니만큼, 첫 잔이 급했다. 처음 맛을 본 것은 청산녹수에서 가장 대중적인 라인인 편백숲 산소막걸리였다. - P145

이 술에는 발효 중에 효모에 미치는 산소의 작용을 컨트롤하는 김 대표만의 특허기술도 담겨 있다(다시 말하지만 김 대표는 미국에서 세포생물학 박사후과정 (Post Doc.)을 마치고 돌아온 과학자다!). 알코올 도수는5.2도 이 숫자에서 김 대표의 아재 감성(?)이 묻어난다. - P145

드라이한 맛의 막걸리도 최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선택돼야 수지를 맞출 수 있는 대중주는 일단, 달아야 한다. - P145

이런 아쉬움을 보완하기 위해 내놓은 것이 5.8도의 산소막걸리 순수령과 8도의 산소막걸리 순수령 8도다. 물, 보리, 홉만을 이용해 만들어진 독일의 순수령 맥주처럼, 쌀, 누룩, 물만을 이용해 만든 막걸리라는 것을 표방한 제품이다. - P146

우유가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지만 발효유의 맛이 나는 과일이 첨가되지 않았지만 바나나의 향을 가진,
곡물로 만든 야쿠르트. 이것이 순수령 산소막걸리를 마셔본 인상이었다.
"일반적으로 막걸리는 발효가 끝나면 바로 제성 (출하가 가능한 술로만들기 위한 최종 작업)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순수령 막걸리는 40일간 저온발효를 마치고 나면 숙성 탱크로 옮겨서 열흘 정도 더 숙성시켜요. 그때유산균이 활동하면서 신맛이 생기는거죠" - P146

일체의 첨가물을 넣지 않고 오로지 재료로만 승부를 보겠다는 막걸리인데도, 출고가는 순수령 8도가 4천 원을 넘지 않는다. - P146

시음은 8도의 사미인주로 이어졌다. 청산녹수 양조장의 시그너처 제품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사미인주는 유기농 쌀과 벌꿀을 사용해 품격과 음용성을 한층 더 높인 탁주다. 패키징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 P147

게다가 사미인주는 사람의소화효소와는 무관한 전통누룩으로 당화와 발효를 시키는 술이다.
8도짜리 사미인주를 꽤 호기 있게 들이켰더니 무지근한 취기가 올라온다. 역시나, 10도 내외의 술은 위험하다. - P148

"드시는 분들이 막걸리 마시면 이상하게 빨리 취한다고 하시는데,
그건 이상하게 빨리 드셔서 그런 겁니다. 아무래도 막걸리는 마시는 속도가 다른 술에 비해 빠르니까요. 알코올 그램 수로 따지면 이상할 게 하나도 없이 정상적으로 취하시는 겁니다. 하하."
대학교 때부터 무의식중에 가지고 있었던 관념에 대한 과학자의 유쾌하고도 통렬한 반박이었다.  - P148

(중략), 늘 존망의 기로에서크고 작은 승부를 벌이며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전통주 업계의 현실이고스란히 느껴졌다. 문득, 대학 강단에만 서도 사는 것이 그리 힘들지는 않았을 김 대표가 쉽지 않은 도전을 이어나가는 이유가 궁금했다. - P148

같은 술꾼의 처지로, 술꾼의 말에 말없는 건배를 건네는 것 말고는 다른 것이 모두 부적절해지는 때가 있다. 지금이 그때인 듯했다. 부딪치는 술잔 속에 담긴 지지와 동감. 그것이 ‘건배‘라는 행위가 가지는 가장 큰아름다움이 아닐까.  - P149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그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어떤 환경을 갖춰야 하는가에 대한 탐구도 여기에 포함된다. 생물학을 베이스로 하는 과학자로서, 자연스러운 논리의 귀결이다. 전통 누룩 속에는 백여 종의 미생물이포함돼 있다고 한다. 이들 중 각각의 미생물이 하는 작용과 그 조화로서 만들어지는 맛과 향에 대한 연구는 아직 갈 길이 멀다. - P14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