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화 4: 맥밀런 자매
모든 여정 가운데 가장 힘들었던 건 맥밀런 가족을 찾는 일이었다. 그건 정말 컴컴한 어둠 속에서 바늘을 찾는 일이었다. 내가 맥밀런 가족을 찾고 싶었던 이유는 비비안과 맥밀런 가족의 아버지가 필름을 함께 현상했기 때문이다. 맥밀런 가족을 찍은 사진은 수십 장이나 있지만, 이 가족에대한 정보는 글라신지 봉투 한 장에 적은 ‘업스테이트 뉴욕‘이 전부였다. - P412
사진에 찍힌 주변 건물을 살펴보고 구글어스의 도움을 받아 나는 가족의 집이 1번로360번지이거나 390번지임을 알 수 있었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인구조사기록이 없었기에 훨씬 정보량이 적은 전화번호부로 이 가족을 추적할 수밖에 없었다. - P412
비비안이 찍은 사진을 크게 확대하고, 다시 철저하게 살피며 단서를 찾다가 문득 장난감 전화기의 다이얼 가운데적혀 있는 글자를 발견했다. 오랫동안 나는 그 글자가 가짜 전화번호라고생각했지만, 다시 보니 이름처럼 보였다. - P413
. 그러자 1번로의 주소를 찾으려고 전화번호부를 뒤질 때 본 적이 있는 맥밀런이라는 성이 생각났다. 1번로 390번지에 살고 있는 자스(제임스James의 줄임말. 옮긴이) R.맥밀런이라는 이름이 말이다. - P413
잘 보이지도 않는 장난감 전화기의 글자는 애초에 ‘세라‘가 아닐 수도 있었다. 그래도 직감을 확인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았다. - P414
나는 계속해서 스크롤을 움직이며 주변 환경을 살폈다. 그리고 곧, 길을 따라 쭉 세워져 있는 나무 담장이 보였다. 비비안이 사진으로 담은 그 담장이었다! - P414
공개된 정보에 따르면, 세라는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났다. 루시아는1954년에 함께 살았던 보모를 기억하기에는 너무 어리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나는 메리에게 주목했고, 뉴멕시코에 살고 있는 메리를 찾아냈다. 처음에 메리는 비비안을 거의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사진을 보여주자가족에게 중요했던 추억과 이야기들을 기억해냈다. - P415
메리는 그토록 따뜻한 휴가 사진은 모두 엄청난 허구라고 했다. 그때 메리의 부모는 약물 남용, 불륜,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메리의 아버지는 평생 아내와 애인 사이를 오갔다. - P415
메리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사진은 현실을 충분히 오도할 수 있음을, 사진에 담긴 장면이 반드시 진실이거나 무언가를 상징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진 속에 담긴가족의 단란함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 P415
다양한 일화를 들려준 메리의 이야기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었던 사실은 비비안이 사진을 나누어주기를 꺼려했다는것이다. 그때 이미 비비안에게는 사진을 모으는 수집벽이 나타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 P416
비화 5: 마이어 가문
콕사키 감화원에서 보관하던 파일에는 흔히 전기작가들이 바라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가 들어 있었고, 군대 기록에는 유전성 정신 질환에 관한 기록을 비롯해가족의 역사가 가득 들어 있었다. 칼의 기록은 비비안 마이어의 인생을 열 - P416
그래서 비비안의 직계 가족을 아는 사람들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마리 조소나 니콜라스 바일 같은 경우에는 어렵지 않았다. 모두 90세가 넘었지만, 아직 샹소르 계곡에는 두 사람을 아는 이가 몇 명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 P416
칼 마이어
십 대 때 칼에게 편지를 보냈던 친구들은 오래전에 칼의 곁을 떠났고, 몇 사람은 감옥에, 몇 사람은 이른 죽음을 맞았다. - P416
뉴저지주 앳코에 위치한 L&S 쉼터는 노인 돌봄 학대에 관한 심층 연구의 대상이기도 했던 시설로, 그 결과는 뉴저지주 문서 보관소에서 열람할 수 있다. 이 시설은 비교적 높은 점수를 받았고, 해당 연구는 칼이 그곳에서 경험했을 일들을 상당히 자세하게 알려주었을 뿐 아니라, 시설의 오랜 소유주 이름도 알려주었다. 그들은 플로리다에 살고 있었다. - P417
나는 칼이 문제 많고 자기 파괴적인 사람이었다고 증언하리라 예상했기 때문에, 두 사람의 묘사를 듣는 동안 깜짝 놀랐다. 두 사람은 칼이 아니라 비비안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사람을 묘사했다. 칼은 유창하게 말을 하고, 옷을 단정하게 입었으며, 바른 태도를 지녔고, 덩치는 컸지만 상당히 조용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 P417
찰스 마이어 시니어
나는 비비안의 아버지를 직접 알고 있는 사람을 찾기 위해 엄청난 시간을 투자했고, 결국 보상을 받았다. 내가 시도한 방식은 찰스의 두 번째 아내의 가족을 찾는 것이었다. - P417
뉴욕에서 대중에게 공개되는 유언검인소 기록은 개인의 가족 역동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베르타는 이렇다 할 유언을 남기지 않고세상을 떠났지만, 행정 기록을 보면 베르타의 후손은 다섯 갈래로 뻗어나갔음을 알 수 있다. - P418
찰스에 관해서는 그의 어머니가 이미 형편없이 묘사한 바가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좋은 이야기가 나올 거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조카는 말문을 떼는 것이 망설여질 정도로 자신이 알고있는 이야기가 너무 추잡하다며 입을 닫으려 했다. - P418
오빠와 달리 비비안은 정말로 자기 아버지와는 거의 교류가 없었기를 바랄 뿐이다. - P419
외제니 조소
. 요리사로 크게 성공하기도 했고, 남긴 편지에서 느껴지는 인상이 맞는다면, 외제니는 윤리적이고 따뜻하며 현명한 사람이고, 비비안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친 사람 같았다. 무엇보다 비비안에게는 깊이 새겨진 올바른 가치관이 있었다. 그 가치관은 누군가의 영향을 받았을 테니, 비비안의 자질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확인하는 일은 중요했다. - P419
가족에게 제니는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는데도, 외제니의 사진은 비비안의 소지품에서도, 오트잘프 문서 보관소에서도, 프랑스에 있는 친구나 가족에게서도 찾지 못했다. - P419
뉴욕시나 서포크 카운티와 달리 낫소 카운티는 카운티에서 발행한 문서를 직접 보관하고 있었고, 그 문서들이 검색 가능하게 된 것은 내가 비비안의 가족에 대한 조사를 모두 끝마친 뒤였다. - P420
그때쯤이면 외제니가 1901년에 미국에 도착했음을 입증할 기록이 없었기 때문에 입국 확인 증명서도 함께 제출해야 했다. 필요한 서류를 모두준비하고 증인도 찾아야 했다. 외제니가 그 과정을 모두 마쳤을 때는 이미 한 해가 지나 1932년이 되어 있었다. - P420
. 그 서류를 보는 순간 나는 외제니의 귀화가 낫소카운티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미국 이민국에서 처리되었음을 받았다. 귀화 신청을 연기함으로써, 외제니가 나에게 아주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준 것이다. 마이어 가족들이 그랬던 것처럼 초기에 귀화를 신청한 사람들은 사진을 제출할 필요가 없었다. - P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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