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읽었지만, 머리에 들어온 것이 없을까.




5장 위반

위반은 금기를 부정하는 대신 오히려 금기를 초월하고 완성시킨다

금기에 대한 언급이 불편한 이유는 금기 대상의 불안정성 때문만이아니라 비논리성 때문이기도 하다. (중략)
"살인하지 말라."라는 엄숙한 계명을 생각하면 우리는 실소를 금할수 없다. 축복 받은 군대와 찬양의 신이 동시에 그렇게 노래한다. 그러나 금기는 살해와 어쩔 수 없는 공모 관계에 있다.  - P71

. 금기를 인정하고 군대의 살상을 막기 위해 무슨 일이든지 하든지, 아니면 겉치레와 규칙을 지키는 싸움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성의 세계를 받쳐 주는 금기들이 합리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 P71

 평안과 이성의 세계를 가능케 하는 터부란 그런 성격을 지닌다. 그러나 터부는 원칙적으로 폭력이 그렇듯이(인간의 폭력은 본질적으로 계산이 아닌, 분노, 공포, 욕망 등의 감정 상태에서 비롯되지 않던가.) 그 자체로는 지성이 아닌 감성에 호소한다. 금기와 관계를 유지하면서 금기를 무시하는 논리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금기의 비합리적 성격을 고려해야 한다. - P72

 부정적 감정의 영향을 받는 경우 우리는 금기에 복종한다. 하지만 부정의 감정이 긍정으로 변하면 우리는 금기를 위반한다. 그러나 한번 범했다고 해서 반대 감정의 가능성과 의미가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우리가 위반의 폭력이 가져올수 있는 최악의 상태를 모르거나 또는 희미하게 밖에 의식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폭력을 그렇게까지 두려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 P72

"금기는 범해지기 위해 거기에 있다."라는 명제는 살해 금기가 없는 곳이 없지만 그것은 결코 아무 데서도 전쟁을 막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 P75

금기를 모르는 동물들은 조직적인 전쟁은 그만두고라도 전투조차 모른다. 어떤 의미에서 전쟁이란 공격 충동의 집단적 조직이라고 말할수 있을 것이다.  - P73

그러면 전쟁과 폭력이 대립적인 것이라는 말인가? 아니다. 다만 전쟁은 조직된 폭력이라는 말이다. 금기의 위반은 동물의 폭력과는 다르다. 그런데도 그것은 여전히 폭력이다. - P73

위반(위반은 금기의 무시와는 다르다.)에 제한이 없었다면 위반은 동물적 폭력과 다를 것이 없는 폭력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결코 그렇게 될 수 없다. 조직적 위반은 금기와 하나가 되어 사회생활을 규정한다. - P73

우리가 요즘에야 그에 관한 담론을 발견하는 이유는 아마 거기에 있을 것이다. 금기와 위반의 관계를 제대로 인식한학자는 뛰어난 종교사 해석학자 마르셀 모스이며, 그는 강의를 통해서 그 진리를 체계화시켰다.  - P73

끝없는 위반

대체로 금기가 그렇듯이 금기의 위반도 규칙을 지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위반이 결코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어떤 때, 거기까지, 그것이 가능하다가 위반의 의미이다. - P74

그러나 제한이 없는 예외적인 어떤 무한정의 위반을 가정해 볼 수도있을 것이다.
관심을 가질 만한 예를 하나 들어 보겠다. 이를테면 폭력이 금기를 넘어설 수 있다. 그러면 규칙은 무능한 것이 되고, 단단한 어떤 것도 더 이상 폭력을 가둘 수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죽음은 근본적으로 폭력을 막는 금기를 초월하며 또 이론적으로 보면 폭력은 죽음의 원인이다. - P74

위반의 메커니즘은 이처럼 폭력이 폭발하면서 시작된다. - P75

그러나 폭력을 가로막기 위해 사용한 방어벽이 더 이상 효과가 없어지면 인간이 지키던 금기들도 덩달아 의미를 상실하기에 이른다.
지금까지는 잘 다스려져 왔던 폭력 충동이 폭발하면서, 이제 인간은 마음대로 살해를 저지르기에 이르며, 성적 과잉을 조절하지 못하는 인간은 지금까지 조심스럽게 하던 짓을 이제 아무런 두려움 없이, 절제 없이 공개적으로 해댄다. - P76

인간의 위반은 일상적으로 지켜지던 금칙에 한번 도전할 뿐, 한계를 유보해 둔다. 인간의 위반은 위반의 보완물인 세속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은 채 그것을 넘어서는 행위이다. 인간 사회가 오직 노동의 세계인 것만은 아니다. 세속의 세계와 신성의 세계는 동시에 (혹은 연속적으로) 위반을 구성하며, 둘은 위반의 두 가지 보완적 형태들이다. 세속의세계는 금기의 세계이다. 신성의 세계는 제한된 위반으로 열린 세계이다. 그것은 축제의 세계이고 군주들의 세계이고 신들의 세계이다. - P76

신성이 상호 대립적인 금기와 위반을 동시에 의미하는 한 위의 시각은 쉽게 이해가 안 된다. 본래 금기의 대상은 신성하다. - P76

신성의 육화인 신들은 경배하는 모든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한다. 인간들은 두 가지 충동에 동시에 복종한다. 하나는 두려움에 의한 거부적 충동이고, 다른 하나는 매혹에 이끌린 경배의 충동이다. - P77

노동이라는 세속의 시간에는 사회는 재원을 가능한 한 축적하는 반면 소비는 생산에 필요한 최소한의 양으로 억제한다. 반면 축제는 신성의 시간이다. 축제가 반드시 위에서 본 것 같은 왕의 죽음과 그에 이은 금기의 대대적인 제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 P77

 일상적인 노동의 시간으로부터 축제의 시간으로 건너가면 카유아가 말한 것처럼 어떤 가치 전도가 발생한다.⁵
경제적인 각도에서 보면 축제는 노동으로 축적해 놓은 재원들을 무절제하게 마구 허비한다. 지금 문제는 극단적인 대립이다. - P77

전체적으로 보면 충동의 복잡성에도 불구하고 그 의미는 충분히 밝혀진다. 종교는 본질적으로 금기의 위반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 P78

기독교도 그렇고 불교도 그렇고 우리가 알고 있는 종교가 대부분 그러하듯이 공포감과 역겨움은 뜨겁게 끓어오르는 영적생명의 전주곡이다. 애초의 강력한 금기들에 기초한 영적 생명의 잔치는 축제의 의미를 가지며 이때 그것은 규칙의 준수가 아니라 위반이다. - P78

기독교와 불교에서 법열은 공포의 극복에 근거한다. (중략) 허무의 감정보다 더 심하게 우리를 충일 속에 내던지는 감정은 없다. 그러나 그 공허는 결코 소멸과는 다르다. 그것은 낙담한 태도의 초월, 위반이다. - P78

그러나 그렇더라도 우선 나는 그보다 다소 덜 복잡한 위반의 형태인 전쟁과 제사를 순차적으로 살펴보겠다. 그런 다음 육체적 에로티즘을 살펴볼 것이다.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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