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적이게도, 전체 이익과 시대정신을 앞세우면 그것을 독점하고자 하는 흥분과 열정이 과도해지면서 적대와 증오의 정치가 심화된다. 하나의 옳은 가치를 추구하는 일이 정치의 모든 것이 되면 전체주의는 피할 수 없다. - P138

언제든 그들은 눈앞의 이익을 좇는 집단 이기주의자들로 매도되거나, 국익 내지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특수 이익집단으로 공격받기쉽다. - P138

사회는 어느 하나만이 옳을 수 없는 여러 가치들의 경합체제이고, 공동체는 이를 구성하는 복수의 집단 이익들이 경쟁과타협, 조정을 통해 배워 가야 하는 ‘시민의 학교‘이기 때문이다. - P138

통치자와 피통치자 사이의 ‘신뢰‘를 강조했던 영국의 정치철학자 존 로크의 관점에서 보아도 마찬가지다. 그에 따르면, 근본적으로 신뢰는 통치자와 피통치자 모두가 한 사회의 공동 구성원이라는 일체감을 갖는 데서 비롯된다. 그러나 한국 민주주의에서 이 근접성과 신뢰의 원칙은 깨진 지 오래다. - P139

이명박 정부 시기에 공개된 고위 공직자 신망 자료릉 통해 그 특성을 살펴보자. (중략) 자녀 중 외국 국적을 가진 비율은 보통 사람들의 경우 1만 명 가운데6명이 안 되는 반면 이들은 5명의 1명꼴이다. 병역면제 처분을 받은 비율 역시 일반 시민의 6배나 많다. 국내외제차 점유율은 갓 5퍼센트를 넘었는데 이들이 보유한 외제차 비율은 30퍼센트를 훌쩍 넘는다. - P140

그러나 더 중요한 특징이 있다. 그것은 이들 통치 엘리트의 삶의 경험과 가치 지향이 우리 사회 공동체 안에 뿌리를 두고 있지않다는 사실이다. - P140

 우리 사회 절대다수의 구성원들을 크게 실망하고 분노하게 만들었던 영어 몰입 교육 정책이나 대책 없는 미국산 소고기 수입 결정이 가능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들이 시민들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했다는것이다. - P140

시민과 달라도 너무 다른 한국의 통치엘리트들은 누구를 위해존재하는가? 통치 엘리트와 일반 시민이 공유하는 공동체적 일체감 같은 것은 있는가? - P141

실제적 대표와 가상적 대표

민주주의에 관한 경제학적 설명을 개척한 조지프 슘페터 Joseph Schumpeter가 강조했듯이,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소비자의 결정과는 달리 민주주의 정치에서는 공급 측면 (정당 후보)과 무관하게 독립된 수요측면(시민 여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P141

여론조사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대개 ‘민심론‘을 좋아한다. - P141

 소비자의 선호를 독립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가정하는 경제학에서라면 말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정치에 있어서는, 선택의 조건이나 대안이 어떠냐 하는 문제와 무관하게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민심은 없다. - P142

 이를 통해 미래의 정부나 의회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상당 정도 알려져 있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유권자의 선호가 정당과 후보 대안을 매개로 구조화될 수 있을 때 비로소 선거는 민주주의의 제도로서 작동 한다.  - P142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시민사회의 다양한 이해와 요구가 정당과 언론을 통해 실체적으로 표출되고 대표될 수 있는 조직적 조건이랄까 집단적 채널이 아무리 찾아봐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 P142

정치학에서는 그런 것을 ‘실제적인 대표성" actual representation과는 거리가 먼 ‘가상적인 대표성‘virtual rep-resentation 만 있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 P143

프레임에 갇힌 모조품 정치

한국정치를 나쁘게 만드는 데 기여한 유행어들이 여럿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프레임‘frame이라는 말이 아닌가 한다.  - P143

오래전 이탈리아의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였던 안토니오 그람시 AntonioGramsci도 말했지만, 인간에게는 이데올로기를 통해 사실을 인식하는 측면이 분명 있다. 따라서 프레임 이론에서 말하듯이 개념과 용어의 선택이 미치는 영향을 잘 생각해 보는 것은 중요하다. - P143

프레임이라는 개념 역시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것이 정치의 모든 것인 양 이해하기 시작하면 긍정적인측면 못지않게 부정적인 효과를 낳을 수 있다. - P144

 그러면서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 때로 모순적이기도 한 요구들을 통합할 수 있는 실력을 다져야 한다. - P144

사회로부터의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프레임, 자신사들의 개념 틀을 사람들에게 제공해야 한다고 믿게 되면 민주주의의 언어와는 거리가 있는, 광고와 마케팅의 언어가 지배하게 된다. - P144

이제 한국의 선거는 정치 마케팅 전문가들과 계약을 하고, 보고서를 받고, 그에따라 선거를 기획하고, 캠페인을 전개하는 과정을 따른다. - P145

 문제는 그것이 선거에서 너무 많은 부분을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결과 정당 조직과 당원들의 역할이 무시되는 경향이 심화되었다.
당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 정당, 당원의 열정과 노력에 의존하지 않는 정당, 그들의 기대와 참여를 조직하려 하지 않는 정당이 민주주의를 말할 수 있을까? - P145

선거가 아무리 지지표를 동원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해도, 사람들의 생각을 작위적으로 이끌려는 노력이 꼭 좋은 성과를 내는 유일한 방법도 아니며, 좋은 접근인 것도 아니다. - P145

민주주의자는 인간이 사는 사회 속에 실존하는 다양한 삶의 현실을 존중하고, 현실에서 해결할 수 없는 수많은 딜레마 앞에서 고민하고 대화하고 협력의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 P146

그럴수록 전략적 사고에 이끌리게 되고 현란한 말을 사용하게 된다. 그러면서 보통 사람들의 언어가 사라지고 전문가다운 분위기를 풍기는 외국어 용어들을 동원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 역시 좋은 일이 아니다. - P146

(전략). 이른바 납세자들만이 시민이었던 것이다.
그때 영국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사상가였던 존 스튜어트 밀JohnStuart Mill도, 직업과 교육 수준을 고려해 뛰어난 시민에게는 투표권을 더 주자고 주장했을 정도이다. (중략), 공동체의 중대 결정에 대한 판단 능력은 교육이나재산의 많고 적음과 큰 상관이 없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 P146

 오래전 영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조지 오웰GeorgeOrwell이 말했듯이 "(우리가) 연합해야 할 사람은, 사장에게 굽실거려야 하고 집세 낼 생각을 하면 몸서리쳐지는 모든 이들"이지 특정의 프레임을 공유한, 자격 있는 개념 시민들만이 아니라는 말이다.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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