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적으로 정부가 피지배자의 동의로부터 정당한 권력을얻어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원리는 그 이론적 토대를 잃게 되었고, 아닌게 아니라 민주주의의 실천은 고초를 겪게 되었다. 다행히도 근대 민주주의 철학이 로크보다 훨씬 더 이성의 적확성을 믿었던 벤담에 의하여 재건되었다. 새로운 철학이 바로 공리주의이다. - P457
벤담은 자연권과 신의 의지를 포기하고 정부에 대한 아주 순수한 이성적 기반을 추구하였다. 그에게 정치 분야의 근본적 공리 혹은 기본 진리는 정부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본적 원리로부터 그는 많은 결론을 도출하였다. - P458
그때 벤담은 이 명백한 역설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통자들은 당연히 자기 자신의 행복을 추구한다. 그러나 정부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어떻게 이러한 반대되는 이해관계가화해할 수 있는가? - P458
여기서 정치 이데올로기의 과정을 더 이상 살펴볼 필요는 없다. 이론가들이 천체에 대한 수학 이론만큼이나 성공적인 정부에 대한 과학을 정립할 수는 없었다. 아마도 그들은 단지 보통 사람의 정치적 등장을 정당화하고 선포하였던 것에 지나지 않았다. - P459
18세기를 주도했던 경제학파는 케네 (François Quesnay, 1694~1774)를 주축으로 하는 중농주의자들과 아담 스미스와 그 후 존 스튜어트 밀이 주도한 영국 고전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공리적 경제 진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동의하였다. 또한 자연 현상에서와 마찬가지로 경제에서도 영원한 불변 법칙이 지배한다는 사실에 동의하였다. - P459
자유 방임과 통행 허가라는 어구에서 잘 표현되어 있는 원리인 자유 무역과 무제한의 경쟁 등을 그러한 공리로부터 연역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중략) 특히 정부는 사업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 P460
존 아담스의 언어로 표현하면, 남자는 두 개의 욕구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식사이며 하나는 여자이다. 그러나 두 번째 욕구가 너무나 강하기 때문에 그는 첫 번째에 대하여 잊어먹게 되고 무모한 결혼에 돌입하게 되고, 자식을 낳는다. 그러므로 인구의 증가는 생계수단의 증가를초월하게 된다. - P461
그러나 맬서스는 실제 인구가 기하학적으로 증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왜 그런가? 대답은 기아, 질병, 악과 전쟁 등이 인구증가를 억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눈에 보이는 악은 종국에는 진실로 이로운 것이 된다. 그것들은 자연의 의지이며, 두렵기는 하지만 필요한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신이 수립한 계획의 일부이기 때문에, 어떠한 입법도 불행한 인간의 운명을 누그러뜨릴 수 없다. - P462
사실 그는 11번째 명령을 덧붙이곤 했다. "여섯 아이를 부양할 만한 능력을 갖출 때까지는 결혼하지 말라." - P462
그 과업을 이어받은 또 다른 유명한 경제학자는 리카도(David Ricardo, 1772~1823)였다. 먼저 그는 자본, 노동, 가치, 유용성, 임대료, 임금, 이윤 등 경제 생활에 도입되는 요소들을 분리하고 이름을 붙였다. 리카도에 따르면, 사업의 모든 것은 이러한 요소들을 관계 짓는 피할 수 없는 자연 법칙을 따르고 있다. - P462
리카도는 이러한 생각을 자신의유명한 임금 법칙에서 요약하였다. "노동의 자연 가격은 노동자를 재생산하는 데에 필요한 가격이다. 증가하거나 감소하지 않고 이들 부류를유지하고 영속화하는 데에 필요한 가격인 것이다." 그러므로 맬서스게는 물론이고 리카도에게도, 가난과 고통, 기아 등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다. - P463
그러나 경제 이론은 수학과 과학의 방법을 채택하였지만, 더 큰 혼란에 빠져 있었다. 몇몇 경제학자들의 추론에 따르면, 문제는 그들이 수학 법칙을 사용하고 자연법칙을 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수학 자체를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 P463
1838년, 쿠르노(Antoine Augustin Counot, 1801~1877)의 부 이론의 수학적 원리에 대한 연구》가 출판되면서 경제학 분야에 새로운 학파, 즉 수학학파가 발생하였다. 20세기의 빌프레도 파레토(Vilfredo Pareto. 1848~1923)의 연구도 그 학파에 속한다. - P464
우리는 수학과 수학이 낳은 합리적 정신이 인간에 대한 과학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았다. 그 정신이 낙천적으로, 그리고 때로는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인간 행위의 자연적인 보편 법칙을 발견할수 있고, 그 결과로 모든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예측하는 한 그것은 물론 잘못된 것이었다. - P468
18세기와 19세기의 사회과학 연구자들에게 겨눌 수 있는 가장 가혹한 비판은 아마도 사회과학이 너무나 수학적이며 충분히 과학적이지 못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들은 정치학 혹은 경제학이 쉽게 따를 수 있는공리나 일반 원리를 찾고자 원했다. - P468
윤리학, 정치학, 경제학, 혹은 심리학이라는 개념 자체와 그러한 학문을 만들고자 하는 자극이 뉴턴 시대의 비옥한 합리주의에서 직접 파생된 것이라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이성은적어도 전통, 관습, 그리고 미신이 가리고 있던 분야에 빛을 비추어주었던 것이다. 특히 현존 제도에 순응하는 대신 정부에 대하여 합리적인 태도를 취하게 됨으로써 인간은 불평등과 부정, 그리고 잔혹함에 대하여 눈을 뜨게 되었다. - P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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