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시대의 주도적 정신이자 천재이며, 뉴턴 수학과 물리학의 충직한 추종자였던 볼테르가 바로 자연신학 운동의 주요 주창자였다. 그의 생기 있고, 풍부한 저술에 힘입어, 자연신학은 교육받은 이들 사이에서가장 강력한 18세기 종교 운동이 되었다. - P371
자연종교를 찾고자 해서, 결국 본질적으로 자연신학자가 된 많은 사상가들은 때로는 하느님을 없애버리기도 하였다. 그들은 자연신학이 과학의 한 분야라고 주장하였다. 우주의 작동에 필연적인 행위자로서하느님이 존재한다는 것은 과잉 실험적인 것이라며 거부되었다. - P371
하느님을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간에, 자연신학은 완전히 합리적이 되려고 하였다. 그리고 실지로, 신앙과 신비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채워주었다. 그래서 자연신학자들을 종교에 향수를 둔 합리주의자라고부르기도 하였다. - P371
. 그들 중에서도 철학자인 홉스, 흄, 몽테뉴, 디드로, 그리고 디드로가 <백과전서(Encyclopedie)>를 집필할 때 조수를맡았던 수학자 달랑베르, 그리고 역사학자 에드워드 깁슨 등은, 종교가 없어서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민족에게든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역사적 현상 그 이상은 아니라고 보았다. - P372
18세기 프랑스에서 회의주의는 단지 무신론의 서곡일 뿐이었다. 18세기 초 종교를 거부한다는 것은 너무나 드물고 대담한견해라서 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가 평화롭게 죽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질문에 대하여 자주 토론하였고, 회계를 하지 않고서도 웃으면서 죽은 무신론자는 세상을 들썩이게 하였다. - P372
창조주를 없애고 뉴턴 우주론에서 궁극적인 결론을 이끌어낸 것은다름 아닌 프랑스의 주도적 수학자인 라플라스였다. 우리는 이미 나폴레옹이 천체에 관한 책 속에서 ‘왜 하느님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했을 때 라플라스가 그런 ‘가설‘은 필요 없다는 대답을 했다는 사실을 언급한 바 있다. - P373
종교에 대한 라플라스의 입장은 많은 다른 주도적 프랑스 사상가들이 공유하고 있는 것이었다. 올바크남작에 따르면, 하느님이라는 관념은 실재하는 어떤 것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 P373
올바크의 《자연의 체계》는 널리 읽혔으며 무신론의 성서‘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그중 많은 부분은 하느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주장이다. 이 견해에 철저히 동조하였던 의사 라메트리는 더 나아가 종교는 단지사제들과 정치가들에게만 유용한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 P374
오히려 그러한 생각은 위험하며 사악한 것이었다. 도덕성을 보장해주기는커녕, 종교적 지도자들이 하느님의 이름으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프랑스에서 유물론의 절정은 모든 종교의 정신적 폭압에 대항한 반역이 되었다. - P374
종교적 차이에 대한 박해의 역사는 결코 르네상스 시대 기독교인들의 행동에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인류 역사에서 공포스럽고, 수치스러운 부분임에 틀림없다. 자신의 종교적 신앙을 지키기 위해 오직 신앙밖에 없는 사람들은 가장 기묘하고도 악마적인 고문으로 이단자들을 살해하기도 하였다. - P375
물론 관용이란 것이 직접 수학에 의해 주어진 선물은 아니다. 오히려 그 운동이 발생한 것은 17, 18세기의 합리주의 정신에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P376
과학이 자연을 관찰하고, 그결론을 끊임없이 증명하고, 그것이 비록 태양 중심설과 상대주의 이론의 무모함을 가진다 하더라도 사실에 맞는 이론이면 어떤 것이든 받아들일 것을 가르치지만, 결국 대부분 수학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므로이 학문 체계가 어떤 측면에서는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자비의 정신을 널리 퍼뜨리는데 아주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P376
뉴턴 시대에 이룩한 수학적 성취로부터 얻어낸 또 다른 하나의 자유가 있다. 바로 미신으로부터의 자유다. - P376
그러나 합리주의가 성장하면서 종교 자체에 유익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종교는 더 이상 과학의 영역을 선취하지 못한다. 그 결과 수학자들과 과학자들의 작업이 상대적으로 구속받지 않게 되었고, 사람들은 과학의 성과물을 자연에 관한 지식이 존재하는 최선의 원천으로 인식하였다. - P377
더욱이 세속적인 쾌락을 유물론에서 강조함으로써 기독교적 윤리 내용에 반하게 되었고, 결정론 때문에 원죄와 구원의 교리 또한 힘을 잃게 되었다. 유물론은 물질의 결정된 행동 속에 의지가 박혀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 P377
기독교는 인간의 원죄와 타락의 이야기로 악을 설명한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원죄가 붕괴하면서 함께 붕괴하였다. - P378
도덕적 규범은 종교보다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는가? 18세기 사상가들은 몇 가지 임시방편적인 답을 제시하였다. 이성그 자체가 행동에대한 지침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한 사람이 로크인데, 그는 도덕성의 원리들은 수학적 논증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 P378
로크는 성서가 이성이 발견한 도덕적 법칙을 확증한다고 말하였다. 또한 칸트는 종교가 도덕성의 기반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우리의 도덕성이 종교의 기반이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성서는 도덕적 규범과 일치하고, 그것을 보완해주는 만큼만 가치가 있다. - P379
수학은 새로운 계획을 제공함으로써 그 대안을 마련했다. 즉 사회 모두를 위하여 도덕 법칙을 마련한 새로운 유클리드가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뤄두기로 하자. - P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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