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RPG의 레벨업 시스템에 이상할 정도로 증오를 불태우는 사람과 만날 때가 있다. "야, 말이야. 소박한 의문인데, 레벨 올려서 보스 쉽게 잡으면 재밌냐? 전략이나 장비 같은 걸 고민하고, 잘 싸우면이기기도 하고 가끔 지기도 하는 게 게임의 재미 아냐? 왜오랜 시간을 들여 작업 같은 짓까지 해서 일부러 게임을 재미없게 만들어? 아니, 욕하는 게 아니고, 그냥 순수하게 왜그러는지 모르겠거든?" - P108
‐무엇을 감추리오, 고냥고냥의 개발자들이다.
그럼 왜 너희는 일부러 레벨제 RPG 따위를 만든 건데! 아니 욕하는 게 아니고, 그냥 순수하게 왜 그러는지 모르겠거든?! - P109
다만 SLG나 SRPG와 달리 RPG에서는 레벨 노가다라는행위도 게임을 즐기는 법 중 하나로 인식하며, 어지간하면레벨 노가다까지 포함해 밸런스를 조정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플레이를 채근하는 적을 내보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고냥귀고냥은 달랐다. 단순 레벨 노가다는 악(惡)이라고 규정하듯, 초반에 레벨을 하염없이 올리는 플레이어에게는 반드시 저승사자가 찾아오는 것이다. - P109
<리저드맨의 함정>에 버금가는 고냥귀고냥 측의 두 번째 자객, 통칭 <트레인 양>이! 트레인 양이라는 이름을 본 순간 감이 좋은 사람, 혹은MMORPG 경력이 긴 사람은 금방 감을 잡을 것이다. 『아항, MPK구나.』 - P110
MPK라니 무섭구만. 미리 알아서 다행이야. 하지만 마을부근에서 싸울 때니까 그런 녀석이 나타나면 얼른 도망치면되겠네. 하지만 어수룩한 생각이다. 단언하건대, 너무나도 어수룩하다. 그런 어정쩡한 생각을 가지고는 고냥귀고냥 개발진의 악의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 - P110
<리저드맨의 함정>보다도 악랄하다고 불리는 트레인 양이벤트. 하지만 진정한 악랄함은 본인에게 악의가 없다는 점에 있다. 몬스터를 끌며 도망치는 트레인 양의 도주능력은 그야말로 훌륭하다. 치트 수준의 민첩성과 스태미나, 그리고 뒤에도 눈이 달린 것 아닌가 싶어지는 회피 테크닉으로 어떤 적에게서도 도망친다. - P111
하지만 그 뛰어난 도주능력은 자신을 구해줄 법한 사람, 다시 말해 플레이어와 조우한 순간 사라지고 만다. 그녀의도주 테크닉은 말하자면 화재 현장의 괴력과도 같은 것이라. 사람을 만나 안도한 순간 기운이 빠져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게 된자는 설정이 있는 모양이었다. - P112
그녀는 열심히 뛰어난 모험자가 되려 하는 신출내기일 뿐이며, 어째서인지 플레이어가 오랜 시간 필드에서 레벨 노가다를 할 때만 우연히 대량의 몬스터에게 에워싸여 어쩔 수없이 도망치게 되고 마는 피해자인 것이다. - P112
또한 상대가 트레인 양일 때만 몬스터는 상대를 즉시 죽이지않고 지분지분 가지고 놀다 죽이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다. 트레인 양이 울면서 도움을 청하는 목소리, 그 목소리가점점 희미해져가다가 "미안해, 엄마…." 라고 속삭이며 죽어가는 것을 무시할 수 있다면 이보다 간단한 일은 없을 것이다. - P113
게다가 트레인 양은 플레이어와 합류한 순간 거의 움직이지 못하게 되니 플레이어는 항상 그녀에게 주의를 기울이며 싸워야만 한다. - P113
또 한 가지 흔한 패턴은 트레인 양을 지나치게 신경 썼을경우, 그녀를 지키려고 신경을 쓴 나머지 플레이어는 거의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트레인 양보다 먼저 죽는다. 다만그 경우, ‘죽기는 했지만 소녀를 지키기 위해 싸웠으니 후회는 없다‘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죽어간다는, 그딴 어수룩한 전개는 이 게임에 없다. - P114
그런 말과 함께 울면서 플레이어에게 매달리는 트레인 양의 모습과, "커헉!" 그 때문에 움직임이 멈춘 트레인 양의 목에 몬스터의 칼날이 떨어지는 순간을. - P114
그리고 그 뒤에는…………. "매드 하운드네." 십여 마리나 되는 매드 하운드. 그 밖의 몬스터는 이동속도 때문에 탈락한 것이리라. 그러나 매드 하운드는 이 필드에서 가장 성가신 상대였다. - P115
어차피 자신이 절대 그런 짓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은 나스스로가 가장 잘 안다. 다행히 스태미나는 100퍼센트이며 HP도 거의 닳지 않았다. 매드하운드 정도는 잠깐 상대해줘도 될 것이다. - P116
매드 하운드는 교활한 몬스터다. 인간의 무기 간격을 잘알기 때문에 일정한 거리 내로는 다가오려 하지 않는다. - P116
제일 뒤에 있는 적과의 거리는 어림잡아도 3미터가 못 된다. 절호의 위치! 즉시 스텝을 쇼트 캔슬하며 아직까지 반응하지 못한 하운드들을 향해 다음 스킬을 발동한다! "인비지블 블레이드!!" - P118
· 후우." 내가 검을 마지막까지 휘둘렀을 때, 십여 마리나 되던 매드 하운드는 모두 두 쪽으로 갈라져버렸다. - P119
"그런 스킬은 본 적도 없어요! 엄청나게 강하시네요!" "아, 아하하하…...." 칭찬이 과했다. 바늘방석에 앉은 기분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마법은 그렇다 쳐도 무기로 광범위를 공격하는 스킬을 배우기란 매우 힘들다. 평범하게 플레이하면레벨 50 정도에나 겨우 익힐까 말까. - P119
"저도 노력은 하는데, 아직 무기 스킬도 네 개밖에 못 익혔고.…………." 아까 그 <인비지블 블레이드>도 사실은 광범위 공격이 아니라 단순한 접근공격이며, 심지어 슬래시와 마찬가지로 무기만 들면 누구나 쓸 수 있는 기본 스킬, - P120
[검] 기본 무기, 균형 잡힌 스킬 구성, 보정치는 표준. (중략) [대태도] 3미터 가까운 길이를 가진 괴물 무기이며 칼집에서 뽑기도 어렵다. 대태도를 입수하는 것은 스토리 후반에들어선 다음이며 모두 레어 혹은 유니크템, 원래 강하지만스킬을 사용하면 말도 안 되게 강하다. 보정치는 극대. - P122
【시라누이 [검 / 대태도] 공격력: 91 무게: 8 부가속성: 없음 특수능력: 없음】 다시 말해, 뭐, 그런 것이다. 이 시라누이라는 칼은 분류를 [검, 도]로 해야 할 텐데도뭘 잘못 먹었는지 [검, 대태도]로 절대 있을 수 없는 설정을하고 만, 모종의 버그 아이템인 것이다. - P123
다만 시라누이라면 그럴 걱정이 없다. 겉보기로는 평범한도니까 다루기 쉽고, 공격하면 대태도만큼의 공격력이 나온다. 까놓고 말해 최강이다. - P123
시라누이로 대태도 스킬(예를들면 대태도 기본 스킬인 <수평쓸기> 등)을 사용하면, 겉보기로는 1미터도 안 되는 도를 휘둘렀는데 공격범위는 대태도처럼 3미터에 육박하는 기묘한 현상이 일어난다. 이것이 <인비지블 블레이드>의 정체. - P124
"그런데 정말 대단하세요! 그렇게 많은 매드 하운드를 일격에 쓰러뜨리다니!" 트레인 양의 반짝반짝하는 눈이 공연히 가슴을 후벼파는것이다. 사실 그 공격은 거의 100퍼센트 무기의 힘이며, 비밀만 알면 트레인 양도 똑같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P124
"저, 저기, 성함....… 가르쳐주실 수 없나요?" 아, 그렇구나. 아까 그건 그런 재촉의 눈빛이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어떻게 할까………‘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분명 트레인 양을 구해준 후 대화하기에 따라서는 그녀가 동료가 되는 이벤트로 이어지기도 한다. 물론 그런 이벤트가 있었다고 해서 플레이어가 제안하지않는 한 동료로 데리고 다닐 필요는 없지만, 그것은 게임 이야기이다. - P125
하지만 이곳은 게임이면서 게임이 아니다. 죽으면 어떻게될지 알 수 없는 이상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하므로, 동료를만들어 함께 행동한다는 선택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 P125
. 이런 얼굴을 보면 이름을 대지 않고 마을로 돌아가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니 어쩔 수 없지.‘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변명을 했다. 아주 조금 찝찝한 마음을 품으며 그녀의 시선을 흘려버리듯 나는 결단했다. 가능한 한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말을 꺼냈다. - P127
"그럴 수가………. 하, 하지만, 그럼 당신은 어떤 분인가요?" 역시 그런 질문이 돌아오는군. 하지만 그 질문을 예상했던 나는 엄숙히 입을 열었다. 대답해야 할 이름은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한껏 멋진 표정을 지으며 이름을 댔다. "나는 라인하르트! 명예로운 상인 라인하르트다!!" - P127
마을로 돌아오면서, 나는 사실 무기 같은 것을 다루는 상인이고 아까 그건 상품으로 들여놓은 레어 아이템의 힘이었어, 뭐라고요! 하는 방향으로 얼렁뚱땅 이야기를 마무리지어버렸다. - P127
"자, 잠시만요! 역시 전당신하고…………. 그렇게 말하며 쫓아오는 바람에 아주 잠깐 신속 캔슬 이동까지 써서 도망쳤다. 과연 트레인 양답게, 조금 전까지는 숨이 턱까지 찼던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준족이었다. - P128
게다가 무슨 변덕으로 그녀가 다시한 번 나를 찾는다 한들 라인하르트라는 이름으로 찾을 수있는 사람은 나와는 전혀 다른 리저드맨 상인뿐이다. - P128
시라누이처럼 공격범위가 넓은 무기를 쓰면 적이 여럿이어도 문제없이 쓰러뜨릴 수 있다. 오히려 동료가 있으면 스킬을 쓸 때 방해가 되기도 한다. - P129
나는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얼른 강해져야만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내 발밑에 묻혀 있다. 적 레벨 평균 250의 최고난이도 던전, 게임 중 최강의 적인 <사신의 파편>이 잠든 지하미궁, 그 이름도 찬란한 <봉마의 미궁>은 램릭 남쪽, <봉마의 대지>에 묻힌 사신 부조 밑에 잠들어 있는 것이다. - P130
"무기는・・・・・・ 아직 괜찮겠군." 몬스터나 캐릭터만이 아니라 무기나 방어구, 일부 도구 아이템에는 레벨과 HP가 있다. 무기나 방어구는 사용할 때마다 소모되어 HP가 0이 되면 부서지고 만다. - P130
반대로 이를 이용한 퀘스트도 있어서, HP 표시가 있는 흔들다리를 공격해 무너뜨려 적의 진군을 저지하는 작전을 구사해야 한다. …………그 흔들다리의 HP가 엄청나게 높은 탓에 우선 적을 전멸시킨 다음 다리를 끊는 본말전도를 저질러야만 퀘스트를 달성할 수 있지만, 그것이 한결같은 고냥귀고냥퀄리티다. - P131
(전략) 여관 주인에게 구멍을 팔 만한 도구가 있으면 빌려달라고 부탁했더니 매우 묵직한 삽을 빌려주었다. (중략) 문을 나서기 전에 문지기가 의아한 표정으로 커다란 삽을 쳐다봤지만 무시하고 <봉마의 대지>로 향했다. - P131
다행히 부조가 있는 곳에는 금방 도착했다. 마을에서 거의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으며, 애초에 숨겨진 던전에는 몇 번이나 다녔기 때문에 착각할 리도 없다. 하지만 여기서부터는 처음 체험하는 영역이다. "이 부근이려나?" - P132
"지면은 얼마나 단단하려나… 괜찮을 것 같군." 게임에서는 간섭이 불가능했던 지면의 흙도 이 세계에서는 역시 문제없이 팔 수 있었다. 저레벨이라고는 하지만 게임 세계의 나는 현실의 나보다도 훨씬 체력이 좋다. 그리 깊은 구멍이 필요한 것도 아니니, 작업에 많은 시간이 들진 않을 것이다. - P132
다시말해 고레벨 에이리어의 벽과 지면은 저레벨 에이리어의 것보다도 단단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것은 골인 지점에 다가간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너무 시간을 들이면 또 트레인 양을 불러낼지도 모르는데…………" 트레인 양의 기차 이벤트는 한 번 경험한다고 끝나는 것이아니다. - P133
나는 시라누이를 들고 구멍 중심부를 조준한 다음, "이건 어떠냐!" 힘차게 내리쳤다! 상상한 것보다 가벼운 반응과 함께 시라누이가 지면에 파고들었다. ‘됐나?‘ - P134
"역시 사신의 파편이 잠든 곳은 다르구만 하지만 그래야지." 그리고 재빨리 안을 들여다보려고 구멍에 몸을 들이밀려던 그때.
"뭘 하고 있는 건가요, 라인하르・・・・・・ 아니, 소마 씨."
분명히 내 본명을 부르는 목소리에 나는 흠칫 돌아보았다. - P135
"그 구멍, 그리고 아까 사신이라고 했던 말・・・・・…. 대체 무슨 소리인가요, 소마 씨!" 이쪽을 향해 나이프를 내밀며 나를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트레인 양이 있는 게 아닌가. - P135
그녀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이랬다. 나와 헤어진 후, 역시 제대로 답례를 해야겠다고 생각한그녀는 즉시 나를, 아니, <라인하르트라는 이름의 상인>을 찾기 시작했다. 현대인의 감각으로 보자면 그 정도 정보만가지고 쉽게 사람을 찾을 리 만무했지만, 랩릭은 게임 속의 마을이다. 인구가 적은 탓인지, 빠른 발을 살려 탐문을 하자금방 발견할 수 있었던 모양이었다. - P136
나 같으면 그 여관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렸겠지만, 역시 발이 빠른 트레인 양 이번엔 삽을 든 모험자를 찾아 탐문을 시작했다. 그 결과 남문 문지기에게서 삽을 든 사람이 지나갔다는 말을 듣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처음 나와 만났던 장소로 돌아왔던 것이다. - P136
견제하듯 트레인 양이 그렇게 말을 꺼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이 부조에는 사신의 모습이 새겨져 있죠? 그리고 당신은아까 사신의 파편이 잠든 곳이라고 했어요. 다, 당신은...……." 눈물이 배어나온 눈으로 그녀는 나를 노려보았다.
"당신은 사신이 부활하길 바라는 사교도군요?" - P137
무기 숙련도는 해당 무기로 공격해 상대에게 대미지를 줄때마다 증가한다. <봉마의 대지>에서 제법 싸웠으며, 무기숙련도에는 레벨차이에 따라 보너스가 들어가므로 원래는두 번째 스킬 정도는 익혔어야 하지만, 시라누이가 지나치게 강한 것이 이번에는 화근이 되었다.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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