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오래된 답답함이었다. 삶의 현장에서 절박한 이야기들을 들으며더욱 심해지긴 했지만, 10년도 더 전부터 마음속에 자리 잡은 답답함이었다. 어떤 사회학자는 한국 사회를 ‘불신, 불만, 불안‘의 3불(不) 사회라고 특징지었다. 제도나 시스템을 믿을 수 없는 불신, 웬만한 성취에는 만족하지 못하는 불만, 앞으로 닥칠 미래에 대한 불안이다.⁰¹ - P9
젊은 시절의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더 절박한 청년들도 많이 만났다. 얼마전 의정부에 있는 한 특성화고등학교를 찾아가 내 이야기를 해주고 학생들의 힘든 환경과 현실 이야기도 들었다. 강연이 끝나고 고3 학생 한 명이 슬그머니 손편지를 전했다. 중3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빨리 취업해 소녀 가장 역할을 해야 하는데 취업이 쉽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 P9
30대에 창업한 한 영세 중소기업 대표는 지역만의 스토리텔링을 개발하고 빈민촌이었던 부산 원(原)도심 관광 상품을 만들었지만 주목받지 못해 실패했다. - P10
그러고는 새 관광 콘텐츠로 재창업해서 어느 정도 성장궤도에 올랐지만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았다. 매출이 제로까지 떨어진 상황이라고 했다. 그 청년 기업가는 반복되는 시련에 지친 모습도 보였지만, 여전히 씩씩함을 잃지 않고 있었다. 좁은 틈새에서 작은 기회라도 잡으려는 열정과노력에 대한 보상은 왜 이리 야박한 것일까. - P10
우리 국민은 기회와 역할이 주어지면 신바람 나게 일하는 국민이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역량을 발휘한다. 나라와 공동체를 생각하는 마음도 다른 어느 나라 국민들보다 각별하다. - P11
그런데 왜 해결이 안 되고 있을까? 가장 큰 이유는 국민의 역량과 에너지를 모으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민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국가비전과 정책적 일관성이 만들어지지 못했다. 어느 정권이나 비슷했다. - P11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지만, 항상 과거는 청산의 대상이고 전(前) 정부는 갈아엎을 대상이었다. 이기면 다 갖고 지면다 잃는 승자독식의 게임 속에서 지도자를 뽑는 선거는 무조건 이겨야했다. - P11
이 책을 쓰는 이유는 한마디로 ‘절박감‘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는 절실한 생각 때문이다. 이 절박감과 절실함이 우리 문제들을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지, 나를 고민 속으로 몰아넣었다. - P12
사람을 만나면 만날수록, 삶의 현장을 보면 볼수록 절박함과 깨달음이 함께 커져 생각과 아이디어를 가다듬는 데 2년이 넘게 걸렸다. 그 과정에서 원고 전체를 6번이나 바꿨다. 고통스러운 일이었지만 고민이 깊어지면서 대안이 절마(切)되는 것은 보람 있는 일이었다. - P12
성취와 좌절의 크기는 절박감에 비례했다. 절박감이 클수록 좌절로인한 아픔이 컸다. 특히 두 번의 실패와 좌절이 그랬다. 두번 다우리 경제의 틀과 패러다임을 바꾸려는 시도였고, 두 번 다 만족할 만한 결과를만들어내지 못했다. 한 번은 2005년 ‘비전 2030‘ 작업이고, 다른 한 번은2017년 경제부총리 재임 때의 경제운영이다. - P13
만났던 서민들 대부분이 각자의 절박감 속에서 살고 있었다. 모두 진정성이 넘쳤고 진지했다. 그런데 한결같이 삶의 어려움은 ‘기회‘와 연결되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데, 좋은아이디어가 있는데, 큰 욕심 없이 성실하게 무엇인가를 해보려고 하는데 기회가 부족했다. 어떤 때는 주어진 기회조차 불공평했다. - P13
이제는 대한민국을 ‘기회공화국‘으로 만들어야 한다. 기회의 문이 모두에게 활짝 열린 ‘기회복지국가‘ 말이다. ‘더 많은 기회‘와 ‘더 고른 기회‘를 제공하고, 튼튼한 ‘기회복지안전망‘을 만들어 국민 삶의 질을 보장하는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경제, 일자리, 복지가 유기적으로 선순환하는 국가시스템이다. - P14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를 줄이고 권력은 나눠야 한다. 지금까지의 방법으로는 자기 진영 금기 깨기나 지도층의 자기희생을 기대하기 어렵다. 위로부터 강요된 혁신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나오는 자발적인 참여와 혁신을 통해 변화를 만드는 ‘아래로부터의 반란‘이 필요하다. - P15
이참에 꼭 풀고 싶은 오해가 하나 있다. 7년 전 큰아이 발인하는 날에도 일했다는 기사와 관련된 이야기들이다.⁰² - P16
발표하자는 결정은 내가 내렸다. 큰아이의 발인일은 마침 한글날 공휴일이어서 경제조정실장과 담당 국장이 발표문을 갖고 집 근처로 와서 함께 내용을 검토했다. 큰아이를 보내고 온 직후였다. - P16
발표문을 검토하면서, 그리고 발표를 하면서 마음이 찢어졌다. 큰아이가 바로 뒤에서 있다는 생각을 하며 이를 악물고 했다. 그래서 아들 발인하는 날까지일을 했다는 말을 들으면 지금도 마음이 너무 아프다.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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