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미술은 좋아한다, 개념미술과 비디오 아트는.
그렇지만 건축은 사기 같다. 거의 모든 것들이 남의 돈으로 만든다는 점이서 영화와 유사해보인다.












18장 베트남전쟁재향군인기념관

1982년 : 공간으로 만든 한 편의 영화 - P281

 ‘스톤헨지‘, ‘고인돌‘, 이집트의 ‘오벨리스크‘, ‘광개토대왕비‘, 각종 탑의 공통점은 모두 돌을 세로로 세웠다는 점이다. 왜 인류는 죽은 자를 기리기 위해 돌을 세워서 놓있을까? - P281

 인류가 최초로 건축물을 만든 사이 누군가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서였다는 점이다. - P281

 왜 인류의 조상들은 이렇게 죽음을기리기 위해 노력했을까? 왜 인간은 죽음을 생각했을까? 물론 코끼리도 동료가 죽으면 정해진 장소에서 함께 장례를 치른다. 하지만 인간처럼 죽음을 생각하는 공간을 힘들게 만들지는 않는다. - P284

그 건축 공간에서 죽음을 슬퍼하고서로를 위로하던 인류는 이러한 공감 능력을 바탕으로 더 큰 사회 조직을 만들고 발전할 수 있었다. 세월이 흐르고 인간의 기술이 발달할수록 무언가를 기리는 건축물은 더욱 커지고 기법도 다양해졌다. - P285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야생에서 목숨을 걸고 사냥하던 인류는 점차 정착해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농업은 땅과 노동력이 필요한 일이다. 더 부자가 되려면 더 많은 땅과 더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다. 주변부족이나 국가와 전쟁을 해서 이기면 영토를 확장하고 노예를 확보해서 생산량을 늘릴 수 있었다.  - P285

전쟁에서 승리한 자를기념하기 위한 개선문 같은 건축도 발달했고, 죽은 자를 기리기 위한 기념관도 만들어졌다. 이러한 일들은 최근까지도 계속해서 일어났다. - P285

지난 백 년간 가장 많은 전쟁을 한 나라는 미국이다.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 베트남전,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전 등에서 수많은 젊은이가 생명을 잃었다. 그런 미국이 자신들의 역사에서 자랑하고 싶은 인물들과 전쟁을 기리기 위해 여러 기념관을 모아 놓은 곳이 수도인 워싱턴 D.C.에 있는 ‘메모리얼 파크Memorial Park‘다. - P286

미국의 자랑스러운 역사인 링컨, 제2차 세계대전, 워싱턴을 기념하는 건축물이 ‘국회의사당‘과 하나의 축을 이루며 나열되어있는 것이다. 링컨의 등 뒤로는 포토맥강이 흐르고, 그 강 너머에는 우리나라 ‘현충원과 같은 ‘알링턴 국립묘지 Arlington National Cemetery‘가 있다. 그곳에는 케네디를 비롯하여 전사자들의 무덤이 있다. - P286

 자랑스러운 역사를 보여 주는 공간과 죽음을 애도하는 국립묘지 사이에 강이 놓여있는 구조는 아주 적절한 배치라고 생각된다. 그리스 신화에도 저승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네 개의 강을 건너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고,
기독교에서도 죽음을 ‘요단강을 건넌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 P286

국경이나 땅문서가 따로 없던 고대의 인류는 어느 땅이나 걸어서 갈수있었다. 공간의 경계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고대 인류에게 유일한 공간적 한계가 있었다. 바로 물이었다. - P287

 그렇다 보니 삶과 죽음을 나누는 경계를 강으로 상상했던 것은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워싱턴 ‘메모리얼 파크‘는 이렇게 중요한 축을 이른다. 그리고 자랑스럽지 못한 슬픈 기억의 역사는 이 축에서 약간 벗어난 주변부에 위치한다. - P287

베트남 전쟁에서 전사하거나 실종된 미국인은 58,220명이나 된다. 이런 뼈아픈 역사를 기념하는 일은 정말 우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반적으로 기념관은 엄숙한 느낌을 주기 위해 어두운 공간에 한 줄기 빛이 들어오고 그곳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길 수 있게 만들어진다. - P288

혹은 거대항 공간을 만들고 중앙에 기념하고자 하는 대상의 거대한 조각상을 만들어 놓고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식도 있다. 한 명을 기념할 때 주로 사용하는 기법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파르테논 신전‘이다. - P289

그런데 58,220명을 기리는 기념관의 경우에는 58,220개의 조각을 만들 수가 없다. 아마 만든다면 레고 인형처럼 작아져야 하고 그런 작은 스케일을 내려다보면 오히려 더 우울해질 수 있다. 이와 비슷한 감정은 설치미술가이자 조각가인 서도호의 작품 「플로어(FLOOR)」에서 느낄 수 있다.
전시장 바닥의 유리판을 18만 개의 플라스틱 인형이 두 손을 들어 받치고 있는 작품이다.  - P289

 또 다른 서도호 작가의 작품 「섬/원 (Some/One)은 금속으로 만든 215센티미터 높이의 거대한 갑옷이다. 가까이서 보면 그 금속이 가로 2.5센티미터, 세로 5센티미터의 타원형 미군 인식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군인이 사망하면 목에 달려 있던 두 개의 인식표 중 하나만 빼서 가져가고 하나는 시체에남겨 둔다.  - P289

1980년 미국 의회로부터 기금을 받은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기금은기념관 설계 공모전을 열었다. 18세 이상의 미국 시민이라면 누구나응모할 수 있는 공모전이었다. 1981년 1,421개의 작품이 출품되었고놀랍게도 당시 무명이었던 스물한 살의 예일대학교 재학생 마야 린Maya Lin의 작품이 당선되었다. - P290

마야 린의 디자인은 놀랍게도 심플하다. 우선 건물이 하나도 없다. 그냥 빈 땅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땅이 약간 기울어져 있고 그렇게 아주 얇게 깎여 나간 땅의 한쪽에는 옹벽이 서서 땅을 무너지지 않게 받치고 있다.  - P293

 이 옹벽은 각도가 넓은 ‘V‘자 모양이다. ‘베트남Vietnam‘을 상징하는 ‘V‘로 볼 수도 있고, 승리를 뜻하는 ‘빅토리 vietory의 7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어설픈 상징보다는 우리는 이 V자가 가리키는 방향에 집중해야 한다. - P293

배치도상 V자 모양으로 된 길의 한쪽 끝에 서면 길이 아주 완만화제 기울어져 내려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주 완만하게 경사진 내리막길을 걷는 것은 일반 평지를 걷는 것보다 편하다. - P294

몇 발자국을 디디면내 왼발 아래에 아주 작은 검은색 벽이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감흥은 없다. 온통 자연으로 둘러싸인 기분 좋은 공원이니까. 그런데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내 왼편의 검은색 벽은 점점 더 높게 자라난다. 그리고 그 면적은 더 빠르게 증가한다. - P294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땅속에들어와 있다. 기울어진 땅에서 중력에 몸을 싣고 편안히 걷다 보니 땅속에 들어온 것이다. 중력은 피할 수 없는 자연의 힘이다. 시간도 역시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다.  - P295

검은색 대리석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갇히면 마치 땅속에 묻힌 듯 느낌이 든다. 참전 용사들과 함께 묻혀 보는 것이다. 이때쯤 되면 그 검정 대리석 벽에 눈이 가고 표면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그 검벽에는 전사자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다. 대략 내 눈에 들어온 이름의 숫자만 해도 수백 명이다. - P295

‘괴베클리 테페‘의 6미터 높이의 돌에는 추상적인 모양의 커다란 사람얼굴이 새겨져 있다. 그러다가 문자가 개발되지 망자를 기리기 위해돌에다가 글자를 새겼다. 아직도 우리는 묘비에 이름을 새겨 넣는다. - P295

마지막 반전

이때 백제의 색상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름들이 밝은 화강석이나 흰색 대리석에 새겨졌다면 이렇게 큰 감동은 없었을 것이다. 이 기념판에는 베트남전 전사자의 이름이 검은색 돌에 새겨져 있다. - P297

이 기념관에서도 검은색 돌을 바라보면 표면에 내 얼굴이 비친다. 내 얼굴에는 많은 사람의 이름이 문신처럼 새겨져 있다. 죽은 자를 생각하며 살아 있는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충격적인 장면이다. - P297

V 자의 가운데 꼭짓점까지 오면 벽의 높이가 내 머리를 훨씬넘는다. 우울함의 극치다. 그런데 그 우울함의 클라이맥스를 겪은 직후 길이 오른쪽으로 꺾인다. 코너를 따라 돌아서면 내 눈에는 ‘워싱턴기념탑‘이 들어온다. 미국의 자랑스러운 역사인 건국의 아버지의 상징인 ‘워싱턴 기념탑‘을 올려다보면서 내 기분은 급반전을 겪는다. - P298

우울증 환자에게 가장 좋은 처방중 하나는 햇빛을 받으면서 빠른 걸음으로 걷는 것이라고 한다. ‘베트남전경재향군인기념관‘에서 걸어 나올 때 딱 그런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내 시야에서 검정 대리석 벽은 점차 사가지고 함은 자연이 점점 더 많이 보인다. - P299

베트남 전쟁과 미국 역사라는 거대한 이야기를 두 개의 단순한 직선 산책로의 각도 조절만으로 함께 엮어서 관람객의 마음으로 스며들게 해 하나의 서사를 만들 수 있었다. - P300

내리막을 어슬렁거리며 걸어 들어갈수록 이야기의 수렁으로 빠져들게 했고, 나올 때는 오르막을 오르면서 희망차게 땅속에서 벗어나도록 연출했다.  - P300

 마야 린은 정말 다루기 어려운 슬픔과 갈등의 이야기를 미국 전체 역사 이야기 속에 잘 버무려 한 편의 영화 같은 기념관을 만들었다. 최고다. - P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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