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상어‘ 반주가 시작되려는 찰나, 선생 하나가 뒷문을 통해 강당으로 뛰어 들어왔다. - P9
"우, 우리 지율이! 우리 지율이!" 아이 엄마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비명소리와 더불어 ‘아기 상어‘의 명랑한 선율 역시 클라이맥스를 향해 내달렸다. - P10
원장 선생의 지시에 앰프가 꺼졌다. 공연을 중단시킨 그녀가 무대로 걸어 나와 마이크를 잡았다. 객석의 모든 눈이 일제히 그녀에게로 향했다.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모두를 충격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 P11
공연을 중단한 원장선생은 부모들에게 상황을 알렸다. 위급상황 매뉴얼대로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담임 선생은 경찰에 신고를 하고, 부모들은 자발적으로 실종 아이 수색에 나섰다. - P11
일부는 대문을 지키고 일부는 1층 교실을, 나머지는 미술실과 체육실, 쿠킹실, 라이브러리를 살폈다. 자기 아이를 데리고 서둘러 하원하는 부모도 더러 있었다. - P11
출동한 경찰은 원장 선생과 함께 CCTV를 확인했다. 아이 엄마는 오열을 멈추지 못했고, 아이 아빠는 분노를 간신히 잠재우고 있었다. 아이가 사라졌을 거라 추정되는 오후 2시 10분경, CCTV에 수상한 남자가 대문을 통과해 건물 현관으로 진입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 P12
검은 모자는 두리번거리더니 팅커벨복장을 한 여자아이에게 다가갔다. CCTV를 보던 아이 엄마가 비명을 지르듯소리쳤다. "우리 지율이에요! 자기야, 저기 지율이야……. 우리 지율이!" - P12
지율도 총총걸음으로 어디론가 사라졌다. 공연을 관람하러 온 초대 손님들이 시야를 가려, CCTV상으로 더 이상 지율의 동선을 파악하기 힘들었다. 이후 지율의 모습은 CCTV 그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 P12
선생과 부모들도 유치원 내부 수색을 멈추지 않았다. 지율이 유치원을 벗어나는 모습이 CCTV에 포착되지 않았으니 마지막 희망은 남아 있었다. - P13
조아라는 초조함과 긴장감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끊임없이 짧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제발 제발 어디에서든 얌전히 있어 주길…………. 그렇기만 하다면…… ……. 한 대 세게 쥐어 박아줄 텐데. - P13
그 꼬맹이 년은 모든 걸 알고 있었다. 자신의 말썽 때문에 담임 선생이 원장 선생에게 꾸지람을 듣게 된다는 것도, 이런 일을 벌이면 어른들에게 주목을 받게 된다는 점도. 부모들은 제 자식을 순진무구한 천사라 생각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소리. 다섯 살이면 알 거 다 아는 나이. - P14
뒤돌아서려는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얇은 레이스 재질이마찰하는 소리였다. 조아라는 슬쩍 열려 있는 놀이방 문을 쳐다봤다. - P14
하얀 양말을 신은 발이 장난감 서랍장으로 한 걸음씩 다가갔다. 먹이를 앞둔 포식자처럼 여유롭고 느긋한 발걸음이었다. 손잡이로 향하는 조아라의 손이 잘게 떨렸다. 적막이 흐르는 방안에는 두 사람의 심장 소리만 가득했다. - P15
장난감 서랍장 바구니에는 팅커벨 드레스를 입은 지율이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 P15
이미 예상했던 바였다. 지율은 사람들이 자신을 찾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오지 않은 것이다. "선생님하고 숨바꼭질 하고 싶었니?" 아이는 또 고개를 흔들었다. 미안함 따위는 한 톨도 찾아볼수 없는 얼굴이었다. - P16
"전에도 말했잖아. 그건 나쁜 애들한테만 보이는 거라고 착한 애들한테는 그런 거 안 보여 네가 착한 애가 되기만 하면, 그런 건 쫓아오지 않아." (중략) "나 대신 선생님 쫓아갔으면 좋겠어. 선생님 다리를 꽉 물었으면 좋겠어." 지율이 앙칼진 목소리로 말했다. - P17
처음 소민은 이런 아파트에서 신혼생활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아파트를 마련해준 건 정우의 부모님이지만, 아직 생기지도 않은 손주를 들먹이며 눈물 바람으로 그 결론을 이끌어낸 건 자신이었다. - P18
‘그날 밤, 나만 좋았던 건 아니지?‘ 메시지 내용을 다시 떠올리자니 눈앞이 아득히 멀어졌다. 단 한 번의 만남이었다. - P19
그 순간, 소민은 제 배 속에서 꿈틀거리는 생명이 징그럽게느껴졌다. 아이가 생겼다는 말에 기뻐하던 정우와 친정, 시댁식구의 얼굴이 머리를 스쳤다. 정우의 아이일 거라 스스로를 달래봤지만, 여자로서의 본능은 자꾸만 다른 이야기를 했다. - P19
그런데 정우의 시선이 어느 고층 베란다 한곳에 머물러 있었다. 그는 소민의 말이 들리지도 않는지 미간을 찌푸려가며 그곳을 주시하고 있었다. "소민아, 저기・・・・・・ 사람 같지 않아?" 소민은 자신의 말에 집중하지 않는 정우에게 짜증이 치밀었다. - P20
순간 소민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6층? 아니, 7층 베란다 한 여자가 난간에 배를 걸친 채 상체를 바깥으로 내밀고 있었다. - P20
"소민아! 빨리 119에 신고하고, 경비원 불러와! 어서!" 정우는 소민에게 소리쳐 말하곤 102동 출입문으로 달려갔다. "오빠가 거길 왜 가? 오빠 오빠!" - P21
다행히도 여자는 자살을 망설이는지 난간에 배를 걸치고 있을 뿐, 더 이상 극단적인 행동은 하지 않았다. 구급대원이 제때 출동한다면 여자를 말려볼 수 있을 것 같았다. - P21
저 여자는 왜 자살을 하려는 걸까. 국내 최고의 고급 아파트에 살면서. 죽으려면 다른 데서 죽지, 왜 아파트 이름에 먹칠을 하고 난리야? 집값 떨어지게 - P21
마침내 정우는 7층에 도착했다. 격한 호흡이 터져나왔다. 701호와 702호를 번갈아보던 시선이 702호 현관문에 닿았다.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702호 현관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남자 구두가 틈새에 껴 있었던 탓이었다.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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