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립되는 두개념이 사실 하나의 개념이라는 생각은 동양인들에게 익숙한 철학이다. 음양의 조화라든가 중용 같은 것도 대립하는 개념 사이에서 옳은 쪽을 찾기보다 둘을 조화시키는 동양의 지혜다. 논리적으로만 보자면 대립되는 두 명제 가운데 하나가 참이면 다른 하나는 거짓이다. - P128

 물리학에서는 이것을처음에 ‘이중성 duality‘ 이라고 불렀고, 나중에는 ‘상보성complementarity"
이라는 용어로 공식화시켰다. 상보성의 중요한 예는 하이젠베르크가 찾아낸 ‘불확정성의 원리‘다. - P129

이런 유사성은 그 자체로 흥미롭지만 과학적으로 의미가 크지는 않다. 과학은 실험적 증거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철학은 생각의 틀을 제공하는 법이다. - P129

정확하게 말하면 ‘입자‘의 대립물이
‘파동‘이라는 뜻이다. 당구공과 같은 입자는 무게를 가지고 있지만,
소리와 같은 파동은 무게가 없다. 당구공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소리는 어디 있다고 꼭 집어 말할 수 없다. - P130

19세기 물리학의 주인공은 전기다. 1860년대 전기와 자기를 기술하는 맥스웰 방정식이 완성되고, ‘빛‘이 맥스웰 방정식의 수학적 해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 P130

 빛이 파동이라는 사실이 확립된 바로 그때 빛이 입자라는 증거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 P132

첫 번째 증거는 ‘흑체복사‘라는 현상이다.
(중략)
흑체복사이론은 막스플랑크(1918년 노벨물리학상)가 제안한 것이다. 이 이론에는 기묘한 가정이 하나 필요했다. 빛의 에너지가 특정한 값의 정수 배로만 존재한다는 가정이다.  - P132

 하지만 빛은 파동이다! 플랑크는 보수적인 사람이라 차마 빛이 입자라고 말할 수 없었다. - P132

빛이 입자라는 두 정쨔 증거는 ‘광전효과‘다.
(중략) 하지만 찍어준 빛과 튀어나온 전자의 에너지를 제대로 설명하려면, 흑체복사 때와 같이 빛의 에너지가 띄엄띄엄하다는 가정을 해야 했다.
1905 년 아인슈타인이 빚은 입사라고 용감하게 주장했지만,
당시 대부분의 물리학자는 콧방귀조차 뀌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빛은 파동이니까. - P133

 1920년대 초아서 콤프턴(1927년 노벨 물리학상)이 빛으로 당구공 실험을 하여 빛이 입자라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다. 당구공을 서로 충돌시키면 어떻게 행동할지 뉴턴역학으로 완전히 기술할 수 있다. 콤프턴은 빛이 당구공같이 행동한다는 사실을 보인 것이다. - P133

흥미로운 일이지만 물리학에 이중성이라는 개념이 탄생하던 1920년대, 예술에서는 ‘초현실주의 운동이 시작되었다. 이는 인간의 무의식을 예술로 표현하는 것으로, 프로이트의 심리학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 P134

파동인 줄 알았던 빛이 입자의 성질을 갖는다. 그렇다면 입자인줄 알았던 ‘것‘이 파동의 성질을 가질 수는 없을까? 당시 물리학자들은 원자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 P134

빛과 전자는 왜 입자성과 파동성을 동시에 갖는 것일까? 이두 성질은 물리적으로 결코 양립할 수 없다. 무선 통신할 때 빛은파동으로 행동하지만, 광전효과실험에서 빛은 입자로 행동한다.
이 두 실험을 동시에 할 수는 없다. 둘중에 하나의 실험을 하면 빛은 입자와 파동, 둘 중 하나로 결정된다.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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