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1990년대 이후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쉽게 읽히지만 어려운 이야기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오랫동안 불편하게 공존했다. 자본주의는 개인적 이익을 위한 생산적 활동의 조직화를 추구하는 반면, 민주주의는 시민의 자치 참여를 위한 권한의 부여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시민의식의 정치경제학은 두 개념을 조화롭게 만들겠다는 의도로 등장했다. - P319
제퍼슨주의자들은 대규모 공장에서의 삶이 자작농의 삶을 통해 형성되는 시민적 윤리를 해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19세기 중반의 노동 공화주의자labor republican 들은 임금노동을 자유와 상반되는 것으로 바라봤다. 즉어떤 사람이 고용주 밑에서 평생 일하면 그에게는 민주적인 시민의식에필요한 독립적 판단력과 정신이 형성되지 못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 P319
19세기 후반에 등장한 노동기사단은 독점 권력의 대안으로 철도, 전신, 전화를 공적 소유로 바꾸자고 요구했고, 또 노동자들이 여러 가지 공적문제를 스스로 깨우칠 수 있도록 공장에 도서관을 설치하라고 요구했다. - P320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수십 년에 걸쳐 시민의식의 정치경제학은쇠퇴하고 경제 성장 및 분배 정의의 정치경제학으로 대체됐다. 자유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은 경제 성장을 가져다줄 정책과, 또 번영의 열매를분배할 방법을 두고 논쟁을 벌였다. 그러나 경제 활동의 유일한 목적이소비라는 가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 P320
시민의식 차원이 아니라 소비자의 차원의 개념으로 경제를 바라보는 관점은 경제를 넘어서는 신념을 반영했다. 또한 자유에 대한 확실한 개념을 드러냈다. 이러한 개념에 따르면 자유는 다른 사람들이 가진 자유를 해치지만 않는다면 자신의 이익과 목적이 무엇이든 그것을 추구할 수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P320
이 책의 초판에서 나는 자유에 대한 시민적 개념과 시민의식의 정치경제학을 포기하는 것은 미국적 이상을 상실 또는 축소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 P320
그 개념은 민주주의가 정의와 공동선에대한 숙고보다 개인의 선호를 종합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경제라는 발상을 촉진했다. 20세기의 마지막 수십년동안 미국의 민주주의를 괴롭혔던 불만은 이러한 열망의 축소를 반영한 것이었다. - P321
그 뒤로 많은 게 바뀌었다. 21세기 이후 20년 동안 민주주의를 괴롭혔던 불만은 한층 더 예리해졌고 사회적 결속력은 철저하게 무너졌으며 좌절감은 한층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초에 문제가됐던 시민적 차원의 문제들은 현재 우리가 맞닥뜨린 문제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정도다. - P321
우리 시대에 유효한 시민의식의 정치경제학을새삼스럽게 상상하려는 모든 시도는 최근 수십 년 동안에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진단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이는 민주당과 공화당이라는 두 정당이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버전의 자본주의를 받아들였고, 이러한자본주의 버전이 불평등과 해로운 정치를 증폭시켰기 때문이다. - P321
새로운 버전의 자본주의는 단순한 경제 교리를 넘어 세계화globalization, 금융화financialization, 능력주의 meritocracy라는 상호강화 관계의 특성으로 구성된다. 세 가지 특성으로 정의되는 자본주의는 시민의식의 정치경제학과는 거리가 한참이나 멀다. - P321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그로부터 2년 뒤 소비에트연방(소련)이 해체됐다. 이는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의 정치적·경제적 상상력에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소비에트연방의 붕괴 소식은 겉으로 보기에는 유일하게 생존한 자유주의 자본주의 체제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사례였다. - P322
세계화 시대는 앞뒤를 가리지 않는 승리주의의 시대였다. 1990년대의 정치 지도자들과 비평가들은 상품과 사람과 자본이 국경선을 넘어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을 반기고 축하했다. - P322
물론 이런 변화를 걱정스럽게 바라본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새롭게체결되는 유동적 협정들 때문에 기업들이 환경 보호나 노동자 보호에 관심이 거의 없는 저임금 국가로 이전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마우스 클릭 한 번만으로 자본을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이동시킴으로써 금융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 P322
1990년대의 중도좌파 정치 지도자들도 이러한 불가피성 주장을 되풀이했다. 예컨대 미국의 빌 클린턴(대통령 재임: 1993~2001) 대통령은 "세계화는 우리가 미루거나 중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바람이나 물과 같은 자연의 힘과 똑같다"라고 했다. - P323
세계화의 지지자들이 세계화를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가을이라는 계절로 묘사했지만, 세계화 추세 때문에 각국 정부는 서로 경쟁할 수 있는경제 정책들의 광범위한 목록을 정리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았다. 이 정책들은 레이건-대처 시대의 자유시장 이데올로기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했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이자 저술가인 토머스 프리드먼 Thomas L. Friedman은 이런 정책들은 각국의 문화와 전통이 무엇이든 간에 모든 나라가 새로운 경제 체제에서 번영하기를 바란다면 반드시 입어야만 하는 "황금 구속복golden straitjacket"과 같다고 설명했다.² - P323
2. Thomas L. Friedman, The Lexus and the Olive Tree (New York: Farrar, Straus and Giroux, 1999), pp. 104-105. - P414
그러나 프리드먼의 목록에 있는 다른 모든 정책 처방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황금 구속은 경제 관련 조정에 대한 민주적 논쟁의 여지를 거의 남겨두지 않았다. 프리드먼도 비유를 통해 인정한 사실이다. - P324
프리드먼은 선출직 공무원들로서는 명령을 따르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다는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요즘은 황금 구속복을 입은 나라들의 여당과 야당 사이에 어떤 질적 차이가 있는지 파악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일단 이 옷을 입은나라에게 주어지는 정치적 선택지는 펩시콜라 혹은 코카콜라밖에 없다."⁴ - P324
겉으로는 정치적으로 보이지 않지만 1990년대에 전 세계의 대통령과총리들이 복종해야 한다고 느끼게 만든 제한을 누가 강요했을까? 프리드먼은 "전자 집단 electronic herd", 즉 온라인상의 가축 떼라고 표현했다. 또한그들을 주로 뉴욕, 런던, 프랑크푸르트, 도쿄 등에 익명으로 존재하며 "컴퓨터 모니터의 스크린과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으면서 주식과 채권과 통화를 거래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라고 정의하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국가와 기업을 오가며 돈을 움직이는 존재로 묘사했다. - P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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