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뇌를 빼고 읽기가 참 좋다.

닛타 고스케는 오목한 그릇에 젓가락을 내밀었다. 말고기육회를 낫토에 버무린 것이었다. 입에 넣자 생고기와 낫토 향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코끝으로 빠져나갔다. 부드럽게 씹히는 고기와 낫토의 끈끈함이 혀에 감기는 느낌이 적당히 야성적이어서 지나치게 고상한 척하는 게 없다. - P5
다음 요리는 메인인 고기구이였다. 카운터에 소형화로가 나오고 자그마한 징기스칸 냄비를 얹었다. 젊은 여종업원이 굽는 방법을 알려줬지만 그리 어려울 것 같지는 않았다. 구운 고기에 특제 소금 소스를 찍어 입에 넣자 육즙과 함께 고소함이 입안 가득 퍼졌다. - P6
닛타는 벽 선반에 늘어선 술병으로 시선을 던졌다. 손님들이 킵해둔 술인 것 같았다. 스무병이 넘는 걸 보면 단골이 많은 것이리라. - P6
식사를 마친 닛타는 여종업원을 불러 계산을 부탁했다. 신용카드로 결제한 뒤에 카운터 안에서 내내 요리 중인 식당 주인에게 죄송합니다만, 하고 인사를 건넸다. 남자가 손을 멈추고 얼굴을 들었다. 닛타는 자리에서 일어나 상의 안주머니에서 상대에게만 보이도록 조심스럽게 경찰수첩을 꺼내보였다. "부인께 잠깐 여쭤볼게 있습니다." - P7
"이리에 유토에 관한 것 때문이지요?" 부인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 네, 라고 대답하고 닛타도 한껏 목소리를 낮춰 뒤를 이었다. "이미 수사관이 다녀간 것으로 알고 있지만, 추가로 여쭤볼게 있어서요. 바쁘신 참에 죄송한데 잠깐 시간 좀 내주시겠어요? 되도록 짧게 끝낼 테니까요." - P8
"방금 이리에 유토라고 하셨는데 역시 단골이었던 모양이지요?" "그렇죠. 자주 올 때는 한 달에 두세번정도였나? 이리에 군은 말고기 갈비를 좋아해서 항상 최소한 2인분은 먹었어요. 아무튼 젊은 사람이라 잘 먹고 잘 마셨죠. 소주 한 병을 그냥 눈깜짝할 사이에 비워버리기도 하고." - P8
"글쎄요, 어떤 청년인지는..." "단순한 인상만이라도 좋습니다. 명랑했다든가 거꾸로 우울해 보였다든가." "제가 보기에는 아주 명랑하고 건강한 청년이었어요. 얘기도 잘하고, 술이 들어가면 목소리가 커지는 게 좀 문제였지만." - P9
"네, 복싱이라면 제법 잘 아는지 왕년의 유명한 선수 얘기를자주 했어요. 다른 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았지만" "취미에 대해서는 어떻습니까?" "애니메이션 얘기는 곧잘 했죠. 요즘 사람들은 다들 애니메이션 좋아하잖아요. 하지만 게임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이리에 군이 말했던 게 기억나네요. 어렸을 때 게임기를 안 사줬나봐요. 친구들 얘기에 낄 수가 없어 싫었다나요." - P9
"아뇨, 별 도움도 못 되고, 제가 죄송하네요." "천만에요, 크게 참고가 됐는데요. 그리고 저녁 잘 먹었습니다. 진짜 맛있었어요." "고맙습니다." 부인이 말했다. 카운터 안의 주인도 꾸벅 인사를 건넸다. - P10
가게 간판이며 자전거 등이 서 있기 때문이다. 낮 시간대의 과일 가게는 도로를 점포의 일부인 것처럼 다양한 과일이며 채소를 바깥에 진열해놓았다. 행인들은 갓길 표시의 흰색 선 따위는 무시하고 당당히 차도를 걷고 있었다. 이리에 유토는 날마다 이 길을 오가며 직장에 다녔다. 그건 남겨진 스마트폰의 위치 정보를 통해 판명되었다. 여기서는 그가 살던 원룸도 직장도 도보로 약 10분 거리다. - P11
지금부터 4일 전인 12월 2일, 이리에 유토는 평일인데도 직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상사가 몇 번이나 스마트폰에 연락했지만 전혀 받지 않았다. 그래서 동료 한명이 자전거를 타고점심 식사 후에 그의 원룸으로 찾아갔다. 집 출입문은 잠기지 않은 채였다. 문을 얻어본 동료의 눈에뛰어든 것은 웅크리듯 쓰러져 있는 이리에의 모습이었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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