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심은 타인의 욕망과 경쟁합니다
스탕달의 소설 《적과 흑》에는 더 복합적인 욕망 체계가 등장합니다. 동일한 대상을 욕망하는 주체가 복수이고, 이 복수의 욕망하는 주체가 상호 경쟁적인 경우입니다. - P330
세르반테스의 세계와 스탕달 세계의 차이를 설명하는 핵심 개념이 외면적 간접화médiation externe 그리고 내면적 간접화médiation interne입니다. 돈키호테는 아마니스를 동경하지만 아마디스를 만날 수 없습니다. 돈키호테는 아마디스를 오로지 책을통해서만 알고 있습니다 - P332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외면적 간접화의세계이지요. 스탕달의 세계는 다릅니다. 레날 시장과 교도소장발르노는 인접한 관계입니다. 그들은 서로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시공간도 겹칩니다. 이것이 내면적 간접화가 이뤄지는 상황입니다. - P332
속물은 욕망하는 주체입니다. 어느 누구보다 욕망에 휩싸여있지요. 그런데 속물의 욕망은 어디서 기인할까요? "속물은 자신의 개인적인 판단을 감히 믿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욕망하는대상들만 욕망"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67쪽)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속물은 "유행의 노예가 되는 거죠. - P332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지라르의 관점으로 읽어볼까요? 프루스트의 세계는 속물의 대행진이 벌어지는 세계입니다. 시간적 배경은 신분제가 몰락한 사회입니다. 귀족의 시간은 지나갔고 부르주아의 시간이 잦아왔는데, 부르주아는 어떤욕망을 갖고 있을까요? 부르주아는 스스로 욕망을 만들어내지못합니다. - P333
현대적 감정으로부터의 탈출구가 필요한데, 허영심과 대비되는 감정인 열정이 그 실마리입니다. 열정은 허영심의반대 극에 있습니다. - P333
자신의 욕망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을 모방하는 게 허영이라면 열정은 자기 내부에서 만들어진 욕망의 힘입니다. "열정적인존재는 타인에게서가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서 욕망의 힘을 길어냅니다.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61쪽) 허영심이 넘치는지 열정적인지를 구별하는 방법도 욕망이 무엇으로부터 기인했는지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 P333
인상은 "자신이 스스로 가지게 된 느낌인 반면 암시는 타인이 자기에게 해주는 것"이기에 인상은 "자연발생적이고 암시는 "주어지는 것입니다.(《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78쪽) 암시에 의해서 움직이는 사람이 허영심을 품는다면, 인상에 의해서 움직인 사람은 열정을 향합니다. - P334
유행은 서로가 서로의 욕망을 모방하는 것이 꼬리에 꼬리를물고 이어질 때 생깁니다. 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갖고 있는 사람이 유행을 추종하는 사람을 유행의 노예라고 비꼰다고 허영심이 세상에서 사라질까요? 유행을 따르는 사람을 속물이라고 냉소적으로 비난하지 않으면서도 상호 모방의 악무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 P334
19세기의 파리는 허영심이 번성하는 도시입니다
19세기에 처음 만들어져서 지금도 우리가 벗어나지 못했기에 현대적 상황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상황의 핵심은, 욕망의 중개자가 넘쳐난다는 것입니다. 현대인을 둘러싼 욕망의 중개자는 한둘이 아닙니다. - P335
그런데 현실적인 이유로 나의 까다로운 요구를 실현하지 못하니까 자신의 요구가 충족된 타인과 비교하면서 수치심을 느낍니다. 수치스러운 만큼 자신이 속하지 못한 세계에 더 강하게 끌립니다. 지금의 자신이 싫고 창피하니까 욕망을 실현하고 있는 듯 보이는 사람에게 더 가까이 가고싶고 그 사람과 동일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이 커지는 거죠. - P335
텔레비전을 커면 좋은 집에 사는 연예인, 맨날 좋은 거 먹고좋은 곳에 휴가 가는 연예인의 삶을 구경하면서 욕망을 암시받지요. 자신의 처지를 돌아봅니다. 자신은 비참합니다. - P335
욕망이 수치심을 낳고 수치심이 더 강한 욕망을 낳고, 더 강해진 욕망으로부터 더 강한 수치심을 느끼고 더 강해진 수치심이 더 강한 욕망을 낳는 악무한이 시작되는 거죠. - P336
19세기의 감정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 프랑스 구체제의 무대인 베르사유 궁과 구체제 이후의 무대인 파리를 비교해볼까요? 베르사유 궁은 왕족과 귀족만 접근 가능한 공간입니다. 평민은 베르사유 궁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도리가 없습니다. 베르사유 궁과 그 바깥은 별세계이죠. 베르사유궁 내부에서도 왕과 귀족 사이에는 신분제라는 확고한 칸막이가 있습니다. - P336
서로를 모방하는, 그러니까 서로 욕망을 암시할 수 있는 가능성이 19세기의 파리에서 활짝 열립니다. 19세기 파리에서 허영심이 그야말로 우후죽순격으로 자랄 수밖에 없고 속물성이 점점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의 한 대목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더 이상 ‘폭군‘을 모방하지 않는다면 누가 모방의 대상이 될 수 있겠는가? 이제 사람들은 서로를 모방한다. 단 한 사람에 대한 우상숭배가수백 수천의 경쟁자들에 대한 증오로 대체된다. - P337
이중 간접화가 끝을 모르는 채 펼쳐지는 것이죠. "상호 간접화는 이중 간접화에서 시작하여 삼중, 사중, 다중의 간접화로" (《낭만적 거짓과 소실적 진실》, 162쪽) 늘어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익무한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은 소설적진실이 도달해야 할 마지막 목적지입니다. 방법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지성의 힘으로 나의 욕망이 나의것이 아니라 매개된 욕망임을 깨닫는 것이죠. 욕망이 다차원적으로 매개되어 이중 매개화가 펼쳐지는 상황 속에 내가 놓여 있음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 P338
이 책은 나를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는 속물적 욕망을 충족하기에는 돈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평생 자괴감을 느끼며 살아야 할까요? 그런 의미에서 더 많은 돈을 벌어 욕망을 실현하라는 자기계발서와 달리 지라르의《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은 지성의 힘으로 욕망의 체계에서탈출구를 생각하게 하는 21세기형 수신서라 생각합니다. 현대 생활에 가장 어려운 건 욕망을 다스리는 문제잖아요. - P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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