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수년, 수십 년 전의 아주 오랜 옛날, 아직 나무 타기를 좋아하던 시절에 내 키는 겨우 1미터를 빠듯하게 넘겼고, 내 신발은 28호였으며, 나는 훨훨 날아다닐 수있을 만큼 몸이 가벼웠다. 정말 거짓말이 아니었다. - P5

어쩌면 그렇게까지 멀리도 아니었고, 그렇게까지 높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그 따위가 무슨 큰 문제란 말인가! 어쨌든 나는 그때 날수 있었고, 내가 만약 외투의 단추를 풀고 그것의 양끝을양손으로 잡아 주기만 했더라면, 바람을 타고 둥둥 떠다닐 수 있어서 학교앞동산에서 언덕 아래에 있던 숲 위로거침없이 훨훨 날아다니다가, 숲을 지나 우리 집이 있던호숫가로 날아가서, 우리 집 정원 위에서 멋지게 한 바퀴 선회하면, 날아다니기에는 이미 몸이 너무 무거운 우리 아버지, 어머니, 누나, 형들이 깜짝 올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 테고, (중략) - P6

하지만 나는 그때 외투의 단추를 풀지 않았기 때문에그렇게까지 높이 날아다닐 수는 없었다. 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어디서 어떻게, 더 심각하게는 도대체 내가 다시 땅으로 내려올 수 있을 것인가를 알지못하였기 때문이었다. - P6

이제까지 경험한 것 중에서 가장 심하게 떨어졌던 경우는 역시 같은 해인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었다. 높이가4.5미터였던 전나무에서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갈릴레이의 낙하 법칙대로 떨어졌다. - P8

다만 우리가 어머니의 뱃속에 있거나, 잠수부가 되어 물 속에 있을 때만 우리는 중력의 끈질긴 힘에서 벗어날 수 있을 뿐이다. 어쨌든 그런 기본적인 논리에 의해서 내 머리에는떨어질 때 부딪쳐서 생긴 혹이 하나 있었다. 사실 혹은 불과 몇 주일이 지나자 이내 사라져 버렸지만, 그 후로도 몇년 동안 날씨가 바뀔때라든가 특히 눈이 내릴 때면 혹이있었던 바로 그 자리가 이상하게 근질근질거린다거나 콕콕 찌르는 것같이 느껴졌다. - P9

그리고 내가 최근에 겪고 있는혼란스러움이나 집중력 부족도 따지고 보면 전나무에서떨어질 때 생긴 후유증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나는 어떠한 주제에 계속 매달린다거나, 어떠한 분명한 생각을 간단 명료하게 표현하는 것에 대해 어려움을 느끼고있으며, 무슨 이야기를 해야만 할 때는 이야기의 실마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무진장 애를 쓰며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된다. - P11

말로나 필기로 준비해야만 했던 숙제도 나무 위에서 했으며, 짜릿한 쾌감으로 잎사귀 위에 커다란 반원을그리며 나무 위에서 오줌도 눴다.
나무 위는 늘 조용하였으며 사람들의 방해를 받지 않았다. 듣기 싫은 엄마의 잔소리도 없었고, 형들의 심부름 명령도 그 위까지는 전달되지 않았으며, 단지 바람이 부는소리와 잎사귀들이 바스락거리던 소리, 나무 줄기가 약간삐걱거리던 소리.....… 그리고 먼 곳까지 훤히 내다볼 수 있는 탁 트인 시야가 있을 뿐이었다. - P12

그런데 내가 왜 여기서 지금 날아다니는 것이라든가 나무에 기어올랐다는 것 등을 얘기하고 있는 건가!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낙하 법칙 따위를 들먹이고, 나를 종종 혼란스럽게 만드는 뒤통수의 일기 예보용 혹 등에 대해 종알대고 있었을까! 그런 것들하고는 전혀 다른 좀머 아저씨의 이야기를 하려고 작정했으면서 말이다.  - P14

 어쨌든 그런 동네에서 우리 집에서 불과 2킬로미.
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사람들이 <좀머 씨>라고 부르던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마을에서 좀머 아저씨의 이름을제대로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이름이 페터 좀머인지 혹은 파울 좀머인지 아니면 하인리히 좀머인지 혹은 프란츠 크사버 좀머인지 알지 못했으며, 좀머 박사인지 혹은 좀머 교수인지 아니면 좀머 박사 교수인지도 모르는채, 사람들은 그를 유일하게 <좀머 씨>라는 이름만으로 알고 있었다. - P15

 좀머 아저씨네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사람들은 몰랐다. 언젠가 그들은 ー 아줌마는 버스를 타고 아저씨는 걸어서 ー왔다. 그리고 그 후부터 줄곧 그곳에서 살았다. 자식도 없었고, 친척도 없었으며,
그들을 찾아오는 손님도 없었다.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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