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을 기록한 VCR을 봤습니다. 철거용역이 경찰보다 먼저 망루에 진입했더군요. 경찰이 진입하기 전까지 어떤 일이있었습니까?" - P67
"망루를 짓고 들어간 이유는 뭡니까?" "높으니까 높으면 사고가 날 가능성이 높거든요. 그럼 철거 용역 애들이 겁을 먹고 함부로 못해요. 철거민 연합 사람들이 가르쳐줬어요." - P67
"얼마 안 있어서 경찰이 들어왔고, 나하고 신우를 발견하곤 강제로 끌어내려고 했어요. 그 애는 창틀을 붙잡고 매달렸어요. 그리고 강제로 떼어내려는 경찰의 손을 깨물었지요. 경찰이 손목을 붙잡고 비명을 질렀고 피가 났어요. 그러자 경찰 대여섯 명이 사납게 달려들더군요." - P67
나는 다음 접견에는 담배를 사오기로 결심했다. 그건 불법이다. 하지만 진공상태이던 우주를 불법들이 가득 채워버렸다면 사소한 불법 하나를 이세계에 보태봐야 불법의 총량에는거의 변화가 없을 것이다. - P68
"그 경찰을 죽일 생각은 없었어요. 죽었는지도 몰랐고, 경찰애들도 신우를 때릴 때 그랬을지 모르지요. 하지만 분명히 그놈들이 내 아들을 죽였어요. 내 아들이 죽었으니까 그건 확실해요." - P68
월요일에 나는 준형과 인터뷰를 했다. 오후 7시에 준형은 사진기자와 함께 사무실로 찾아왔다. 나는 의자에 등을 꽂꽂이세운 자세로 어색하게 미소를 짓고 열댓 장의 사진을 찍었다. 변호사답게 책상 아래로 두 발은 헤진 실내용 슬리퍼를 신었다. - P69
그리고 질문들이 있었다. 준형은 용역 폭력배가 아닌 경찰이 아들을 죽였다는 박재호의 주장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건 의심의 여지없이 기사거리였다. 그녀가 원하는 대답은 정해져 있었지만 내 대답은 아직도 조심스러웠다. - P69
만약 이 사건에 진실이 따로 있다면 검사는 진실을 문을 시간도 쥐고 있다. 그의 책상에서 증거의 조각들과 그것들을 이어 붙여 원하는 그림을 만들어줄 법리들이 검토될 것이다. - P70
인터뷰는 한 시간 안에 끝났다. 우리는 간단한 저녁 식사를 겸하여 맥주를 마셨다. 그 자리에서 더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나는 사소한 이야기도 그녀의 기사가 될 수 있다고 여겼다. 내 첫 신문 인터뷰가 있었던 날이기 때문이다. - P70
기자 초년에 그녀는 자기 또래 용역 폭력배가 아버지뻘 되는 철거지역 주민의 머리카락을 쥐어 땅바닥에 내동댕이치는 모습을 봤다. - P70
이야기는 나를 감동시켰다. 나는 그녀에게 강렬한 인상을남길 내 삶의 어떤 국면을 찾아 헤매다가 골품화된 법조계의 신분질서를 논하기 시작했다. - P71
"소수자요? 그건 아들을 잃고 도리어 구속된 사람한테 쓰는 말 아닌가요? 여자로 태어난 일간지 사회부 기자도 가끔은소수자죠. 30대 중반의 남자 변호사도 소수자일 수 있나요?" "그 관점에 동의합니다." - P71
"내가 덜 취했어요. 그쪽보다." 그녀는 한사코 데려다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했다. 밤이 너무깊었어요. 그녀가 말했다. - P71
모든 밤은 구치소의 밤과 같아 차등도, 차별도 없이 세상을 덮었다. 커튼을 쳐서 밤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이불을 접어서 밤을 걷어낼수도 없었다. 그렇게 밤을 치워낼 수 있겠는가. - P72
밤 이전이란, 밤 이후란 없다. 밤이 온 게 아니다. 밤 아래 세상이 온 것일뿐. 밤이 너무 깊었다. 아마도 그런 것 같다.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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