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획을 긋기도 전에 문장 전체가 어떤 식으로 구성될지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테드 창의 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에 나오는 문장이다. 영화<컨택트>의 원작이기도 하다. - P87
인용한 소설의 구절은 헵타포드의 언어에 대한 설명이다. 인간과 헵타포드는 다른 방식으로 우주를 이해한다. 인간은시간의 한순간만을 볼 수 있지만 헵타포드는 과거와 미래를 한꺼번에 본다. 인간에게 과거는 기억 속에만 존재하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지만, 헵타포드에게는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마저 생각 속에 이미 한꺼번에 존재한다. - P88
19세기 중반 윌리엄 해밀턴은 운동법칙을 기술하는 새로운원리를 제시한다. 물체는 ‘어떤 물리량을 최소로 만드는 경로를 따라 움직인다는 것이다. 자유낙하 하는 물체를 생각해보자. - P89
이 글만 읽어서는 뭔가 마술 같은 일이 일어난 것 같지만, 수학을 들여다보면 당연한 결과다. 마치 ‘2‘를 세 번 더한 것이 2 곱하기 3‘과 같은 것처럼 말이다. 결국 뉴턴역학과 해밀턴역학은 물체의 운동에 대해 동일한 결과를 준다. - P89
이 원리가 작동하려면 가능한 모든 미래의 경로를 미리 내다보며 작용량을 계산해야 한다. 헵타포드는 이런 틀로 세상을 보고 있었던 거다. - P90
실제 해밀턴의 아이디어는 피에르 루이스 모페르튀이에서 나온 것인데, 모페르튀이는 최소작용의 원리를 신학과 결부시켰다. 이 세상은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굴러간다는 거다. - P90
컴퓨터와 인공지능은 비슷해 보이지만 근본원리는 다르다. 사실 그 다름은 뉴턴역학과 해밀턴역학의 차이와 비슷하다. 컴퓨터는 기본적으로 앨런 튜링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0‘과 ‘1‘의 비트로 표현된 데이터를 하나씩 읽어서 정해진 규칙에 따라 순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기계를 튜링기계라 한다. - P90
튜링기계인 컴퓨터는 뉴턴의 기계적 인과율에 따라 작동된다. 한순간 하나의 비트를 읽어서 명령어에 따라 시간 순서로 철컥철컥 일을 처리한다. - P91
연결 세기를 조정하여 기억을 만드는 과정을 학습이라 한다. 뇌의 이런 특성은 인공신경망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으며 이때문에 신경망도 학습을 할 수 있다. 학습이란 정해진 입력에 대해원하는 출력이 나오도록 연결 세기를 조정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 P91
인공지능은 신경망을 기반으로 한다. 신경망은 인간의 뇌가 작동하는 원리를 모방한 것이다. 뇌는 뉴런이라는 신경세포들로 구성된다. 뉴런은 신호를 전기적으로 전달하는데, 보통 수천 개의다른 뉴런들과 연결되어 있다. 이들 사이의 연결 부위는 그냥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연결의 세기가 변할 수 있다. - P91
알파고의 목적은 바둑에서 이기는 거다. 바둑은 집이 많은 쪽이 이긴다. 수학적으로 말해서, 나와 상대가 가진 집 차이를 최대로 만드는 경향으로 움직이는 기계다. 이를 위해 알파고는 모든 가능한 미래를 미리 가보며 집의 차이를 계산한다. - P92
우연과 필연
"과학은 객관적이어야 한다. 현상을 설명하는 데 어떤 목적인이나 의도를 끌어들여서는 참된 인식에 도달하지 못한다. 따라서 이런 것들은 체계적으로 거부해야 한다."
생물학자 자크 모노가 우연과 필연에서 한 말이다. 그는 생명체의 구조나 그것이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어떤 의도를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 P92
우주에 의도가 있다고 하면 모든 과학적 난제가 일거에 해결된다. 우주는 왜 생겨났나? 신의 의도 때문이다. 인간은 왜 존재하나? 신이 원해서다. 고온초전도현상은 왜 존재하나? 신이 그런 현상이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실제 많은 문명이 이런 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문제에 답을 해왔다. - P93
그렇다면 생명이 보여주는 생존의 욕구, 더 많은 자손을 남기려는 의도는 과연 무엇인가? 이에 대해서 현재 우리가 가진 과학적인 답은 ‘진화론‘이다. 진화에는 의도가 없다. 주사위 던지듯이무작위로 모든 가능성이 펼쳐진다. 검은색 나방도 나오고 흰색 나방도 나온다. - P93
그것에 대해 의도라고 부르는 것은 마치 알파고가 이길 의도로 바둑을 두었다는 것과 비슷한 말이다. 진화론의 시각에서 생명은 우연의 산물이다. - P94
뉴턴역학에서는 물체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으나 원자의 위치를 정확히 아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양자역학이 불가지론은 아니다. 특정 위치에서 원자가 발견될 확률은 알 수 있다. - P94
양자역학적 결과는 우연이 지배한다. 주사위를 던지면 어느 숫자가 나올지 알 수 없다. ‘1‘이 나왔다면 ‘1‘이 나온 이유 따위는 없다. 그냥 우연이다. 하지만 우리는 ‘1‘이 나온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진다. ‘1‘이 나온 것은 신의 의도가 아닐까? - P94
자크 모노의 생각은 이렇다. 샐명현상도 물리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물리법칙은 원자 수준에서 확률만을 알려준다. 생명도 이확률 법칙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간다.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왜 특정 사건이 일어난 것인지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 P95
그들을 사랑하며 현재를 산다. 미래를 다 아는 존재에게 현재를 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소설에서 작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어떤 대화가 되었는 헵타포드는 대화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미리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지식이 진실이 되기 위해서는 실제로 대화가 행해져야 했던 것이다."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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