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집은 의붓아버지가 취직한 목장의 한쪽 끄트머리에있는 손님용 숙소였다. 목장 주인인 미국인 부부는 플로르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들은 그를 ‘시시(애기)‘라고 불렀고, 학교에 다니고 영어를 공부하게도 도와주었다. 의붓아버지는 그들만큼 마음이 넓지 않았다. - P273

 의붓아버지가 정말로 자신에게 손댄다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굳게 마음먹었다. - P274

이 일로 플로르는 아무도 자신을 지켜주지 않을 거라는 의붓아버지의 말이 옳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접근을 받아들일 순 없었다. 플로르는 그가 또 잠자리에 기어들 때를 대비해 베개와 시트 사이에 칼을 숨겨두었다.  - P274

플로르는 그 집에 1년 가까이 머물렀다. 그사이에 어머니에게 연락하여 자신이 머무는 곳을 알렸고, 따로 연락하고 싶었던 사람의 연락처를 물어보았다. 바로 친아버지였다. - P275

이 시골 마을에는 텍사스농업기술대학교가 있었고, 관목과 농지가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으며, 상업 및 산업 시설이 몇 군데 있었다. 그중 하나는 샌더슨 팜스Sanderson Farms의 닭고기 정육공장이었다. - P275

텍사스주 토박이 저널리스트 로런스 라이트 Lawren Wright는 그의 2018년 저서 《주여 텍사스를 구하소서 God Save Texas》에서 텍사스의 160만 미등록 이주민을 묘사하는 새로운 표현을 제시했다. - P275

(・・・) 그림자 인간들이 제공하는 값싼 노동력이 이 나라를, 특히 국경 주들을 떠받치고 있다. 이들은 노예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유민도 아니다.¹ - P276

 아버지를 따라 브라조스 카운티에 오고 몇 년 후 플로도 그 공장에 지원했다. 지원서에는 본명이 아니라 그가 구한가짜 영주권에 적힌 ‘마리아 가르시아‘라는 이름을 썼다(플로르 마르티네스‘도 본명은 아니다). 회사는 서류를 문제 삼지 않고 즉시 그를 채용했다. 이 공장에는 미등록 이주민이 많았다.  - P276

일을 시작하고 몇 달 후, 회사에서 관리자를 늘릴 계획이라는 소식을 듣고 그 자리에 관심이 있을 만한 사람, 즉 몇 년 전에 만나 얼마 전에 남편이 된 마누엘에게 알렸다. - P277

혹시라도 이민국에서 나와 서류를 확인하면 문제가 복잡해질 것 같았다. 플로르는 마누엘과 상의한 끝에 공장을 그만두기로 했다. - P277

플로르가 하던 일은 컨베이어벨트, 이른바 ‘해체 라인‘에 걸린 채 회전하는 죽은 닭들에서 분비샘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목 잘린 닭의 행진은 눈 뜨고 보기 힘들었다. - P277

어느 날 그가 성실하고 쾌활하게 일하는 모습을 눈여겨본 한 손님이 그에게 다른 일자리를 제안했다. 그는 칙필에이 Chick-fil-A 체인점 점주였고, 플로르는 그곳 카운터에서 영어로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영어를 거의 할 줄 몰랐던 플로르는 급하게 영어를 배웠고 그 와중에도 팀장으로, 교대조 조장으로, 지점 매니저로 쭉쭉 승진했다. 유일한 문제는 지점 매니저가 받는 돈이 최저임금보다 약간더 많은 수준이라는 것이었다. - P278

닭고기 정육공장 해체 라인의 시급은 11~13달러다. 다른 일반 공장보다는 적은 편이었지만, 플로르가 선택할 수 있는 범위에서는 그곳이 제일 나았다. - P278

 그러나 그 이후에는 본인의 고통이 너무 심해서 닭을 걱정할 겨를이 없었다. 생닭걸기 라인에서는 한 사람이 1분에 65마리를 벨트에 걸어야 했다.
이 광폭한 속도를 따라가려면 한 손에 한 마리씩, 한 번에 두 마리를 꺼내 벨트에 거는 즉시 몸을 굽히고 다음 두 마리를 꺼내야 했다. - P279

도저히 참지 못한 플로르는 관리자에게 다른 일을 시켜달라고 요청했다. 이번에는 컨베이어벨트 맨 끝에 위치한 포장 라인에서 닭고기를 비닐백에 넣는 일이 주어졌다. - P279

플로르는 늘 통증에 시달렸지만, 몸의 아픔보다도 더욱 고약한 아픔이 있었다. 그를 가장 괴롭힌 것은 통증에 뒤따라오는 언어적, 감정적 홀대였다. 그 어떤 관리자도 그에게 상태가 어떤지묻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꾸짖었다. "일하기가 싫은 모양이지"하고 쏘아붙이는 사람도 있었다. - P280

 관리자를 무서워하는 일부 여성 노동자는 작업복 안에 바지를 한 겹 더 입고 정 급할 땐 선 채로 오줌을 쌌다. 그보다 더한 괴롭힘도 경험하고 이겨낸 플로르는 아무도 무섭지 않았기에 정 급할 땐 허락 없이 화장실에 갔다. - P280

2018년 내가 플로르 마르티네스를 처음 만난 곳은 벽돌로 지어진 교회를 마주 보는 ‘과달루페 성모회관‘이라는 브라이언의주민 시설이었다. 이날 이곳에서는 가금류 도축 노동자의 권리를 교육하는 세미나가 열렸다. - P281

사람들은 쉬는 시간이면 바깥에 옹기종기 모여서 세미나 주최 측이 준비한 가정식 플라우타와 타말레를 먹으며 스페인어로 담소를 나누었다. - P281

남편 마누엘이 관리자라는 사실도 얄궂게 작용했다. - P280

 관리자가 그 윗사람들에게 받는 압박에 비하면 플로르가 느끼는 압박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회의에 들어가면 왜 일선 인력을 더 세게 압박하지 못하느냐고 추궁당한다고 했다. - P281

미국에서는 1990년대 닭고기가 콜레스테롤이 적다는 장점을 내세워 소고기 대용 식품으로 자리매김한 이후 닭고기 정육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상했다. 닭고기 소비량이 급증하면서 앨버트빌 같은 지역에 새 일자리가 생겨났는데 그 자리는 주로 멕시코계와 과테말라 이주민이 차지했다. - P282

앨라배마주의 유력 정치가 중에도 같은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중 한 사람인 연방 상원의원 제프 세션스는 이주민에대해 강경한 입장을 내세웠고, 특히 앨라배마주 가금류 산업의 노동자 구성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세션스의 친한 친구이자 반이주민 단체 넘버스유에스에이 Mumber5U34의 창립자인 로이 벡Roy Beck은 <디스 아메리칸 라이프>에서 세션스가 "이주민 문제를 자신의 간판 사안으로 만든 데는 앨라배마주 가금류 공장 관련 경험이 결정적이었다"고 말했다). - P282

 다만 어느 정도는 이주민 때문에 본토인에겐 매력이 떨어지는 일자리가 된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앨버트빌에서든 다른 어디에서든 닭고기 공장 일은 ‘이주민 노동‘
이 되었고, 그 결과 이 산업에 종사하는 모든 노동자의 임금과 협상력에 이주노동자가 하방 압력으로 작용하여 일의 위상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 P283

다만 어느 정도는 이주민 때문에 본토인에겐 매력이 떨어지는 일자리가 된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앨버트빌에서든 다른 어디에서든 닭고기 공장 일은 ‘이주민 노동‘
이 되었고, 그 결과 이 산업에 종사하는 모든 노동사의 임금과 협상력에 이주노동자가 하방 압력으로 작용하여 일의 위상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 P283

 <디스 아메리칸 라이프>의 해당 회차가 방송된 2017년에 그의 시급은 11.95달러로, 인플레이션이 제대로 반영되었다면 받았을 금액의 거의 절반 수준이었다. 2002년가금류 도축 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제조업 전체 평균 임금보다24퍼센트 적었다. 2020년에는 그 차이가 40퍼센트로 벌어졌다.  - P283

 그러나 실제로는 적은 임금에도 일하고 싶어하는 이주민의 공급 증가가 업계의 부담을 덜어주었다(회사 측이 노조에 가입하지 않고 불평도 거의 하지 않는 절박한 이주노동자를 선호한다는 사실은 팻 같은 본토인도 감지하고 있었다). - P284

 "이주자를 고용할 수 있는 한고용주는 더러운 일을 개선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않는다. 그리하여 미국인은 더러운 일에 점점 더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³ - P284

3 Philip Martin, "The Missing Bridge: How Immigrant Networks KeepAmericans out of Dirty Jobs," Population and Environment 14, no. 6(1993): p.539. - P478

물론 진보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이주노동자를 이런 식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들이 보기에 이주노동자는 다른 모든 사람이 하지 않으려는 힘들고 보람 없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 P284

 일단 가축을 공장식으로 사육하고 도축하는 산업에는 동물 학대, 호르몬제 · 항생제 남용, 환경오염 등 진보주의자가 혐오하는 많은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베스트셀러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2009)에서 작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Jomathan Safran Poer는 공장에서 생산한 고기를 "고문당한 살‘이라고 표현했다.⁵ - P285

5 Jonathan Safran Foer, Eating Animals (New York: Little, Brown, 2009), p.143. - P478

공장에서 생산한 고기를 먹는 것은 이 고문에 가담하는 것이라는 이 책의 메시지는 건강과 생태계에 관심을 갖고 전통적인 농가에서 생산한 유기농 고기를 소비하거나 채식을 선택하는, 점점늘고 있는 소비자층에 반향을 일으켰다. - P285

 또 KFC가 "올해의 우수 공급업체"로 선정한 어느 시설에서는 "닭을 걷어차고 짓밟고 벽에 내던지고 눈에 씹는담배를 뱉었다."⁶ 이런 글에는 사람이 동물을 죽이는 일을 하면 사악한 고문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 P286

6 위의 책, p.182.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송은주 옮김 (민음사, 2011) -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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